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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6일 목요일

300kg 철판에 치여 숨진 20대 일용직 노동자 친구들 “남의 일이 아니었다”

 故이선호산재사고대책위, 재발방지 촉구...“외주화 막아야”

이승훈 기자 
발행2021-05-06 18:13:35 수정2021-05-06 18:19:49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기자회견ⓒ대책위 관계자 제공

“텔레비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사고들,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 평택항서 일하다 숨진 하청 일용직 노동자 故 이선호(23) 씨의 친구 배민영 씨

최근 경기도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R컨테이너-Flat Rack Container) 작업 중 발생한 산재사망사고로 숨진 20대 청년노동자에 대한 애도와 재발방치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6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건설노동자 김태규,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 이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늘 뒷전”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양산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막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2일 이선호(23) 씨는 경기도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R컨테이너, Flat Rack Container) 내부 합판 조각을 정리하다가 컨테이너 좌우 기둥이 갑자기 접히면서 숨졌다.

FR컨테이너는 개방형 컨테이너로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컨테이너다.

대책위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당시 선호 씨는 FR컨테이너 안쪽에서 합판 조각 등을 정리하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지게차 기사가 컨테이너 날개를 접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개가 접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 때문인지 엉뚱하게 반대편 선호 씨가 있는 곳의 날개가 접히면서, 300kg의 날개가 선호 씨를 덮쳤다.

고 이선호 씨는 바닥 홈 부분에 남아 있는 나무 잔해를 제거하다가 FRC 날개가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대책위 관계자 제공

선호 씨는 하청 일용직 노동자였다.

평택항은 평택지방해양수산청(해수청)이 총괄 관리하는데, 사고가 난 신 컨테이너 부두는 해수청의 위탁을 받은 항만하역 전문업체 ㈜동방이 운영했다. 동방은 이 일을 다시 일용직 인력 회사인 우리인력이란 곳에 위탁했다. 전형적인 재하청 구조였다.

선호 씨가 지난 1년 동안 담당해 온 일은 동식물 검수·검역을 위한 하역 등의 업무였다. 그런데 지난 3월 1일 원청 관리자가 바뀌면서, 선호 씨는 동식물 검역 관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4월 22일은 선호 씨가 처음으로 FR컨테이너 날개 작업에 투입된 날이었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대책위 측은 “사전에 현장에서 어떠한 안전 교육도 없었고, 현장에 안전관리자·신호수도 없었으며, 안전모 등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또 “FR컨테이너 날개는 진동에 의해서 넘어질 수 없다”라며 “만약 진동에 의해서 넘어진 것이라면, 불량이다.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는 현장 증언도 있었다”라고 짚었다.

이어 “원청 직원은 (선호 씨에게) 나무 합판 잔해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 FR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무 합판 조각은 (별도 지시가 없으면) 원래 정리하지 않는다. 원청 직원이 두 번이나 나무 합판 조각 잔해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호 씨 산재사망사고 진상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故 이선호 씨의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회견에서, 故 이선호 씨의 친구 배민형 씨는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라며 “제 친구의 이야기였고 우리들의 이야기였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천벌 받아 마땅한 놈들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대학교 다니며 스스로 용돈 좀 벌어보겠다며 땀 흘리며 일하던 선호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나”라며 “제 친구 선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故 이선호 씨의 친구 김벼리 씨 또한 5일 페이스북에 “(친구의 소식을 듣고) 일주일 동안 무언가를 할 엄두가 안 나 이제야 글을 쓴다”라며 “하루 평균 7명이 산재로 희생된다고 한다. 그게 제 주변 친구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라고 글을 남겼다. 김 씨는 “친구가 얼른 사고 책임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차가운 냉동고에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한편 친구들에 따르면 선호 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도 부모님 걱정, 누나 걱정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선호 씨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이곳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유족은 대책위와 함께 선호 씨의 입관절차만 진행한 채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장례식장에 15일째 빈소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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