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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7일 수요일

"6월항쟁 30년, 이젠 한반도 평화다"

 1987년 6월항쟁 학생운동 주역 우상호 의원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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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17: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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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운동 주역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우 의원은 "이제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30년전 6월항쟁은 큰 정치변동을 수반하는 대중투쟁이었다. 그리고 촛불집회로 정권이 교체됐다. 이제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남았다."
1987년 6월 10일. 60~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를 이어받은 전두환 독재정권이 몰락을 자초하던 때,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거셌다. 그러나, 6월항쟁은 정치세력의 분열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지 못했다. 30년이 흐른 2017년 촛불혁명은 6월항쟁이 뿌린 민주주의 씨앗으로 정권교체라는 꽃을 피워냈다.
민주주의 역사 30년. 그 한복판에 우상호가 있었다.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그는 대학생 본연의 모습으로 6월항쟁에 뛰어들었다. 30년 뒤 2017년 3선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앞장섰다. 
"민주주의라는게 절차적으로 잘 진전되더라도 싸워서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지는 것"이라던 우상호의 눈빛은 30년 동안 민주주의의 제단 앞에 살아남은 청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30년전 평범한 22살 대학 2학년생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지금의 우상호를 만들었다.
"광주학살로 정권잡은 전두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시대과제이고 시대정신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없었지만 나라도 같이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번에 원내대표가 되니까 피할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앞에 두고 이런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시대상황은 평범한 22살 청년이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 있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때든 힘들 수 있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 것이다. 본인의 희생을 통해서. 내가 쓰러져야할 자리에 나 대신 쓰러진 후배라는 의미가 강하다. 부채의식으로 30년 동안 이한열 기념사업을 해왔다."
어쩌면 시대가 우상호를 민주주의의 길을 걷도록 운명지었을지 모른다. "30년전 그때 나는 광장지도부였는데, 이번에는 원내지도부가 돼서 다시 탄핵을 추진하다보니까 '야 내 운명이 뭐 이런 일을 앞장서게 하는가'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는 그토록 몰아내고 싶던 민주주의의 적, '전두환.노태우'가 거주하는 서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속이 상할 때도 있다"는 그는 "인적청산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그 사람이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서 밀어내는 게 민주주의 정착 과정 아니냐"고 말한다.
  
▲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우상호 총학생회장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었다. 왼쪽 태극기를 든 이는 총학생회 사회부장 우현. 지금은 배우다. [사진제공-우상호 국회의원실]
그의 평화적 민주주의 정착의 꿈은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우상호는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라는 모토를 직접 지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1986년 5.3인천투쟁, 건대투쟁에서 나온 폭력을 거둬들이고 비폭력으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던 의미였다.
"엄혹한 현실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려면 선도적 투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학생운동은 문제제기집단이다. 이런 의식들이 강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문제해결집단이 되려면 대중노선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운동권 조직 중심에서 학생회 중심으로, 대중노선이 6월항쟁을 가능케한 중대한 노선변화였다. 그리고 그 노선이 성공했다."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는 지금의 정치에도 유효해 보인다. 지난해부터 있던 비폭력 촛불집회가 국민을 광장에 모으는 계기가 됐고, 결국 정권교체라는 결실을 맺었기 때문. 
하지만 우상호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희망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소통과 참여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소통과 참여이다. 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관건이 있다. 감시받는 권력은 절대 부패해지지 않는다. 소통과 참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또다른 감시체계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6월항쟁 30년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현실 앞에서, 우상호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주민주통일을 외쳤던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민족적 최대 과제인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핵위기로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길에 앞장서려고 한다."
  
▲ 지난 5일 국회의원실에서 우상호 국회의원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남북관계 문제를 보수가 이념시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진보진영도 이념의 잣대로 볼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우리 국익인가"라며 "정경분리원칙을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굉장히 많은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한 것 같지만, 꽉 막혀있을 때는 단순한 문제부터 하는 것이 좋다"며 "문재인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푸는 걸음을 떼도록 정치권 차원에서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정경분리원칙이 고독한 외침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우 의원은 "북한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를 잘 쳐다보면서 그런 북한이 갖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고 북한이 국제적인 질서에 순응하면서 대화의 현장에 나오고 그 속에서 실용적인 협상을 통해서 단계적인 핵 폐기정책으로 가도록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한다"면서 민간차원의 교류, 인도적 차원의 접촉이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제시했다.
그렇지만 며칠 남지않은 6.15공동선언 17주년을 남북관계 개선의 첫발로 보지는 않았다. 북한이 새로운 정부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시점에 조금더 신뢰회복조치를 취한 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는 시점은 8.15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때 문학도로 시집 한 권을 내는 평범한 여고 국어교사이고 싶었지만, 광장에서 제도권 정치인으로 민주주의 30년을 살아온 '촌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난 5일 여의도 국회의원실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다음은 우상호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우상호 국회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6월항쟁 30년이다. 당시 상황과 역할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은 어떠했는가.

■ 우상호 의원 : 30년 전 6월항쟁도 큰 정치변동을 수반하는 대중투쟁이었다. 그때는 제가 광장지도부였는데. 이번에 원내지도부가 되서 다시 탄핵을 추진하다보니까 개인적 소회는 '야 내 운명이 뭐 이런 일을 앞장서게 하는가' 싶었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라는게 절차적으로 잘 진전되더라도 싸워서 지키지않으면 어제든 무너지는 것이구나라는 교훈을 느꼈다. 그때 당시 우리는 후배세대에 만큼은 이런 나라 물려주지 말자고 결의를 했는데, 이번에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는 것을 보고 착잡했다. 이제 나는 기성세대가 됐으니까 면목도 없고, 정권 교체가 잘 돼서 보람은 있었지만, 촛불집회에 있는 동안 심란했다. 엄청난 항쟁이 일어나서 기쁘다는 느낌은 젊은 세대들이고, 저같은 사람은 정치하면서 이런 걸 막지못한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죄책감도 있다.
□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지만 왜 투쟁에 뛰어들어야 했는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 광주학살로 정권잡은 전두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시대과제이고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정신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하느냐 아니냐를 보면 1,2학년 내내 문학전공이고 시인되려고 해서 내 일이 아니다 운동권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와서 이건 내일이다. 나혼자 할 수없지만 나라도 같이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당연했다. 개인문제를 넘어서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원내대표가 되니까 피할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앞에 두고 이런 정권을 유지할 수없는 일이었다. 저같은 경우는 당위로 스스로 규정하고 움직이는 버릇이 있어서 30년이 이어졌다.
□ 당시 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 부검에 학생대표로 참관했다. 이한열 열사는 어떤 의미이며, 현재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 이한열 군은 잘 아시지만 그 시대의 잣대로 보면 평범한 22살의 대학 2학년 학생이었다. 운동권 핵심도 아니고. 좋은 취지에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면서 후배들을 잘 보살피는 청년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당시 시대상황은 평범한 22살 청년이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한열의 의미는 저는 거기에 주안점이 있다. 평범한 22살 대학생이 언제든 어느 때든 힘들 수 있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것 이다. 본인의 희생을 통해서. 그런게 시대의 비극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쓰러져야할 자리에 나 대신 쓰러진 후배라는 의미가 강하다. 부채의식으로 30년 동안 이한열 기념사업을 해왔다. 그런 시대를 끝내야 하는 당위감이 당시에 평범한 대학생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만약 총학생회장이나 투쟁위원장이 쓰러지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을텐데, 그런게 30년전 이한열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라고 해석한다.
□ 6월항쟁 30년이지만, 아직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잔재가 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 우리가 왜 정권교체에 집착했느냐는 과거 반민특위이나 5공청산도 있지만, 결국 주도권 문제라고 본다. 낡고 부패한 세력에게 이 나라 주도권을 주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 잔재청산이라는 것은 제도적 측면, 인적 측면도 있는데 저는 문화와 관습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주도세력 교체가 정권교체였다. 문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읽고 있다고 본다. 
내란죄로 처벌했어도 여전히 제 지역구인 연희동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떵떵거리고 살고있고 그걸 보면 솔직히 속이 상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인적청산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그사람이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서 밀어내는게 민주주의 정착 과정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은 오히려 빈부격차 해소라는 소위 경제권력 독점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 분단으로 인해서 기득권 층이 강화되는 측면이 여전히 있어서 그런 측면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정치세력 안에서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잔재 청산이라는 개념보다는 새로운 나라 건설에 매진하는게 필요하다. 새로운 나라 건설의 과제가 무엇이냐는 데에 여당과 대통령 주변 권부있는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두 개의 과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 1987년 당시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가 모토였다. 그러한 생각이 6월항쟁에 얼마나 기여했다고 보는가.

■ 그 모토가 상징하는 것은 대중노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 전해에 있던 5.3인천투쟁, 건대투쟁으로 상징되는 것은 조직화된 운동권의 선도투쟁이 주요노선이었다. 엄혹한 현실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려면 선도적 투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학생운동은 문제제기집단이다. 이런 의식들이 강했다.

저는 우리가 문제해결집단이 되려면 대중노선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운동권 조직만의 은밀한 투쟁보다는 공개적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대중노선으로, 실질적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한다는 노선이었다. 그렇게 일관되게 움직이고 학생회 중심으로 투쟁위원회나 별도의 비합조직 중심이 아니라 대중적인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이 주효했다. 그래서 화염병 시위, 각목시위도 없앴다.
당시 골수운동권 조직은 반발해서 저에게 반성하라고 공개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운동권 조직 중심에서 학생회 중심으로, 대중노선이 6월항쟁을 가능케한 중대한 노선변화였다. 그리고 그 노선이 성공한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도 평화적인 집회로 계속 유지한 것이 굉장히 많은 국민들과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않았는가. 여전히 대중노선은 유효하다. 지금 학생회나 여러 사회, 노동운동 그룹을 보면 자신들의 노선을 반성하기 보다 대중이 보수화됐다고 오히려 대중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내지 못하고 있다면, 운동진영의 내부 노선과 형식 방법상 문제를 드러낸 것 아닌가. 대중이 보수화됐다는 관점이 옳다면 어떻게 천 몇백만명이 몇 개월간 촛불집회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자꾸 대중탓으로 넘기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당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보수화됐다고 생각하고 정당을 운영해왔으면, 우리가 어떻게 5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문제의 근본은 자기 내부에서 찾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제가 학생회장때 뿐만 아니라 원내대표가 되어서도 우리 당의 운영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꾼 것이 내분을 줄이고 시대적 과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던 것처럼 항상 반성과 성찰은 내부로부터, 내부를 향해 집중하는게 좋다.
□ 6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소통과 참여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 소수집단의 전횡으로 귀결되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핵심은 소통이다. 결국 위임받은 권력자는 항상 주인인 국민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의 운용도 끌고가는 방식보다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환해야한다. 
유럽의 민주정치를 보면 소통과 참여에 둔감한 정당이 선거에 패배한다. 유럽의 각 나라 특성은 있지만 소위 좌파정당을 보면 이런 문제에 등한할 때 항상 선거에 지는 것을 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소통과 참여다. 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관건이 있다. 권력자가 되면 경청보다 지시를 선호하고 그런 관행이 생긴다. 그러니까 감시를 해야한다. 감시받는 권력은 절대 부패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소통과 참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또다른 감시체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 38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아직까지 좋다고 할 수 없다.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 원내대표에 출마할 때 가진 목적의식이 세 가지였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같은 운동권 세대에게 씌워진 나쁜 이미지, 배타적이다, 무능하다 이런 이미지를 극복해야겠다고 고민했다. 그 이전에 우리가 국민의 기대를 받고 정치권에 진출한 이후로 제대로 성과를 못냈다. 기존 정치 이분법 극복도 성공하지 못했고, 계파 정치 극복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개혁과 진보의 길에 견결히 투쟁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망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원내대표를 하면서 그런 이미지를 일부 극복할 수 있어서 보람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재명, 안희정 두 사람이 나와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분들 다 동세대 정치인들이다. 끊임없는 도전, 성찰, 안주하면 안된다. 우리가 기득권의 틀에 안주하면 바로 국민이 우리를 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활동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를 토대로 또다른 시대과제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이 다시 옛날 잃어버린 기대를 해주시리라 확신한다.
  
▲ 우상호 의원은 6.15 공동선언일 대신 8.15 광복절을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시점으로 잡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한반도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6월항쟁이 주는 현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 시대적 과제가 양극화, 결국 경제정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부의 독점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실 재벌 및 대기업의 전횡, 불공정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또 한편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적 과제이다. 
특히,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주민주통일을 외쳤던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사실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은 지역구에 도움은 안된다. 갈등요소가 있고 남남갈등요소가 있고 사상적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정치하는 이유가, 목적이 과연 존재하는가. 민족적 최대 과제인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세대가 앞장서야 한반도 평화가 더 빨리 정착하지 않는가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지금 핵 위기로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길에 앞장서려고 한다.
□ 분단의 세월이 이어지고 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민족의 활로와 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일을 하면서도 계속 주장했다. 정경분리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개성공단 철수할 때 엄청난 미래가치 손실을 봤다. 제가 항상 예를 드는게 중국이라는 나라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이고 한국전쟁에 참여한 나라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정경분리원칙으로 중국과 수교하고 경제협력하고 이끌어온 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도움이 되고, 경제적 부의 창출에도 상당히 도움된거 아닌가. 그게 국익이다. 
남북관계 문제를 보수가 이념시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진보진영도 이념의 잣대로 볼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우리 국익인가. 무엇이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에 기여하는 일인가. 여기서 지켜야 할 원칙이 정경분리원칙이라고 본다.

왜냐면 북한 체제가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은 낮고 북한의 핵을 반드시 포기시켜야 하지만, 포기까지 가는 과정이 지난하다. 그 과정에서 이념적인 틀을 갖고서는 문제 해결도 어렵고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더 고조된다는 점에서 정경분리원칙을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민간교류와 다양한 형태의 남북교류를 활성화시켜서 남북간 불신을 불식하고, 특히 남남갈등요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장과 원내대표가 모여서 8.15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정치권이 각 당을 떠나 인도적 문제부터 하자는 포석에서 잘 된거라고 본다.

굉장히 많은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한 것같지만, 꽉 막혀있을 때는 단순한 문제부터 하는 것이 좋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푸는 걸음을 떼도록 정치권 차원에서 뒷받침할 계획을 갖고 있다.
□ 정경분리원칙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국면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 가능하다. 결국 그동안 미국과 일본, 한국이 추진해 왔던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고립시켜서 압박 속에서 북핵을 해결하거나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것 아닌가. 지금도 미국은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성공 못하고 핵을 포기시키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면 단계적으로 먼저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선제적 정책을 펴야한다.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다면 긴장이 더 완화된다. 그 다음에 국제적인 제재가 완화될 것이고 이런 것들은 서로 얽혀있는 문제이다. 무엇이 먼저냐 무엇이 나중이냐를 따지면 문제가 안풀린다. 상대방이 변해야 나도 변한다는 방식으로 어떻게 원하는 외교적, 경제적 성과를 얻어내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를 잘 쳐다보면서 그런 북한이 갖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고 북한이 국제적인 질서에 순응하면서 대화의 현장에 나오고 그 속에서 실용적인 협상을 통해서 단계적인 핵 폐기정책으로 가도록 국제사회가 공조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민간차원의 교류, 인도적 차원의 접촉 등을 시작하지만, 그런 것이 북한의 위기의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연유에 압박과 병행해서 궁극적인 대화의 장에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한다. 가능하다고 본다.
□ 남북민간교류를 말씀하셨다. 북한은 6.15민족공동행사를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시금석으로 삼는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회각계 각층이 10년간 막혀있던 여러가지 개혁정책이나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여러 목표를 향해 뛰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안된다. 보수정권 10년 간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것도 요인이지만 실제로 그사이 북한이 끊임없이 핵과 미사일을 진전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없던 걸로 생각하며 접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남북간 가시적 성과는 8.15를 목표로 하는 것이 맞다. 며칠 안남았는데, 6.15를 가지고 어떻게 지금 첫 시금석으로 삼겠는가. 오히려 국정원에 새로운 대북전문가도 포진됐고 또 남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북한도 조금 관심을 기울일만한 시점에 조금더 신뢰회복조치를 취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물론 6.15남측위는 조급하겠지만, 적어도 8.15를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목표시점으로 정하고 접근하는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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