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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일 수요일

미2사단 주둔 50년, 과거와 현재

인계철선의 상징 '인디언헤드'미2사단 주둔 50년, 과거와 현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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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1  11: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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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북부지역에 배치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이 1일 주둔 50년을 맞았다. 사진은 2사단이 보유한 다연장로켓포 발사 장면. [사진출처-미2사단]
경기도 의정부, 동두천 등에 배치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미2사단)이 1일 주둔 50년을 맞았다. 미 2사단의 상징은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한 인디언의 옆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만큼 용맹성을 과시하는 부대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2사단은 한.미동맹의 상징, 인계철선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상징인 미2사단이 50년째 주둔하면서 국민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 것도 분명하다. 윤금이 씨가 잔혹하게 살해되고, 친구의 생일을 가기 위해 길을 걷던 여중생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의 주범이 바로 미2사단 소속 병사들이었다.
부대 마크처럼 '인디언헤드'라고 불리는 미 2사단은 지금까지 38명의 명예훈장 수훈자를 배출했고 20개 이상의 전쟁에 참가한 이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육군 주력부대이다.
1917년 10월 프랑스에서 창설된 미2사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파리진격을 막았다. 그리고 1940년 미 육군에서는 처음으로 예하에 3개의 부대를 편성하고, 공중기동과 대전차 전략 개념을 도입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으며 독일을 지나 체코슬로바키아까지 진격해 연합군의 승전에 한 몫했다.
  
▲ 미2사단은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7월 미국 파병부대로는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사진은 1950년 11월 미2사단 참전모습. [사진출처-미2사단 페이스북]
미2사단과 한국의 인연은 다름아닌 1950년 한국전쟁이다. 전쟁발발 이후 7월 미국 파병부대 중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해 부산방어선을 뚫고 유엔군 중 처음으로 평양에 입성했다. 이후 1953년 4월 중공군에 밀려 후방으로 이동했고, 이듬해 8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2사단은 동북아와 한반도 긴장고조 상황에 따라 1965년 7월 1일 한국에 재배치됐다. 그리고 현재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 캠프 스탠리, 동두천 캠프 케이시, 평택 캠프 험프리, 성남 K-16 등 기지에 1만여 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 전체 병력의 40%를 차지한다.
미2사단은 미 육군 중에서도 유일하게 가장 최전방에 배치된 사단으로 '오늘밤 싸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예하부대로는 제1기갑전투여단(동두천 캠프 호비), 제2전투항공여단(성남K-16, 평택 캠프 험프리스), 제210야전포병여단(동두천 캠프 케이시)이 있으며, 각 여단에는 5~8개 대대가 편성되어있다. 미2사단 사령부는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에 있고 현재 사단장은 티어도어 마틴 소장으로 이라크전 참전이력이 있다.
제1기갑전투여단 예하부대 중 제1여단특수병력대대는 전시 군사정보, 통신, 화학, 제독, 후방보안 작전 등을 수행하며, 제23화학대대는 화학, 생물학, 방사능, 핵 및 고성능 폭발물 위협에 대한 대응작전을 담당한다.
제210야전포병여단 예하부대 중 제1-15야전포병대대는 155mm 팔라딘 2개 포대를 보유하고 있고, 제1-38야전포병대대는 북한 장사정포를 파괴하는 대포병사격 임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제6-37야전포병대대는 세계에서 가장 전방에 배치된 다연장로켓포대이다. 또한, 공동경비구역(JSA)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도 여기에 속한다.
  
▲ 미 2사단 배치도. [사진출처-미2사단 홈페이지]
미2사단이 남긴 상처..윤금이 씨 살인사건과 여중생 사망사건
미 2사단 주둔 50년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에게 남긴 상처는 여전히 크다. 물론, 미 2사단도 이른바 '판문점 미루나무사건'으로 북한군에 의해 병사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미2사단 장병들이 국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기억도 오래 남아있다. 1992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기치촌에서 일하던 윤금이 씨(당시 26세)가 케네스 마클 이병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케네스 마클 이병은 1994년 대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당시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미국 정부가 윤금이 씨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감형됐다. 이후 천안소년교도소 외국인수용사동에 수감됐지만 잔여형기 1년여를 앞둔 2006년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2000년 2월에는 미2사단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 상병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목졸라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매카시는 결국 징역 6년형을 받았으나, 조사 당시 검찰은 매카시의 신병인도를 요청했지만 미군 측은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신병은 미군측에서 확보한다'는 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을 들어 인도를 거부했다.
  
▲ 지난달 13일 신효순.심미선 양 사망 13주기 추모행사가 사고현장에서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56번 도로에서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이 미 2사단 소속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러나 '미군의 공무집행중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 미군이 1차적 재판권을 갖는다'는 SOFA규정에 따라, 두 여학생을 친 병사들은 대한민국 법정에 서지않은 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4년 용인 에버랜드 여직원 성추행, 택시기사 폭행도주 등 미2사단 소속 병사들의 범죄행위는 이어져왔지만 SOFA의 보호를 받고 있다.
미국이 자인한 '인계철선', 미2사단 병력 증강
미2사단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의정부, 동두천 등 경기북부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미 2사단은 2016년까지 한강이남 경기도 평택 이전할 계획이었다. 2003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과 통폐합, 미2사단 감축 등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된 이후 2005년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2006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등을 거쳐 미2사단의 평택 이전 등을 골자로 한 전략적 유연성에 한.미가 합의했다.
즉, 정밀타격능력과 확대된 전장과 원거리에서의 작전능력을 보유한 미2사단이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라는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2016년까지 이전할 예정이었다.
  
▲ 미2사단 및 예하부대 마크. 왼쪽이 미2사단 부대마크로 인디언 옆모습을 했다고 해서 미2사단을 '인디언헤드'라고 부른다. [사진출처-미2사단/편집-통일뉴스]
그러나 2014년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미 양국은 한국군이 자체적인 대 화력적 수행능력을 증강하는 2020년까지 미2사단 예하 제210야전포병여단을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제210야전포병여단이 위치한 동두천 캠프 케이시는 14.15㎢로 동두천에 위치한 미2사단 부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여기에 지난 5월까지 제210야전포병여단에 다연장로켓포(MLSR) 1개 대대가 증강해, 2개 대대 36문에서 3개 대대 48문으로 늘어났다. 또한, 4백여 명의 병력도 추가 배치됐다.
그리고 지난 6월부터 미2사단 예하 제1기갑전투여단이 해체되는 대신, 미 본토 1기갑사단 2기갑전투여단이 9개월단위 순환배치가 시작됐다. 순환배치 병력은 4천6백명으로 1기갑전투여단 장비는 그대로 운용된다.
2013년에는 제1기갑전투여단 예하 제23화학대대가 의정부 캠프 스탠리로 재배치됐다. 23화학대대는 지난 2004년까지 주둔한 뒤 주한미군 재편성으로 본토로 철수했지만, 3백여 명의 병력이 북한의 화생방 무기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미2사단과 한국 육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사단이 편성, 평시에는 한.미 연합참모부 형태로 운영되고, 전시에는 예하부대와 한국군 1개 기계화보병여단으로 편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부대가 만들어졌다.
  
▲ 지난달 3일 한미연합사단이 출범했다. 미2사단과 한국 육군으로 구성된 부대로, 미2사단의 평택이전에 의구심을 낳고 있다. [사진출처-미2사단]
미2사단의 평택 이전계획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병력증강은 미2사단이 경기북부지역에 잔류하는 것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있다. 동두천 캠프 케이시는 2020년까지 그대로 남고 동두천 캠프 호비에 있던 1기갑여단은 미 본토 2기갑여단으로 순환배치되며, 의정부 캠프 스탠리에는 떠났던 화학대대가 다시 돌아왔다. 게다가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에는 한미연합사단이 새로 들어섰다.
이시우 평화활동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상황적 조약으로 평가받는 데 이는 미국이 언제든 발을 뺀다는 뜻"이라며 "하지만 인계철선으로 평가받는 미2사단의 존재는 비상황적 조약으로 된 것이다. 미국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게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미2사단의 평택으로 이전은 그러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그런데 증강배치는 미국으로서도 다시 발이 묶이는, 스스로 후퇴한 결정"이라며 "미국 스스로가 인계철선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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