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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9일 금요일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문제점 분석과 새로운 대안 제시


이찬승  | 등록:2017-06-09 12:57:44 | 최종:2017-06-09 14:05:39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 교육부 장관에게 바란다(3)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문제점 분석과 새로운 대안 제시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1. 시작말

벌써 문재인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 5개년 계획’ 세부 국정과제별 논의를 시작했다. 다음 주면 5개년 계획에 담길 ‘5대 목표·20대 전략·100대 과제’에 대한 가안이 보고될 예정이란다. 교육개혁 과제로는 어떤 것이 담길지 궁금하다. 아울러 이제 곧 교육부 장관을 겸하게 될 사회부총리와 청와대 교육수석도 임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약과 상관없이 기존에 추진해오던 정책들도 있어서 이를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7월 중 확정해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2015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한 새로운 수능 체제의 마련, 고교 내신에의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전면시행 등의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런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중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 고교 학점제 도입과 맞물려 있어서 당장 급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다.
공약한 것이기에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속도를 내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충분한 검토나 준비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게 되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질 수 있다. 정책이 실패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개혁가의 강한 집념 때문이란 마이클 풀란의 진단은 탁월한 통찰력이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의지만으로는 안 되며 변화역량을 갖추고 여건을 마련(예: 의식과 문화의 변화, 교사들의 변화 동기 유발)하는 것이 핵심성공요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이번 발제에서는 문재인 정부 교육공약의 문제점을 거시적,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거시적으로 본 문재인 선거공약의 문제점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매우 방대하다. 13개 영역에 걸쳐 100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이런 공약은 어떤 과정을 통해 개발되었을까? 공약 개발을 위한 개발팀이 구성되고 나면 각계각층에서 제기된 교육문제를 참고해 공약을 도출한다. 공약이란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개발팀은 흔히 민원해결식, 대증요법식 접근을 한다. 비전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약을 개발하는 것이 바른 접근이나 이번 대선은 특히나 매우 짧은 기간에 공약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이미 그동안 의제로 제출되어 있던 것 중에서 선택하는 형식을 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바람직한 공약 개발의 절차는 아니다. 그래서 문재인 새 정부의 교육공약을 아래와 같이 7가지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먼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 철학, 비전, 원칙에 따라 개발된 공약인가?(민원 처리식 접근이 아닌)
2)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는가?(기존의 틀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
3)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인가?(분절적 접근이 아닌)
4) 열린 접근인가?(닫힌 접근이 아닌)
5) 목적과 수단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가?(가설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는)
6) 미래지향적인가?(미래 사회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7) 성공확률은 어느 정도일까?(순기능이 역기능에 비해 훨씬 더 큰)

이상의 7가지 분석 기준을 가지고 한 가지씩 살펴보기로 한다.

1) 철학, 비전, 원칙에 따라 개발된 공약인가?
 
문재인 대통령 정책 공약집의 교육 분야를 보면 전체를 아우르는 슬로건이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로 되어 있다. 이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재원만 풍부하다면 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무상교육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교육문제가 이것이란 말인가? 학교 수업에서 상시적으로 배제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었어야 했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OECD를 비롯해서 세계 주요국들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아동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의 편중과 불평등의 증가로 낙오세대가 출현하고 지속가능성이 매우 불확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2002년에 발표된 아동낙오방지법(NCLB)의 문제점을 보완해서 2015년 12월 모든학생성공법(Eevery Student Succeeds Act: ESSA)으로 대체했다. 미국의 공교육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모든학생성공법’이란 법의 명칭은 매우 매력적이다. 또 결과적 평등을 지향하는 철학도 부럽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는 트럼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교육 관련 구호는 “실패하는 학교로부터 아이들을 구출하겠습니다!”였다. 또한 영국, 온타리오 주, 뉴질랜드 등의 나라나 주는 교육과정에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란 신념을 명시함으로써 불평등한 교육을 개선하여 배제 없는 교육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일본은 2014년 빈곤층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 무상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다. 클린턴도 지난 선거에서 빈곤층의 대학 무상교육 보장을 공약으로 걸었었다. 주요국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정의롭고 공정한 교육의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교육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 대신에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교육 마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어떤 공약이나 의제도 수많은 아동·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배움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야만적 현실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다. 이는 철학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교육비전이 있는가? 후보 때 공약 개발에 깊숙이 관여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은 최근에 있었던 한 강연에서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를 비전으로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전이 아니다.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다.”는 가치나 신념이며, “교육은 국가가 책임을 진다.” 역시 비전도 가치도 아니다. 비전은 모두의 열망을 담은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말한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의 비전 “빈곤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A just world without poverty)”은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고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이런 것이 비전이다.
 
교육공약이 분명한 철학, 신념, 가치, 비전, 원칙 등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구체적인 공약을 짤 때 방향 제시와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한 나라의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분명하게 공유되지 않으면 분권화도 교육자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면 바로 중장기적 비전 수립에 착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공약은 이런 비전과 정교히 연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약의 이행 착수는 비전이 수립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기존의 학교 교육과 이를 둘러싼 주요 시스템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학교에 왜 가야하는가?”, “학교에 다님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제도(schooling)는 학습(learning)하는 곳인가?”, “왜 학교가 감옥을 닮았다고 하는가?”, “왜 학교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환자는 돌보지 않고 건강한 사람만 돌보는 이상한 병원과 같다는 비판을 받는가?” 이런 질문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현재의 초중등 학교는 매우 이상한 괴물인 게 맞다. 교육공약이 이런 괴물 같은 학교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두었더라면 어떤 공약이 도출되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아쉬움이 크다.
 
성찰적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무엇이 가장 배울 가치가 있는가?”, “지식의 생명주기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고 교과서의 지식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것이 주머니 속 휴대폰 안에 있는데, 지금처럼 일부 내용을 교과서에 담아 몇 년 동안 배우게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배울 내용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고 민주적인가?”,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이대로 두고 개인별 맞춤 수업, 학점제 등을 시행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지 않는가?” “지금은 표준화된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학점제를 넘어 ‘학생이 만들어가는 교육과정’과 같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교육과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기존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았어도 교육 공약은 산업시대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공약 중에 시대착오적인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의 제도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가올 미래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새로운 교육의 청사진부터 만들고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공약만 이행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성찰적 질문을 던져보자. “교과 성적으로 줄을 세워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은 얼마나 교육적으로 의미 있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21세기에는 공감능력, 사회성, 호기심, 창의력, 끈기, 모험정신, 타인과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능력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런 21세기 역량을 함양하는데 결정적으로 해를 끼치는 현재의 수능 시험을 ‘이대로(객관식 위주)’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에 수능 시험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입전형을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수능전형으로 단순화하겠다는 공약도 취지는 좋지만 새로운 미래의 특성 및 아동 흥미와 욕구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런 접근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끝으로 이런 성찰적 질문도 던져봤으면 한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자동화로 인해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특히 논리성을 요구하는 좌뇌형 일, 저숙련도의 일, 임금이 낮은 사람들의 직업을 우선적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기존의 고교 체제나 교수학습 내용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47%가 자동화되고(다보스 포럼, 2016), 2025년이면 오늘날 직업의 50%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학생의 65%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또한 21세기 청년들은 32세가 될 때까지 평균 9개의 다른 일(job)을, 일생 동안 복수의 산업분야(industrial sector) 및 직업(occupation) 분야에서 10~15개의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미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의 진로교육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 기존의 교육 시스템 중 특히 학교교육과 대입전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출발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존 제도의 큰 틀은 그대로 두고 민원처리 성격으로 또 대증요법적 공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매우 아쉽다. 선거란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표를 먼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인정한다. 지금이라도 학교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면서 근본적인 변화(transformation)와 기존의 것 개선(reform)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교육 변화의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3)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인가?
 
교육 시스템은 전형적인 복잡계이다. 한 가지 요소는 다른 많은 요소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고교학점제 도입 문제만 하더라도 이것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10가지가 넘는다. 교육 문제는 어느 한 부분만 수선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다양한 요소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시스템적 사고(systems thinking)(☞ 부록)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분절적이다. 이를테면 대입전형 간소화, 수능절대평가 도입, 고교학점제를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이들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렇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도입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매핑(mapping: 관련이 있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떤 구조나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지를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병적 증세가 어떤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알기 쉽게 지도를 그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공약은 정확하고 믿을 만한 진단을 통한 처방전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이런 매핑을 포함한 정확한 진단을 통한 공약이 아니다. 이런 처방은 병을 낫게 하기 어렵다. 실패로 인해 엄청난 현장의 혼란과 비용만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열린 접근인가?
 
열린 접근은 문제해결 기법 중 중요한 요소다. 이는 닫힌 접근과 대조되는 말이다. 다음 두 가지 접근을 비교해보자.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생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고교과정에 학점제를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 두 가지 질문 중 전자는 열린 접근이고 후자는 닫힌 접근이다. 전자가 열린 접근인 것은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학점제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탈표준화, 교육과정의 대강화, 학습동아리 활성화(=작은 학교 속의 더 작은 학습 동아리), 개별화 수업(differential instruction: DI),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등’도 유력한 해결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후자와 같은 닫힌 접근으로는 오직 학점제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런데 운 좋게 학점제 도입이 순조로우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학점제 도입에는 장애요인이 매우 많다. 어쩌면 도입이 특수 과목에 한해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이런 닫힌 접근을 통해서는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할 수 없게 된다. 
 
고교 학점제와 관련해 생각해봐야 할 점이 또 있다. 배우는 내용의 선택폭만 넓혀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므로 배우는 방법과 평가 방법까지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개별화 수업과 보편적 학습설계의 핵심 원리이다. 온타리오 주 등은 교수학습 시스템의 가장 높은 진화단계인 보편적 학습설계를 벌써 10여 년 전에 도입해 정착시켰다. 닫힌 접근으로는 21세기 복잡한 교육문제를 풀 수 없다. 게다가 변화의 기법, 변화의 역량, 여건의 불비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더라고 수많은 혼란과 비용만 지불하고 기대하는 효과를 얻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만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열린 접근을 하는 것이 옳다. 이제 “학생들에게 배움이 즐겁고 행복하며 미래에 대한 준비가 충실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제해결의 열린 접근으로 21세기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부록)이다. 문제해결능력은 교육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가 갖추어야 할 제1의 역량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이행을 착수함에 있어서 ‘어떤 교육의 결과(outcomes of education)를 원하는가?’와 ‘어떤 방향으로 개혁(direction of reform)할 것인가?’란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열린 접근을 할 것을 제안한다.

5) 목적과 수단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가? 
‘목적과 수단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가?’란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면 ‘정확한 진단을 통해 처방전이 만들어졌는가?’가 될 것이다. 교육공약은 병든 교육에 대한 처방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교육문제에 대한 지도(maps)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의 인체에 대한 지도는 비교적 잘 만들어져 있다. 사람의 인체 기관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무엇이 나쁘면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병은 극소수다. 그러나 이와 달리 교육문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개혁가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직관에 의존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보면 병적 증상이 총망라되어 있으나 진단과 처방에 대한 상관관계는 모호한 것이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수능을 기존의 9등급 상대평가에서 9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을 일차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9등급이나 되는 절대평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9등급으로는 경쟁을 완화하기 어렵다. 9등급 절대평가는 대학 선발자료로서의 가치만 떨어뜨리지 이것이 학교교육에 미칠 긍정적 영향은 매우 미미할 것이다. 최소한 5등급 정도가 되어야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닌가? 병도 못 고치는데 왜 큰 혼란과 고통, 비용을 감수하려 하는가? 목적과 수단 간의 관계, 진단과 처방과의 관계가 매우 과학적이어야 하고 증거가 분명해야 한다.
 
이어서 고교 학점제 도입 공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고교 학점제 도입의 의미는 공약집이 말하고 있는 ‘진로·적성 맞춤형 교육 추진’일까? 고교 학점제 도입의 영향은 오히려 도입 취지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현재의 비교육적인 9단계 상대평가의 해체와 절대평가 환경 마련,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극제 역할(학생이 잘 가르치는 교사의 과목을 선택할 것이므로), 교사별 절대평가 환경 마련, 2/3출석만 하면 졸업장을 주는 무책임한 교육 관행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 등의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교 학점제 도입에는 긍정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역기능으로 불평등의 증가가 우려된다. 학생이 짜는 시간표대로 교수학습이 일어날 수 없는 학교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교 학점제 도입이 맞춤형 학습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맞춤형에 대한 정의와 개념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맞춤학습을 지향한다면 현재와 같은 입시중심 학교교육 체제 속에서는 개별화 지도(DI)와 보편적 학습설계(UDL)의 단계적 도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는 배우는 내용, 배우는 방법, 배운 것을 증명하는 과정인 평가방법의 개별화를 지향하는 실제적인 방법이며 전략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최대 목적이 여전히 대입전형 준비인 상황에서 과목 선택의 자율성만 높이는 것의 교육적 의미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각 공약들과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효과 간의 정합성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면서 추진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6) 미래지향적인가?
 
‘공약이 미래지향적인가?’ 이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던져봐야 하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공약을 개발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이 과거의 것에 꽁꽁 묶여서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앞으로의 산업혁명은 이전의 혁명기보다 변화의 속도가 2배씩 빨라진다고 한다. 앞으로 5년, 10년 후 마주할 미래는 이전의 미래와 전혀 다른 미래가 될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생명 주기도 단축된다. 작년 한국을 방문했던 『사피엔스』의 저자 하라리 교수는 지식의 습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예측을 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연장자에게 배운 지식으로 삶을 준비해 나가는 게 불가능한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지식을 배우는 시기와 배운 것을 써먹는 시기로 나뉘던 시대는 지났다.”
“2050년대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자녀 세대가 40대가 되었을 때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 중 80~90%는 쓸모없을 확률이 높다.”

이런 변화는 직업 세계에 더 직접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앞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향후 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47%가 자동화되고(다보스 포럼, 2016), 2025년이면 오늘날 직업의 50%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학생의 65%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소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증가하게 된다는 예측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의 일차적 관심은 첨단 로봇이 인간의 수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 확실시 되는 미래사회에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쏠려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미래학교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 기존의 학교제도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존재형태와 교수학습방법이 크게 변할 것이다.
• 2035년쯤에도 전통적인 학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학교 제도에서도 잘 배우는 학생들 중심으로 그 규모가 작아질 것이다.
• 기존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사라지거나 대폭 유연화될 것이다.
• 학생들이 단일 학교에 다니지 않고 복수의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원하는 코스를 골라서 듣게 될 것이다.
• 조기 학교중단을 막기 위해 학교는 개별화 교육을 통해 개인의 필요와 흥미를 더 잘 만족시키게 될 것이다.
• 교실 내 학생 다양성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고 이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교수학습 전략이 도입될 것이다.
• 학교는 특정 지식보다 일반적인 역량, 많은 영역에 공통으로 필요한 역량(transversal skills) 함양에 힘쓸 것이다.
•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학위는 여전히 중요하고, 비공식적 학습경험이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를 인정하기 위한 표준이 만들어질 것이다.
• 중학교 상급학년 이상의 많은 학생들은 온라인 학교를 포함한 비전통적인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런 비전통적인 학교들은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변화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미래 사회에 학교가 적응하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나?”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먼저 기존의 전통적인 학문중심 교육과정(academic curriculum)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생존을 위한 교육과정(survival curriculum),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수업을 위한 교육과정(project-based curriculum), 비공식 교육과정(informal curriculum) 등의 비중이 커져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실질적인 교육자치 속에서 교육청별로 다양한 실험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는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현재의 분과학문적 교과내용을 과거처럼 답습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7) 성공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의 성공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 속의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교육정책이 성공적이란 것은 기대하는 순기능이 예상대로 나타나고 지속되는 일일 것이다. 교육개혁의 대가인 마이클 풀란은 자신의 저서 『교육 변화의 의미와 원리(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2016)』에서 “변화가 성공하는 경우는 ‘수많은 변화의 주체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한 집단의 실천적 행동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동기가 강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교육 변화의 성패는 교육자와 학생, 기타 학습자들이 배우는 내용과 학습 방식에서 얼마나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집단 역시 이런 의미를 얼마나 공유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는 이어서 “개혁이란 단순히 최신 정책의 도입과 시행이 아니다. 교실과 학교, 학구, 대학 등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다. 개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다.”라고 피력한다.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풀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학교와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이 중심이 되어 디자인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의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상상해보자. 문재인표 교육공약이 실시되면 학교교사들이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동료들 및 학생들과 관계를 개선할 강한 동기가 일어나고 유지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런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할 가능성이 높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의지만으로는 안 되며 변화의 의미와 원리를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지만 발제자가 볼 때 한국의 대부분의 교육개혁가들은 교육변화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부분 겉만 뜯어고치기 때문이다.

3. 미시적으로 본 문재인 선거공약의 문제점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중 가장 관심을 끌고 실효성이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대입제도 개선, 2021학년도부터 볼 새로운 수능체제 개선, 고교 학점제 도입,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등이다. 새 정부의 주요 공약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성공적인 실행의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1) 대입제도 개선
문재인 정부의 대입제도에 대한 대표적인 교육공약은 ‘대입전형을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수능전형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대입전형 개선으로는 학교교육을 정상화할 수도 학생들을 입시 질곡으로부터 구출할 수도 없다.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공약의 개발은 “학교교육이 대입준비 기관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질문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했다면 어떤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대학서열타파(수능/내신 모두 3-5 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동일 등급자는 추첨을 통해 배치)? 상위권대도 유자격자(예: 수능, 내신 공히 1등급) 추첨 배정? 입시 철폐? 국립대 지역 할당제? 일류 기업의 지역 및 대학 할당제? 민간 기업의 질 높은 자격증과 대학 졸업장 간의 경쟁시대 마련? 등의 해법이 쏟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수능전형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제출되지도 않았거나 최하위의 우선순위를 차지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발제자라면 학교 내 다양한 대안학교나 대안적 프로그램 운영이나 학생이 설계하는 학교를 지향해서 현재와 같은 대입시는 상상도 할 수 없게 하자는 제안을 했을 것 같다. 이럴 경우 대학이 대학별 고사를 보더라도 지금처럼 국·영·수·사·과 중심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학생을 선발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발제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수능전형 3가지로 단순화’, ‘수능의 9등급 절대평가 전환’ 정도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대입제도 개선은 근본적인 변혁과 기존 제도의 수선이 함께 이루어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이런 전환의 순기능은 경쟁의 완화,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의 민감성을 낮추는 것, 학교교육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예: 절대평가 분위기 조성, 학교평가와 수능평가의 방식 일치로 인한 준비부담 완화)일 텐데 현재 검토 중인 바와 같이 9등급 절대평가라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능에 논·서술형이나 공통으로 보는 별도의 논술시험의 도입(선택)이 묘수일 수 있다. 이는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변별력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21세기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힘은 고등사고력과 학습능력이다. 논술의 도입은 이 두 가지 목적의 달성에 큰 도움이 된다. 이를 도입하지 않고는 수업에서 토론수업을 줄여달라는 학부모의 압력을 줄이는 방법도 마땅치 않을 것이다. 채점의 어려움이 있더라고 이는 극복해야 할 사안이지 이것 때문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계속 객관식으로 출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가 토론식 탐구 수업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술문을 작성해보는 것은 반드시 학교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논술 교육과 채점에 대한 신뢰도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수능에서 평가해야 하므로 채점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원하는 사람만 보도록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수능을 5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하더라도 종전보다 떨어지는 변별력을 논술이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또 하나 있다. 수능이 정시전형의 수단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더라도 대학이 변별력을 빌미로 외면하지 말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언론이든 교육계이든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한결같이 대학별 고사가 강화될 것이라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것이 문제다. 문제를 논술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풀든지 사회적 압력으로 풀든지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하여 대학이 가르치기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등급자는 유자격자 중에서 과감히 추점을 통해 선발하는 것도 검토해보기를 제안한다.

3) 고교 학점제 도입
 
문재인 정부의 고교 학점제 공약은 유형별·단계별로 아래와 같이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1단계: 학교 내 개인 맞춤형 선택교육과정
• 2단계: 학교 간 연합교육과정 운영
• 3단계: 지역사회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
• 4단계: 온라인 기반형 교육과정으로 확대

고교 학점제 도입에 대해서는 앞의 ‘거시적으로 본 문재인 선거공약의 문제점 분석 4)’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이에 관한 분석을 생략한다.

4)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유지는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교육의 공공성·공정성 원리에 어긋난다. 교육에 대한 권리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이다. 하지만 이런 고교들은 일반고에 비해 수업료가 2~3배 비싸고, 그 외 수익자 부담도 커서 가난한 집 자녀들은 여기에 갈 엄두도 못 낸다. 선택된 성적 우수자를 위한 입시명문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교육을 조기 입시경쟁 체제로 만든다.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비롯한 고교 입시는 초등학교·중학교의 교육을 입시준비 교육으로 변질시킨다. 또한 명문고 입시의 존재는 사교육을 유발하고 저출산의 핵심 요인이 된다. 셋째,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학교선택제의 강화는 경쟁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교육불평등 완화를 위한 OECD의 지침 중 ‘조기 계열편성, 능력별 반편성, 학업성적에 의한 선발을 제한한다.’, ‘학교 선택제를 잘 관리해서 공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넷째,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 평균이 31.71% 밖에 안 되는(2016년 기준)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그래서 특목고가 명문대 진학을 위한 통로일 뿐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국에서 성공적인 학교란 무엇인가? 명문대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학교다. 적어도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의 생각은 그렇다. 그래서 외고, 자사고 설립 취지가 아무리 근사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입시교육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고교를 별도로 유지시킬 명분은 매우 궁색하다.
 
그렇다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런 학교가 탄생한 배경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평준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 반작용으로 외고, 자사고 등이 생겨난 셈이다. 이제 정부는 외고, 자사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계획과 함께 “앞으로 일반고를 어떻게 혁신해서 입시명문고를 불필요하게 만들 것인가?”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교육자치와 탈표준화 및 미래사회 변화 흐름에 맞는 새로운 고교체제의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일반고가 지금처럼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획일적으로 운영하는 한 다양성이 숨 쉬는 교육의 꿈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고교 학점제의 도입과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상호 관련성이 매우 깊다는 점에도 주목했으면 한다.

5) 교육과정 난이도 및 분량 적정화
 
교육과정 난이도 및 분량 적정화는 해결이 쉽지 않지만 반드시 문재인 정부에서 진전을 이루어내야 하는 분야다. 이는 3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하나는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워야 할 내용을 중학교 수준으로 최소화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가이드 정도의 역할로 한정하여 단위학교가 상황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끝으로 고교 과정 3년을 ‘2+1’로 나누고 입시 준비를 위한 교과 위주 학습은 2년으로 줄이고 나머지 기간은 갭시메스터(gap semester)나 갭이어(gap year)처럼 운영하면 좋을 것이다.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깊은 학습(deeper learning)을 위해서는 ‘적게 가르치고 많이 배우게 한다’(Teach less, Learn more!)란 전략을 통해 기존 학습량의 30~50% 정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6) 중학교 교사별 평가 및 절대평가
 
교사별 평가의 핵심은 학교교육이 선발이나 배정 자료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성취기준 도달을 통한 학생의 성장, 교사의 수업 기획력의 제고 등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왜 한국의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친 대로 평가하지 못할까? 평가의 목적이 줄 세우기이기 때문이다. 서열을 위한 평가에는 교사별 평가가 아니라 동 학년의 모든 교사들이 같은 것을 가르치고 같은 문제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고교 학점제 도입을 공약했다. 중학교도 일부 과목에 대해서는 학생이 선택하고 교사별 평가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교사가 교사별 평가 전문성을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교사별 평가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가에 대한 인식 전환(Test less Assess more!)과 함께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 절대평가, 수강신청제, 외고·자사고 등의 선지원 후추첨제, 학생 성장을 위한 교사의 상시평가의 도입, 채점 신뢰도 제고 및 부족한 부분 재학습의 기회 마련 등이 필요하다.

7) 초등학교 1:1 맞춤형 성장발달시스템과 기초학력보장제
 
초등학교 1:1 맞춤형 성장발달시스템과 기초학력보장제는 매우 어렵지만 반드시 실현이 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특히 초등 저학년의 경우 기반이 되는 지식이나 기능을 충실히 갖추지 못하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주요과목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반지식/배경지식과 함께 기초 어휘력을 반드시 갖추게 해서 다음 학년으로 진학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이력철(student profile) 유지,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학생에 대한 다양한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이를 고려한 수업과 생활지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약집에도 나와 있는 ‘개인별 학습계획 수립’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조교사의 도입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8)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
 
문재인 정부는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을 위해 ‘모든 대학에 기회균형선발전형 의무화, 기회균형선발을 정원 내의 20%까지 확대하는 대학에 인센티브 제공’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교육의 계층 사다리를 마련하거나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한다는 것은 주로 과거 가난한 집 아이들도 대학을 가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나오는 것만으로는 계층 사다리의 마련도 용이 나는 것도 될 수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첨단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직업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근사한’ 표현의 구호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려면 출발선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영유아, 누리과정, 초등 저학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빈곤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배가 고프고, 입을 옷이 없고, 편안한 집과 함께 할 가족이 없으면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주어도 학습이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 운운하는 것은 구호에 불과하며 위선에 가깝다.

9) 탈북학생, 다문화학생 등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대응 방식이 핀란드와 스웨덴이 매우 대조적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태어난 나라에서 살기 어려워 이주를 오는 사람들을 핀란드 본토인들과 ‘섞는다’는 것이다. 즉 핀란드는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을 한다. 한편 스웨덴은 대조적으로 이주민을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종종 폭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탈북학생, 다문화학생 등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는 좋은 일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을 이해하고 서로 도우며 따뜻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 교육부 기능개편 및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추진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여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교육부 기능개편 및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추진’에 관한 것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교육부의 역할을 꼭 필요한 것으로 최소화하고 분권화와 학교자치로 나아가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부 위에 국가교육위원회란 독립기구를 만들어 운영하는 안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국가교육위원회-교육부-교육청-교육지원청-학교’라는 수직적 위계는 옥상옥이며 교육 거버넌스의 미래방향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교육개혁이란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학교문화를 바꾸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기존의 학교제도를 이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문제를 더 잘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전혀 근거가 없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면 지금까지와 달리 교육개혁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전혀 근거가 없으며 과거와 똑같이 실패할 것이다. 한국은 아직 학교변화의 원리를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배울 기회가 적었다. 교육변화에 대한 의지만 강하지 변화를 위한 능력, 여건 마련에 매우 미숙하다.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주요 이유가 개혁가 등의 잘못된 가설과 강력한 집념이라는 마이클 풀란의 말을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의결 권력을 가져가 교육부의 판박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꼭 설치하겠다면 초중고 교육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시도교육청으로 내리고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학교교육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바꾸는 동안 한시적으로만 운영되어야 한다. 학교 자치 강화를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의 슬림화 그리고 관련법의 일괄 개정이 교육 거버넌스 문제 개선의 핵심이다.

4. 맺음말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제시한 공약을 거시적, 미시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할 학교교육의 모습도 소개했다. 공약이라고 해서 이를 분절적으로 실행하려는 생각은 거두길 바란다. 교육시스템은 대표적인 복잡계로 교육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분절적, 선형적 접근의 공약은 다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분절적이고 대증요법식의 접근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교육개혁이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개혁가들의 잘못된 가설(대표적인 예가 선형적 접근임)이란 마이클 풀란의 말은 생각할수록 명언이다.
 
교육변화의 원리와 절차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철학과 비전 추진 원칙 등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것이 교육변화를 위한 제반 의사결정에 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법으로 말하면 헌법과 같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교육비전 2030(혹은 2035)의 수립에 착수하길 바란다. 과거 산업시대의 필요에 맞춰 만들어진 현재의 학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입시 경쟁교육을 종식시킬 특단의 조치를 생각해봐야 한다. 수능을 9단계 절대평가로 바꾸려는 식의 미봉책은 경계해야 한다. 이제 교육변화는 사회개혁과 일자리 문제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4가지 교육혁명이 필요하다. <교육의 내용 혁명, 교육의 방법 혁명, 교육의 평가 혁명, 교육의 주체 혁명(학생과 교사가 주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혁명은 비전 2030과 정교히 연계시켜야 한다.
 
새 정부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기존 학교 시스템의 유지를 전제로 공약을 이행하려는 접근을 해서는 안 되며,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혀 어정쩡한 타협을 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한국의 학교교육 개혁을 늦추는 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철학과 비전이 분명하지 않는 교육 공약의 이행은 교육의 발전을 저해한다.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근시안적 접근을 한다면 이는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새로 부임하는 교육부 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참고자료]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
http://people.incruit.com/column/columnview.asp?colno=466536
『교육 변화의 의미와 원리(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2016)』(교육을바꾸는사람들 7월 발행 예정)

[부록]

1.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디자인 씽킹은 문제해결기법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디자인 씽킹은 관찰·공감을 통해 인간(end user)을 이해한 뒤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찾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와 다수의 해결책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찾는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의 반복을 통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아래와 같이 5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① 공감하다(=관찰, 인터뷰 등을 통해 학습자들의 요구를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② 과제를 정의하다(학습자의 요구조사와 시사점을 바탕으로 핵심질문을 도출한다).
③ 아이디어를 도출하다(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한다).
④ 시안을 만들다(최종 선택된 아이디어의 현장적용을 위해 시안을 만든다).
⑤ 작동여부를 확인한다(시안을 현장에 적용하고 효과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다).

2.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
 
피터 생게의 제5 경영(The Fifth Discipline Fieldbook)에 나오는 정의를 소개하면 “전체적인 패턴을 읽고 다양한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며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통합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는 사건지향사고(Event Oriented Thinking)와 대조되는 표현이다. 복잡한 일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하지 않고 인과관계를 갖는 낱개의 수많은 사건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란 선형적 관계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패턴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 이 글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8일 자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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