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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7일 금요일

벨기에인이 본 한국 근현대사의 기회들: 이번 대선은 4번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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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에 박근혜가 구속되었다. 촛불시민의 승리다.

10월 29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때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 2만 명 가량이 광화문에서 1차 촛불집회를 열었다. 2만 명은 어느새 전국적으로 2백만 명이 됐고 국민들은 점점 길어지는 시위와 추위를 이겨내고 5개월 동안 끈질기게 외치고 싸웠다. 평화로웠던 촛불집회는 고장난 한국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언론인, 내부자, 국회의원, 법관 등 모두에게 사명감과 양심을 지키게 해주는 힘은 2백만의 촛불이었다. 촛불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보여줬다. 난 오랫동안 한국에 살아왔던 벨기에인으로서 이 촛불의 승리는 너무 멋있었다. 세계적으로도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사례가 됐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흐지부지 될 까봐 묘하게 걱정되고 불안하다. 시민들이 만들었던 황금 같은 기회가 또 정치권에 의해 사라질 까봐.

한국현대사를 보면 늘 그랬으니까.

1945년, 한국이 해방 됐으나 사람들이 원했던 친일파 청산은 하지 못했다. 치안을 우선이라고 했던 미군정은 친일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 됐을 때 친일파 청산이 헌법에 들어 있었지만 극우반공투사로 변신된 친일파들은 처벌은커녕 미국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득권층이 됐다. 친일 행위를 처벌하려는 반민특위가 해체 됐고, 반정부 세력은 빨갱이로 몰려, 제주도부터 혹독하게 탄압 당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이승만이 지도하는 극우반공세력은 한국전쟁을 직접적으로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국민들이 강렬히 원했던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한국전쟁과 친밀히 연결돼 있다고 본다. 첫 기회를 놓친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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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전쟁의 트라우마와 반공감정을 이용해 10년 동안 정권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남아 있던 진보세력을 계속 탄압하고 사민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조봉암에게는 간첩조작으로 사형을 내렸다. 시민들은 참다못해1960년 4월, 혁명을 일으켰다. 뻔뻔하기 그지없던 3.15 부정선거와 자유당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졌다. 이승만은 하야로 물러났지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과거청산의 기회를 만들었는데도 정치권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장면이 이끈 민주당은 자유당의 간부들과 야합하고 지배적인 보수세력이 됐다. 한편, 4.19 혁명을 대표한 혁신계는 오히려 좌경 용공 세력으로 간주됐다. 혁명을 빼앗긴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박정희가 나타나 사회적인 혼돈을 핑계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혼돈은 아니었다. 그냥 민주주의의의 정상적인 활성화였을 뿐인데. 5.16 쿠데타는 시민들의 민주의식을 대표하지 못했던 정치권의 실패였다. 두 번째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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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반대세력들을 빨갱이나 김일성의 앞잡이로 만들고 무차별하게 억압했다. 18년 동안 경제개발의 명분 아래 극우반공의 체제가 완성됐고 과거청산은 아예 배제됐다. 유신체제 하에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아직 죽지 않았던 민주의식은 1979년에 다시 부상하고 부마민중항쟁으로 고조됐다. 시위대의 대량학살을 피하려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새로운 혼돈을 핑계로 신군부를 주도한 전두환이 쿠데타로 유신체제를 계승했다. 과거청산의 기회는 주어지지도 않았고 과거가 더욱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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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에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의 첫 희생자가 됐다. 몇 년 동안 안기부는 민주화 운동가들을 쫓아 다녔고 운동가들은 숨어지내야 했다.그러다 1987년 6월, 끓고 있던 민주의식은 한번 더 폭발했다. 전두환이 물러나고 민주화 운동이 승리했지만 시민의 승리는 다시 정치권에 빼앗겼다. 1987년 자유 대선 때 김대중과 김영삼은 함께 55%의 표를 얻었지만 단일화를 못 했기에 신군부출신인 노태우가 겨우 36%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3번 째 기회를 망친 비극이었다.

1990년, 평생 군사독재와 씨름해온 김영삼은 3당합당으로 노태우와 김종필의 보수세력과 손을 잡고 말았다. 덕분에 1992년 대선에 김영삼은 김대중을 압승으로 이겨 대통령이 됐다. 과거청산에 착수하려 했지만 보수세력과의 야합으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승만, 박정희, 유신체제, 광주학살 등 오래 전부터 치유해야 했던 과거의 상처들은 건드리지 못했다. 김영삼은 임기가 끝나기 며칠 전,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하기까지 했다.

1997년, 김대중이 드디어 대통령이 되며 역사적인 정권교체의 시대를 열었다. 민주주의, 남북관계, 복지제도, 언론의 자유 등 오래 전부터 시민들이 원했던 정책들이 달성됐고, 한참 쌓인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어느 정도 충족됐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김대중은 마지못해 김종필의 손을 잡았기에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노무현은 적극적인 과거청산을 위해 진상규명위원회를 세워 친일파, 극우청년단, 민간인 학살 등 예민한 주제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빨갱이로 몰렸으나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소신대로 싸웠다.

그러나 민주의식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경제노선은 친기업 신자유주의의 틀을 넘지 못했기에 임기 말에 민심을 잃고 말았다. 정권교체의 시대는 한국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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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MB가 왔다. 10년 동안 힘들게 달성했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의 성과들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불도저가 지나가듯이. 뿐만 아니라 이명박은 한국이 개인 사업체인 것처럼 4대강, 방산비리, 자원외교 등 여러모로 국민들의 세금을 등쳐 먹었다. 임기가 끝난 이후의 MB는 박근혜라는 보험 아래로 들어가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올해 3월 31일까지 말이다.

드디어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역사적인 4번째 기회다.

곧 있을 5월 9일 대선은 정권교체를 넘어 과거청산을 위한 선거다.

"빨갱이" 오래 전부터 보수 세력에게는 아주 좋은 핑계거리였다. ‘우리를 반대하는 것들은 모두 빨갱이다. 탄압하자.’ 국민들이 이런 극단적인 논리에 장기적으로 세뇌가 돼 어느 정도로 내면화가 돼 버렸다. 이제는 ‘팩트체크’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해방부터 통일을 주장했던 여운형, 제주 4.3 사건의 민간인 희생자, 사민주의를 대표한 조봉암, 4.19 혁명을 일으킨 중고등학생들, 유신체제에 반대한 운동가들도 모두 빨갱이였을까?

레드 콤플렉스는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못 했기 때문에 조성된 현상이다. 청산은 역사와 관련돼 있으나 또한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과거청산을 못했기 때문에 민주의식이 그대로 정치권에 나타나지 못했다. 피부로 느끼는 요구나 고통은 보이지 않은 필터를 거쳐 정치권에서 그대로 대표되지 않는다. 이것을 자기검열이라고 한다.

80%의 국민들이 지지했던 촛불시위를 잘 대표하는 후보 중 하나가 심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겨우 3%의 지지율 밖에 얻지 못했다. 레드 콤플렉스의 모범사례 아닐까.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려보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운영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책과 행태를 보이는데, 그 기반은 불합리한 제도나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대 보수언론과 재벌, 공안세력이 반복 주입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그 기반이다.’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2014, p. 276)

‘박근혜 게이트’ 덕분에 권력을 지배해온 세력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감히 국민들의 의식을 바꿀 판이 생긴 것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70년 동안 지체됐던 과거청산의 더 없이 좋은 기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면 안 된다.

그래야만 촛불의 혁명(지금의 역사를 살고계신 한국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외부에서 보면 혁명입니다)이 정치권에 계승될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건전한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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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투표권도 없으면서 참견하려는 한 벨기에인의 잡담이었다. 사랑하는 한국의 친구들이 4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추신: 아, 한국어로 글쓰기 힘들다.  




편집부 주

크리스님은 한국의 여러 정치적 상황과 역사에 대해 
벨기에 신문에도 기고 중입니다. 
여러분의 피드백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술도 잘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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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S
(교정: KIMA)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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