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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이래서 토왜, 토왜 하는구나

[기자의 눈] '반인권 범죄'도 국제법 논리로 소멸되는가?
2019.07.15 18:02:45




<중앙일보> 칼럼 '전영기의 시시각각'을 읽었다.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라는 제목이다. 이 칼럼은 "요즘 상황은 한국의 대법관들이 첫 단추(2012년 강재 징용 배상 판결)를 이상하게 끼우는 바람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라며 "대법관들의 판단력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빈틈없어 보이는 '논리'를 펴느라, 어디에서부터 이 엉터리 글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게끔 돼 있다. 과거 민자당의 명 대변인 박희태의 말을 빌리자면 글 자체가 '총체적 난국(Total Crisis)'이다.  

칼럼은 "2012년 5월 24일 당시 김능환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대법원 소부의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파기 환송 판결문과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의 판결문"을 문제삼고 있으면서, 국가가 성립되지 않은 이전의 일에 대해 국제법상으로 한국이 일본에게 '배상'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다. "1919년 한국이 건립되었으니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는 국제법적으로는 전제 불성립의 오류로서 국제사회에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렬한 주장도 내놓았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칼럼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전영기의 시시각각]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 

▲중앙일보에 실린 '전영기의 시시각각' 네이버 화면 갈무리
강제 징용 판결 맥락 거세하고, '기계적 논리' 들이대 

문제의 칼럼은 '일제 강제 징용 판결'의 맥락을 완전히 제거해 논리만 남김으로서 역사를 논리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자 한다. 이번 일제 강제 징용 판결과 논란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됐는지, 그 배경을 전혀 모른채 썼거나, 일부러 모른체 하는 것 같다.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등 이 사건의 원고는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이다. 1934년 1월경 설립된 일본제철이 1943년 9월경에 낸 광고를 보고 훈련공으로 일본의 제철소에 가서 노역에 종사했다. 노동 환경은 끔찍했다. 1일 8시간 3교대 노동에 외출은 한달에 1~2회, 용돈은 한달에 2~3엔을 받았다. 임금 통장은 만져보지도 못했고, 기숙사 사감이 관리했다. 돈을 받을 기약도 없고, 노역은 끔찍했다. 일부 조선인 노동자는 도망치고 싶다고 말했다가 잡혀서 가혹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측은 1944년 2월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년 3월경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데, 이때 피해자들 중 일부는 사망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함경도 청진공장으로 옮겨왔다. 임금을 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피해자들은 원치 않는 강제 징용을 통해 무임금 노역으로 착취당했고, 그 과정에서 임금 지급은커녕, 구타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 범죄를 당했다.  

그리고 1997년, 여 씨 등 피해자들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일본국을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위자료),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2003년 이를 최종 거부한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며, 그에 따른 징용 역시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걸 전제로 한 판단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강제 징용 피해자를 '징용공', 즉 자발적으로 징용에 응한 노동자라 부르는 근거가 된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정유섭 의원이 국회 회의장에서 일본 정부가 사용하는 '징용공'이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 씨 등은 한국 재판소에 판단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5년 한국 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 법원은 일본 법원이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는 합법'이라고 판단한 게 국내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한국의 헌법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불법으로 본다고 했다.  

<중앙일보> 칼럼은 여기에 도전한다. 이 판결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라는 게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론'이다. 이 칼럼은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선포"했다는 말이 국제법상 국가의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948년 국가 성립 이전에 발생한 모든 일에 지금의 한국 정부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세상이 논리로 돌아간다면, 프랑스의 비시정부도 국가이고, 프랑스 망명정부 자유프랑스는 공화국 '국가'의 역사에서 지워야 할 판이다.   

나아가 이 칼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은 1965년 발효된 한일 청구권 협정 중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2조에 대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해 거기에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시켰다. 신규 범주는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따른 법적 배상 청구권’을 당연히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설정됐다. 

정말로 그런가? 한일 청구권 협정 2조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아무리 뜯어봐도 일본의 반인권적 범죄(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문제)로 인해 발생한 피해, 마땅히 받아야할 임금을 갈취한 범죄 피해 문제까지도 해결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한 게 아니라, 원래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가 존재해 왔다. 

'반인권 범죄'도 소멸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다룬 조선대학교 정구태 법학과 교수, 임어진 법학과 박사 과정의 논문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와 소멸시효'에 따르면 정 교수 등은 "2005년 12월 16일 유엔 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조치와 손해배상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은 침해의 정도가 심각하고(serious) 체계적이며(systematic) 대규모로(large-scale) 자행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서,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와 전쟁범죄(war crimes)는 국내법상 범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기 때문에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언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유엔 기본원칙의 이러한 취지는 강제징용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적법한 징용을 전제로 한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강제 징용 문제의 핵심은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불법 행위를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쟁 범죄 등에서 파생된 무수한 반인도적 범죄(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등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훼손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일본이든, 한국이든)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백번 양보해, 일본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게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칼럼의 '논리'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일본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업과 일본 기업 책임자들이 한국의 강제 징용 피해자 개개인의 '청구 권한'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우리 정부나 사법 기관이 일본의 사법 기관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 역시 우리 사법 기관의 판결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고노 외무상도 2018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구타케 일본 공산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노 외무상도 아는 문제를 왜 한국의 칼럼니스트는 모르고 있을까.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정부에게 일본 정부를 상대하라는 것도 아닌 문제에 무슨 '국제법의 논리'를 들이대는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이라는 주장이 국제법상으로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칼럼의 주장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개인의 청구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제법적 진실은 패전국한테 법적 배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승전국 밖에 없다"고 짚는다. 인간 여운택 씨가 국제법상 패전국가인가?  

칼럼은 이처럼 강재징용 배상 판결문의 다양한 맥락을 자르더니 갑자기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 이론을 들어 '그 이전엔 국가가 아니었다'는 논리로 인권 유린 사실을 덮어버린다. 왼쪽 다리가 아프다는데 오른쪽 다리가 멀쩡하다며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보수의 가치 아니던가. 국제법의 기계적 논리를 들어 한국의 사법 기관의 논리와 명백하게 입증된 피해자의 인권 유린을 뭉개자는 게 보수 언론이 주장할만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천인공노할 범죄까지도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국가간 협약의 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한국의 대법원이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70년 대법원의 권한을 일개 칼럼니스트가 꾸짖고 나무란다. 마치 철없는 짓을 벌인 어린 아이를 나무라듯. 

이런 칼럼이 소위 '보수 언론'에 실린다는 게 부끄럽다. 언론에 의해 '토왜(土倭)'라는 말이 100년도 더 전에 사용된 이래로, 아직까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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