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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9일 금요일

왕도마뱀은 왜 독이빨로 서로 싸워도 무사할까


조홍섭 2019. 08. 09
조회수 1461 추천수 1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 게놈 해독…혈액 응고 조절 등 진화

k1.jpg»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혈압을 급격히 낮춰 먹이 동물에 쇼크를 일으키는 독이 들어있다. 그러나 왕도마뱀은 이를 회피하는 혈액 응고 조절 유전자가 있다. 왕도마뱀의 독은 혈전 방지에 응용될 전망이다. 브라이언 프라이 제공.

코모도왕도마뱀은 여러모로 특별한 동물이다. 길이 3m 무게 100㎏까지 자라는 세계 최대 도마뱀으로, 사슴과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고 사람 습격도 마다치 않는다.

후각 기능이 매우 뛰어나 12㎞ 밖에서도 먹이 냄새를 맡으며, 시속 20㎞로 달릴 만큼 빠르면서 지구력도 강해 사냥감이 쓰러질 때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냥 때는 톱니 달린 이와 날카로운 발톱 말고도 생화학 무기도 동원한다. 이 도마뱀은 잠복해 있다 다가온 동물의 다리나 배를 문 뒤 놓아주는데, 물린 동물은 도망가면서 차츰 기력을 잃고 피를 흘리며 죽는다.

이 때문에 코모도왕도마뱀이 질질 흘리는 끈적한 침 속에는 치명적 세균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침 속의 화학물질이 피가 굳는 것을 가로막고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먹이 동물이 과다출혈과 저혈압 쇼크로 죽는다고 설명한다(▶관련 기사길이 3m 무게 100㎏ 도마뱀은 독사).

k2.jpg» 짝짓기, 먹이, 영역을 둘러싼 코모도왕도마뱀 사이의 싸움이 매우 잦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는 상처가 치명적이지 않다. 다나디 수트지안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충류이면서 포유류 포식자처럼 지구력과 힘을 내는 비결은 뭘까. 또 침 속에 치명적 ‘독’이 들어있다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수컷들은 어떻게 무사한 걸까. 이런 비밀을 밝혀줄 단서가 들어있는 코모도왕도마뱀의 유전체(게놈)가 해독됐다.

애비게일 린드 미국 글래드스턴 연구소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 및 진화’ 8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의 게놈을 고해상도로 해독해 높은 에너지 대사, 심혈관의 항상성 유지, 뛰어난 냄새 감지, 지혈 등 독특한 생리적 기능이 특별히 진화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린드 박사는 “이 도마뱀의 유전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유산소운동 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화했다”며 “이런 변화 덕분에 왕도마뱀은 포유류에 필적하는 대사능력을 보인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k3.jpg» 코모도왕도마뱀이 포유동물에 필적한 생리 기능을 보이는 비결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신진대사를 늘리고 심폐기능을 향상하는 적응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크 두몽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코모도왕도마뱀은 심폐기능도 독특하게 진화해, 급격한 혈압상승이 가능해졌다. 연구자들은 “그 덕분에 이 도마뱀은 섬과 섬 사이를 장거리 헤엄치고, 장기간 사냥과 수컷끼리의 격렬한 싸움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런 형태의 진화는 긴 목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고혈압이 필수적인 기린에서도 발견된다고 논문은 덧붙였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짝짓기뿐 아니라 먹이와 영역을 둘러싸고도 싸움이 잦아 상처가 없는 개체가 드물 정도다. 먹이 동물에 치명적인 저혈압 유발물질이 들어있는 침에 노출되고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게놈 분석 결과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도마뱀의 유전체에서 혈액 응고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선택되었음을 확인했다. 싸움 도중 상처를 통해 침 속 저혈압 유발물질이 들어오더라도 그 효과를 상쇄할 혈액 응고 기능이 있는 도마뱀만 살아남은 결과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올라있으며,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5곳에 약 300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bigail L. Lind et al, Genome of the Komodo dragon reveals adaptations in the cardiovascular and chemosensory systems of monitor lizards, Nature Ecology & Evolution, Vol 3, August 2019, 1241–1252, https://doi.org/10.1038/s41559-019-0945-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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