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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9일 금요일

성희롱 신고하면 일자리 잃는 여성들…"'남자니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3677건 상담 분석…직장 내 성희롱은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박정연 기자  |  기사입력 2022.04.29. 17:37:29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충 신고 이후 행위자와 분리를 하겠다며 내 자리를 옮기라는데 그 곳은 원래 업무를 하던 곳이 아니라, 물건을 적치하던 곳이었다. 전화선도 인터넷선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상사가 나를 '예쁜이'라고 부르고 옷에 참견하는 등 불편한 발언을 지속하여 '그러지 마시라'고 말한 이후 회식 등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상담자 10명 중 7명은 근무 기간 3년 미만의 저연차 노동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성희롱 피해자 절반이 성희롱 피해 이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작년에 접수한 3677건의 성희롱 피해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1003건에 달해 전체 상담 중 29.6%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고 28일 밝혔다. 이어 근로조건 상담이 29.3%, 모성권 상담이 22.6%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작년에 접수한 성희롱 피해 상담은 총 6031건이었고, 이 중 초기상담이 3677건이었다. 이번 조사는 초기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큰 비율을 차지했지만 특히 20대는 전체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이 60.8%에 이르렀다. 25-29세는 63.4%, 20-24세는 53.7%가 직장 내 성희롱을 상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근속연수가 짧은 여성 노동자일수록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내담자들의 근속연수를 살펴보면 1년 미만(44.0%)인 경우가 가장 많고 1년~3년(31.8%), 3년 이상(24.3%) 순으로, 근속연수가 짧을수록 성희롱 상담이 많은 추이을 보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젊은 연령대와 짧은 근속연수의 피해자가 많다는 데서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연령과 근속연수에서 피해 노동자에게 우위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의 주요한 원인이 '권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분석했다. 

한편 피해 노동자의 46.4%가 직장 내 성희롱을 거부했거나 신고한 이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 고 답했다. 다수의 피해 노동자가 2차 피해에 처하며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음을 확인 가능한 대목이다. 조사 결과 성희롱 내담자 중 퇴사했거나 퇴사 예정인 경우가 33.3%에 달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분석한 사례들을 보면 직장 내 성희롱 행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했다. 음담패설와 외모평가 등 언어적 행위, 신체를 접촉하는 신체적 행위, 음란한 사진이나 자신의 신체부위를 노출하는 시각적 행위 등이 함께 나타났다. 

"관리자와 외근을 다녀오면 '둘이서 뭐했어?'라고 묻는다. 불쾌하다고 말해도 장난이라고 한다."

"입사 직후부터 대표가 나에게 수행비서 역할을 요구하며 '회사에서는 너와 내가 부부다', '내 배우자보다 널 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등 부적절한 말을 했다." 

"대표가 여직원들 손등에 뽀뽀를 하거나 팔이나 무릎을 만졌다." 

"사무실에서 상사가 본인의 신체부위를 노출한 상태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을 언어적 행위, 신체적 행위, 시각적 행위, 기타 성희롱 행위 등 네 가지로 구분하지만 실제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직장 내 성희롱 유형은 '복합적'이었다. '복합적'이란 두 가지 이상의 성희롱 행위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성희롱을 신고하면 해고 또는 퇴사 압력을 받는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성희롱 피해 이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는지를 물었을 때 무응답을 제외하고 46.4%가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회사에 신고하여 성희롱이 인정되어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거나 성희롱을 거부한 이후 '함께 일할 수 없다'며 해고 종용 또는 권고사직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사장의 성희롱을 거부하자 '예뻐서', '딸 같아서'라고 변명하더니 이후 업무 배제를 하고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다."

"겉옷을 입는데 대표가 내 가슴께로 얼굴을 들이밀어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다음 날, 대표가 갑자기 업무 미숙을 이유로 나에게 그만두라고 했다." 

행위자의 성희롱을 거부하거나 성희롱 고충신고 등 대응을 한 이후, 오히려 피해 노동자가 이해하기 힘든 인사 발령을 받거나 직무 재배치, 업무 미부여 등 불이익을 당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행위자가 주도하여 피해 노동자가 따돌림을 당하거나 업무 상 괴롭힘, 업무 배제 등의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접수됐다. 회사에 성희롱 관련 소문이 나서 직장 동료들이 피해 노동자에게 이를 확인함에 따라 2차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사장의 성희롱 거부 이후 나는 갑자기 타 부서로 발령이 되었는데 업무공간도 없고 업무도 주지 않았다."

"상사가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고 성추행을 하여 회사에 고충신고를 했다. 이후 상사는 나의 태도가 불량하다며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처하지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노동자가 가장 먼저 고충을 토로하고 해결을 기대해야 하는 곳은 회사다. 그러나 피해 노동자는 회사에 문제제기 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상담에서 피해자들은 성희롱 피해 신고를 해도 회사는 '그냥 일하라'거나 '둘이 알아서 하라'는 등 해결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남자니까 그럴 수 있다'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행위자를 두둔하는 사례도 있었다. 신고 이후 조치가 없거나 주요한 피해 증거를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의 공용화장실을 잠그고 사용하고 있는데 상사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업주에 이야기하니 다른 층 화장실을 사용하라는 말 뿐 해결의지가 없었다." 

"성희롱 고충신고를 했는데 사장이 행위자를 두둔하며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딸 같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며 행위자와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라고 했다." 

"회사 화장실에 불법 촬영 카메라가 설치된 것을 사업주에게 알렸는데 조사도 하지 않고 증거만 삭제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사의 성희롱을 사장에게 신고했으나 '남자니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권력을 쥔 행위자와, 권력이 없는 피해노동자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노동자와 행위자 사이에 권력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었다. 행위자는 피해 노동자의 사업주이거나 상사로서 인사권을 가졌다. 이 경우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에게 업무 보복이 가능하다. 많은 피해 노동자가 행위자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이유이다. 피해 노동자들은 "신고해봐야 상대는 아무런 피해도 없고 피해자인 본인만 보복이나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인식을 토로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되는 상황이어서 문제제기 어려워 참아야 했다." 

"회사에 성희롱 신고하였으나 행위자 징계 절차 등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행위자가 나를 다른 곳에 취업 못하게 하겠다는 등 협박을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 노동자에게 행위자와 계속 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많은 경우 사건 발생 후 피해 노동자가 행위자와 분리를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인 경우 회사 사정 상 분리가 어렵다고 하고 피해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이해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퇴사를 종용하여 또 다른 피해를 양산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가 받은 개인적 고통도 문제이나 조직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다"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의 성희롱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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