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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8일 목요일

“시민들이 차린 평등 밥상, 국회는 거져 가져가라”

 사회 원로 및 각계 인사 800여 명, 지방선거 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시국선언 발표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종걸 활동가가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18일째인 28일, 사회 원로 및 각계 인사 800여 명이 비상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시민들이 먼저 용기를 냈습니다. 시민들이 평등의 밥상 다 차려놨습니다. 이 평등과 용기를 국회가 본받아야 합니다. 아니, 거져 드릴테니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평등과 용기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차별연대 무지개행동 소성욱 집행위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종걸 활동가가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18일째인 28일, 사회 원로 및 각계 인사 800여 명이 발표한 비상시국선언에 그 역시 함께했다.

소 위원은 이날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진행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있는 남편으로서, 남성 동성애자로서, 비상시국선언이란 말이 낯설거나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이 번번이 좌절된 지난 15년간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성소수자라는 선언을 어쩔 수 없이 삼키거나 내뱉으면서 비상인 시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종걸 활동가가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18일째인 28일, 사회 원로 및 각계 인사 800여 명이 발표한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한 소성욱 집행위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누구 하나 절박하지 않은 목소리가 없었다. 최근 출근길 지하철 시위 이후 혐오의 대상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상임대표는 “한국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사람이 사람에게 차별하는 건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시대적 모순이며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람의 관계를 바꾸는 문제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관계를 바꾸는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비겁한 눈치 보기를 멈추고 5월 내 반드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외쳤다.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으로 각종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견뎌냈던 가수 겸 배우 하리수 씨도 이 자리에 함께해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대중이 보기에) 당당하고 유쾌한 삶을 살았지만,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았고 가슴 찢으며” 살았던 날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방송에 비춰진 제 모습과 달리 평소 제가 많이 달라졌다. 말을 안 하고 산다. 그게 바로 차별에 제가 대처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종걸 활동가가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18일째인 28일, 사회 원로 및 각계 인사 800여 명이 발표한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한 하리수 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은 특정 소수자 집단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수가 되는 길”이라고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완벽한 다수일 수 없다. 정규직 여성은 다수인가 소수인가. 모두가 어느 공간에선 다수고, 어느 공간에선 소수일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까. 임기 중 평등법을 발의한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3년간 인권위에 있으면서 급속도로 (퍼지는) 혐오와 차별이 우리의 삶과 제도를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하고 훼손하는지 (봤다). 회복하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향후 또 15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절망적 생각도 든다”며 간절한 심경을 드러냈다.

‘나중에’를 외치는 국회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15년 만에 처음 공청회를 열기로 한 상황이다. 그마저도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 정하기로 했다. 홍인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목사)은 “정치권은 종교 탓을 멈춰라”라며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기본법이며, 성경이 말하는 정신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종교인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됐다”며 민주당을 향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는다고 기독교 표가 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안 간다. 오히려 차별금지법 제정하면 사람들이 망설이지 않고 표를 준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종걸 활동가. 28일로 단식농성 18일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단식 중인 두 활동가는 시민들의 힘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평등의 봄’을 쟁취하자고 호소했다. 미류 활동가는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 정부에선 더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계속 뒤로 밀리는 이유는 선거다. 선거가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고 권리를 유예하는 이유가 된다면 선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거를 핑계로 기본권을 유예하는 잘못된 악습을 끊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종걸 활동가는 “18일째 곡기를 끊고 있지만, 곡기만으로 삶이 채워지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며 “지난 15년의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번졌다. 국회는 평등을 결단하고 차별금지법을 내놓으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오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사회 원로 및 인권시민사회·여성계·노동계·학술계·문화예술계·종교계 등 각계 인사 813명이 이름을 올린 비상시국선언이 채택돼 발표됐다.

비상시국선언 참가자들은 “시민들을 차별과 혐오에 방치해두는 정치를 ‘나중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 끝내야 한다”며 “지방선거 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5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다음 달 2일부터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장에서 동조단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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