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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7일 화요일

새끼오리의 험난한 첫발, 도시엔 함정이 널렸다


김봉균 2017. 06. 27
조회수 1114 추천수 0
자동차, 보도블록, 집수정…옥상 정원도 때론 죽음의 덫
어미 따라 아장아장 새끼오리 집수정 빠져 몰사하기도

d2.JPG» 도심에 둥지를 튼 흰뺨검둥오리의 새끼들은 물가로 가는 첫 여행부터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다.

바야흐로 야생동물의 번식기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먹이를 물고 기다리는 새끼에게 바삐 돌아가는 어미 동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시기이죠.

새 생명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작 야생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겐 매 순간이 위기이고, 치열함 그 자체입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해마다 야생동물의 번식기가 올 때마다 새끼 동물의 구조신고가 잦아집니다. 이 과정에서 충분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구조하다 뜻밖의 '납치'를 하는 결과를 빚기도 하지만, 정말로 구조를 필요로하는 위험에 놓이는 경우도 무척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구조되는 동물이 다름 아닌 오리류입니다. 국내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오리과 조류로는 흰뺨검둥오리와 원앙이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초지에 알을 낳아 품습니다. 원앙 역시 하천 주변의 나무구멍 등에 알을 낳아 품습니다.

d1.jpg» 흰뺨검둥오리(왼쪽)와 원앙은 선호하는 둥지는 다르지만, 알에서 깬 새끼들 데리고 강가나 하천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특성은 같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이들은 '조성성 조류'입니다. 부화와 동시에 눈을 뜨며 온몸에 털도 나 있습니다. 심지어 곧바로 일어나 걷습니다. 새끼는 어미를 따라 앞으로 살아갈 강가로 이동합니다. 녀석들의 첫 여행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태어나자마자 이동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연약하고 날 수 없으니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 역시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녀석들의 이러한 번식생태는 특히 요즘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인구의 증가와 거주지 확대, 특히 하천 주변에 생겨난 건물과 정비공사로 인해 하천과 가까운 곳에서는 오리가 번식에 적합한 환경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심에서 번식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잠재되어있는 위험이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죠.

가장 먼저 도로와 자동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직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서 강가로 이동해야 하는 녀석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나라는 도로의 밀도가 매우 높고, 특히 도심지에서 도로와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도로를 건너는 과정에서 차에 치여 폐사하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도태되기에 십상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중앙분리대나 보도블록 때문에 더는 이동할 수 없어 결국 도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합니다.

d3.JPG»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의 중앙까지 왔는데 앞에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들은 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을 수 있을 리 없다.

두 번째는 건물의 옥상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나 텃밭 등에 번식을 하는 경우입니다. 최근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자 옥상의 잉여공간을 이용해 정원이나 초지, 텃밭을 가꾸는 이가 늘고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와 같이 풀밭에서 번식하는 새에게 그런 공간은 번식에 무척 유혹적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높이가 있다 보니 천적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새끼가 부화하고 나면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강가로 가기 위해선 건물에서 뛰어 내려야 하는데, 워낙 높아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심각한 외상이나 폐사로 이어지곤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건물 옥상은 추락을 막고 안전을 위해 담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옥상에서 무사히 부화하더라도 담을 넘어 뛰어내릴 수 없다 보니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면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갈 수 있습니다.

d4.JPG» 건물 옥상에 조성된 인공초지에서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 건물에서 밖으로 뛰어 내려야 하지만 높은 난간이 가로막고 있다.

세 번째는 곳곳에 눈에 띄지 않지만 정말 수없이 널려있는 인공구조물인 집수정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맨홀 뚜껑이나 사각으로 짜인 그물 모양의 철제구조물이 빗물이나 오수를 모아내는 집수정입니다.

어미 뒤를 졸졸 따라 이동하는 새끼오리들에게 집수정은 치명적입니다. 어미야 덩치도 크고, 발바닥도 커서 대부분 집수정에 빠지는 사고를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미도 자신의 새끼가 매우 작아서 집수정 구멍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집수정 위를 유유히 걷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새끼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곤 하니까요.

d5.JPG» 집수정에 빠진 새끼오리.

집수정에 빠진다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수도 내부가 좁아 사람이 들어가 구조할 수 없거나, 하수도가 너무 길고 복잡하면 구조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또 하수도 내부는 좁고 어두워서 여러 오염이나 외상을 입힐 수 있는 구조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작고 낮은 집수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직접 구조를 시도하기보다는 전문가에게 요청해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d7.jpg» 구조요원이 새끼오리를 구조하기 위해 집수정 내부의 하수도 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d-8-1.jpg» 좁고 긴 어두운 하수도 내부에서 다행히 모두 8마리의 새끼오리를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새끼오리들의 삶이 이렇게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당장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로를 없앨 수 없고, 누군가가 애써 조성해 놓은 옥상 정원을 금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전국에 수없이 존재하는 집수정을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 역시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번식기의 오리를 이를 요구하는 것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으리라 기대하기도 쉽지 않겠죠.

현재로써는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오리들이 어딘가에 고립된다면 그 환경이 물리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울 수 있고, 이는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끼오리들이 조난된 원인과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구조할 수 있는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구조를 시도하거나 오리가 안전하게 강가로 이동할 수 있게끔 주변의 위험요소를 통제(차량, 집수정 접근 등)해 주는 것 역시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d9.JPG» 매년 위와 같은 이유로 구조된 새끼 오리들이 구조센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강가에서 유유하게, 한가로이 헤엄치던 녀석들이 이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지 미처 몰랐던 분들도 많으시겠지요.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우리가 녀석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을 깨달았다면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동차 괴물, 보도블록 덫, 그리고 집수정 함정은 결국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요.

도로를 건너는 오리 가족을 위해 달리는 자동차를 멈춰 주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누군가의 행동이 많은 이에게 미담으로 다가와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미담이 아니라 누구라도 선뜻 녀석들의 첫 여행을 도와줄 수 있는 행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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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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