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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3일 화요일

통일장관 후보자 조명균의 '화려한 귀환'


17.06.13 17:16l최종 업데이트 17.06.13 21:47l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로 들어서고 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가히 '화려한 귀환'이라 할 만하다. 

조명균(60)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현장에서 대북 정책을 집행한 핵심 실무책임자였다.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본격 상승기에 들어갔던 2001년부터 교류협력국장,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정책조정부장, 통일부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장을 맡아 북한과의 실무 협상을 이끌었다.

개성공단 착공·남북철도 연결 등 실무 대북협상 주도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세현 전 장관은 "조 후보자가 개성공단 건설, 남북철도연결 문제 등에 대해 북한과 실무협상을 많이 했는데 참 잘했다, 조용조용하게 하면서도 꼭 성과를 냈다"며 "실제로는 장관인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2002년 4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시절에는,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은 악의 축' 발언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풀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파견한 '임동원 특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과와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7월, 대북정책의 핵심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맡은 그는 2007년 10월에 치러진 2차 남북정상회담에 깊게 관여했다. 2007년 8월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함께 육로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다듬었으며, 정상회담 당시에는 기록자로 배석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작성했다. 
디지털녹음기에 기록된 2007남북정상회담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 디지털녹음기에 기록된 2007남북정상회담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4개월 뒤인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런 '공헌'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직업공무원이었음에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MB정권이 '햇볕정책'의 산물인 6․15선언과 10․4선언을 '애물단지' 취급하면서, 조 후보자는 보직을 받지 못하고 교육대기 상태에 있다가 결국 2008년 10월 사표를 내고 통일부를 떠났다. 1980년 행시 23회로 통일부(당시는 국토통일원)에 들어온 지 28년 만이었다. 당시 통일부 내에서는 "장래의 장관감이 날아갔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 뒤 천주교 재단인 동성고 출신인 그가 성당 일을 중심으로 신앙 활동에 매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질 뿐 별다른 외부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이 일으킨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이 휘말렸고, 결국 2007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임의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하고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등으로 2013년 11월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함께 불구속기소 됐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로부터 "문제가 된 대화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며 무죄선고를 받았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으나,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은 작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그가 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가능성이 낮다는 평이 많았다. 대통령 선거운동에도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통일부 주변에서는 "그는 사실상 종교인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9년간의 공백'에 대한 우려였다.

그로서는 통일부 퇴직 후 9년 동안 시련과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핵심 실무를 맡았던 대북정책 집행의 최고 책임자로 복귀하는 셈이다. 그는 첫 행시 출신 통일부 장관 후보이기도 하다. 

10․4 선언 주도 세력의 귀환... 8년 전 문 대통령 "10․4 선언, 말라죽지 않을 것"

조 후보자의 복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때 '"버림받은 선언"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고(2008년 10월 1일, 10․4선언 1주년 기념식 연설) 비애감을 나타내기도 했던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주도 세력의 부활과 궤를 같이한다. 2차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됐고, 막후 협상 등 전 과정을 주도한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은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이 2008년 10․4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비애감을 표현한 3일 뒤인 10월 4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10.4선언이라는 나무는 결코 그냥 말라죽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이제 9년 만에 대통령으로서 이 다짐을 이행할 구체적인 라인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조 후보자는 청와대의 내정 발표 몇 시간 뒤인 13일 오후 '개성공단 복원 방안'을 묻는 기자들에게 "구체적인 것들은 좀 면밀히 파악하고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는 전제하에 "개성공단은 다시 재개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세현 전 장관은 조명균 후보자 내정을 "남북관계를 2008년 이명박 정권 집권 이전 상태로 원상 복귀시키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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