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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8일 금요일

[분석]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북한에 ‘책임’ 떠넘기고 완전히 말 바꾼 미국

미 고위당국자, ‘단계적 접근’ 동의하고선 ‘양자택일’ 돌변... 복스, “북미협상 끝내겠다고 위협하는 것”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03-09 11:05:30
수정 2019-03-09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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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자료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자료 사진)ⓒ뉴시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단계적(step-by-step) 접근법을 지지하는 아무도 사람은 없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행한 북한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트럼프 행정부 자문 팀들 모두가 ‘양자택일(all-or-nothing,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이냐’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기자는 현재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태이지만, 추후에도 협상 가능성이 있고, 외교적 관례에 따라 굳이 이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이 고위 당국자는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1월 31일, 미국의 한 대학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한 바 있다. 
“우리 역시, 북한이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면 두 정상이 지난여름 싱가포르 공동 성명에서 했던 모든 약속들을 동시에 그리고 병행적으로 추진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더불어 제재가 해제되고 한반도 평화가 이룩되면 다가올 새로운 기회와 주민들을 위한 밝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함께 북한에게 밝혀왔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적인 북미관계개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추가적 진전을 이루어 낼 여러 행동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기자가 오해의 소지가 없게 아예 주한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번역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이 고위 당국자는 지금 북미 간에 핵심 논쟁이 되고 있는 대북제재 문제에 관해서도 이 연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편이 모든 것을 다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종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 하노이 정상회담 개최까지 북미 실무협상을 총괄한 이 고위 당국자는 이른바 ‘단계적 해법’에 동의한 사람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 외신에서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이 당국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 터였다. 
어디 그뿐인가? 솔직히 모든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미가 완전한 합의는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영변 핵시설 문제를 포함해 일부 합의를 이루고 미국은 연락사무소 개설이나 평화선언 등을 합의문에 넣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게 대다수의 아주 정상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당시 오찬과 서명식만을 앞둔 하노이 합의는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한 채, 전격 결렬되었다. 이미 기자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와 언론들은 존 볼턴 NSC 보좌관을 결렬의 핵심 주범으로 지목한 바 있다. 관련기사:갑자기 등장한 볼턴의 ‘노란 봉투’...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도화선 됐나 
8일, 데릴 킴볼 미 군축협회(ACA) 회장도 트위터를 통해 “볼턴과 그의 측근들이 비핵화와 평화에 관한 골대(goalpost)를 옮겼다”면서 “이는 실패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과) 진전 가능성을 파괴(sabotage)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볼턴이 골대만 옮긴 것이 아니고, 그동안 북미 실무협상을 총괄했던 인사가 자신의 말을 완전히 바꾸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단계적 접근’에 동의한다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고선 이제는 완전히 ‘전부를 다 포기하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뉴시스/AP
전문가들, “북한에 역풍 불러올 것, 실제적인 상호 조치 취해야”
이에 관해 8일, 미국 유력 인터넷 매체인 ‘복스(Vox)’는 “미 고위 당국자의 이러한 수사(rhetoric)는 북한을 화가 나게 해 향후 협상 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며, 두 나라를 다시 전쟁의 길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 전문가인 미국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 담당 국장도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것(고위 당국자의 말)은 거센 역풍(backfire)을 불려올 것”이라며 “북한이 다가오는 수주 안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핵전문가인 비핀 나랑 교수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이 고위 당국자의 언급을 비판하면서, “평화의 조건으로 무장해제(disarmament)를 주장하는 것은 정확히 평화나 군축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고 질타했다. 
킴볼 회장 역시 이날 트위터를 통해 “지금은 (북미) 양 당사자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노출했던 차이를 좁히기 위해 협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오직 실제적인 상호(reciprocal) 조치를 취하는 것이 평화와 비핵화에 다가갈 뿐이며, ‘화염과 분노’ 같은 무책임한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복스’는 이 고위 당국자의 갑작스러운 말 바꿈(abrupt change)과 입장 변화에 관해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단순히 대통령의 입장을 따르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단순히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치적인 성명으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단호하게 ‘단계적(step-by-step)’ 과정만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에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볼턴 보좌관 등이 이 고위 당국자의 대북 접근법을 상당히 비판하는 등 내부 갈등에 휩싸인 바 있어, 그는 미국은 단계적 접근법을 고수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내부 비판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복스’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성명(statement)을 북한 정권이 호의적으로(kindly)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북한과) 협상 지속을 원할 것이지만, 이 당국자의 이러한 언급은 협상을 끝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9일, 기자가 이 당국자가 미국 대학에서 한 연설 내용과 특별 브리핑에서 말한 내용이 차이가 있다며, ‘미국 정부는 북한 문제에 관해 ‘양자택일(all or nothing)’을 원하는 것인지, 상호 ‘단계적’ 접근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해 달라’는 질의에 “더 보탤 말이 없다”면서 논평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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