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시리즈 4-3

본문 요지
1980년대 이후 공기업이 쇠퇴한 원인과 관련하여, 종전 후 경제회복과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민간자본의 발전 및 시장기능의 회복 등은 단지 특정 목적이나 분야에 있어 공기업의 역할을 축소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공기업의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이 시기 전 세계적인 민영화 물결의 진정한 원인은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로부터 발생한 위기의 책임을 공기업에게 떠넘기고,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위해 그것을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라 할 수 있다. 

1.배경
2.각국 민영화 과정
3.평가―신자유주의 민영화의 본질
4.민영화 결과—몇 가지 개별 사례

3. 평가― 신자유주의 민영화의 본질 

종전 후 발전을 거듭하던 세계 각국의 공기업은 1980년대 이후 민영화 물결 속에서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공기업의 전 세계적 쇠퇴를 초래했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본장 1절에서 우리는 공기업이 쇠퇴한 배경으로 먼저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기술발전을 들었다. 종전 후 각국 경제의 회복과 민간자본의 발전에 따라 공기업이 발휘하였던 사회적 기능들이 퇴색하였으며, 공기업이 맡았던 역할들을 이제는 민간자본들도 상당 정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또 1960~1970년대 제3차 과학기술혁명의 전개를 통해 새로운 산업으로 부각한 전자(반도체) 통신산업은 기업 경영적 측면에서 볼 때 좀 더 기민하고 창의성 있는 대응능력을 필요로 하였기에 공기업보다는 민간기업에 더욱 적합하였다. 

그렇다면 경제회복과 경제성장, 그리고 신기술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공기업의 역할을 축소시켜야만 했을까? 여기선 본장의 주제인 신자유주의 민영화를 총괄한다는 측면에서 이 같은 쟁점들을 다시 한 번 짚어보도록 하자.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민간소득이 늘고 이에 따라 가계저축도 성장하기 때문에 은행과 자본시장 등 민간 대부시장이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민간기업도 국가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자본규모에 따른 진입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또 경제성장과 민간자본의 발전은 시장의 발육을 촉진시키고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국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공기업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는 결정적 요인들로 간주할 수는 없다. 경제회복과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민간자본의 발전과 시장기능의 회복은 단지 특정 목적이나 분야에 있어 공기업의 역할을 축소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즉 민간기업들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며, 공기업의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1)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기업이 존속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는다. 예컨대 한 사회의 시장발육 정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자연독점, 외부효과를 지닌 공공재와 같은 분야에는 여전히 ‘시장실패’ 문제가 존재하며 이런 분야에서는 민간기업보다는 공기업이 적합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본 장의 후속 글에서도 살펴볼 것이다. (철도, 전력의 민영화 사례) 다른 한편, 경제발전에 따라 오히려 공기업의 필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시장 전체의 무정부성 극복 필요성의 증대, 빈부격차의 해소, 산업정책(물가정책, 고용정책) 등과 관련한 것들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가 제2장에서 언급하였듯,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생산의 사회화가 고도화함에 따라 일종의 사회적 자원배치 방식이자 국가 경제개입 형식인 공기업의 필요성은 쇠퇴하기보다는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증대하게 된다.

다음으로, 기술발전과 공기업의 관계에 있어서 볼 때도 그러하다. 전자(반도체) 통신산업의 발전과 이에 따른 기업경영적 측면에서의 기민한 시장대응 능력의 요구는 공기업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것일 수 없다. 첫째, 이 같은 신흥 정보통신 산업분야의 발전 역시도 막대한 자본투자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둘째, 기존 공기업에 막강한 기술연구개발 역량이 집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기업 역시도 새로운 기술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셋째, 창의적인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공기업은 독점적 민간기업에 비해 독특한 이점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사회적 효과를 중시하는 공기업의 특성상 이들 혁신기업들과 좀 더 공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혁신기업 투자펀드가 공기업의 출자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양자의 협력적 관계는 최근 중국이 인공지능, 친환경차, 양자컴퓨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는데 있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수탈적 재벌체제로 인해 혁신기업의 성장이 가로막히고 있는 한국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넷째, 자칫 기술혁신 사회에서 나타나기 쉬운 고용불안과 빈부격차 확대 문제를 극복하고, 국내시장 확대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볼 때도 그러하다. 이점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각국의 두드러진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으며, 미국과 같이 신자유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더욱 그러하였다. 미국에서 중동부지역(소위 ‘러스트벨트’) 소외계층의 지지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용과 빈부격차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와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이상 네 가지 측면에서 열거한 공기업의 이점들은 앞서 언급한 새로운 기술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구조 변화가 초래하는 공기업의 불리함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는 상응한 공기업의 일정한 내부 개혁과 전략 변화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 장에서(성공한 공기업의 개혁 사례)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공기업의 역할 축소와 관련하여, 끝으로 공기업 내부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자. 전후 규모면에서 큰 발전을 거듭해온 공기업이 양적 성장에 따른 일정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거대한 관리체계의 출현에 따른 비효율성이 나타나고, 정경유착의 심화와 부정부패의 만연 현상이 그것이다. 또 생산력발전과 과학기술혁명이 가져오는 급속한 산업구조조정과 그 고도화에 공기업이 일시 적응하지 못한 점 등의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970년대 이후 공기업은 비효율성이 두드러지게 노출되었으며, 1950~1960년대의 경제발전을 뒷받침했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부와 사회적 부담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기업이 본래부터 ‘비효율성’을 가지며 그 때문에 시장과 민간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식 논리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공기업이 원래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한다면 애초 1950~1960년대의 경제발전을 추동했던 기능 역시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변화된 주‧객관적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 같다. 예컨대 공기업 규모의 확대에 걸맞게 내부 관리체계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했으며,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는 적절한 조치들이 취해져야만 했다. 또 산업구조조정과 고도화에 조응되는 공기업의 전략적 재배치도 이루어져야만 했다. 공기업에 대한 이러한 요구들은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제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공기업개혁문제를 소홀히 하였다.2)

오히려 서구 각국에서 시장기능이 정비되어 감에 반해, 공기업은 거꾸로 실업자 구제나 부실기업 인수와 같은 사회적 부담을 떠맡는 역할만을 계속 담당하였다. 이는 공기업에 대한 잘못된 ‘관념’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공기업은 어차피 이처럼 사회적으로 궂은 일을 주로 담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강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경쟁력을 날로 상실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의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라는 청산주의적 방식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이 시기 공기업의 쇠퇴와 민영화의 물결을 가져왔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사조와 관련이 있다. 

우선 우리는 당시의 ‘민영화’는 일반적인 민영화가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사조 속에서 이루어진 민영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공기업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새로운 위기적 상황의 전개와 이에 따른 자본주의 축적운동 상의 심각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1980년대 이후 공기업의 쇠퇴 과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에 비한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공기업의 자체 문제나 위상 변화는,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차적 요인에 불과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이 반영하는 자본주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또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하려 하였는지를 다루어야만 이 시기 공기업의 몰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종전 후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일명‘케인스주의 시대'는 경제균형을 달성하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일국 내’ 초점을 맞추었다. 자본주의 생산은 그 구조에서 보자면 크게 ‘생산수단 생산부문'과 ‘소비수단 생산부문' 둘로 나누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전자를 ‘Ⅰ부문', 후자를 ‘Ⅱ부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회적 생산의 균형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경제구조가 단지 이 같은 양대 부문만으로 구성될 경우에는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본축적에 있어 ‘축적률’과 ‘축적구성도’의 이원적 불균형 때문이다. 

우선, 자본주의 생산방식 하에서 자본가는 그 내적인 이윤동기와 외부경쟁의 압력 때문에, 자신이 획득한 잉여가치 중 생산에 재투자하는 비율인 ‘축적률'을 높이게 된다. 이는 생산능력을 증대시키면서 자본가의 소비는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 기계제생산의 부단한 확대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으로 불변자본(C)의 비율을 높이고 가변자변(V)의 비율을 낮추는 ‘축적구성도’의 제고를 수반한다. 이렇듯 자본축적에 있어 추가되는 가변자본이 불변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됨으로써, 소비는 생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고 과잉생산 문제가 나타난다.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민정책을 통해서 외부시장을 끊임없이 확대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결국 점령할 수 있는 식민지의 제한성으로 인해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불균형문제를 푸는 또 다른 방식은 외부시장이 아닌 ‘국내’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경우 관건은 기존의 양대 부문이 아닌 새로운 ‘제3의 소비영역'을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2차 대전 후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국가'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다. 즉 국가로 하여금 시장을 뛰어넘는 제3의 소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기능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종전 후 서구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국가의 경제기능 강화에 발맞추어 자본주의사회의 ‘비생산부문’은 신속히 발전하였다. 마침내 그것은 기존의 양대 부문에 견주어 새롭게 사회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는데, 현대경제학 일각에서는 그것을 '제3부문'이라 부른다. 여기서 제3부문은 사회의 '모든 비생산부문'을 지칭하며, 예컨대 모든 비생산성 용역과 행정관리, 위생‧문화‧교육, 공공사업 및 국방안보 등의 부문을 포함한다. 이로써 자본주의경제는 기존의 양대 부문에다 제3부문을 합쳐 구조에서 ‘3자 정립’을 이루게 되었다. 

 제3부문의 창출을 통한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부 균형기제는 상당 정도 유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달성된 균형 역시도 이 시기 3차 과학기술혁명이 몰고 온 급속한 생산력발전에 따른 각국의 과잉 생산력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 균형기제는 자체 내부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이 기제의 핵심인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다. 즉 '국가재정'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자본주의적 소득분배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케인스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국가의 적극적 개입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국가의 개입은 재정·화폐·복지정책 등을 통해 여전히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가 실패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부자에 대한 세금징수를 통해 빈곤층에로 부를 이전코자 하는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이 자본주의적인 소유관계와 근본적으로 충돌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의 확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추세라 할 수 있다. 과학·환경·위생·교육·주택 등에 대한 국가의 투자는 이제 현대 시장경제가 존립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이렇듯 자연스레 확대일로에 있는 공공부문의 재원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현대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큰 숙제이다. 케인스주의가 종국에 가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이 같은 공공부문의 재원을 생산관계(소유제)의 변화 없이 ‘세금’에만 의존하여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거론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쟁도 그 핵심문제는 결국 ‘재원조달’ 문제로 귀결된다.

재원에 있어 세금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와의 심각한 충돌을 낳게 된다. 즉 점점 높아지는 세율은 ‘세수초과부담’ 문제를 야기하게 되며, 그것은 부유층의 세수저항이나 투자기피, 혹은 자본의 해외도피와 같은 형식으로 표출되게 된다. 또 부유층의 투자회피는 경제성장의 둔화와 실업률의 증가를 낳아 결국 실업구제 기금의 확대라는 사회적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이 때문에 추가적 세율 인상은 한계에 도달하였으며,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부가세 등 ‘간접세’ 비중을 확대하거나 국채 발행을 통해 메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 간접세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국채 발행의 확대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낳음으로써 국내 인플레이션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보편적으로 재정적자 문제에 부딪쳤다. 특히 1970년대 들어 그것이 두 차례 오일쇼크로 촉발된 경제위기와 결합되면서 당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 불렸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출현했다. 이리하여 케인스주의는 신자유주의에게 주도권을 넘긴 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국제단체의 민영화 반대 캠페인 [사진 : 아바즈(AVAAZ) 갈무리]
케인스주의를 대신하여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우선 ‘일국 내 균형’을 포기하고 그 대신 지구적 ‘단일시장 구축’을 통한 전지구적 차원의 균형으로 강조점을 옮겼다. 지구적 ‘단일시장 구축’은 그간 인류가 발전시켜온 높은 생산력 수준을 반영한 것으로서 생산의 국제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생산의 사회화’의 최고단계를 의미하였으며 신자유주의는 이 같은 지구적 단일시장의 구축을 위해 ‘공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 시기 나타났던 공기업의 여러 문제점들은 앞서 보았던 바와 같이 원래 많은 부분 자본주의 시스템 전반의 한계와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 시 공기업들이 부실기업 구제를 책임진다든지, 사회 안정을 위해서 실업자 구제를 떠맡아 불필요한 인력을 많이 고용한다든지, 제품의 원가상승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인상을 자제한다든지 등등이 그것이다. 또 매번 서구의 정치세력들은 당면한 집권에만 급급하여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공기업에 전가시키려 했다. 이런 가운데 국유기업의 대규모 적자, 정경유착과 같은 갖가지 문제들이 누적되어만 갔다.3)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세력에게 있어서 공기업은 종전 후 복지국가 체계와 함께 자본의 전지구적 시장통합을 달성하는데 있어 주요한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즉 국제자본의 형성과 자본의 국적성을 탈피하는데 있어, 또 국가의 계획적 요소를 줄이고 자유경쟁적 시장 요소를 강화하는데 있어 걸림돌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서구 선진국들 간에 공기업 민영화를 강제하는 협정을 맺게 된 것은 공기업 쇠퇴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결국 이 시기 전 세계적인 민영화 물결은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로부터 발생한 위기의 책임을 공기업에게 떠넘기고,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위해 그것을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나타난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시장경제에 진입할수록 국가의 경제개입은 필연적이며, 이는 공기업 규모의 확대를 통해서든 혹은 전체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서든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이탈리아 공공부문의 고용현황을 나타내는 아래 표4-7은 이 같은 사정을 잘 말해준다. 이탈리아는 본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세 차례 공기업 개혁을 통해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서 다시 그 같은 공백을 메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 공공부문의 고용현황을 보자면, 공공부문의 종사자 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증가하였으며, 1970년 236만5천 명, 1992년에는 356만9천명에 이르렀다. 이후 공기업 개혁이 진행된 후인 200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337만5331명이 공공행정부문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간 줄어들긴 했어도 큰 변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공공행정부문의 직원 수는 2008년 이탈리아 근로자 인구 전체의 14.9%를 차지하였는데, 만약 근로자 인구 중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를 제외한다면 이 수치는 21.9%까지 증가한다.4) 또한 제3장에서 이미 거론했던 바와 같이, 미국은 비록 신자유주의를 가장 앞장서 실천하는 국가이지만 자체 공공부문의 규모가 다른 서구 국가와 마찬가지로 매우 크다는 사실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지구화와 공기업과의 관계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로 하자. 지구화 및 개방화를 추진함에 있어 공기업은 과연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정한 걸림돌일까? 

이후에 소개할 독일 전신산업의 민영화 사례를 보면, 사실상 여전히 공기업인 독일전신회사가 공공성을 간직하면서도 국제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지구화시대에 들어 각국은 다국적기업화한 자국 자본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수단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설령 그들로부터 글로벌 경영의 성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일은 날로 어렵게 되고 있다. 이처럼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기업 밖’에서의 통제는 지구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며, ‘기업 내’ 통제 즉 국가 자신이 기업의 대주주가 됨으로써만 이들에 대한 사회 다수의지의 관철이 유효할 수 있다. 이 측면만 보더라도 지구화시대에 있어서 ‘공기업’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케인스주의 시대가 낳은 자본주의 위기의 해결책으로 ‘공기업 개혁’이 아닌 ‘민영화’를 선택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편향이자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주석

1) 세계 선진국들이 집결한 OECD의 <공기업 가이드라인>은 “공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근거는 국가와 산업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즉 “한때 국내시장 내에서 기초 사회기반시설이나 기타 공공서비스 제공에만 주로 관여했던 공기업은 점점 더 그들의 영역 밖에서도 중요한 행위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국가소유 투자회사’의 급증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와 정부가 소유하는 공기업 간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OECD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2015 개정판), pp.11-12.)

2) 다음 인용문은 그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기업이 위기로 빠져든 주요인을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전후 이탈리아 경제발전의 중심은 중화학공업과 기초시설부문이었는데, 공기업들은 바로 이를 위해 설립된 것이다. 수십 년이 흐른 후 국내외 경제 상황과 객관적 요구는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공기업의 기본구조는 적시에 조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형세 하에서 공기업의 새 임무는 무엇인가? 직접적 목표는 무엇이고, 중점은 어떤 부문과 영역에 미쳐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었다.” [중]罗红波,戎殿新 주편집, 2000년, <서방공유기업대변혁>, pp204-205. 

3) 여기서도 이탈리아는 그 좋은 사례이다. 다음 인용문은 그 점을 잘 지적한다. “20세기 국가경제 회생 목적으로 공공기관을 통해 행사된 이탈리아 정부의 계획적이지 못한 시장 개입은 이후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설립 당시와는 달리 이탈리아 공기업들의 역할이 무계획적‧무분별적으로 변화되고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 때문에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지거나 타 집권당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었던 공공기관이 주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공기업은 ‘chinese boxes’라는 이탈리아 경제 특유의 통치 형태에 의해 신설되거나 조직되는 경우가 많았다. ‘chinese boxes’ 통치 형태의 빈번한 사용과 이탈리아 공공부문의 재정적 기반 부족은 정부의 개입을 유도하였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공공부문은 매우 복잡하고 특이한 구조를 띠게 되었다.” (한국조세연구원,2011년, <주요국의 공공기관 Ⅲ ― 싱가포르, 중국, 이탈리아>,p196.) 본문 중 예로부터 유지되어 왔던 이탈리아 특유의 공기업 소유구조 형태를 ‘chinese boxes’라 칭한다. 그 모형이 작은 상자로부터 차례로 큰 상자에 꼭 끼게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된 한 벌의 중국 상자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적은 자본으로 많은 기업을 소유 및 통치하기 위한 수학적 기법으로 정부는 단 4개의 공기업(IRI, ENI, ENEL, EFIM)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수백 개의 공기업을 통치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4) 한국조세연구원,2011년, <주요국의 공공기관 Ⅲ ― 싱가포르, 중국, 이탈리아>, pp.223-224.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