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기준 적용, 성과일 수 없어
2026년 8.3% 인상이 가져오는 효과
역외자산 정비 지원, 폐지로 그칠 것이 아니라 환수 조치해야
눈 가리고 아웅, 한미 사기극에 불과
국회는 망설임 없이 비준 거부해야

 12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었다. 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2025년 종료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기 타결’이다. 한미 사이에 공식 협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4월이니, 11차 SMA 종결을 1년하고도 9개월을 앞두고 협상이 개시된 것이다.
 

물가 상승 기준 적용, 성과일 수 없어

이번 협상의 결과 2026년 방위비는 8.3% 증가한 1조 5,192억 원으로 책정되었으며, 그 후부터는 한국 소비자물가 증가율을 기준으로 방위비 총액을 산정하기로 했다. 즉 소비자물가가 2% 상승하면 방위비 역시 2% 인상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성과가 바로 이 대목이다. 11차 SMA에서는 한국 국방비 증가율이 방위비 산정 기준이었다. 통상 한국의 물가 증가율보다 한국 국방비 증가율이 더 높으니, 우리에게 불리한 협상 결과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협상단이 협상을 잘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방비 기준에서 물가 기준으로 방위비 총액을 산정한 이번 협상 결과는 결코 성과가 될 수 없다.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든 방위비 총액이 해마다 증가하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얼마나 오르냐의 문제만 남는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방위를 위해 주둔하는 경비를 한국이 분담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미 사이에 강조하는 것은 한미 글로벌 동맹이다. 지역적 범위 역시 “인도태평양과 그 너머”를 강조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방위 역할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주한미군의 성격과 주둔 목적이 확대되었다면 주한미군의 한국 방위 역할은 그만큼 축소된 셈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의 상당액이 한국 방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우리의 분담액은 줄어 드는 것이 상식이다.

2026년 8.3% 인상이 가져오는 효과

물가 상승 기준이 12차 협상의 유효기간인 2026~2030년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2026년 방위비 총액은 2025년 대비 8.3% 인상으로 못을 박았다. 직전 기간(2020~2025) 방위비 분담금의 평균 증가율인 6.2%를 2.1%나 초과한 액수다. 그다음 해(2027년)부터 물가 기준이 적용되어 분담금이 줄어들 것에 대비하여 첫해(2026년)의 방위비를 크게 인상한 것이다.

이게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계산해 보자. 정부 발표에 따르면 연평균 국방비 상승률은 4.3%였고, 물가 상승률은 2%대를 전망했다. 첫해에 8.3%를 인상하고 물가상승률이 2.1%라고 가정하면 2026~2030년까지의 방위비 증가율은 3.34%가 된다. 물가가 2.5% 상승할 경우 방위비 분담액은 3.66%, 물가 2.9% 상승할 경우 방위비분담액은 3.98%가 증가한다. 그러나 물가가 2%대에 그치지 않고 3%대로 상승할 수 있다. 물가상승률을 3.0% 이상으로 적용할 경우 방위비 분담액은 4% 이상을 기록한다.

윤석열 정부가 전망하는 대로 물가상승률이 2%대에 머문다면 다행이지만, 3%대로 상승하면 국방비 연평균 증가율인 4.3%를 넘는다. 물가가 4% 이상의 상승률을 보인다면 방위비 분담금은 5%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이번 협상에서 방위비 분담액의 연간 증가율은 5%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설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방위비 분담액이 해마다 5%까지는 상승할 수 있는 허용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외자산 정비 지원, 폐지로 그칠 것이 아니라 환수 조치해야

정부가 또 하나 성과라고 지목하는 것은 미군 역외자산 정비 지원을 폐지했다는 점이다. 9차 특별협정이 적용되던 시기 역외 정비 지원으로 954억 원의 전용이 확인되었으며, 2019년에도 134억 원을 주일미군 장비 정비에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것으로만 1,000억 원이 넘는 액수가 역외로 흘러간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이것을 폐지했다는 것은 역외자산 정비 지원이 불법적이었음을 미국 또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지 폐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역외로 흘러 들어간 총액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환수가 이뤄져야 했을 사안이다.

이 외에도 방위비 분담금의 전용 사례는 많다. 미2사단 이전 비용으로 방위비 분담금이 전용되었던 것은 이미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다. 최소 1조 6천억 원이 사용되었다.

전용 외에 미집행액도 문제다. 현재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액은 1조 8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자금으로 이자 수익을 남겨 주한미군 아닌 미국 방위산업에 사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총이자 수익이 3천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방위비 분담금이 잘못 사용되는 것들을 지적하고 바로잡지 못한 채 역외자산 정비 지원 폐지를 합의한 것은 그 외 잘못 사용한 미국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이며, 앞으로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신호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한미 사기극에 불과

국방비 기준에서 물가 기준으로 변경, 역외자산 정비 지원 폐지 등 표면적으로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한미 사기극에 불과하다.

트럼프 변수 역시 간과할 수 없다. 11차 SMA 종결을 1년 넘게 남겨두고 조기에 협상을 타결한 것은 트럼프 정부 출범 전에 타결짓고자 하는 한미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였다. 바이든은 설령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트럼프의 일방적인 협상 전략에 의해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보다는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협상의 조기 타결로 트럼프 변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설령 트럼프가 아닌 해리스가 당선되어 이번에 타결한 협정이 유지되더라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국익을 치명적으로 손상하는 종속적이고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건 이번 협상 결과는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망설임 없이 비준 거부해야

지난 11차 SMA를 비준 동의할 때 국회는 10가지 부대의견을 제시하면서 개전을 요구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국방비 증가율 연동에 따른 부담 증가 개선
2. 주둔비의 예외적 부담 기본 취지에 따른 준비태세 등 항목 신설 방지
3.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제도개선
4. 미집행 현금·현물 조속 소진 및 해소
5. 해외미군 관련용도 사용금지 및 미군 역외자산 정비지원 관행 폐지
6. 주한미군 총 주둔비용을 기초로 직·간접비용 포함 분담기준 제고
7. ‘특별조치협정 연례 집행 종합 보고서’작성 및 이행약정, 부속합의 국회 보고
8. 주한미군 한국노동자 직접고용 전환 및 고용안정성 제고
9.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 현황과 군사건설 사업소요 조사·평가 및 결과보고
10. 군사건설 12% 설계·감리비 미집행분의 차년도 삭감 이행결과 보고

이번 12차 SMA 협상은 협상 내용이 국회와 국민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타결된, 밀실 협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한미 협의가 진행될 때마다 시민사회 단체는 기자회견 등을 열어 밀실협상을 비판했으나 대국민 설명이나 대국회 보고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또한 이번 협상은 국회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일방 협상이었다. 이미 국회에서는 11차 SMA를 비준동의하면서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전환을 모색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의 개선 방향 연구에 착수한 것은 2024년 7월이었다. 한미 협상이 지난 4월 시작되었으나 협상 개시 3개월이 지나서야 연구 용역에 착수한 것이다. 국회의 부대의견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그 결과 국회의 부대의견은 이번 협상에서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국방비 연동을 물가 연동으로 바꾸었다지만 물가 상승률 추이에 따라 국방비 연동보다 더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5%까지의 인상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12차 협정에 반영된 것은 국회의 부대의견 중 다섯 번째에 위치한 “역외자산 정비지원 관행 폐지”가 유일하다. 국회 요구의 반영률이 8.3%에 불과한 것이다.

SMA 협상은 우리 국회의 비준 동의가 있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지금까지 국회는 SMA 협정의 졸속성, 불평등성, 종속성 등을 비판하면서도 부대의견을 제시하면서 동의해 왔다. 이번 12차 협상 결과는 국회의 이런 관행으로 SMA 협정을 개선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11차 협정의 종료 기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11차 협정이 종결되는 2025년 말까지 윤석열 정권이 유지될지조차도 불확실한 정치 상황이다.

국회는 이번만큼은 지난 관행에서 벗어나 12차 SMA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 비준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해서 국회가 제시한 부대의견이 반영되는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에 명령해야 한다.

거부권은 윤석열만이 갖는 고유 권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