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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1일 금요일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함께 하셔서 고맙습니다”

‘통일조국 외길’ 원로 비전향 장기수 미수·구순잔치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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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1  1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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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은 21일 낮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올해 구순이 되는 김해섭, 손경수, 김교연 선생과 미수를 맞은 안학섭, 박순자, 한재룡 선생 등 여섯 분을 모시고 조촐한 생일잔치를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촛불이 가져왔지만 그와는 전혀 무관한 듯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가 열기를 뿜어대는 21일 낮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원로 통일운동가들인 통일광장 비전향 장기수들의 조촐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은 올해 구순이 되는 김해섭 선생(1928.5.17. 전북 정읍), 손경수 선생(1928.8.23. 충남 논산). 김교영 선생(1927.11.11. 함남 영흥)과 미수(米壽)를 맞은 안학섭 선생(1930.3.15. 경기 강화), 박순자 선생(1931.4.1. 경남 하동), 한재룡 선생(1930.12.10. 전북 고창) 등 여섯 분.
부산에 거주하는 박순자 선생과 병상에 있는 손경수 선생은 참석하지 못하고 김해섭·김교영·안학섭·한재룡 선생 네 분이 60여명의 동료, 후배들과 함께 자리했다.
이날 제일 앞자리에는 통일광장의 유기진 선생, 임방규 선생, 박종린 선생, 양희철 선생 등 10여명의 통일원로가 자리를 지켰다.
언제나 자리를 함께 했던 범민련 남측본부의 이규재 의장과 노수희 부의장은 오래 전 선약으로 불가피하게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도 대의원 대회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 이날 앞 자리에 통일광장 10여명의 통일원로가 자리를 지킨 가운데 60여명의 동료, 후배들이 함께 자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백남기 농민, 세월호 가족들, 한광호 열사 등 아픈 사연들이 해결되지 않은 이곳 광화문에서 밥 먹고 노래 부르는 게 민망하지만 모처럼 선후배들이 만나 충천도 하고 후배들은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은 “선생들은 사상과 조직, 신념과 동지애를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단호한 설복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해 오셨다. 자주통일 애국의 등불로 살아온 선생들의 삶과 투쟁을 따라 배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로 축사를 대신했다.
또 “평소 일을 해 놓지 않으면 정월 초하루에 나무하러 간다는 말이 있다.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앞두고 최상의 단결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 더욱 전진과 분발, 혁신과 단결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선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촛불의 정신을 계승해서 적폐청산과 새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약은 고사하고 입만 열면 민주노총, 전교조 때려잡겠다는 후보도 있는 실정이고 며칠 남지도 않은 박근혜 내각에서 기어코 사드배치를 강행하는 실정”이라며 최근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의 봄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젖힌 계절이라는 점을 잊지 않겠다.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더 크게 투쟁하겠다”고 원로들 앞에 다짐을 밝혔다.
  
▲ 통일광장 장기수 선생들은 이날로 8일째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초대해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권낙기 대표와 통일광장의 장기수 선생들은 “감옥에서 단식 투쟁할 때 옆에서 밥 먹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고공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초대해 선생들이 모은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6개월 동안 시국농성을 벌이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이후에도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악법 철폐 등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광화문 네거리 고공 단식 농성에 들어가 현재 8일째 접어들고 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구순잔치에 부쳐(시 전문)

님 오시는 소리
-황윤희

흰 버선발
휘날리는 옷고름
굳고 곧은 걸음걸이
님이 오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70년의 전쟁
이제야 끝내고
님, 오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날선 핏줄 피맺힌 무르팍
무기 하나 없이 절벽이었던
약자의 전쟁은
이제 선하고 정한 승리로 끝날 것이라 들었습니다

어젯밤
제국을 멸하고
적폐를 멸하고
그 부정한 것들 다 쓸어버리고
머얼리 벌판을 건너오는
고독한 전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것일까요?
까맣게 젊었던 소년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다 되어
마지막 숨을 준비하는 중인데요

그러나
기다림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했습니다
간절한 바람은 버려지는 게 아니라 했습니다
싸움의 길이 사무치게 외로워도
분노가 솟구쳐 뇌수를 녹여도
사랑은 져버리는 게 아니라 배웠습니다

님을 기다리던 수많은 아낙들
촛불 하나 켜고 동구 밖으로 나아갑니다
집집마다 환히 등을 내걸고
문지방을 깨끗이 닦습니다
저기 오는 저것, 저 새로운 것, 새로운 시대를
봄날 논물 대듯
세상에 고이게 할 거라 외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님이 전하시네요
너무 늦게 와 미안하다고
버린 것이 아니라
잊은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했을 뿐이라고
그저 늦어 미안하다고

구순의 노인이 대답합니다
괜찮습니다
싸우는 자여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일생 그대를 기다렸으니 행복했습니다

흰 버선발
휘날리는 옷고름
굳고 곧은 걸음걸이
아-, 님이 오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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