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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일 토요일

남북 신뢰구축의 계기, 이희호 여사의 방북

<통일시론> 남북 신뢰구축의 계기, 이희호 여사의 방북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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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30  16: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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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일 하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딱 이 말부터 떠오른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양측의 공방을 보다보면 기존 관계가 기초부터 무너진 기분이다. 번지수도 잘못 짚고 싸이클도 안 맞는다. 이래서야 대화는커녕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올해 6.15공동선언 15주년, 8.15광복 70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연초부터 대화를 하자며 호기를 부린 게 부끄러울 정도다. 최근 남과 북은 성명을 내보내면 상호 비방 중상하는 성명전을 벌이고, 대화를 하자고 제의하면 즉각 퇴짜나 맞고, 어쩌다 만나기라도 하면 합의는커녕 안 만나니 만 못했다며 결별한다.
성명전(戰)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동안 북측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나 국방위원회 등을 통해 남측을 비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노동자‧농민 등 근로자단체,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국연합근로단체라는 신(新)병기를 앞세워 5월 17일, 7월 15일과 25일 세 차례에 걸쳐,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아 실명을 거론하면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전국연합근로단체는 박 대통령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과 관련 ‘공포정치’라고 말하자 “구린내 나는 악담질”, “기형적인 독사”, “미친개”, “악당년” 등 비난을 쏟아냈으며, 이어 북핵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병진노선의 부당성” 등을 지적하자 “박근혜의 천하 못된 입이 다시는 놀려지지 못하게 아예 용접해버”릴 것이라고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했다.
대화를 제의해도 곧바로 거절된다. 지난 17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제헌절 경축사에서 남북 국회의장 회담을 제안했으며, 국방부도 9월 서울안보대화(SDD)에 북측 인민무력부 부부장급 인사를 초청했다. 이에 대해 북측 조평통은 19일 성명을 통해 “북남대화가 열리고 관계가 진전되자면 무엇보다 마주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두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이유는 이렇다. 국회의장 회담에 대해서는 “국회가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모부터 갖춰야 한다”면서 북 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꼽았으며, SDD에 대해서는 “그런 너절한 반공화국 대결 모의판에 그 누구를 초청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실로 해괴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조평통은 남측 대북 단체의 ‘전단 살포’와 한·미 군사연습 중지를 적시했다. 그럼에도 7.27정전협정일에 보수단체가 전단을 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어렵게 만난 일도 있었는데 아무런 결실도 못 냈다. 지난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회의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지난해 6월 이후 1년여 만에 만난 것이다. 남북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45분까지 12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다음 만남도 기약하지 못했다. 쌍방은 임금문제, 3통문제, 근로요건 개선을 위한 당면 현안 문제부터 공단 국제화, 투자자산 보호 등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와 관련한 안건들에 이르기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의 분위기가 이 같은 낮은 차원의 회의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싸늘하게 된 것이다.
왜 이 지경까지 됐는가? 성명으로도 싸우고, 만나지도 못하고, 어쩌다 만나기라도 하면 얼굴 붉히는 일이 왜 일어나는가? 한마디로 상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시대 때 일군 신뢰가 이명박 정부 때 흔들리더니 ‘박근혜-김정은’ 시대 들어와 완전 무너진 것이다. 지금 남북 양측에는 신뢰가 눈꼽만큼도 없다. 다른 수가 없다.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신뢰구축은 단순하다. 상대편이 아파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남측은 북측에 대해 ‘병진노선 부당성’ 등 총노선 문제와 ‘흡수통일’ 등 체제 문제 그리고 전단 살포를 금해야 한다. 아울러 북측은 박 대통령에 대한 험담이나 남측이 ‘외세의 꼭두각시’라며 ‘자주성’ 문제 제기를 삼가야 한다.
마침 남과 북의 신뢰 정도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다음달 5~8일 방북을 둘러싼 양측의 정성과 시각이다. 알다시피 이 여사의 방북은 ‘김대중-김정일’ 두 고인(故人)을 인연으로 해 ‘이희호-김정은’, ‘이희호-박근혜’ 사이에서 약속이 성사된 것이다. 즉, 이 여사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당국이 약속을 지킨 셈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약속을 신뢰 문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북측으로 향하는 이 여사를 만나 힘을 실어줘라.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에 온 이 여사를 반갑게 맞이하라. 그것만으로도 남북간 신뢰구축이 가능하다. 그만큼 남북 최고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나마 구순이 넘은 노(老)여사의 마지막 역할이 있다면 무너진 남북의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는 메신저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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