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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8일 월요일

자한당이 광주항쟁을 모독하는 까닭


시사평론 겉과속 20190218
  • 안호국 시사평론가
  • 승인 2019.02.19 07:59
  • 댓글 0
▲ 6.25전쟁중 이승만 정권의 최대학살 사건의 하나인 보도연맹 학살장면[사진 : 나무위키 캡처]
1. 쿠데타를 서둘러야 했던 절박한 이유
‘민간인학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은 1961년 박정희를 우두머리로 하는 군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였다.
그 전해인 1960년에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자유당 정권이 붕괴하자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요구들이 봇물터지듯이 솟구쳤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운동중의 하나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전쟁이 일어난 지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생생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학살이 자행된 전국 곳곳에서는 산더미같은 유골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학살된 민간인은 형무소 수감자 2만여명과 국민보도연맹원 20만∼25만명을 포함하여 45만명에 이른다. 제주4.3때와 여순사건때의 학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이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전투와 관련없이 자행되었으며 어떤 재판도 거치지 않고 벌어졌다. 그러니 그 잔혹함과 참상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조국의 산천도 고발한다. 푸른 별도 증언한다.’ 당시 유가족들이 내걸었던 구호를 보면 그들의 피맺힌 고통과 원한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일당이 제일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이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국 곳곳에 세워졌던 위령비를 모두 파괴하였다. 단순히 철거한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을 냈다. 부산에 세워졌던 위령비는 아예 가루를 내어 철길변에 뿌렸다.
진상규명운동에 나섰던 유족들을 오랫동안 감옥에 가두고 고통을 주었다. ‘민간인 학살에 관한 것은 털끝만큼이라도 알려고 하지말라’는 것이었다.
2. 학살로 만들어지고 유지된 정권
쿠데타를 일으킨 그들이 바로 학살을 자행한 장본인이었다. 이들의 학살 전력은 단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때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일제가 자행한 조선인에 대한 야만적인 학살을 집행했던 경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지금은 ‘일제때 친일 안한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궤변으로 자기들의 반민족행위를 가려보려 하지만 이들이 일제식민지배자들보다 훨씬 더 흉악한 야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립운동가들의 피를 묻힌 손에 수십만 민간인의 피를 더한 박정희일당은 자신들의 야만적인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그 일이 그들 자신의 범죄에 그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민간인학살은 이승만정권을 수립하고 유지한 핵심적인 일이었다.
80년 신군부는 광주에서 학살을 다시 자행하였다. 이들이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것은 민주화요구를 억누르고 군부독재를 유지하려는 데 있었다.
전두환은 당시 ‘누가 독침으로 사람을 찔렀다’, ‘불순분자가 개입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조작된 간첩사건을 발표하는 등 사회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들의 만행을 정당화하려고 갖은 수를 썼다.
이처럼 이승만정권이나 전두환정권 즉 자한당의 뿌리인 민정당정권은 학살의 토대위에 세워진 정부라는 점에서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독재정권은 18년동안 장기집권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학살로 수립되었을 뿐만아니라 학살에 의해 유지된 정권이었다. 이 또한 이 정부들의 공통점이다.
3. 학살을 꿈꾸는 무리들
자한당의 국회의원들이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괴한 상상력을 동원하여도 만들어내기 힘든 소문의 창작자는 극우편집증이 날로 심해지는 지모를 포함한 극우맹동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자한당 당대표로 출마하고 있는 4인중 2명이 이 주장의 유포에 앞장서고 있고 다른 자들도 적극 부정하지 않고 있으니 자한당의 입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들이 이런 괴이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들의 정체가 다 밝혀지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항쟁은 ‘지난 일’이다.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남아있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매우 미흡하지만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것을 뒤집어보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태극기부대’라고 불리우는 극우맹동집단의 집회에서는 듣기에도 끔직한 저주와 폭력을 선동하는 말이 넘쳐난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이나 광주학살은 열 번도 더 일어나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적폐집단, 국정농단세력이 권력을 다시 쥐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최근 이들의 생각은 행동으로 나가고 있다. 황당한 ‘북한군개입설’을 퍼뜨리며 광주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이런 책동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어이없다’고 웃어넘기기에는 한국의 현대사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친일매국세력이 결집했던 서북청년회로 대표되는 야만적인 극우집단은 대한민국 건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받은 군부가 50년 넘게 야수적인 폭력을 휘두르며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지배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런 때로 되돌아가는 것을 열망하고 있다.
4.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은 없어져야 한다
사대매국과 집단학살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무리들은 지금에 와서 태극기부대라 불리우는 집단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자한당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8천명의 태극기부대들이 선거권이 있는 자한당 당원이 되었고, 3만명이 입당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110석이 넘은 의석을 가진 자한당은 명실상부하게 태극기부대들이 벌이는 극우망동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었다.
태극기부대의 정당을 자처하였던 대한애국당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한국 정치와 대한민국 국회에게는 참혹한 사태다. 촛불혁명에게 매우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한당의 원내대표 나경원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기로 되어있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반대한다며 뉴욕까지 갔다.
나경원은 ‘북이 뉴욕DC를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천기를 누설해가며 반북대결을 선동하며 돌아다녔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북의 미사일능력까지 주장하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흐름을 적대와 대결, 파괴와 살육의 낡은 시대로 되돌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친일로 시작한 사대매국의 광기에 사로잡히면 정신이 나간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따라서 자한당이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일 것인지는 정상적인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설마 그런 일을?’ 또는 ‘어차피 망하게 되어있는 집단이다’는 식의 이성적인 반응만으로는 이들의 책동을 막을 수 없다. 이는 한국의 현대사가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자한당은 태극기부대식 극우선동에 앞장서는 김모가 당의 유력한 정치인으로 되어 있으며, 국정농단의 돌격대장이었던 황모가 당대표를 차지할 것이 유력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당이 촛불혁명시대의 대한민국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집권2년차가 넘어서며 이런 저런 트집거리가 생기자 적폐집단들,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 촛불혁명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들을 부추키고 뒤를 봐주는 것이 국회 제2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한당이다.
이들이 사로잡힌 광기의 수준으로 볼때 집단학살로 얼룩진 비극과 아픔이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적폐집단, 국정농단 세력은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반성할 줄 모르며, 그들이 쥐었던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권력을 다시 쥐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을 정당화하려고 광주항쟁을 모독하는 당치도 않는 주장을 버젓이 해대는 것이 증명해주고 있다.
자한당에게서 정치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한줌의 힘도 남겨주어서는 안된다.
적폐청산, 국정농단 관련자처벌을 향한 촛불혁명에 힘을 모으고 더 힘있게 전진시켜야 한다.
안호국 시사평론가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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