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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8일 금요일

정치권도 지역주민도,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윤석열의 ‘용산 시대’

 따질수록 난관 투성인데 왜 강행할까, 여론도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광화문 정부청사 집무실-총리공관 관저' 마련 방안이 유력했지만 국방부 청사 집무실 카드가 급부상하는 양상이다. 사진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모습. 2022.03.16. ⓒ뉴시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유력 후보지인 국방부 인근은 평일 낮에도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바로 앞 왕복 5차선 도로에 시내버스와 자가용이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뒤엉키면서다. 차량이 몰리면서 가벼운 접촉사고도 종종 발생한다.</figcaption>
국방부 청사는 민간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이 때문에 국방부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횡단보도를 두 번만 지나면 곧바로 풍경이 달라진다.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있는 동네가 나오는데 그나마 그곳으로 나가야 용산 주민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곧장 "나는 반대"라며 역정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찍었다는 주민조차 왜 느닷없이 집무실을 이전하는지, 왜 그 대안이 용산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윤 당선인이 "국민 곁에서, 국민과 늘 소통하며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약속한 집무실 이전 공약의 현주소다.

대통령 집무실은 대체 왜 옮기려는 걸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인수위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인수위원회에서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식을 하고 있다. 2022.03.18. ⓒ뉴시스


당초 윤 당선인의 약속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집무실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5일부터 느닷없이 용산 카드가 급부상하더니, 이제는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18일 국방부를 비롯해 또 다른 이전 후보지인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의 현장 답사까지 서둘러 마쳤다.

하지만 논의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 당장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필요가 있는지, 만약 필요성이 있다면 이렇게 서둘러서 밀어붙일 일인지조차 의문이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처음으로 공약한 건 지난 1월 말 대선 과정에서다. 경쟁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이 '국민 내각' 등을 내세우면서 정치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이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당선인은 이에 대한 맞불 형식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하며 집무실 이전 공약을 꺼냈다.

윤 당선인이 내세운 취지는 "국민과 소통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은 궁궐식 청와대 구조의 산물이기에 이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지금 (청와대는)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인 본관까지 가는데 차를 타고 가지 않나. 그렇게 해가지고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리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의 거리가 차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본관이 아닌 참모들이 있는 여민1관 3층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윤 당선인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소통을 위해서였다. 같은 건물 2층에는 비서실장이 근무한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본관에 위치한 집무실을 사용할 때를 착각한 결과"라며 "청와대의 모든 참모들은 문 대통령을 1~2분 내에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소통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도 윤 당선인은 아예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공약이 발표됐을 때에도 현실성을 두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컸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이 약속했던 '광화문 대통령'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위원회까지 구성하려 했으나 검토 과정에서 경호, 비용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결국 계획을 접은 바 있다.

3년여 만에 이 같은 걸림돌이 제거된 것일까. 윤 당선인은 이에 대한 복안을 묻자 "청와대 이전 문제나 대통령의 근무 공간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답한 바 있다. 장소보다는 국정운영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과는 전혀 딴판이다.

윤 당선인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의 이전을 두고 "경호, 외빈 접견 문제는 저희가 충분히 검토를 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산으로의 집무실 이전이 유력한 현실은 윤 당선인 본인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결과이기도 하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18일 "세부 조정에 들어가다 보니 더 고심하게 되고 생각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 것"이라는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달리 해석하면, 집무실 이전 공약이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허술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집무실 이전 공약은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 버렸다. 김 대변인 역시 이 공약을 두고 "윤 당선인의 가장 중요한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극복과 민생 회복 등 정작 국민이 바라는 중요한 현안들은 전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꼭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면
용산은 적합한 선택지일까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등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이 18일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둘러보고 있다. 2022.03.18. ⓒ뉴시스


굳이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면,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건 옳은 선택일까. 복수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반대한다. 도시공학적인 측면에서도 부적절한 데다가, 국방부 청사 구조와 인근 지형을 감안할 때 국민과의 소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국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 실현"이라는 취지는 크게 퇴색된다.

국방부 청사 앞에는 왕복 5차선 도로가 있다. 이곳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평일 낮에도 통행량이 많아 자주 정체되는 구간이다. 대통령이 이동할 때에는 신호기 조절을 하고, 여러 대의 경호 차량이 따라붙게 돼 교통은 더욱 혼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을 내면서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분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관저와 집무실 거리가 멀어질 경우 매일 대통령의 출퇴근 시마다 교통지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 주변에는 청사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있어 추가적인 경호 문제는 없을지도 검토해야 한다.

'도시 전문가'인 김진애 전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 구상을 "아마추어적 결정이자 민폐"라고 혹평했다.

김 전 의원은 "삼각지부터 이태원까지 이르는 길은 교통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곳"이라며 "또 집무실을 이전하게 되면 교통과 통신 등 여러 가지 제한이 생기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김 전 의원은 청와대 근처에서 이뤄졌던 시민의 집회·시위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이 어느 곳이 되든 (그 앞에서 시민이) 집회·시위를 하게 된다. 청와대 앞에는 분수 광장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시민이 집회·시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현재의 청와대 앞은 민주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데, 국방부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방부 청사 정문 앞은 좁은 인도 옆으로 바로 차도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공간적인 제약이 크다. 윤 당선인 측에서는 미군 기지 반환 후 조성될 용산공원을 국민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기지 반환 시점이 언제쯤 마무리될지 알 수 없고, 기지가 반환된다고 하더라도 환경오염 정비 문제가 남아 있다.

공원 개원 일정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지금까지 반환된 부지는 용산 기지 부지의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공원 개원 목표 시점을 기존 '2027년'에서 '기지 반환 시점 후로부터 7년 후'로 변경했다. 윤 당선인의 임기 내 공원 조성이 이뤄질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용산 아파트 옥상에 방공포 들어설 판,
국방·안보 문제 복잡한데 강행하면 그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 후보지를 외교부 청사와 국방부 청사 두 군데로 압축했다. 사진은 이튿날인 18일 국방부 모습. 이에 따라 해당 분과 인수위원들은 이날 오후 각각 현장을 방문해 점검에 나선다. ⓒ뉴시스


만일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면, 국방부도 어딘가로는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기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만큼 안보 공백은 불가피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청와대와 국방부에 각각 구축해 놓은 안보, 국방 자산도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보안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소속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이 추산한 예산은 1조원 이상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이 모든 과정을 취임 전까지 어떻게 마무리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은 없다.

'4성 장군'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1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경우, 주변 건물에 방공 시설을 설치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주변에는 북한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드론 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방공 기지들이 다 있다"며 "상공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반경 8km 이내는 비행 금지 구역이고, 방공 체계를 다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에) 짓는다면 남산이나, 효창공원에 (방공 시설을) 올린다거나 공원화될 일부 용산기지 지역을 사용해야 한다"며 "아파트 옥상이나 회사 빌딩에도 대공 미사일이나 대공포 같은 것들이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건물 면적이 제한되기 때문에 국방부 조직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분산된다. 즉 장관과 국방부가 분리되는 것"이라며 "국방부의 군사력 통제기능, 즉 문민통제가 약화되거나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의장실을 비워야 하고, 국방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일부가 밖으로 나가거나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국방부 내 일부 조직을 정부과천청사 등으로 분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서도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라며 "국방부가 들어서면 청사의 경비가 강화되고 방호를 위한 시설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된다. 또한 주변에 대한 각종 규제로 과천 시민들이 결사반대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주한미군부대 기지 인근에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하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집무실 옆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인데, 경호 문제 등 여러 쟁점을 잘 검토한 것 같지는 않다"며 "현재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는 우리 정부를 향해 도·감청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스키프(SCIF) 시설 등 특수보안시설도 남아 있는데, 이런 시설 옆에 대통령 집무실을 둔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당선인 지지자도, 용산 주민도 반발하는 '용산 시대'
국방부도 난감, 24시간 이사 준비해도 꼬박 20일 소요될 듯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왜 당선인이 용산 집무실 이전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는 중이다. 한 당원은 "국민의 소리를 못 듣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려는 게 윤 당선인의 첫 번째 결과물인가"라며 "이렇게 시작하면 두 달 후 지방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다. 나머지 5년을 어떻게 버티려 하느냐"고 질타했다.

또 다른 당원도 "이토록 많은 난제를 안고 출범하는 건 국정 동력을 떨어뜨릴까 걱정"이라며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국방부 인근에서 만난 용산 주민들도 대체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할 경우 초래될 불편보다는 집무실을 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일부 주민은 현재 진행 중인 지역 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며, 국방부 청사를 방문한 인수위 관계자를 가로막고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용산에서 30년 거주했다는 김모씨(60세)는 "청와대는 다 준비돼 있으니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라며 "지금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전하게 되면 다시 (제반 시설을) 조성해야 할 텐데 그건 낭비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이전의 취지 중 하나로 국민과의 소통 확대를 내세운 데 대해서도 "본인이 소통하고 싶으면 굳이 집무실을 옮기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장소가 문제가 될 거 같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용산구 문배동에 거주 중인 한 주민은 "20여 년 전부터 한다던 지역개발은 아직도 안 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여기로 오면 대체 개발은 언제 된다는 거냐"라고 발끈했다.

수십 년째 용산에서 거주 중이라는 또 다른 주민도 집무실 이전으로 지역 여론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전했다. 이 시민은 "지역 여론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난리가 났다"며 "국방부로 이전하는 게 적합하긴 한가. 비용도 엄청 들어갈 텐데 갑자기 왜 옮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국방부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8일 현장 답사차 국방부 청사를 찾은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등에게 업무 지연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 전체가 이전하는 가용공간을 찾는 게 숙제"라며 "결국 지금 쓰지 않았던 건물을 쓰게 되면 불편함과 업무 지연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신청사에 근무하는 인원만) 1060명 정도인데, 아파트처럼 사다리차를 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물동량을 이사해야 한다"며 "이사업체에 물어보니 20일 정도, 24시간을 돌려야만 (신청사 전체의) 물동량을 뺄 수 있다는 가견적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이 제시한 이전 시한인 '임기 첫날'에 맞추려면, 국방부는 업무 지장에도 불구하고 이사 준비에만 매달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인수위는 이날 답사한 집무실 이전 후보지에 대한 의견을 윤 당선인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윤 당선인은 이 의견을 듣고 조만간 청와대 이전과 관련한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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