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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7일 월요일

“몽양과 백범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가자”

“남북, 외교관계 수립하고 대표부 교환하자” 몽양 여운형 70주기, 이부영 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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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8  04: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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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 여운형 선생 70주기 추모행사를 준비 중인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과 14일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조천현]
“우리가 바라는 게 민족 내부 구성원 중에 온건 좌파와 온건 우파가 하나가 돼서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상당 기간 거쳐서 결국 평화통일로 가자는 것인데, 몽양과 백범을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가자는 것이다.”
이부영(75)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몽양 여운형 선생 70주기 추모행사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하는 의미를 이같이 말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14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몽양의 최전성기였던 미군정기의 정치지형을 설명한 뒤 “이번에 백범기념관에서 몽양 추모식을 하는 까닭은 생시에는 같은 노선을 가지 못했지만 남북협상과 통일정부 수립, 이런 걸 시도하다 돌아간 두 분의 방향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몽양이 추구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 지향을 몽양이 암살당한 뒤 백범이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등 뒤이어 실천하다 역시 흉탄에 쓰러졌다는 것.
몽양 여운형 70주기 행사는 18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통일시대의 몽양 여운형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강연회를 갖고, 19일 오전 11시 우이동 묘소 참배에 이어 오후 2시부터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추모식과 추모공연을 거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부터 불거진 경기도 양평 소재 몽양여운형기념관.생가 위탁관리를 둘러싼 양평군과 기념사업회 측의 갈등으로 70주기 행사는 대폭 축소돼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부영 이사장은 “냉전시기 지워 보려고, 잘 안보이게 하려했던 사고의 연장 아니냐는 그런 의혹을 갖고 있다”며 “양평군 혼자 의도로 이렇게 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백범 김구나 안중근 의사와는 달리 몽양 여운형은 좌익의 대명사로 그의 이름조차 금기시 됐고, 2005년에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서훈 2급)이 추서됐다가 2008년 노무현 정부 마지막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으로 서훈이 승급될 정도였다.
이 이사장은 고 강원룡 목사의 “몽양을 주목해야 한다. 6.15시대는 몽양 같은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며, “몽양 같은 대범한 생각으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으로 가야 될 거다”고 말했다.
특히 “남쪽이 북의 실체를 인정하고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최고의 기본가치로 생각하고 서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표부를 교환하자고 제안할 필요”를 제기해 주목된다.
지금까지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데 근거해 ‘외교관계’나 ‘수교’라는 개념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그는 또한 7월 3-5일 몽고 울란바토르에서 북한 이종혁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동아시아평화회의를 개최하려 했지만 정세가 악화돼 북측이 불참함으로써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남측에서도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임동원 전 장관, 김원기 전 국희의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그는 “홍석현 같은 사람이 미국 쪽 최고위급과 소통이 되지 않나. 우리가 북과 미국 쪽의 최고위급 대화 메신저 노릇을 하면 그것만큼 남쪽이 주도적으로 하는 게 어디 있겠나”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직언론인 출신으로 재야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다 정치에 입문, 3선 의원의 관록을 쌓은 그는 현대사와 몽양 여운형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서도 뚜렷한 소신을 물흐르듯 펼쳤다.
다음은 14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대우빌딩 동아시아평화회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6.15시대, “몽양을 주목해야 한다”
  
▲ 이부영 이사장은 고 강원룡 목사의 권유로 몽양 기념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통일뉴스 :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게 된 계기를 소개해 달라.
■ 이부영 이사장 : 원래 관심이 꽤 많았다. 그분은 될 수 있으면 좌우 양쪽을 아울러서, 합작해서 통일정부를 세우려했던 분이니까.
그러나 냉전시대 때는 언급하지 못하고 지워져 버렸다. 그러다가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이 나오면서 새로 조명됐다. 심지어 김영삼 정권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참배객들에게 정보형사들이 신분증을 요구할 정도였다.
<내일신문> 사장 장명국 씨하고 민통련 운동할 때 민중불교연합 의장을 했던 먼저 세상을 뜬 여익구 씨가 나더러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내가 정치를 그만두게 되니까 요구해왔는데, 본격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강원룡 목사 때문이다.
강원룡 목사가 2004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2,3년동안 나하고 긴밀하게 만나고 해방전후사나 그 전 시대 이야기를 하면서 “몽양을 주목해야 한다. 6.15시대는 몽양 같은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곤 했다.
2007년 몽양 60주기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기념사업회를 맡아서 일해 달라 이야기하더라. 90 노인이 나한테 그 일을 맡겨놓고 가신 거다. 강원룡 목사나 이런 분들이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기념사업회를 후견했다.
□ 몽양 여운형 선생 70주기를 맞는 소회는?
■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마치 신냉전을 방불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것과 맞물려서 북핵 완성도가 굉장히 빨리 진행되고 있고, 거기에 남쪽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어서 문재인 정권이 새로 등장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악화되면서도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요인도 등장했다. 미국도 북핵을 ‘전략적 방치’(인내)를 내세웠던 오바마 정권이 끝나고, 어쨌든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것도 변수가 된다.
몽양의 삶을 실천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70주기를 맞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런데 작년 연말부터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2011년에 몽양기념관.생가가 복원됐다. 유족들이 땅을 내놓고 유품들을 내놓고, 그동안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기념사업회가 추모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중앙 정부와 양평군이 돈을 내서 기념관을 지었는데 양평군이 별안간 몽양기념관 위탁관리를 기념사업회에 맡길 수 없다면서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이쪽을 끊었다. 상명대학교 서울산학협력단과 신원1리 새마을회에 맡기겠다고 한다.
기념관 위탁운영 자격에는 근현대사 연구실적이나 추모실적이 있어야 하는 걸로 돼 있다. 전혀 관계없는 기구에다 위탁운영을 맡기고 심지어는 양평군에서 직영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 양평군은 왜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를 꺼리나?
■ 양평군은 “왜 양평군의 보조를 밭으면서 서울에서 행사하느냐”고 한다. 서울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기념관이 있는 양평에서도 많이 하는데, 관료로서 갑질하는 거다.
기념사업회가 뻣뻣하다는 거다. 말을 안 듣는다는 거다. 왜 몽양이 양평 출신인데 서울 와서 행사하느냐는 거다. 우리는 양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서울을 비롯 전국적, 국제적 인물이라는 거다. 실제로 독립운동도 국제적으로 했다. 양평에서만 하라는 건 변형된 지역주의거나 아니면 냉전적 사고다.
혹시 냉전시기 지워 보려고, 잘 안보이게 하려했던 사고의 연장 아니냐는 그런 의혹을 갖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처럼 역시 ‘현양사업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니냐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들은 몽양을 좌익인물로 보는 것 아닌가 싶다.
□ 정권이 바뀌었고, 70주기 행사라는 상징성도 있는데, 변화가 없나?
■ 전혀 없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있을 때 70주기 기념예산을 거의 다 깎아버렸다. 양평군에서는 보조하는 돈을 일체 취소해버렸다. 정권이 바뀐 다음에는 아무 조치가 없다.
예산이 다 정해졌기 때문에 7월 19일 거행하는 70주기 행사는 거의 정부 보조 없이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보훈처에서 예년에 지원했던 작은 수준의 지원금 밖에 없다. 국제학술회의니 뭐니 기획도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게 전시회인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려던 것도 취소했다.
□ 양평군과의 대립을 이후 어떻게 풀어나가려 하나?
■ 기념관.생가 위탁운영에서 배제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법적 호소를 하려고 한다. 거기는 이번 대선에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표가 많이 나왔다.
이 분규의 핵심 당사자인 김선교 양평군수가 자유한국당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병국 의원이 새누리당이었다가 바른정당으로 나왔는데, 군수가 자유한국당으로 치고 나왔다. 당 노선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 거다.
18일 강연회, 19일 묘소참배와 추도식.추도공연 예정
  
▲ 양평군과 기념사업회는 기념관.생가 위탁운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1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항일독립운동가선양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기념사업회 측 입장을 지지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70주기 추모행사는 어떻게 계획돼 있나?
■ 원래는 5월이 몽양이 탄생한 때다. 탄신사업으로 청소년을 위한 사업을 기획했었고, 거기에는 양평 초중고등학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대상 역사답사와 청소년교실 이런 걸 기획해서 계속하려 했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몽양 아카데미를 운영, 지금도 계속 기념관 쪽과 서울시의회를 빌려서 강의를 해가고 있다.
몽양이 돌아가실 때 만장들이 많이 남아있다. 가족들이 잘 보존해서 100여점 이상 있다. 돌아가셨을 때 입고 있던 혈의가 잘 보존돼 있고, 여러 유품들이 많다. 그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7월부터 8월까지 한달 반 동안 전시할 계획이었는데 예산이 없어 중단됐다.
그리고 학술대회도 하려면 외국 학자들을 불러와야 하는데 예산이 태부족해 진행을 못 시키고 있다. 그밖에 몽양과 관련된 중국, 시베리아, 러시아, 동남아 역사 탐방을 하려고 했다. 그분이 활동무대가 굉장히 넓다 그런 것도 기획조차 못하고 있다.
양평군 혼자 의도로 이렇게 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런 것도 한 번 알아봐야 될 것 같다.
□ 다른 추모사업회도 비슷한 경우가 있나?
■ 별로 없다. 백범김구기념사업회를 제외해 놓고, 함세웅 신부가 이끄는 안중의사기념사업회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가장 활동적이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에 돌아가셔서 이념분쟁과 상관없고, 백범도 남북협상은 주장했어도 임시정부 주석이었고 우파인 게 확실하다.
몽양이 남북과 좌우 협상을 주창하고 외국군 철수 문제와도 관계있고 해서 제일 관심의 표적이 됐던 것 같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나 백범은 숨길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몽양은 다 숨겨뒀던 것이 튀어나와, 지워졌던 것이 먼지를 털고 나오는 격이다. 그래서 보수 쪽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 은밀한 방해공작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법인데.
■ 그래서 수사정보기관 같은 쪽에서 내부제보 같은 게 있어야 될 것 같다.
□ 올해 몽양 70주기 추모식 행사를 소개해 달라.
■ 올해는 몽양 70주기를 맞아 7월 18일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께서 ‘통일시대의 몽양 여운형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강당에서 저녁 7시부터 강연을 한다. 강만길 선생도 오랜 세월을 사신 분이니까 70주기 몽양을 바라보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리고 7월 19일 당일에는 임원진하고 몽양 아카데미 회원들, 그리고 청년들이 오전 11시 몽양 묘소에 참배하고 오후 2시부터 백범기념관에서 추모식과 추모공연을 하게 된다.
“몽양과 백범을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가자”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소재 몽양 여운형 기념관 전경.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몽양 70주기 추모식 장소가 백범기념관으로 정해진 이유가 있나?
■ 왜 백범기념관에서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몽양이 해방정국 초기에 좌우합작 그리고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벌여 나갈 때 백범 김구는 이승만과 함께 반탁운동을 벌였다.
반탁운동이라는 건 다 알려진 일 아니냐. <동아일보>가 ‘소련이 신탁통치 5년 하려는 걸 미국이 반대해서 3년으로 됐다’ 이렇게 뉴욕발로 가짜뉴스를 내놨는데 사실은 미국이 5년 신탁통치 주장하는 것을 소련이 ‘왜 식민상태였던 조선에 신탁통치를 오래 하려느냐’고 반대했다가 3년으로 미.소가 합의한 거다.
마치 우익은 즉각 독립을, 좌익은 신탁통치를 지지한 것처럼 뒤집어 씌어 선동했던 건데, 백범은 반탁운동에 참여했다.
몽양은 우리를 이른바 해방시켰다는 강대국 3나라가 합의한 것을 거역할 경우 합의가 안 되고 남북이 따로따로 정부가 들어설 수 있으니까 일단 짧게 ‘3년 신탁’을 받아들이고 통일임시정부를 세우게 하자고 했다.
우익은 ‘즉시 독립이 아니면 안 된다’고 선동해서 좌익이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려서 일단 신탁통치를 하자는 쪽을 협의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좌우합작 운동을 하는 몽양은 미소공위에서 협의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이 미소공위를 끌면서 결렬시키고 좌우합작 운동도 잘 굴러가지 않고 그 과정에서 몽양이 암살당한다.
남로당 쪽에서는 몽양이 미군정과 협의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몽양 기반인 인민당을 남로당으로 흡수해버린 거다. 몽양 입장에서는 자기 조직기반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근로인민당을 만든다. 그걸 기반으로 좌우합작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근로인민당도 프락션해서 남로당 계열이 차지해버려 몽양이 몹시 힘들었다.
미군정이 몽양을 민정장관 시킨다니까 우파도 못 마땅해 한다. 그때부터 몽양에 대한 테러위협이 굉장히 증가한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민정장관 임명장을 수여한다는 날 몽양이 암살당한다.
서북청년단 중에서도 암살단 활동을 했던 백의사 소속의 한지근이 7월 18일 몽양을 암살한다. 아이러니 한 게 몽양이 암살당하고 나서 반탁운동했던 김구 선생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분단 정부가 서고 전쟁으로 비화될 걸 분명히 알게 됐다.
그래서 백범 선생이 다시 남북협상론을 가지고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북행을 하게 된다. 결국 백범도 몽양의 길을 가다 당한 거다.
이번에 백범기념관에서 몽양 추모식을 하는 까닭은 생시에는 같은 노선을 가지 못했지만 남북협상과 통일정부 수립, 이런 걸 시도하다 돌아간 두 분의 방향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게 민족 내부 구성원 중에 온건 좌파와 온건 우파가 하나가 돼서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상당기간 거쳐서 결국 평화통일로 가자는 것인데, 몽양과 백범을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가자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도 반대가 좀 있었다. 그런 반대를 극복 못하고 어떻게, 더구나 남북이 같이 가느냐. 그 첫 출발로 백범기념관에서 추모식하고 서로 함께 어울려 보자는 거다.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쪽에서도 이번 추모식에 함께 하나?
■ 김형오 기념사업회 회장이 터키에 출장갔다. 백범김구기념관 관장인 정양모 선생 등이 오실 거다. 거기도 내부가 좀 복잡하다.
□ 몽양의 진면목이 다 알려지지 않았는데, 큰 인물이었던 것 같다.
■ 미군정기에 미국이 남북을 오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몽양이 자꾸 왔다갔다하며 협의하니까 남쪽 극우파들이 비난하고 미군정도 말렸다. 몽양이 미군정의 파트너인데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백범도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미군정이 자꾸 말리니까 몽양은 “당신들 손님 아니냐. 내가 집주인데, 집 주인이 안방 건너방 가는 걸 왜 간섭하느냐” 그랬다고 한다.
돌아기시기 전에 11번 테러가 발생하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호원 좀 달고 다니시라. 제발 몸조심 좀 하시라’고 그러니까 “혁명가는 자기 집안의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했다. 마치 독립운동 할 때 일본하고 목숨 내놓고 싸우던 그 심경으로 한 거다. 나는 구름에 달 가듯이 싸웠다고 보는데, 죽음을 이미 초월한 거다.
“남북, 외교관계 수립하고 대표부를 교환하자”
  
▲ 그는 남북간 외교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 [사진 - 조천현]
□ 평화통일을 위해 갈길이 먼 것 같다. 남북간 이질성은 물론 남남갈등도 극복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 우리 사회 안의 갈등이 가장 첨예한 상태일 거다. 공산주의나 공산권이 사라지다시피 했으니까 어쩌면 냉전시대, 이념의 시대는 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도 냉전시대의 영향권으로, 이념으로 만들어졌던 세력권이 다시 형성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북.중.러와 한.미.일이 나뉘어져 있는데 실제로는 이념대립은 아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어찌 보면 천민자본주의보다 더한 것 아니냐. 강대국 끼리는 첨예하게 다투더라도 우리 안에서 북쪽과 대화를 하고 달라져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우선 정권이 바뀐 속에서 이 정부가 진보 쪽이라고 해서 너무 자신의 색깔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절충적인 방식으로 가야된다고 본다.
2004년 국가보안법 파동 때 잘 드러났다.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바랬는데 완전 폐지를 추진하다 아무 것도 못했다. 그것이 엉뚱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 통진당도 그런 사례로 볼 수도 있다.
이념도 조작된 이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념대립이 있는 시대가 아닌데, 여기서만 억지 춘향식 이념대립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빌미를 주지 말자. 미국이 점차 세력권으로서도 퇴조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이전만 못하다.
우리나 일본 안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군사력과 외교력에 기대어 기득권을 누려오던 세력이 대단히 불안해하는 것 같다. 판갈이에 대해 심할 정도로 신경질적 반응이 이념대립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 그들에게도 불안하지 않도록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이른바 ‘386 운동권 세력’이 성장해 우리 사회의 정치권과 운동권을 주도하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 사회의 변화가 더디다.
■ 여야를 비롯해 지식인 사회까지도 타율성에 많이 젖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뭘 해결할 힘은 없고 중국이나 미국에서 방침이 결정되면 유리한 것을 찾아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타율성 논리가 굉장히 깊이 배어있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이 남북문제에 관해서, 북한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완전히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표명한 전략적 방치(인내) 이런 것을 쫓아가다 보니까 북핵의 완성도가 높아져버렸다. 방치 말고 관여하고 대화, 협상해 해결하자고 했던들 저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하겠지 하고 내버려놨다가 이 꼴이 난 거다. 보수정권 10년간 대화 안하고 북을 무너뜨리고 흡수한다는 환상이 사태를 확대시켰다고 본다. 타율성 논리에 의해서.
북을 무너뜨린다는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거다. 오히려 북핵 문제를 남북 간에 나서서 해결해볼 필요는 없겠나. 우선 북에게 자기들 체제가 무너지거나 남쪽에 흡수된다는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조건인가. 개성 금강산 재개로 되겠나?
유엔에 이미 남북이 가입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남북의 실체를 인정하는 거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북을 무너뜨리겠다거나 북도 남조선 해방을 시키겠다는 이런 터무니 없는 국가운영 기조를 가지고 있지 않나. 남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한 것은 그런 걸 폐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북과 미국이 금방 합의가 안 돼서 평화협정 쪽으로는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만약 남쪽이 북의 실체를 인정하고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최고의 기본가치로 생각하고 서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표부를 교환하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지 않나.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왜 제재 대신 정상관계로 가겠느냐. 우리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그런다.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도 북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외교관계의 완성을 핵폐기와 평화협정으로 생각하자.
이번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제시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5대 원칙에 남북 간 수교를 넣는 것이 핵심과제다. 두 개의 연방이든 지방자치든, 헌법 영토조항을 정리하면 못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일은 몽양 같은 대범한 생각으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으로 가야 될 거다.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이 남과 북, 두 개 실체 사이에 자리잡게 되면 이른바 평화체제다. 그게 되면 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본다.
이제까지 방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신뢰를 할 수 없어서다. 미국이나 중국 통해서는 신뢰 구축이 어렵고 우리 스스로 남북 간 신뢰를 만들어 가보자.
□ 그러기 위해서는 새 정부에 여론화를 시도해야 할 텐데.
■ 여러 가지 단위로 대화를 해서 퍼트려 나가고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한 저항이 굉장히 강한 걸로 생각했다. 마치 ‘분단 공식화 아니냐. 한 개 민족이 둘로 갈라져 살면 어떡하냐, 분단체제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지 않느냐’ 그런 걱정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 둘 일은 평화라고 본다. 강대국들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우리만 이 좁은 반도 안에서 어육이 나고 다른 나라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 때문에 평화 논리를 앞세우느라 그런 거다. 우리에게 불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촛불, “북한이나 중국이 여길 보고 굉장히 경외할 것”
  
▲ 그는 7월초 북측 인사들도 참여하는 동아시아평화회의를 울란바토르에서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됐다며,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촛불집회로 민주화의 열기가 분출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와 제언은?
■ 남한 사회운동이 이렇게 질식당하지 않고 계속된 것이 굉장히 생명력이 끈질긴 것 같다. 객관적 위치로 보면 3면이 바다고 DMZ로 꽉 막혀 있다. 남한은 큰 섬이나 다름없다.
이런 속에서 온갖 탄압 질곡을 겪으면서도 4월 혁명, 반유신 운동, 광주항쟁, 6월항쟁 이렇게 냉전시기 동안 끈질기게 대중운동, 민주주의 운동이 이뤄졌다. 대단한 일이라 평가한다.
겨우내 촛불 시민운동을 보면서 참 감탄했다. 그렇게 대규모 대중들이 모이는데 초기보다 더 평화로워 지더라. 앞에서 싸우고 전경들 방패 뺐으면 뒤에서 돌려주라고, 귀대하면 상관한테 혼난다고, 젊은이들이 순순히 다 돌려주더라.
청와대 올라가는데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거기 젊은이들이 올라가서 경찰과 멱살잡이로 싸우고 청와대로 간다고 하는데. 어른들이 양쪽 다친다고 내려오라고 하니까 말 듣고 내려 오더라.
우리 대중운동이 성숙이 되는구나. 예전 같으면 각목 들고 돌 들고 야단났을 텐데 없어졌다. 차벽 세우니까 법원에다가 ‘박근혜 들으라고 평화적으로 외치려고 하는데 왜 못 가게 하느냐’. 법원에서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허용하면서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많이 모이게 됐다.
비폭력 저항운동 아니냐. 이 수준까지 온 거다. 4.19부터 여기까지. 구속자 한 명, 부상자 한 명 없이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세계 저항운동사에 이런 일이 있었나. 이렇게 총 한방 안 쓰고 구속자, 부상자, 심지어 미아조차 한명이 없었다.
이런 성과를 낸 것 보고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가하는 것 같다. 자존심이 생긴 거다. 그렇게 자존심이 생기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를 평가하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이나 중국이 여길 보고 얼마나 경외할 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시민들 보고 경외할 거라 본다.
일본 시민운동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에 자주 가서 일본 시민운동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물론 일본 극우보수세력은 이런 일 있거나 말거나 깔보고 형편없는 생각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 평화 지키자는 사람들은 한국을 굉장히 존경한다. 일본 지식인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한국을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7월 3일부터 7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아레나(ARENA, 아시아 대안교류회) 모임에 이삼열, 이정옥, 이승환과 함께 갔다. 이정옥 교수가 촛불집회 필름을 틀어주니까 부럽고 감탄한 탄성이 나오더라.
오는 11월 10-14일 마닐라 아시아정상회담에 미국,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참가하지만 북은 아마 초청 안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달쯤 앞서서 마닐라에서 시민단체들이 비정상회담을 한번 하자고 했다. 거기 북한을 불러서 자기들 입장 이야기하라고 요청하자고 했다.
□ 민간 차원의 국제회의에서 북과의 교류도 중요한 방식이 될 수 있겠다.
■ 사실 이번에 될 뻔했다. 동아시아평화회의가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아서 서울에서 일본, 중국, 우리가 모였고, 그때도 북한을 초청하려 했지만 안 됐다. 일본 하토야마, 무라야마 전 총리가 참가했다.
격년제로 해서 올해 다시 북한과 접촉을 해서 몽고 울란바토르에서 7.4남북공동성명 45주년을 기념해 7월 3일부터 5일까지 개최하기로 했다.
우리가 북한과 직접 접촉하면 국가보안법 위반 아니냐. 그래서 독일의 에버트 재단이 양쪽을 초청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 그래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까지 끼어서 동아시아 평화문제와 평화협정, 북핵문제 등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위중해지니까 북이 일방적으로 취소를 해버렸다. 북을 빼고 하면 무슨 맛이냐. 그래서 무산됐다. 북쪽 명단도 다 왔다. 이종혁 선생을 비롯해 원동연, 맹경일 등이 오기로 됐다.
우리는 이홍구 전 총리가 아파서 대신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비롯해 임동원 전 장관,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참석하기로 했다. 미국은 맨스필드 재단이 참여해 자누치 소장 등이 참여키로 했다.
보수 진보가 다 묶어 가는 것 아니냐. 홍석현 같은 사람이 미국 쪽 최고위급과 소통이 되지 않나. 우리가 북과 미국 쪽의 최고위급 대화 메신저 노릇을 하면 그것만큼 남쪽이 주도적으로 하는 게 어디 있겠나. 계속 추진할 거다.
□ 홍석현 전 회장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임명을 고사한 것으로 안다.
■ 청와대 사람들이 잘못한 거다. 특사 자격으로 미국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 안보보좌관 등을 한꺼번에 다 만났다. 그리고 미 의회의 중요한 사람들도 다 만났다. 그러니까 대미 인맥통으로 최고위급이 된 거다.
그런데 본인에게 특보라는 것을 통보를 안 해준 거다. 홍 회장이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기자들이 “특보를 어떤 복안을 가지고 할 거냐”고 질문하자 놀라서 “나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못 들었으니까. 그런 결례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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