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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순우리말이라는 우상

 

[국민논단] 순우리말이라는 우상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조차
빨간 줄 치는 한글 맞춤법 앱

한자어·외래어 모두 배척하면
한국어는 저급한 언어로 전락

만연한 일본식 단어 방치한 채
멀쩡한 우리말 탓하지 말라

요즘엔 글쓰기가 적이 편리하다. 한글 앱이 효자 노릇을 한다. 글 쓸 때 어떤 오류가 있으면 빨간 줄이 자동으로 나타난다. 그런 기능을 나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부주의한 오탈자를 발견해 수정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멀쩡한 단어를 써도 빨간 줄이 종종 뜬다. 내가 경험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여기서는 하나만 보자.

‘이런 점을 감안하여’라고 쓰면 ‘감안하여’에 빨간 줄이 붙는다. 도대체 왜 붙을까. 처음에는 적이 황당했다. 그래서 비슷한 말로 바꿔 ‘참작하여’나 ‘고려하여’라고 적어 넣으면 빨간 줄이 사라졌다. 혹시나 해 국어사전을 몇 개 확인했다. ‘감안’이나 ‘감안하다’라는 낱말은 모든 국어사전에 당당히 나오는 우리말이요, 국어다.

그렇다면 그 빨간 줄의 의미는 무엇일까? ‘감안하다(勘案する)’가 혹시 일본어식 표현이니 쓰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단순한 경고라기보다는 폭거에 가깝다. ‘감안하다’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올랐을 뿐더러 자주 쓰는 말이다. 격식을 차리는 문장에서만 쓰는 표현도 아니다. 시장터 장삼이사의 왁자지껄 대화에도 흔히 등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슨 권위로 ‘감안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감히 경고한단 말인가?

혹시나 해 조선왕조실록에서 ‘감안’을 한자어로 원문 검색해 봤다. 사례가 두 개 나오는데, 원문에 나오는 감안(勘案)의 의미가 현대 한국어의 의미와 일치하는 사례가 마침 하나 있다(순조실록, 순조 30년 2월 10일 기사, 첫 번째 기사). 이로써 보면 ‘감안하다’라는 말이 일제시대 일본어에서 처음 들어왔다고 볼 수는 없다.

한자의 의미로 보아도, 헤아리고(勘) 꼼꼼히 살핀다(案)는 의미의 두 한자가 조합을 이룬 낱말이다. 설사 일본에서 들어온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미 국어가 된 지 오래인데 왜 굳이 배격해야 하는지 의아하다.

조선시대에 이미 같은 의미로 쓴 용어인데, 왜 자꾸 빨간 줄을 그을까? 한글 앱에 누가 이런 장난을 쳐 놓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죄다 배척하고 나면 한국어는 저급한 언어로 전락할 것이다.

웬만한 고급 어휘는 거의 다 사라질 테기 때문이다. 일본어 투를 정녕 몰아내고 우리말을 멸균실 수준으로 정화하겠다면 차라리 요즘도 밀려드는 일본어 표현에 먼저 신경 쓰는 편이 더 절실해 보인다.

나는 1993년 초부터 2008년 초까지 미국에서 살았다. 그동안 한국을 거의 방문하지 못하다가 16년 만에 귀국하니 처음 듣는 단어가 적지 않았다. 귀국 후 첫 한 달 안에 경험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택배’라는 말이었다. 처음에 소리만 듣고는 그 의미를 어렴풋이 추정할 뿐 정확히는 몰랐다. 그런데 택배(宅配)라는 한자를 확인하는 순간 ‘다쿠하이’라는 일본어 단어가 떠올랐다. 의미도 분명해졌다.

‘소포’라는 익숙한 말이 나의 해외 체류 중에 ‘택배’로 바뀐 것이다. 이뿐이 아니었다. 착불(着拂)의 의미를 몰라 검색해 보고는 일본어 ‘차쿠바라이’가 머리를 스쳤다.

어떤 백화점에서 ‘생물(生物)’ 코너와 ‘유럽향’이라는 광고판을 보면서는 ‘나마모노’와 ‘요로파무케’라는 일본어가 바로 뇌리를 강타하였다. ‘요로파’는 유럽을 가리키는데, 뒤에 붙은 ‘무케’의 한자가 바로 한국어 발음으로 ‘향(向)’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허다할 것이다. 이런 ‘이상한’ 단어는 그냥 둔 채 왜 멀쩡한 한국어 낱말인 ‘감안하다’에 빨간 줄을 함부로 긋는지 모르겠다.

외국어를 들여와 외래어로 쓰는 일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전근대 한국어에 중국식 한자어가 압도적인 것이나, 근대 한국어에 일본식 단어가 넘치는 현상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문명의 상호관계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 우리말이다. 그러니 그 사용은 각 한국인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글날이 다가오면 순우리말 운운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순결 숭배(Chastity Cult)’에 가깝다. 우상이다. 그런데 그런 순수한 언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동의어가 다양할수록 고급 언어이다. 세종대왕도 그런 ‘컬트’는 외면하리라.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879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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