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2년 8월 28일 일요일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우리는 사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  

  • 발행 2022-08-29 08:50:12
  •  

  • 수정 2022-08-29 08:51:51
  • 내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로서 절대로, 결단코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다고. “친구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이런 말을 달고 산다. 자녀들이 친구를 위해 희생을 하면 “우정이 밥 먹여주냐?”고 야단을 친다. 친구 공부를 도와주려 하면 “걔를 왜 도와? 걔가 너 경쟁자야!”라고 질타한다.

    300년 전 자본주의가 출범한 이래 수많은 사상가들이 충격에 빠졌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이 들어섰을 뿐이고,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라는 계급이 나타났을 뿐이며, 어느 날 갑자기 자본가라는 계급이 등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변화가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특히 다양한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갖췄던 사상가들이 보기에 이 변화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등장한 이래 약 7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인류 문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가지 합의를 지켜나갔다. 이 합의는 불문율 같은 것으로 누구도 깨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류는 언제나 서로 돕고 살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 불문율이 처참히 깨졌다. 자본주의는 속삭였다. “이제부터는 서로를 돕지 마. 너희끼리 경쟁해. 너희끼리 치고받아서 그 중 이긴 놈들에게만 살 길을 열어줄게!”

    사회의 중요성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사회’라는 것을 이루고 살았다. 인류는 문제가 생기면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회가 존속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인류의 협동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2019년 옥스퍼드 대학교 인지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진이 전 세계 60개 문명(여기에는 우리나라 문명도 포함돼 있다)의 가치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전 세계 모든 문명이 반드시 지켜왔던 7가지 가치가 발견됐다.

    ▲가족을 돕기 ▲소속 집단에 충성하기 ▲호의를 갚기 ▲용감하기 ▲윗사람을 따르기,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기,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연구팀은 “이 7가지 가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협동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옥스퍼드 연구팀은 협동을 인류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도덕이 뭔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인류 사회의 합의를 뜻한다. 즉 협동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온 이래 반드시 지켜야 했던 불문율이었다는 뜻이다.

    2002년 촛불집회 ⓒ민중의소리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사회가 뭐가 중요해? 지금부터는 각자도생의 시대야. 네 옆 사람과 경쟁해! 경쟁에서 이기려면 이웃의 몰락을 기뻐해!”라고 서로에게 강요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앞잡이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영국 총리가 “사회? 그딴 거는 없다. 있는 것은 개인과 가족뿐이다”라고 선언한 이후 신자유주의는 철저히 사회를 탄압하고 개인을 숭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도 급속도로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사회’가 공고한 나라였다. 한 지붕 세 가족, 시장 사람들, 전원일기 같이 따뜻한 공동체를 그리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김영삼이 세계화를 부르짖고, 외환위기를 맞아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이후 우리는 바뀌었다. TV 광고에서는 “모두 부자 되세요”를 외쳤고, 공동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진보의 상징이었던 학생 운동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청년들은 더 이상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친구가 밥 먹여주냐?”며 우정을 말살하고 경쟁을 부추겼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다시 사회를 복원하자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다닌다. 다시 인류의 본성을 회복하자고, 자본주의가 망쳐놓은 협동의 전통을 회복하자고 말이다. 내가 애정하는 사상가 찰스 아아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 1967~)은 책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에서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가 돼도 그 부자는 여전히 결핍감을 느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우정과 사랑, 협동과 연대를 통한 기쁨을 뜻한다. 상상해보라.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다.

    백화점에서 수백 만 원짜리 핸드백을 잔뜩 사면 행복할 것 같은가? 명품 양복으로 온 몸을 두르면 행복할 것 같은가? 물론 잠깐은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의 크기는 명확하다. 내가 지불한 돈의 양만큼만 행복할 뿐이다.

    강남 초대형 호텔에서 한 끼에 수십 만 원 하는 고급 식사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식사가 주는 만족은 딱 수십 만 원어치일 뿐이다.

    반면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식사가 있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연인의 한 마디에 설렘으로 가득 차 함께 끓여먹었던 원가 2,000원짜리 라면 두 그릇, 이 음식은 수억 원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돈을 잔뜩 벌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를 우리집 앞마당에 불러 노래를 시킬 수도 있다.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이걸 해 보면 정작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나만을 위한 콘서트를 위해 수십 억 원을 썼다면 딱 수십 억 원어치만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나를 위해 불러줬던 생일 축하 노래, 어렸을 때 엄마가 나를 업고 불러줬던 조용한 자장가, 이런 노래는 수십 억 원이 아니라 수백 억 원을 줘도 들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과 유대에서 발생하는 행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친구는 밥을 먹여준다. 설혹 친구가 밥을 먹여 주지 않더라도 친구와 함께 먹는 밥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함께 살면서 행복을 느낀다. 연대가 필요하고 우정이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아이젠스타인의 한 마디를 남기며 이 칼럼을 마친다.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이완배 기자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