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9년 3월 23일 토요일

"박 시장님, 밀어내면서 놓치는 것을 생각해주길"

'박원순 개인전' 24일 마감...참여 예술가들 '작가와의 대화' 열어
2019.03.24 11:17:06




지난 8일 문을 연 '박원순 개인전'이 24일을 끝으로 전시를 마감한다. 이 전시회는 서울시의 개발 담론에 문제의식을 가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프로젝트 팀 '서울-사람'이 주최했다. 심승욱, 오세린, 일상의실천, 정용택, 차지량, 최황, 한정림, CMYK 등 총 8팀의 예술가들이 이번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 전시회가 언론 등에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가'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박 시장이 진행한 도시재생, 재개발사업의 현상들을 작품소재로 사용하면서 박 시장을 작가로 소환했다. 이에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어시스턴트'라고 칭했다. 일종의 풍자다. 

그러한 '어시스턴트'들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상업화랑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상업화랑은 '박원순 개인전' 전시회를 치른 곳이다. 이들이 풍자 가득한 전시회를 연 이유는 무엇일까.  

▲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참여한 예술가들. 가운데 비어 있는 자리는 박원순 시장 자리다. ⓒ프레시안(허환주)
"예술은 사회에 계속 말을 걸어야 해" 

"작용과 반작용 법칙이 있는데, 재개발에서는 반작용 보다 작용의 힘이 매우 세다. 재개발, 자본의 시장논리가 워낙 힘이 세다 보니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 그리고 그곳에서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들의 저항, 즉 반작용이 생겨나지 않는 듯하다. 을지로 지역은 작업할 때 필요한 재료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이다. 내겐 매우 중요한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이는 다른 작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이유다." 최황 

'박원순 개인전'은 최황 시각예술가가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축으로 포털 사이트들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촬영한 파노라마 '로드뷰'를 모아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든 것을 전시했다.  

최황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이유를 두고 "예술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어도, 예술로 사회에 계속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형의 언어로 사회에 말을 걸었다는 지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흥미로운 해프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언론과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박원순 시장을 '작가'로 데뷔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박 시장에게 전시회 초청장까지 보냈다. 이날 '작가와의 대화'에는 작가 자리로 박 시장 자리를 비워두기도 했다.  

작가그룹 CMYK는 '옥탑방 겨울나기 종합세트'라고 쓰인 선물 상자를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이는 지난 2018년 한여름 당시, 강북구 옥탑방에서 한 달 간 거주했던 박 시장을 상기하면서 준비한 작품이다. 당시 박 시장은 겨울에는 금천구에서 거주를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CMYK는 이를 풍자하면서 박 시장을 도와줄 겨울 종합선물세트를 전시한 것이다. 세트 안에는 뽁뽁이, 분무기, 털신, 난로 등이 들어 있다. 관람객 응모 이벤트를 통해 100명을 추첨해 선물 세트를 증정하기도 했다. CMYK는 "박원순 시장에게도 선물세트를 보냈으나 반송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 작가그룹 CMYK의 '옥탑방 겨울나기 종합세트'. ⓒ프레시안(허환주)

사회 이슈를 예술이란 매개로 대중과 소통 

이번 전시회의 의의는 박 시장 개인을 단순 조롱거리로 만들기보다는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위트 있고 세련되게 박원순 시장의 재개발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 있다.   

공예가 오세린 작가는 시들고 깨진 귤을 본떠 금속제 조형물로 만든 뒤, 도금한 오브제를 선보이면서 쓸모없고, 망가진 것들은 내다 버리는 서울시의 행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사회적 이슈를 매개로 한 예술적 행위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디자인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은 2011년~2019년까지 박원순 시장의 발언을 비롯해, 그의 뒤축 닳은 구두, 안경 등 물건들과 박 시장이 방문했던 장소 등을 모두 문자와 기호로 수집한 뒤, 이를 디지털 화면에서 조합한 결과물을 종이로 출력하는 작업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주목할 점은, 관람객들이 이 작업에 참여, 즉 직접 기기를 조작해 박 시장의 발언, 안경, 신발 등의 그래픽물을 색지에 편집한 뒤, 이를 출력할 수 있게끔 했다는 점이다. 이 출력된 종이를 관람객들은 을지로, 청계천 일대에 전단지로 부착할 수 있고, SNS에 공유할 수도 있다.  

일상의실천팀은 "그간 박 시장이 했던 워딩을 정리하면서 과거 내가 투표해서 뽑았던 박 시장과 지금의 워딩 속 박 시장과는 괴리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며 "관람객들도 직접 작업을 해보면서 각자의 답을 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 일상의실천은 관람객이 직접 포스터를 구성해 출력까지 바로 완성 할 수 있게 구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프레시안(허환주)
"밀어내면서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주길" 

작가들은 "박원순 서울시장 임기 중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과 재개발 사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로 '박원순 개인전'을 준비했다"며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의 현주소를 조명해보고자 했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작가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은 남아 있는 듯했다. 박 시장이 이제라도 좀더 주변을 살피며 사람 중심의 행정을 해주기를 당부했다. 

"서울 이곳에 사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것을 밀어내는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이곳 을지로를 밀어내고 들어서는 것은 금융과 사무실 등 반짝거리는 것들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겨야만 한다. 그래야 반짝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밀어낸다. 그래야 내가 반짝거린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도 반짝거리는 것을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박 시장이 그런 반짝이는 것보다는 밀려나는 이들을, 그리고 밀어내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오세린  

CMYK는 "삶에서 중요한 건 '동료찾기'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시장 자리에 가기까지 많은 동료의 응원과 도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동료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장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조언했다.  

최황 작가는 박 시장을 두고 "분노보다는 실망이 더 크다"며 "박 시장의 초창기 모습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 작가는 "박 시장이 다시는 이런 식으로 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여기에서 나온 목소리를 듣고, 변화와 모색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