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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2일 화요일

[기획②]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석기 전 의원은 정치범, 빨리 석방돼야지”

[인터뷰] “내란음모 사건은 정치적 탄압, 문 대통령도 풀어주고 싶을 것”
고희철 보도국장
발행 2019-02-13 00:06:54
수정 2019-02-13 09: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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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편집자주ㅣ 한반도 정세 대전환 속에 맞이하는 3.1운동 100주년. 시민단체와 국제사회에서는 해묵은 과제인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권존중과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표방한 ‘촛불정부’의 색채가 묻어나는 3.1절 특사가 이뤄질지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오랜 기간 민주화운동을 해온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정치범을 놔두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면서 “이석기 전 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범, 양심범을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을 인터뷰한 12일은 마침 자유한국당의 ‘5.18 모독 공청회’ 후폭풍으로 종일 온 나라가 들썩인 날이었다. 역사 문제를 천착해온 그에게 이 문제를 먼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임 소장은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선진국은 두 가지 요건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먼저 꼽은 선진국의 요건은 ‘세계시민의식’이다. “평화, 민주주의, 인권, 세계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국민소득보다 중요한다”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이들이 80%가 넘어야, 이에 역행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20%보다 적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는 지론을 폈다. 
극우인사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임 소장은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 사회 지도자급 인사로 대우를 받는가? 유럽 가면 범법자로 기소되고 실형 받는다”면서 “이런 걸 용납하는 사회도 부끄럽고,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임 소장이 두 번째로 꼽은 선진국의 요건은 바로 ‘정치범이 없는 나라’였다. 그는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불법이다? 선진국이라면 이걸 상상할 수 있겠나”라며 “3.1절을 맞아서 이석기 전 의원 등 정치범을 사면한다, 안 한다 하는데 정치범은 원래 없어야 한다. 언제든 빨리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범 없는 나라가 선진국 
5.18에 북한군 들어왔다는 식의 주장이 진짜 국가 위협“
 
그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른바 ‘나치 금지법’ 또는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으로 불리는 법률이 있음을 지적했다. 임 소장은 “독일이든 어느 나라든 나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나치화, 파시즘화 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파시즘적 주장을 규제할 법안이 우리나라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내 생각 그대로 말하자면 그게 일종의 국가보안법이다”라고 말을 던졌다. 이어 “과거 국가보안법에서 국가는 이승만, 박정희 독재국가여서 독재자를 위협하는 것을 곧 국가 위협으로 봤다”면서 “이제는 국가 개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사회를 망치고 위협한다는 것도 ‘철지난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로 변모하면서 국민복지와 인권,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진짜 국가 위협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어 “5.18 광주에 인민군이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이보다 더 해로운 반민주적, 반시민적 발언이 어디 있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임헌영 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 두 차례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중 문인간첩단 사건은 지난해 6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돼 44년 만에 누명을 벗은 바 있다. 오랜 기간 정치적 박해를 당했지만 진보적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2003년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평생 민족통일과 민주주의를 지향해온 그에게 한반도 대전환을 지켜보는 감회를 물었다. 그는 “20세기는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식민지, 동족상잔, 분단, 냉전, 군사독재로 이어진 20세기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을 대단히 호평했다. 임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근대사 이후의 흐름을 바꿨다”면서 “동학혁명도, 3.1운동도, 4.19혁명도 못 바꾼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지식인과 국민들은 이런 시대가 올 때까지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탄압하고 가해한 자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임 소장은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 독재하고 수탈한 사람들, 전쟁 안 해도 되는데 전쟁한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들에게 참회하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름 뒤에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 완화, 나아가 평화협정까지, 이전에는 거론하기도 힘들었던 방안이 버젓이 보도되고 있다. 2013년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이 제안은 불온하거나 황당한 주장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임 소장은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도 합당하고 합헌적인 주장이었다”면서 “우리 헌법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명시하고 있지, 전쟁이나 북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을 해체한 것은 당시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이고 (이석기 전 의원)재판도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정치공학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지 법률 위반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석기 전 의원은 명백한 정치범, 풀려나야” 
“문재인 대통령도 잘 알고 있고 석방시켜주고 싶을 것”
 
임 소장은 “이석기 전 의원은 명백한 정치범이고, 그러므로 풀려나야 한다. 이미 산 징역도 대단히 억울한 징역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 전 의원은 내란음모는 무죄를 받았으나 내란선동 유죄로 9년형을 선고받고 2013년부터 6년째 수감 중이다. 임 소장은 “정치범은 정치하다 투옥된 사람이 아니라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개념으로는 ‘확신범’에 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의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시국사범이 포함될 것인가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시절 ‘내란범’으로 낙인찍힌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이 최대 쟁점이다.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 전 의원이 억울한 면이 있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보수야당과 일부언론 등의 정치공세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그런 것을 봐주니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하나를 찍어서가 아니라 정치범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누구는 안 돼, 무슨 사건은 안 돼 라는 논리는 틀렸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임 소장이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나 여당도 석방시켜주고 싶을 것”이라면서 “반대세력의 비난으로 시끄러워지는 것 등 세부적 문제를 계산하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나보다 더 깊이 생각할 것”이라며 “나는 출마도 안 할 사람이니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 분들은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내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다 안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소장은 시민사회와 국민들에게 “정부가 의지가 있으니 평화번영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정부에게 힘을 모아주면 정부도 좋고 국민 모두에게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지켜본 진보정당에게는 ‘반성’과 ‘화해’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건 ‘코미디’라며 유럽 가면 중도도 될까 말까한 보수당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세계 진보세력은 다 분열돼서 망했다. 진보정치세력이 똑똑할수록 진보정당이 안 된다”면서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분열되면 다 무너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런 교훈이 있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잘하면 어제의 원한을 씻고 힘을 합쳐서 뭉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전쟁한 남북도 화해하는 판에 왜 반성하고 화해 못 하겠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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