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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9일 월요일

대통령의 우려스러운 대북인식

체제 대결, ‘이웃 국가’ 입장으로는 남북화해도 평화도 실현할 수 없다
최은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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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30  10: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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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사무처장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 70년 기념식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의 한 당사자이면서도 기존 남북 간 합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내용을 곳곳에서 언급한 것은 물론, 체제 대결과 우월의식도 너무나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교부나 국방부 관리가 했어도 비난받을 만한 연설이 최고 통수권자이자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인 대통령의 연설로 나왔다는 점에서 너무나 실망스럽다.
6.25 기념사이니 이 정도 얘기할 수 있지 않나? 아니다. 2000년 6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2010년 6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어떤 기념사도 이와 같지는 않았다.
총체적으로 실망스러운 가운데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몇 대목을 언급하려고 한다.
전쟁의 고통을 청산하려면 참전국과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를 넘어서야 한다
한국전쟁은 민족 내부의 전쟁이자 국제전이었으며, 유럽 전역을 휩쓴 세계대전보다 오히려 민간인 희생자 숫자가 훨씬 많았던 참혹한 전쟁이기도 하다. 당시 민간인 희생이 컸던 배경에는 대통령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미군과 군경의 역할도 포함되어 있기에, 한국전쟁은 참전국과 참전용사에 대한 기억과 감사로만 표현하고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하고 비극적인 현실이 중첩되어 있다.
때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전쟁을 도와준 미국과 우방국, 참전용사들의 ‘승리’에 대한 기억과 감사함을 중심으로 머물러 있는 한, 그 전쟁 속에서 고통 받았던 온 국민과 겨레의 상처는 제대로 치유될 수 없으며, 이 민족공동의 비극을 청산하는 메시지 역시 제대로 정립될 수 없다.
이번 기념사는 너무나 분명하게 이를 보여주고 있다.
공식 연설이라 믿기 힘든 노골적인 체재 대결과 우월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 유엔안보리의 집단 결의, 한미동맹 등 체제 경쟁적인 내용으로 일관한 끝에, 남측의 GDP는 북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400배가 넘는다면서 남북간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그 말이야말로 체제 경쟁과 우월의식이 여전히 대북인식의 근간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아니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조차 경제적 격차로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제도적 차이, 국제적 환경의 차이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경제력을 수치로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일방적인 관점에서 격차를 강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태도이자, 천박한 우월의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할 남북관계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끝끝내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불과 2년 후, 아무리 6.25 기념사라고 해도 정상회담의 당사자로서 기존의 발언은 온 데 간 데 없고 상대방의 제도, 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을 깡그리 폄훼한 것은 최소한의 선을 넘어선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사이좋은 이웃’은 공존 선언이 아니라 분리 선언
문재인 대통령은 체재경쟁이 끝났다는 언급에 이어, 체제를 강요할 생각이 없으며,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언급하였다. 사실상 통일을 체제경쟁의 결과, 흡수통일로 본다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울)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사이좋은 이웃’, 즉 ‘이웃 국가’ 관계로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남과 북이 합의한 통일, 남북공동선언에서 말하는 통일은 서로 제도의 차이를 존중한 가운데 화해하고 협력하는 과정, 즉 사이좋은 관계가 되는 그 과정과 결과를 총체화한 것이지, 체제 경쟁에 따른 결과가 결코 아니다.
첫 번째 정상회담 합의인 6.15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1항에,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해 나가자, 즉 상호 제도와 차이를 인정하고 민족통일기구(연합기구)를 구성하여 통일정책을 펼쳐 나가 통일을 완성해 가자는 내용을 2항에 명시하였다. ‘민족 내부 문제로서의 통일’의 성격과 그 실현의 기본 원칙인 ‘자주와 대단결’, ‘상호 존중에 기초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방법론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에 따르자면, 사이좋은 관계가 되는 과정과 결과야 말로 통일이므로 굳이 통일과 사이좋은 관계를 양자택일 할 이유도 없으며, 남과 북을 ‘이웃 국가’ 사이의 표현인 ‘사이좋은 이웃’이라는 양국 관계로 규정할 이유도 없다.
둘째,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다. 기본합의서의 전문에 굳이 이렇게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까지 못을 박은 것은 남과 북을 두 개의 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민족 내부 문제인 통일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서로 각기 살자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다섯 번의 정상회담과 네 개의 공동선언들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실체에 기초하여 남과 북의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과 구체적인 행동과제를 담고 있다. 지속적으로 통일의 지향과 그를 위한 노력을 말해왔으면서도, 이제 와 굳이 통일을 뒤로 하고 이웃부터 되자는 것은 ‘공존’ 선언이 아니라 사실상의 ‘분리’ 선언일 뿐이다.
더구나 이것은 일개 당국자의 발언이 아니다. 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 합의 당사자이자 통일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남북기본합의서와 모든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부정하고, 사실상 남과 북을 ‘이웃 국가’로 다루려는 입장을 밝혔다는 데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전쟁종식의 의지를 담은 공동선언 이행 없이 어떻게 전쟁을 끝내나? 
통일의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또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개선은 필수적이지만, 이번 연설에서 체재 대결의식과 이웃국가론 외에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와 해법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한반도 전쟁종식을 위한 노력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한반도 전쟁종식에서 가장 중요한 합의, 한반도 전쟁종식을 향한 정상들의 의지를 담은 6.12북미공동성명,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이행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2018년 말부터 네티즌들이 6.12싱가포르선언 이후에 북이 합의 이행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은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 중단, 핵시험장 폭파, 미군 유해송환 등이 있지만, 미국이 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남북공동선언은 어떠한가. 대통령과 정부가 합의만 해놓고 전단 살포 중지와 같은 내용조차 지키지 않아서 남북관계는 사실상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 전쟁종식의 의지를 담은 북미공동선언, 남북공동선언조차 이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만을 지목하여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이다.
상대방의 노력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 측의 행동을 돌아보고 관계개선을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 남북관계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리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전날,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5차 회의 예비회의에서 인민군 총참모부에서 올린 대남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는 결정을 하였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2년간의 약속 불이행을 거친 언사로 비난하면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추가로 예고된 군사행동을 김정은 위원장이 ‘보류’한 것이다. 정상회담 당사자로서 다시 한 번 남북관계의 끈이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기념사는 시점으로나, 정상회담 당사자라는 격으로 보나 김정은 위원장의 조치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할 만한데, 그 내용으로 볼 때, 실낱같이 열려있던 남북관계의 문을 사실상 스스로 닫아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본 기고는 <민플러스>와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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