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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은 2008년 나왔다. 미술사 강의 때 쓸 적절한 교재가 없어 시작한 가벼운 프로젝트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는 낡고, 시점도 간단했다.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3편으로 끝을 내려다 다시 ‘인상주의 편’을 써 최근 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4권 완간을 두고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 10년 만에 서양미술의 지도를 완성하다’라고 선전한다. 미학과 미술사를 넘나들며 서양미술의 역사와 원리를 한 번에 묶어낸 책이라고도 했다. 
저자에게 완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19일 휴머니스트에서 진중권을 만났다. 완간 의미를 묻기 전에 최근 시사 이야기를 꺼냈다. 논객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는 그는 드루킹 사건과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두고 독설을 날렸다. 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 진중권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자신을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한 진중권은 집필 중이거나 계획중인 ‘철학 오디세이’와 ‘미학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 연락처에 016 번호이길래, 지금도 쓰나 했어요. 혹시나 전화했더니 받으셨고요.
“고장이 안 나서요. 2G폰 써요. 슬라이드 폰요. 한 10년 됐어요.”
- 스마트폰 안 쓰나요. 
“통화가 되는데 왜 바꿔요. 그 점에서는 보수적이라서 늘 쓰던 거 쓰고, 늘 입던 거 입고, 늘 먹던 거 먹어요. 스마트폰은 없어도 아이패드가 있어요. 논문 PDF 다운을 많이 받아요. 위키피디아 볼 때도 아이패드가 편하죠. 카톡, 그거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웃음)” 
-SNS는 안 하는 듯하던데요. 
“트위터는 팔로워 86만 가고 접었어요. 페이스북은 옛날에 했는데 사적으로만 했죠. 페북 친구는 외국인으로, 그것도 열댓 명밖에 안 돼요.” 
- 책이나 강연으로만 발언하는 거네요. 
“<외부자> 나가서도 하니까요. 그것도 솔직히 지겨워요.(웃음) 한 이야기하고 또 하고요. 게다가 요즘은 온통 음모론자들이잖아요. 김어준, 드루킹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도 민주당도 바른미래당도 다 음모론에 빠져 있어요.” 
- 시사 문제는 나중에 조금 물어볼까 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드루킹 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생각해 봅시다. 파주의 ‘산채’라는 곳에 모인 수십 명의 오타쿠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전형적인 음모론이죠. 그 사람들이 댓글 조작을 해야 얼마나 하겠어요. 하루에 쏟아지는 수천, 수만 개의 기사 중 몇 개를 하겠어요? 연구에 따르면 포털에 들어가 댓글 놀이하는 이들은 전체 누리꾼 중 0.0006%에 불과해서, 올라오는 모든 댓글을 약 3,000여명이 작성한다잖아요. 그걸 ‘여론’이라 부릅니까? 다른 연구에 따르면 댓글 보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사람은 없대요. 결국 조그만 찻잔 안에서 휘젓기 놀이하면서 찻잔 밖의 세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과대망상이죠. 어느 사회에나 드루킹 같은 이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의 음모로 세상을 바꾸려 드는 정신병자들. 그 반대편에는 그 망상을 진지하게 믿어주는 김어준 같은 이들이 있죠. 눈에 뵈지 않는 소수의 조작으로 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니 색출하자. 뭐, 이런 황당한 음모론을 방송에 대고 떠들어대니, 세상에, 그걸 또 민주당에서 받아요. 그래서 경찰에 고발을 하고, 결국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죠. 2012년 총선은 김용민이 말아먹더니. 올해 지방선거는 정봉주-김어준이 말아먹게 생겼네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반대편에서 음모론에 가담합니다. 조선일보에서는 드루킹의 조작으로 대선결과가 바뀌었다는 투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나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후보 역시 자기들이 드루킹 때문에 정권을 놓쳤다며, 대선이 무효라 주장하잖아요. 다들 음모론에 환장했어요. 헷갈리면 일단 큰 그림부터 보면 됩니다. 첫째, 민주당에서는 불법적으로 댓글부대를 만들어 운용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잖아도 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이버전사 역할을 하겠다는 열성적 지지자들로 차고 넘치니까요. 둘째, 이번 수사는 민주당 측의 고발로 시작된 겁니다. 드루킹이 민주당이나 문 캠프에서 관리하던 댓글부대라면, 뭐 하러 경찰한테 그 실체를 밝혀달라고 하겠습니까? 이것만 봐도 사건의 성격은 분명해집니다. 민주당이나 문캠프에서 지난 대선에서 불법 댓글부대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이 두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수언론이나 보수정당은 이 기초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없이 의혹을 뻥튀기 해 음모론만 펼치고 있지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봉주 전 의원 사건 두고도 언론기고를 두차례 하셨는데, (정 전 의원) 팬들도 많고, 같이 방송도 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거짓말 할 줄 몰랐거든요. (정 전 의원 서울시장) 출마 전날 홍보영상 찍어줬거든요. 그다음 날 일이 터졌는데, 이틀 시간 두고 보겠다고 해서 정리 잘할 거라 봤는데, 갑자기 기자회견 열어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화가 났죠. 믿었는데. (정 전 의원에게) 문자를 보냈죠.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마초들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때 적반하장으로 피해자한테 2차 가해를 하고, 프레시안과 같은 진보언론에 이지메를 가했잖아요.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비판한 거고요.”
- 최근 다시 모두 까기로 돌아가신 듯한데, 모두 까는 기준 잣대가 무엇인지요.
“생각해보세요.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서 피해자 편 드는 건 당연하잖아요. 정 전 의원과 팬들은 변명을 하는 게 아니라 외려 피해자를 공격했습니다. 뽀뽀할 수도 있지 하는 식으로. ‘키스 미수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너도 정봉주 의원에게 키스 미수 당하면 기분 좋겠냐고 묻고 싶어요. 한경오프를 공격하는 것도 그래요. 조중동도 아니고, 진보언론도 아니고, 오직 나꼼수만 믿겠다는 거죠. 이 ‘꼼진리교’가 대중의 의식을 현저히 왜곡시켰어요. 상황이 2012년보다 더 나빠요. 그때는 사실이 아닌 거로 드러나면 수긍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수긍도 안 해요. 그냥 종교가 된 거죠.”
- 미투운동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투는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늘 가해자이니까요. 가슴으로 잘 못 느끼죠. 고작 키스 한 번에 정치 인생 날리는 건 너무하는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가슴으로 못 느끼면 머리로 생각이라도 해야죠. 여성이 해방되어야 남성이 해방돼요. 지금 학교에서 A받고, 이런저런 시험에서 우수 성적자들이 다 여자잖아요. 성실하고. 우수한 자원들 쓰면 경제도 좋아지죠.”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서양미술사>‘인상주의’ 편으로 총 4권 완간하셨는데요. 완간 의미 짚어 주신다면요. 10년 걸렸는데. 
“미술사 책은 잰슨 것이나 곰브리치 것이 나와 있죠. 많은 경우 (기존) 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그 많은 화가들 이름이나 유파들 기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 버려요. 그래서 그런 책을 읽기 전에 뭔가 ‘지도’의 역할을 해 줄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사에 골격을 세운다고 할까요? 골격만 서 있으면 피와 살을 붙이는 것은 독자 스스로 할 수가 있지요. 그럴 목적으로 세 권(‘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썼는데, 모더니즘 편을 강의하다 보니까,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데 뭔가 비어 있는 거예요. 모더니즘에 들어가기 전에 서너 시간은 인상주의 등 19세기 후반 미술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바에야 아예 한 권을 더 쓰자고 해서 인상주의 편을 쓰게 됐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서양미술사는 더 쓰실 계획은 없나요? 
“그러면 정말 본격적인 미술사가 되어버린다는 거죠. 그건 제 의도도, 제 전공도 아니고요. 기존 미술사는 모든 걸 다 다루다 보니 보통사람이 들어가면 길을 잃어요. 저는 미학 전공이니, 미학적 관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흐름을 잡아가게 해주는 거죠. 일종의 입문서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제 서양미술사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요. 처음 ‘고전예술 편’은 쉽고, ‘인상주의 편’은 쉽되 그보다는 어렵고, 다음, ‘모더니즘 편’은 조금 어렵고, 마지막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은 많이 어렵습니다. 난이도가 1에서 2,3,4등급으로 올라가죠. 그래도 갈수록 용어가 익숙해지니까, 깊은 내용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편’ 중 ‘나가며’를 읽으니 모더니즘 편 안내를 해놓았는데, 안 보신 분들이 본다면 시대순으로 읽어야 하겠네요. 
“그렇죠. 인상주의 편은 두 번째로, 역사 순서대로 읽으면 돼요. 그게 난이도의 순서이기도 하니까요.” 
- 한국에서 인상주의는 왜 인기가 많을까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현대 예술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건 ‘감각적 쾌감’입니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정서적 감동을 원하죠. 그런데 현대 예술은 그것을 파괴합니다. 지성적 쇼크를 충격을 준단 말이죠.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죠. 사람들은 감동받고, 작가와 소통하길 원하는데 현대 예술가들은 소통 자체를 거부해요. ‘당신 스스로 머리로 생각하라’고 하죠. 소통은 코드가 같아야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현대 예술은 엘리트주의에요. 그러니까 ‘네가 머리를 썩여서 내 코드를 이해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거야’. 이러니까 대중에게 재수가 없을 수도 있죠. (고전주의 같은) 옛것들은 대중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제일 만만한 게 모던의 삶을 다룬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겠지요. 대중들에게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 하면, 아마 대부분 고흐를 꼽을 겁니다. 세잔만 해도 사실 대중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죠.” 
- 인상주의 화가 중 누구를 좋아하나요. 
“인상주의 자체를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실은 후기인상주의의 세잔을 좋아해요. 그밖에 미술사에서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고야를 꼽고 싶습니다. 그의 ‘pinturas negras’(검은 그림들)은 매우 철학적으로 깊어요. 화가들 중에서 뭐랄까, 심연처럼 깊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고야이고, 또 하나가 세잔이에요. 전체 화가 중 하나만 뽑으라면 세잔을 뽑아요. 예쁘기만 한 그림은 별로 안 좋아하고, 값싼 감동도 혐오하는 편이라서요. 저는 이지적인 게 좋아요. 예술가의 고뇌 같은 말도 안 되는, 레토릭도 혐오하고요.”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 세잔은 좀 의외인데요. 현대미술가를 좋아할 듯했습니다. 
“세잔이 바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니까요. 세잔은 파고 파도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이 원근법을 다 믿었잖아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사람이죠. 눈에 보이는 것이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냈죠.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원근법적 재현만이 현실에 대해 유일하게 올바른 묘사라고 봤습니다. 원근법은 고정된 하나의 눈에 비친 장면을 평면에 옮겨놓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린 사물을 두 눈으로, 안구를 움직여 시점을 바꿔가며 보죠. 망막도 구면으로 되어 있고요. 실제의 지각의 과정은 광학적이 아니라 뇌과학적이에요. 그때그때 시점과 초점과 위치를 바꿔가며 지각한 파편들을 뇌 속에서 하나의 전체상으로 종합하는 거죠. 그런데 그 옛날에 아무런 뇌과학적 지식 없이도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의지해서,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고 말한 이가 세잔이에요.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을 갖춘 사람인 거죠. 메를로퐁티가 이 주제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세잔은 원근법적 재현이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세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는데, 메를로퐁티가 이를 ‘체험적 원근법’이라 불렀죠. 사진을 찍으면 원근법 하고 일치합니다. 사진에 시각을 비유들 하죠. 하지만 우리 눈은 세상을 사진처럼 보지 않아요. 세잔은 그걸 감각으로 깨달은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의 시각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360도로 회전시킬 때가 있지요. 그때 화면에서는 나는 가만히 있고,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서 360도 돌아보세요. 그럼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도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죠. 앞의 것은 시각적-광학적 지각이라면, 뒤의 것은 촉각적-뇌과학적 지각이라 할 수 있지요. 세잔은 바로 그 차이를 느낀 거죠.”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미술사 중 어느 시기를 제일 좋아하시나요. 
“저는 모더니즘이에요. 예술의 정점이었다고 봐요. 제일 재미있고요,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방가르드였죠.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가 하나가 된 것이 모더니즘 시기이고요. 미술사의 영웅적이고 혁명적 시기죠. 물론 앤디워홀도 혁명적이기는 하나, 어딘지 체제 순응적이잖아요. 솔직히 워홀 이후의 미술사는 조금 재미없어요.” 
- 서양미술사는 처음 어떻게 쓰신 건가요? 
“그저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미술사를 강의하는데 적절한 교재가 없었고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엔 시점이 너무 오래됐고. 강의안으로 쓴 것인데, 10년에 걸쳐 쓰게 됐네요.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고요.” 
- 출판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학오디세이>는 모두 50만 부 넘었다고 하더군요. <서양미술사> 3권은 9만 정도고요. 상대적으로 적은데, 선생님 책이나 다른 분들의 책이나 미술책이나 인문책이 예전보다 판매량이 많이 줄었는데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변한 것이죠. 지금 팟캐스트 같은 게 흥하는 이유가, 예전 정보를 눈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거죠. 바로 사운드와 이미지죠. 거꾸로 팟캐스트에서 방송한 콘텐츠가 책이 되어 나오고요.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의 종언’인 거죠. 이 몰락은 필연적인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문학 책 읽는 사람은 중세 수도승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미디어 철학자가 빌렘 플루세르가 ‘디지털 시대에 순수 인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집단은 일종의 수도원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거든요. 전 (텍스트의 몰락에) 안타까움은 갖고 있지 않아요. 수익도 이제는 책에서 나오는 것보다 강연이나 다른 데서 나오는 게 훨씬 많아요. 채널이 달라진 거죠. 강연이나 팟캐스트 쪽으로요. 다만 그 강연이나 팟캐스트 역시 바탕에 텍스트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문자문화 이전으로 퇴행하게 되죠. 디지털문화는 문자문화 이후의 영상문화,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영상문화입니다. 여기서 텍스트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뿐이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여기저기 강의를 많이 하는데요. 
“1주일에 한 번꼴로 해요.” 
- 수익 때문인가요. 
“그럼요.(웃음) 인문학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걸로 하진 않아요.”
- 강연 중엔 ‘미학으로 본 새로운 사회’ 강연 타이틀이 있던데, 그 새로운 사회는 뭔가요?
“그건 주최측에서 대충 정한 거예요. (웃음) 특정한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저를 보자고 하는 겁니다. 제목은 저렇게 대강 붙여 놓고 원하는 거 해주세요. 이런 거죠. 그래서 제목이 넓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강연과 할 수 없는 강연이 있잖아요. 제목을 좁혀서 요청을 해오면 제가 감당이 안 돼 거절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목은 넓게 붙여놓고, 강연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만 알려주고 알아서 거기 맞춰 해달라고 하세요. 앞뒤 (다른 강연자들의) 강연제목을 보고, 거기에 맞추어 준비를 해가죠. 르네상스 미술사, 현대미술사,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 미디어 이론 등등 뭐든 준비는 다 돼 있어요.” 
-네이버 파워라이트 on 에 ‘진중권의 철학 오디세이’를 최근 시작했는데요.
“지금 연재하는 철학 오디세이를 갖고 철학책을 쓰려고 해요. 논리 흐름을 정리 중이에요. 연재가 완료되면, 기획을 둘로 나눠 하나는 각주를 붙인 본격적인 철학사 책으로 구성하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대중을 위한 입문서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쉬우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써야겠죠. 제대로 된 철학사와 대중용 철학책 두 권을 낼 겁니다. 지금은 리딩을 하면서 논리의 흐름을 잡는 단계입니다.” 
-지금 4회 나갔던데, 목차만 1회 원고량 보면 꽤 방대할 것 같은데요.
“할 수 없지요. 이번에 나가미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후의 철학적 발전의 흐름을 잡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술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철학책 집필 계기는 뭔가요. 
“미학이 철학의 한 부분이니까요. 예전부터 쓰려고 했어요. 미학사도 하나 써야 하는데, 그 작업은 몇 년째 중단된 상태고요. 시간이 안 나요. 철학부터 정리하려고요.”
-저술가인가요, 방송인인가요, 아니면 논객인가요? 스스로 규정하면요.
“방송은 돈 때문에 하는 것이고, 돈 안 주면 안 하죠.(웃음) 전 글 쓰는 사람이죠.”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올해 출간 20주년으로 아는데요. 개정판이나 기념판은 염두에 두는지요? <미학오디세이>와 더불어 오늘의 진중권을 잊게 한 책인데요.
“그건 버리는 책입니다. 그때그때 일시적으로만 유효한 책들이 있는 거죠. 1997년 막 박정희 신화가 일어나고 있었을 때죠. 그걸 제압하려고 썼는데, 결국 실패해 박근혜가 대통령 된 사태가 벌어진 거죠. 재밌는 게 그 때 책을 쓴 계기를 제공한 것이 류철균씨였거든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박정희 소설(<인간의 길>)도 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소동의 최종결과가 가히 예술이네요. 바로 그것 때문에 결국 감방에 갔잖아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문체가 놀이체잖아요. 인터넷 체죠.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그때 인터넷 체 쓰는 사람으로 또 누가 있었냐면, 바로 딴지일보의 김어준이에요. 인터넷 특성을 활용해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동일한데, 길이 달랐어요. 나 같은 경우는 놀 때에도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으려 했죠. 이성과 윤리요. 그런데 저 친구(김어준)는 전적으로 뮈토스, 이야기 취향이에요. 신화를 만들고 음모론을 펴대니 안 맞을 수밖에 없지요. 같이 가면 좋은데 곽노현 교육감 사건 등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그가 만들었다는 3부작 다큐멘터리, 로고스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사기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렇게 음모론 팔아 장사를 해먹는 게 매우 비윤리적이라 생각하지만, 남의 신앙생활에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영화의 펀딩에 참여한 이들은 절대로 자기들이 사기 당했다고 생각 안 할 거거든요. 자기들은 그래도 좋대요. 그럼 된 겁니다. 다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로고스), 사회를 더 정의롭게(에토스) 만들어야 하는데, 음모론은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진영논리로 이쪽 진영을 저쪽만큼 타락시키거든요. 그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김어준이 큰 일 한 게 있어요. 자유한국당을 지지해도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을 이쪽 진영에 묶어 놓는 거죠. 사실 나꼼수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 여성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회적 의제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과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진보와 보수가 7:3으로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의제의 관점에서 조사를 해보면 진보와 보수가 5:5로 나뉜대요. 말하자면 보수에 있어야 할 2가 지금 진보로 넘어와 있다는 얘기죠. 거기에는 탄핵 등의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겠지만, 나꼼수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웃음)”
- 홍세화 선생은 최근 낸 책에서 공부나 생각하기를 강조하시더군요.
“요즘 세대가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보의 플랫폼이 달라졌어요. 우리는 책의 세대니까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세대는 게임의 세대라 서사적 의식을 갖고 있어요. 예전엔 역사를 창조한다고 했는데, 서사를 창작해요. 이야기도 모든 이가 믿으면 현실이 된다고 믿어요. 허구도 집단적으로 창작하면 현실이 된다는 거죠. 나꼼수가 모든 걸 설명해주잖아요. 꼼 진리교의 신도들은 논리적 정합성으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서사적 개연성만으로 신앙을 해요. 뭔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에 최소한의 개연성만 부여해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믿어주는 거죠. 상황 전체를 봐야 하는데, 조각난 파편들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마치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말이죠. 정봉주 건을 보세요. 자기는 두세 시 경에 홍대에 있었으므로 혐의가 없다는 얘긴데, 팬들이 그걸 믿어주잖아요. 본인의 입으로 어머니 병원에 갔다고 얘기한 시간대랑 충돌하는데도 말이죠. 이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전체를 보며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막는 게 음모론적 사고의 문제예요.”
- 지식이나 정보 양이나 유통은 예전보다 발달했는데요. 
“트위터는 그래서 접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 감사를 했는데, 지금은 굳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들에게는 틀렸다 안 틀렸다는 중요하지 않아요. 설사 정봉주의 말이 거짓이더라도 좋아, 드러나지만 않으면 돼! 이거죠. 그래야 속이 편하거든요. 자신이 믿었던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면 머릿속의 신념체계를 온통 다시 구성해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고 싫은 거죠. 대중은 나꼼수에 수동적으로 속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속아주는 겁니다. 정봉주 사건에서도 12월 23일의 알리바이를 대신 찾아주면서 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주문한 것은 대중이었습니다. 정봉주는 거기 편승한 거죠. 대중들의 바람은 정봉주가 참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더라도 들통만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아이돌과 팬덤이 공동으로 허구를 창작하고, 그것을 집단으로 믿음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겠다는 거죠. 그게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어요. 이른바 ‘놀이 망치는 놈’(Spielverderber)이 되는 거죠. 놀이자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놀이의 상대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상대자는 놀이를 진지하게 인정해주거든요. 정말 미운 것은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왜 하냐?’면서 놀이판 자체를 깨는 놈입니다. 그런 놈은 용서가 안 되죠. 
아무튼, 결국에는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죠? 그런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진중권은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이 물음에도 그들은 음모론적으로 대답합니다. 첫째, 저놈(진중권)에게는 남다른 혜안이 있다는 거죠. 둘째, 그놈이 소 뒷걸음치다가 쥐을 잡았다는 거죠. 그게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라는 걸 인정을 안 해요. 왜? 그래야 자신들이 멍청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자기들은 특별한 ‘통찰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혹은 로토 게임에서 재수가 좀 없었던 사람들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야 자신들의 멍청함을 잊고 앞으로도 계속 멍청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죠. 그들은 그 편이 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 정 전 의원 성추행 의혹 관련 두 번째 기고는 육하원칙 위주로 기사처럼 썼는데요.
“오마이뉴스에 나온 (정 전 의원 관련) 두 번째 글은 검열 당했어요. 완전 편집부에서 마사지 한 겁니다.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인두로 신문 활판의 활자를 지우듯이 편집부에서 여기저기 표현과 문장과 문단을 인두로 지워버렸더라고요. 결국 ‘오마이뉴스’ 회원에서 탈퇴했어요. 나꼼수나 정봉주 팬덤의 항의가 그렇게 무섭다는 얘기겠죠. 이른바 ‘한경오프’라 불리는 진보매체들은 규모가 작아서 거대한 팬덤이 때려대면 타격이 크죠. 그걸 알기 때문에 후원은 끊지 않았어요.”
- 정의당원이죠? 
“당원의 한 사람으로 있고요. 당원 활동으로는 1년 반 넘게 ‘노유진의 정치 카페’ 100회를 했지요. 제 기억에 정치 브리핑을 담당했던 유시민 작가는 음모론을 펴지 않았어요.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합리적 추정을 하려고 했죠. 결코 로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았어요. 에토스도 지켰고요. 우리는 회당 100만 다운로드가 이루어지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죠. 방송 시작 전에 점심 얻어먹은 게 전부였죠. 우리가 요구한 건 우리가 게스트들의 출연료를 올려 달라는 것 밖에 없어요.(웃음). 손님을 불렀으면 최소한의 돈은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웃음).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다 무너진 것 같아요. 요즘은 정치 팟캐스트들이 음모론 장사, 혹은 경선 거간꾼 놀이가 되어 버린 듯해요. 같은 소리를 너무 오래 듣다 보면 세뇌가 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도 자기들을 비판하고, 진보언론도 비판한다면, 자기들에게 뭔가 잘못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세뇌당한 머리들은 자기들이 늘 옳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진보언론이 자기들을 비판하는 것은 나꼼수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이라고 믿는 거죠. 증상이 어느 정도냐 하면, 심지어 손석희마저 김어준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대요. 이렇게 진보언론까지 적으로 돌려놓으면, 이제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나꼼수와 그 아류들밖에 없게 되죠. 그러면 그럴수록 정보의 편식은 심해지고, 세뇌는 더 깊어지는 거죠.” 
- 할말 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인 듯한데요. 
“정봉주 사건 때는 그나마 금태섭 의원이 이야기했죠. 그래서 욕도 먹고요. 예전엔 인터넷 논객들의 담론 하고 대중의 세론하고 연결이 됐어요. 대중끼리 하는 이야기와 지식인들 하는 이야기가 연결된 거죠. 대중과 지식인이 서로 주고받는 게 있었는데, 어느 날 김어준이 지식인의 담론을 공격했죠. 입진보라고요. 아무튼 그의 팬덤은 ‘무학’에서 ‘통찰’이 나온다는 그의 말을 철떡 같이 믿습니다. 행여 거기에 조그만 의혹이나 이견이라도 제시하면 바로 몰매를 맞지요. 그래서 그나마 제 정신 가진 이들은 팬덤에는 점점 더 과격하고 광신적인 사람들만 남게 되죠. 그렇게 팬덤은 서서히 사이비종교로 변해가는 겁니다. 그 극단적 예가 드루킹같은 선거 브로커죠.”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 다시 미술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 전 강형구 작가 전시 때 강 작가와 ‘하이퍼리얼리즘’에 관한 서문을 쓴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한국 현대미술도 종종 보시나요.
“제 일은 아니에요. 제가 하는 미학이론과 관련해서 관심 있는 부분만 건드려요. 강형구나 한성필 작가를 위해 글을 쓴 것은 이 분들의 작업이 ‘가상과 현실’ 같은 제가 관심을 가진 철학적 주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죠. 그렇지 않은 경우 개별 작가들에 대한 평론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연락은 많이 오는데 안 해요. 그걸 하려면 한 작가의 논리, 작업의 역사를 다 알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고요. 가끔 전시는 보러 가요. 오프닝 할 때 보면 어디를 가도 오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동네가 참 좁다는 느낌이 들죠. 그건 그렇고 젊은 세대 중에서 글 쓰는 사람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위기인 게 영화 쪽도 젊은 감독이 안 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직 386세대가 자리를 잡고 앉아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우리가 적폐죠. 그래도 우리 세대는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앞의 세대를 부정하면서요. 젊은 세대들이 우리를 부정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나 봐요. 그리고 조영남 사건의 경우에는, 딱히 그 분 작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현대예술 논리와 관련된 것이라서 개입한 거고요. 판사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현대예술은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authorization) 하면 작품이 되는 거예요. 화투를 제일 먼저 누가 그렸나요? 조영남이죠. 화투를 그리라고 누가 시켰나요? 조영남이죠. 화투 그림에 누가 덧칠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최종적으로 거기에 누가 사이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사람들이 화투 그림 보면 누구 작품이라 생각하나요? 조영남이죠. 그러면 그 그림은 누구 손을 거쳤든 500% 조영남의 원작이 되는 겁니다. 그게 현대미술의 논리예요. 공판 때 전문가 증인으로 나갔는데, 미술계 쪽의 증인으로 나온 화가가 ‘진중권의 말이 맞다. 다만 내가 못 받아들이는 건, 조용남이 작가라는 생각이며, 그의 그림이 작품이라는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황당했죠. 꼭 미대 나와야 작가 되나요?”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사람들은 직접 그린 거로 알 수 있는데요.
“방송으로, 쇼로 보여줄 수도 있죠. 그게 직접 모든 걸 실행했다는 건 아니죠. 덧칠만 할 수도 있고요. 직접 그렸는지 중요한 게 아니죠,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되요. 그걸 실행시켜서 만들게 하면 되죠. 법원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리고 미술계 사람들이 조영남을 폄훼하잖아요. 그게 재수 없어요. 폄훼하는 이들을 보면 속으로 “솔직히 당신 작품도 후져”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조영남의 작품을 후진 걸로 만든다고 자기들 작품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사실 뒤샹과 워홀이 깨려한 게 바로 그 허위의식이죠. 워홀도 회화 전공이 아니라고 전시를 뉴욕이 아니라 LA에서 했어요. 미대에서 페인팅을 배운 애가 아니라는 거죠.” 
- 몇 년 전 어느 레지던시에 갔다가 유명 화가 작업실에 제자가 그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게 당연해요. 알려지려면 작품 많이 그려야 해요. 혼자 다 못해요. 어느 유명 작가는 한해에 300점을 그렸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화랑에서도 뻔히 다 알면서도 입 닫고 있는 거죠. 아무튼 2심과 대법원에서 판결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애초 이런 문제는 미술계에 맡겨야 합니다. 원작의 오소라이제이션 개념을 왜 판사님들이 정의하죠? 관념과 실행을 분리해놓고, 관념이 더 중요하다는 게 20세기 미술에 일어난 이른바 ‘개념적 혁명’이거든요,” 
- 천경자 화백 ‘미인도’ 표절 건은 어떻게 보셨나요. 
“천경자 그분이 돌아가셨으면 논쟁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분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살아계실 때 아니라고 했잖아요. 설혹 진짜라고 해도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 안해 주면 작가 것이 아닙니다. 워홀의 경우 어느 사람이 위작을 갖고 왔는데, 거기에 사인을 해줬어요. 그러면 원작이 되는 거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완성하는 화가의 이미지는 인상주의 시절 전후한 짧은 시기에 형성된 겁니다. 르네상스 때도 제자가 대신 그렸죠. 다빈치도 스승보다 잘 그려서 유명해진 거고요.”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br />김종목 기자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 김종목 기자 
- ‘인상주의 편’ 서문에 고양이 루비에게 최고로 감사하다고 쓰셨는데.
“루리는 집에 있어요. 키워보면 왜 고양이가 좋은지 알게 되죠. 루비는 웬수같아요. 개는 아양도 떨고 하는데, 고양이는 철저한 에고이스트죠. 고양이에 관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갖고 책(<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도 썼죠. 여기(휴머니스트 건물) 짓기 전 개인주택이었는데 3개월 비어 있었어요. 2권 작업을 할 때죠. 아침마다 10시 전에 와서 참치 캔 먹고 가던 삼색 고양이가 있어요. 뒤샹이라고. 이 건물 들어서곤 못 만났습니다. 길냥이는 오래 살지 못해요. 지금 고양이 분양은 너무 상업적입니다. 새끼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잖아요. 동물권의 문제가 생기죠. 품종묘를 선호하는 풍습 역시 마음에 안 들어요. 인위적으로 만든 품종묘들은 종종 유전적으로 취약성을 갖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생명을 액세서리로 보는 거예요. 품종묘 개량이나 상업적 분양은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 요즘도 비행기 타시나요. 
“못 탄 지 오래됐어요. 한 2, 3년? 단양 비행장이 폐쇄되어서 제천 비행장으로 옮겼는데, 택시 타고 가야 하고, 활주로도 안 좋고 해서요. 언제 다시 탈지 모르겠어요.”
- 학교(동양대) 가실 때 차 안 가져가시나요. 
“차 없어요. 면허도 없고요. 대중교통 타고, 차야 얻어 타면 되니까 안 불편해요. 대중교통 잘 돼 있어요. 훨씬 빠르죠.” 
- 방송도 자주 나가서 글만 쓸 때보다 알아보는 분들 많을 것 같네요.
“더러 있죠. 종편도 나가니까, 나이 드신 분들 더러 알아보세요. 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에요.”
-정치 발언도 많이 하시는데 비평집이나 정치오디세이 낼 계획은 없나요.
“없어요. 원해서 낸 적도 없고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원해서 낸 것이긴 한데, 이후 칼럼집은 출판사한테 설득당해서 낸 겁니다. 칼럼은 그때그때 증발하는 거죠. 일시적인 글쓰기라 흔적을 남기는 거 자체가 부담스럽고, 애정도 없어요. 예전에 영세 출판사에서 하도 간절히 부탁하길래, 거절하지 못해 냈죠. 그 이후로는 거절했어요. 최근에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낸 적 있는데, 그건 칼럼이 아니라 한 번 강연한 걸 묶은 겁니다.” 
- 좀 전 여러 직함 중에 자신을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은요.
“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지금은 쓸 엄두를 못 내는데, 미학사를 계획하고 있죠. 미학의 원어인 Aesthetics는 원래 감성학이라는 뜻입니다. 재작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감성론, 감각론에 관해 <창비>에 연재했어요. 그걸 묶어서 책으로 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못 하고 있죠. 지금 연재에 들어간 철학 오디세이는 이틀 만에 50매짜리 원고를 써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깁니다.”
-철학 오디세이 도판이 많이 들었더군요. 
“원래 그랬어요. 인터넷 세대라 그래요. <미학 오디세이>는 처음 나왔을 때 두 가지 욕을 먹었어요. 하나가 그림 많이 들어갔다는 거죠. 애들 보는 그림책이냐. 두 번째가 구어체였어요. 이게 갑자기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요즘은 가벼운 접근이 인문학의 표준처럼 되었죠. 여러 가지 ‘오디세이’들이 나왔잖아요. 제게 무슨 혜안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몇 권 더 팔아먹을 생각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게 우연히 시대와 맞아 떨어진 거죠.” 
- 책 많이 파시고, 강연도 방송도 많이 나가시는데 많이 버셨나요.(웃음)
“서울시내에 아파트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너무 비싸더라구요. 이번에 18평짜리 빌라를 하나 샀습니다. 5천 원짜리 커피도 잘 못 사먹어요. 화가 나요. 물 한 잔에 거의 한끼 밥값이라는 납득이 안 돼서.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합니다. 안락함에 빠지면 다시 못 돌아와요. 대신에 여유가 되는 한에서 맛있는 것은 많이 사 먹으려 해요.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건 한 번도 안했죠. 비트코인도 안 샀구요. 도끼란 래퍼가 하루 숙박비 몇 백만 원짜리 호텔에 살잖아요. 난 그게 맘에 들어요. 그냥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자기를 위해 쓰는 거잖아요. 그게 건물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거예요. 이 친구가 사치만 하는 거 아닙니다. 하루 5만원씩 저축도 한대요(웃음). 전 도끼 그 친구가 철학자라고 보거든요. 자기가 번 거 떳떳하게 과시하고요. 난 멋있다고 봐요. 건물주 돼서 세입자 등쳐먹고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봐요.”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 마무리할 때인 것 같은데요. 다시 이번 ‘인상주의 편’ 소개하실 말이 있다면요.
“그림 저작권료가 안 들어가요. ‘인상주의 편’은요. 그래서 도판을 원 없이 썼습니다. (웃음) 다들 저작권이 소멸된 거라.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 쓸 때는 많이 들어갔죠. 판 찍을 때마다 내야 하고요. 피카소는 너무 오래 살아서(웃음)…. 업적은 이 사람들이 쌓은 건데, 왜 저작권료는 유족들이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당사자 죽고 10년까지면 족하지 않을까요? 인상주의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가는 가교 역할을 했거든요. 전통적인 고전예술을 붕괴시키면서요. 그러면서 아직은 현대예술은 아니고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던 시기의 미술이죠. 현대예술이 어떻게 태동하는가, 그 과정을 볼 수 있죠. 한편으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이기도 하거든요, 처음으로 현대인들의 삶을 다룬 미술이거든요. 그전이 미술은 신화, 성서, 역서 등 삶에서 동떨어진 얘기를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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