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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0일 토요일

탈북자, 정치학박사, 국정원 퇴직자... '댓글 공작'에 포섭된 사람들


17.09.30 20:05l최종 업데이트 17.09.30 20:05l



검찰 소환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검찰 소환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정보기관 공작의 희생양인가, 부역자인가?

국가정보원이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을 온라인 여론 조작을 위한 '댓글 공작'에 활용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보수진영이 거센 풍파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회원의 일탈'로 치부하는 반론도 없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명박정부의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위해 30개 팀을 운영했고, 민간인들을 동원하는 '외곽팀장'이 48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26일까지 댓글 사건 관련자 9명 중 4명의 구속영장을 받아낸 상태다.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과 배우 문성근·김여진의 합성사진 공작에 관여한 팀장 유아무개씨, '외곽팀'을 관리한 과장급 장아무개·황아무개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원세훈 국정원장 재직 시절 관련 업무를 봤던 국정원 직원들이다. 

반면, 외곽팀으로 댓글 공작에 참여한 '조력자들'에 대한 구속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퇴직자모임인 양지회 전·현직 간부들에 대한 영장 기각(9월 8일)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양지회 측은 "법원의 판단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지회 수사는 8월 15일 언론 보도(JTBC)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8월에만 두 차례 압수수색이 실시됐다(8월 23일, 8월 30일).

1대는 증거 인멸, 1대는 고스란히 남아... '양지회 PC 미스터리'

수사의 핵심은 양지회 기획실장을 지낸 노아무개씨로 압축된다. 그는 양지회의 소모임 '사이버동호회' 2대 회장을 맡으며 일부 회원들을 댓글 작업에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때 회원 수가 250명을 넘었던 동호회는 2014년 8월 자진해산했지만, 양지회와 검찰 안팎에서는 "20, 30명 정도가 노씨의 지시를 받아 이명박정부 기간 동안 댓글 작업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정원 재직 당시 민병주 심리전단장은 1급이었고, 노씨는 4급이었다. 이 때문에 민 단장과 노씨의 연결고리가 될 중간 간부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정원 댓글이용 국정개입 사건'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정원 댓글이용 국정개입 사건'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검찰이 두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동안 양지회에서는 '묘한 일'도 있었다. 양지빌딩(양지회가 보유하고 있는 건물) 지하의 회원 전용 휴게실에는 공용PC가 2대 있었는데, 그 중 1대의 하드디스크가 통째로 지워졌다고 한다. 

반면, 또 다른 1대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동호회의 월별 활동실적을 담은 문건이 발견됐다. 양지회 관계자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으니 관련자가 자료를 지운 게 아닌가 싶다. 한 가지 의문은 왜 1대의 자료만 지우고 1대는 남겨놓았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국정원과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200만 원 받은 적도 있고, 300만 원 받은 적도 있는데 정확히 몇 번이나 되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흐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의 지인은 "국정원 퇴직 후 개인 사업 때문에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던 사람이다. 죄질이 심했다면 해외 도피를 했을 수도 있었는데 검찰 소환에 순순히 응하고 범죄 자료들이 거의 다 남아 있는 점을 법원이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씨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이 기각해 풀려난 박아무개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검찰의 무리수가 빚어낸 자업자득'으로 비판하는 분위기다. 양지회 관계자에 따르면, 박 총장은 1차 압수수색이 끝난 뒤 사무실의 일부 서류를 집으로 가져갔는데 2차 수색에서 집을 찾아간 검찰이 이를 '증거 은폐' 시도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양지회 관계자는 "검찰이 1차 수색에서 가져갈 서류는 다 가져간 상태였고, 박 총장이 집으로 가져간 서류는 이번 사건과 별다른 관련성이 없었다"며 "영장 전담 판사가 '(박 총장이) 숨긴 증거물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양지회가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이명박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옹호할 것이라는 외부의 시각도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양지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원세훈 원장 시절 퇴임한 직원들의 경우 그의 전횡으로 인해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인식이 강해서 최근의 '적폐 청산'에 통쾌해 하는 기류도 있다"고 전했다. 내부에서도 최근의 국정원 사태에 대해 의견들이 엇갈리는 만큼 양지회 전체를 한 묶음으로 백안시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국정원 외곽팀에는 일부 탈북자 단체 회원들을 활용한 조직도 섞여 있다.

검찰은 NK지식인연대 간부를 지낸 박아무개씨와 곽아무개씨를 각각 댓글 작업을 위한 외곽팀장과 팀원으로 파악하고 박씨에 대해서는 소환 조사를 이미 마친 상태다. 북한군 중좌 출신의 탈북자 곽씨는 1년 4개월가량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로 일하다가 지난달 3일 퇴사했다. 연합뉴스 측은 "계약기간 종료에 따른 인사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사내 일각에서는 "입사 이전의 (댓글) 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 관리하는 국정원과 탈북자 주축 단체의 유착

NK지식인연대는 북한에서 전문직을 지낸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2008년 6월 27일 결성된 단체로, 그 동안 탈북자들로부터 수집한 정보 등을 바탕으로 북한의 내부 상황을 알리는 기자회견이나 세미나를 주관하곤 했다.

'정보 가치가 높은' 탈북자들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국정원과 이런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NK지식인연대의 일부 회원들이 대북 심리전을 명분으로 유착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NK지식인연대는 "2010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천안함 폭침을 대한민국 정부의 자작극으로 몰아가려는 북한의 204심리전부대에 대항 활동을 했지만, 국정원의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 부인하면서도 국정원이 이런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NK지식인연대 홈페이지
▲  NK지식인연대 홈페이지
ⓒ 화면캡처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의 대남 심리전을 무력화시키는 활동을 하면서 국정원의 지원까지 받는다면 얼마나 역동적이며 자랑스럽겠는가?"라며 "북한의 내부자들과 실컷 싸울 수 있게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정부와 국정원이 이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장의 국정원 커넥션으로 검찰 수사 유탄 맞은 대령연합회

일부 보수단체들은 "사건과 크게 관련성이 없는데도 단체 이름이 호명되고 있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아래 대령연합회)는 회장의 과거 활동으로 인해 단체 전체가 '홍역'을 치른 케이스다.

지난달 검찰은 국정원의 돈을 받고 언론 칼럼 등을 쓴 혐의로 한국통일안보진흥원의 양아무개 원장(정치학 박사)을 조사했고, 단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양 원장은 2011년 6월 1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종북세력 척결' 국민대회에 참석했고, 최근에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얼굴을 내민 보수성향 인사다. 

2011년에는 '미래한국사이버안보국민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의 사이버 공격에서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선 정부가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사이버 전사로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해커 부대도 운용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당시 양 원장은 대령연합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8월 27일 언론의 첫 보도에 "대령연합회 회장이 소환 조사받았다"고 소개됐다.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대령연합회 초대 회장)은 이 같은 보도에 발끈해 "언론에 보도된 양씨는 댓글사건 기간 중 대령연합회 회장직에 있지도 않았고 한국통일진흥원장으로 재직중이었음이 밝혀졌다"는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서 본부장은 지난해 5월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이병기 국정원장이 보수단체들을 불러 모아 지원 창구를 단일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폭로한 사람이다. 서 본부장은 "대령연합회장 12년 동안 단체 살림이 아무리 팍팍해도 뒷말 나오는 돈 안 받으려고 자존심을 지켰다. 그런데 대령연합회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왜 매도를 당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안팎의 비난 여론에 시달리던 양 원장은 잔여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기고 19일 대령연합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양 원장은 26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뒤늦은 후회를 토로했다.

"요즘 이 일 때문에 가슴이 울렁울렁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 평생 참군인의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겠다. 정부기관(국정원)이 한 일이지만 잘못 됐다."

MB정부의 '개국공신들'이 만든 민생경제정책연구소도 이번 사태로 뜻하지 않게 된서리를 맞았다.

검찰이 소환한 인물들 중에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의 상임이사를 지낸 변아무개씨의 이력이 부각된 것이다. 변씨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지낸 김진홍 목사의 대변인을 지냈고, 김 목사가 민생경제정책연구소를 만든 후에는 상임이사를 지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노무현 정부 반대'를 표방한 보수단체로,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번에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선진미래연대와 '늘푸른희망연대 등도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들이었으나 2013년 그의 퇴임 후에는 흔적이 없어진 상태다.

그러나 민생경제정책연구소 관계자는 "변씨는 2010년 이전에 연구소를 나왔고, 김 목사도 지난해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 상태"라며 "연구소 직원이 전부 6명밖에 안 되는데, 검찰 수사와 관련된 인물은 한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댓글 작업 등의 대가로 보수진영 일부를 '포섭'한 정황이 드러난 것에 대해 진영 내부에서는 "돈으로 보수 전체를 갈라치기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수성향 팟캐스트 '신의한수' 진행자 신혜식씨는 "불법적인 요소는 문제 삼아야겠지만, 애국단체 활동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 줄 수도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려면 골고루 지원해야 하는데, 이명박정부의 경우 지원단체를 자의적으로 선별했다는 느낌"이라며 "학생운동하다가 전향했다는 그룹이 정권 내내 승승장구하는 등 솔직히 어떤 기준으로 지원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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