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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8일 토요일

군함도 뒤에 있는 아베를 저격하다


[리뷰] MBC PD수첩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전쟁’…군함도 강제징용 지우려는 일본 우익들 파헤쳐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07월 08일 토요일
지난 1월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 26일 개봉예정)’ 예고편이 공개되자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2월 “영화 ‘군함도’가 역사를 날조했다”고 반박하는 등 잊힌 역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MBC PD수첩이 지난 4일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에서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현황에 대해 듣고, 아베 정권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지 다뤘다.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로 불리는 나가사키현 ‘하시마’엔 최근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2015년 하시마가 세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하시마에서 석탄이 발견되자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바다 속 석탄개발에 뛰어들었다. 1916년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를 지어 탄광촌이 형성됐다. 일본에선 산업혁명의 유적이 됐다.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군함도 모형도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군함도 모형도

하지만 1943~1945년 사이 약 800명의 조선인이 하시마에 강제로 끌려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석탄을 채굴했다. PD수첩 취재진은 직접 하시마를 찾아 관광객 견학이 금지된 곳에 과거 조선인 합숙소가 있다는 사실, 해설사가 일본의 ‘영광스러운 역사’만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파악했다. 섬을 소개한 책자에도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는 보이지 않았다.  
취재진이 만난 하시마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 김형석(97)씨는 74년 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1943년 음력 10월20일, 양력 11월17일. 이장이 나를 불러 징용장이 왔으니 이 사람들을 따라가라 그래요. 미쓰비시 탄광에서 노무자, 인수하러 온 사람이더라고요. 당시엔 일본사람들한테 찍소리도 못하죠. 내 이름이 가네모토 교쿠치, 번호는 4416번. 탄광안이 어찌나 더운지 팬티만 입었고, 땀이 흘러 탄가루 묻은 손으로 눈을 닦아 눈이 못쓰게 돼버렸죠.” 
목숨을 걸고 헤엄을 치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비석이 섬 맞은편 육지에 있다. 탈출에 성공해도 도착한 곳은 일본 땅이었으니 조선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확인된 사망자만 122명, 유골의 행방은 알 수 없다. 1974년 하시마가 폐쇄되면서 위패와 명부 등을 다 태웠다. 미쓰비시가 만든 공양탑은 통행로부터 막혀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건 ‘가해국에 대한 면죄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 2015년 나가사키 관련해 23곳을 지정했는데 그 중 7곳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은 인류보편의 가치, 즉 평화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정하는데 가장 평화와 인권이 짓밟혔던 곳이 등재된 것이다.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2015년 유네스코에서 일본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고, 유네스코는 강제동원의 역사도 모두 공개할 것 등을 조건으로 등재를 했다. 하지만 등재 직후인 같은해 7월6일 일본은 입장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했고, 4일 뒤 아베 총리는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는 12월 일본이 유네스코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데 강제동원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취재진은 일본의 속뜻을 더 파고들었다. 유네스코 등재는 아베 총리실에서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베의 지역구이자 고향인 야마구치현에 있는 ‘쇼카 손주쿠’ 역시 군함도와 함께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쇼카 손주쿠는 1850년대 일본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1830~1859)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학당이다. 유수록(1854)에 따르면 요시다 쇼인은 “서둘러 군비를 정비해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캄차카반도와 오호츠크해를 빼앗고 조선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라”며 정한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이 제자들이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한 주역들이다. 쇼카 손주쿠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상이 전수된 공간이다. 요시다 쇼인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선침략의 핵심역할을 맡은 이토 히로부미(초대 조선통감, 1·5·7·10대 일본총리)다. 쇼카 손주쿠 인근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옛집도 명승지로 치장해놨다고 PD수첩 취재진은 전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 이노우에 가오루 조선 주재 일본공사는 일본 내무대신도 역임했는데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는데 역할을 했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실질적 배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조선·미국은 필리핀을 각각 지배하기로 인정한 ‘가쓰라-테프트 밀약’의 장본인 가쓰라 타로(11·13·15대 일본총리) 역시 요시다 쇼인의 제자다.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18대 일본총리)는 1910년 한일강제합병을 완성한 인물이고, 데라우치에 이어 2대 조선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919년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책임이 있다.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 MBC PD수첩 4일 방영된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 전쟁' 편 화면 갈무리

요시다 쇼인의 제자 오오시마 요시마사는 아베 총리의 고조부다. 태평양전쟁 당시 내각 장관이었던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체포됐다가 풀려나 56·57대 일본총리를 지냈다.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평화헌법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는데 아베 총리는 이 뜻을 이어받고 있다. 2013년 아베 총리는 요시다 쇼인의 묘를 참배했다.
하시마와 쇼카 손주쿠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위안부합의와 더불어 반성 없던 전범국 일본의 부담을 국제사회가 덜어준 꼴이 됐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현재 진행 중인 역사왜곡에 대해 실질적인 문제제기가 왜 필요한지 알려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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