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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8일 화요일

원세훈의 악명? 권영해에겐 못 당한다


15.07.28 16:55l최종 업데이트 15.07.28 17:15l


'김당의 나까프'에서 '나까프'는 '나쁜X 까발리기 프로젝트'를 줄인 말입니다. 여기서 'X'는 '놈'일 수도 있고, '짓'일 수도 있습니다. '나까프'의 대상은 공인 중의 공인인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급 공직자들입니다. 나아가 무력을 가진 군과, 공권력을 가진 이른바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그리고 갈수록 힘이 세지는 대기업 회장들도 당연히 '나까프'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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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를 알 수 없는 나쁜X놈들 전성시대. 영화 <무간도>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 김당
"국정원에 30여 년간 있으면서 '도청하지 말라, 월권하지 말라, 정치사찰 하지 말라, 신분 노출하지 말라'는 이 네 가지 얘기는 항구여일(恒久如一) 들었던 것이다. 어느 원장도 이 얘기를 안 한 사람이 없지만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감청보고서는 위로 올라갔다."

임동원 국정원장 시절(1999.12~ 2001.03)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 전 차장은 미림팀 사건(X-파일)으로 불거진 국정원 불법 감청 사건 당시 법정에서 역대 원장들의 도청 근절 지시와 관련해 이렇게 증언했다. 역대 원장들은 모두 도청-정치사찰 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실무 단위에서는 불법감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도청은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제3공화국 이래 고질적으로 저질러진 국가범죄다. 현장에서 직접 '표적'을 도청한 안기부 미림팀은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에 운용되다가 김대중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해체됐다. 불법 도·감청의 최대 피해자인 김대중은 누구보다도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을 금기시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당시 필자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불법 도·감청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외교안보수석 시절부터 국정원장 보고에 배석할 때부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내가 국정원장에 부임할 때도 그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실무 단위에서는 불법감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 '통비법' 만들고 도청 '미림팀'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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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대통령(맨오른쪽)이 1995년 1월 20일 청와대에서 안기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그 오른쪽은 권영해 부장, 정형근-이병호 차장, 김기섭 기조실장순이다.
ⓒ 자료사진

국정원의 도청은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제3공화국 이래 고질적으로 저질러진 국가범죄다. 이런 고질적인 범죄를 예방하고 국민의 통신비밀과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12월부터 시행된 '통신비밀보호법'이다. 통비법을 만든 김영삼 정부에서 미림팀이 재건된 것은 위법과 탈법을 관행으로 간주하는 정보기관의 오랜 폐습이다.

국정원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통비법 시행 이후에 모든 부장이나 원장이 불법감청 근절을 지시했지만 그건 일종의 관행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불법감청 근절을 지시하면, 위에선 으레 그렇게 말하고 아래서는 악역을 행하는 것을 비밀정보기관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법감청 사건 재판부는 그것이 비밀정보기관의 업무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불법인 이상 책임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보기관 수장이 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법활동을 지시하면 어떻게 될까? 정보기관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인 만큼 직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권영해와 원세훈이다.

권영해 안기부장(1994.12~1998.03)과 원세훈 국정원장(2009.02~2013.03)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우선 두 사람은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권영해 부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육사(15기) 졸업 후 중장으로 예편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장관에 기용됐다가 다시 안기부장을 맡을 만큼 YS의 신임을 받았다.

원세훈 원장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초임 사무관 시절 강원도청에 근무한 것을 제외하곤 주로 서울시에서 28년을 근무했다. 이명박 시장 시절 부시장을 지낸 인연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행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가 국정원장을 맡을 만큼 MB의 신임이 컸다. 역대 최초의 '군 미필 대통령'이 임명한 역대 최초의 '군 미필 국정원장'이었다.

권영해-원세훈, 개인비리로 구속된 정보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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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원세훈 비교 권영해 안기부장과 원세훈 국정원장의 비교 표
ⓒ 김당

두 사람은 또한 각각 안기부장과 국정원장 재직 중의 개인비리로 구속된 '유이'한 정보기관장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시절 안기부 자금 10억 원을 빼돌려 기업인을 통해 동생에게 주도록 한 혐의(횡령죄)로 2004년 기소돼 이듬해 징역 2년형이 확정되었다. 원씨 또한 국정원장 시절 건설업자로부터 1억7000만 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1년 2개월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은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일시해 정보기관을 사유화했다는 점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재직 중에 북풍(北風), 총풍(銃風), 세풍(稅風) 등 '3풍 사건'에 모두 관련된 유일한 공직자다. 원씨 또한 개인 비리와 심리전단 동원 댓글 공작에 이어 불법 해킹 사건까지 관련된 '비리 3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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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지난 19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북풍-세풍 사건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권씨는 아말렉 공작(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재미교포 윤홍준에게 20만 달러 제공해 거짓 기자회견 사주)과 오대산 공작(월북한 오익제 편지를 활용)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1, 2심 모두 5년형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사법처리 과정에서 문방구 칼로 배를 가르는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권씨는 또한 1997년 대선 전에 공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또한 역대 국가정보기관 수장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권씨는 1997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의 무력시위를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한성기씨 등의 범행을 보고받고도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직무유기)로 기소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한씨 등 3인이 북한 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돌출행동으로 보인다며 권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도 권씨는 역대 안기부장-국정원장 중에서 징역형만 7년 8개월을 선고받은 '최장기수'다. 실정법을 어긴 범죄의 양형을 기준으로 하면 권영해는 역대 최악의 안기부장인 셈이다.

'권영해 지시'와 '원세훈 지시'는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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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사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하고는 같이 일할 수 없지 않은가." - 1997년 12월 10일

"어쨌든 선거에는 (야당이) 단일화해라 하는 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북한 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결국은 뭐 종북 단체 아니냐." - 2010년 4월 16일

위 인용문에서 전자는 권영해의 지시를 전달한 '부장님 부서장회의 지시사항'의 일부이고, 후자는 원세훈의 지시를 전달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의 일부이다. 10여 년의 세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의 인식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판박이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후보와 정당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종북' 딱지를 붙였다

권영해는 부서장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한나라당 후보 지원을 위한 귀향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대선 직전인 1997년 12월 11~17일 사이에 철저한 보안 유지 하에 영남-충청지역 출신 직원 200여 명을 선발해 1인당 10만~100만 원씩 여비를 지원해 2~3일간씩 귀향해 한나라당 후보 지원활동을 하도록 했다. 김대중을 색깔론으로 공격하고 이회창 후보를 띄우는 일종의 '구전홍보단'을 운영한 것이다.

특히 당시 임경묵 102실장은 간부회의에서 노골적으로 "사상을 믿을 수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영남지역에서 압도적 지지가 필수적이다"고 지역감정까지 부추기면서 주말을 이용한 귀향 선거운동을 독려했다. 102실의 위장명칭은 대공정책실이지만 국내 부서 중에서 규모가 큰 국내 정보 수집부서다.

이른바 초원복국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PK(부산·경남) 출신 김기춘을 연상케 한다. 역시 PK(부산·경남) 출신인 임 실장은 북풍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를 원세훈 원장 시절에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으로 기용했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으로 위기에 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임씨를 발언의 출처로 지목한 바 있다.

원세훈,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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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세훈 항소심 징역 3년 실형...법정구속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유성호

원세훈은 국정원의 사이버 심리전단 직원 70여 명을 동원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구전홍보단'을 운영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수상쩍은 행동에서 비롯된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서 밝혀진 사건의 전모를 보면,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면, 야당 국회의원과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원세훈은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활동에 관여하고 국정원장 직위를 이용해 2012년 대선 등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 2심에서 징역 3년(법정구속)을 선고받았으나 3심에서 파기환송(공직선거법 위반혐의)됐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원씨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원씨 측이 청구한 보석 신청도 기각했다.

원씨에게 파기환송심 변수는 있지만, 현재까지 개인비리 1년 2개월을 포함해 징역 4년 2개월을 '예약'해 놓았으니 '중장기수'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발로 국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불법해킹 프로그램의 구입-유포에 관여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가 추가됐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원씨가 미소를 지었다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원씨는 2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신변보호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2심 선고공판에 출정할 때 선글라스에 빨간 모자를 쓴 우익단체 회원들이 호위무사 역할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호위에도 불구하고 원씨는 법정구속되었지만... 권영해씨는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대한민국 건국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로는 '역대 차악'인 원세훈이 '역대 최악'인 권영해를 추월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전직 안기부장, 대한민국 법원에서 개인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정원장이 보수의 아이콘 행세를 하는 것은 '경계'를 알 수 없는 한국 보수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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