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0년 2월 22일 토요일

4.15총선, 촛불혁명과 반혁명의 갈림길

  •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  
  •  승인 2020.02.22 18:53
  •  
  •  댓글 0

이정훈의 반도평론(7)

1. 촛불혁명과 반혁명
수백만 국민이 광화문광장에 나와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몰아낸 촛불항쟁이 있었다. 우리민중, 우리국민은 대단했다. 이를 촛불항쟁, 촛불혁명,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을 잇는 근래에 보기 드문 거대한 역사적 대중항쟁이었다. 부패한 정권은 마침내 교체되었고 사람들은 이 촛불혁명으로 70여 년 누적된 대한민국의 모든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 자주, 통일과 평화를 완성하는 진짜 민주주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열망했고 또 순조로이 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가 반복적으로 증명하듯 혁명은 반혁명, 즉 혁명에 대한 반동(反動)을 극복해야 비로소 완성되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의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 항쟁은 처절한 대중항쟁이었으나 결국 모두 실패한 ‘미완의 민주주의혁명’이었다. 이들 항쟁을 통해 우리 국민은 산전수전 정치경험을 겪으며 어느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세계와 아시아 민주주의 항쟁의 모범을 보이며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이 지난한 미완의 민주주의혁명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반혁명의 위기 앞에 지금 다시 놓여있다. 
2. 반혁명의 비밀, 한미관계의 속살 
수많이 피 흘린 항쟁과 한국의 민주주의혁명은 왜 얼마 못 가 모두 실패했는가? 그것은 민주주의혁명을 거부하는 기득권 반작용, 반동의 힘, 반혁명의 힘과 수법이 더 강하고 교묘했기 때문이다. 한국민중은 한국 민주주의를 반대한 기득권세력의 중심, 반혁명의 주역이 누군지 모르고 반세기 이상 싸워왔다. 
1960년 4.19민주혁명에 대한 반동 1961년 5.16쿠데타부터 확인해보자. 정치 칼럼니스트 김현철씨의 박정희 5.16쿠데타에 관한 글을 인용해보자. 참고로 그의 글에 등장하는 ‘하우스먼(James Harry Hausman, 1918-1996) ‘은 미국 육군방첩대 한국현지사무소 책임자로 이승만, 박정희 시대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한 실제 한국정치의 막후 공작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 또한 매우 특이하다.   
<53년 5월, 미국은 이승만이 계속 휴전협상을 방해하자 52년의 이승만 제거 계획을 더욱 강경하게 바꿔 군부에 의한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이른바 에버 레디 계획(Ever ready Plan)을 수립했으며 미군 수뇌부의 지원을 받아 박정희가 이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말’지) 그렇다면 5.16 쿠데타는 이미 9년 전부터 착착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1990년 11월28일자 ‘하우스먼의 회고록’을 보면 하우스먼은 “1961년 3월1일 실제 쿠데타가 있기 45일 전에 나는 한국군 내의 쿠데타 기도가 있음을 상부에 보고했다.”… 5.16 이틀 후 하우스먼이 8군 캠퍼스 안의 자기 집에 찾아온 박정희를 만났을 때 박정희는 하우스먼에게 “혁명위원회는 하우스먼 당신 친구들이 거의 전부이니 실은 당신네들(미국) 혁명이요”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미 CIA 한국지부장 씰바는 5월15일 오전에 김종필, 다음날에는 박정희를 자주 만났으며 그 후로는 박종규(후 청와대 경호실장)와 더욱 자주 만났다. 하우스먼은 그의 회고록에서 쿠데타설이 나돌던 시점에 육본작전참모 부장으로 있는 박정희를 찾아가 많은 대화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 CIA국장이었던 엘런 덜레스(Allen W. Dulles)는 1964년 5월3일 영국 BBC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제가 재직 중에 CIA의 해외 활동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바로 이 5.16혁명이다. 바로 미국이 5.16에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두환이 주도한 12.12쿠데타와 광주민중항쟁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위컴(John Adams Wickham, Jr)의 인터뷰도 확인해보자. 그는 1980년 8월7일 AP통신 및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12.12쿠데타에 대하여 “한국의 10월 사태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이 가장 성공한 일 중의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우리의 보람도 크다. 전두환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한국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면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비교적 최근 언론에 노출된 한미관계 비밀정보들도 확인해보자. 호주 출신의 줄리안 어산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가 2011년 미국 외교전문(電文) 25만1287건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한반도 관련 전문은 1만4000여건에 이르고 그 내용도 충격적이나 한국의 어느 주류 언론도 이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무수한 기밀자료로 잠자고 있다. 김용진 KBS 기자가 쓴 <그들만 아는 우리만 모르는>이란 책에 관련 자료들이 번역되어있다. 이미 언론에 공개된 한국관련 보고서(2010년 3월1일 이전에 작성) 몇 가지만 확인해보자. 
공개된 전문을 보면, 한국 주요 정치인들과 관료, 학자들은 주한 미 대사관 측과 비공식 만남을 통해 한국의 정치 동향과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상세하게 전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들은 통상 외교업무를 넘어서는 한국정치의 내밀한 보고들로 가득하다. 미 대사는 이를 미 국무부에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이 보고서에서 주한미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은 모두 1980건이다. 여기서 다루는 자료는 주로 2007년 한국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내용이다. 
이명박의 성향에 대한 보고를 보자. “몇 가지 정보에 따르면 이명박 당선인은 부끄럼을 잘 타고, 많은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 만큼 사교적이지 않다고 한다. 몇몇은 이명박의 이런 성격을 전(前) 당 대표이자 제1의 라이벌인 박근혜와, 한나라당을 나간 이회창에게 다가서는 데 서툴렀던 이유로 들었다. 이 당선자가 인간관계에 서투르기 때문에 소수의 친구와 최측근만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형인 국회부의장 이상득과 전 갤럽 회장 최시중은 이명박의 정치적인 두뇌로 인정받고 있다. 주관이 강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두 사람이라고 여러 정보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대사관은 이 대통령의 운동 횟수까지 적어서 보냈다. 
이명박 형제 사이에 흐르는 기류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해 보고했다. “이상득은 대통령과의 관계와 원로 보수 의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생에 대한 그의 불만과 비판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반영하고 있다. 국회 정보원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형의 총선 출마를 만류했으나 형이 이를 무시하고 6선 의원이 되기 위해 출마하자 마음이 상했다(hurt)고 한다. 이 일이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나 정치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노련한 이상득 부의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 작용했을 수 있다. 오랫동안 타협을 지지해 온 사람으로서 이상득 의원은 동생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다룰지, 도울 수 있는 권위와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형의 도움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주한미대사관은 정보 수집을 위해 언론인들도 자주 만났다. 공개된 전문에는 고대영 KBS 본부장과 민경욱 앵커가 등장한다. 고대영 본부장은 이명박 당시 후보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약화,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 북한 위협에 대한 우려 등의 시대적 흐름 때문에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12월19일자 전문) 전문은 고대영 본부장을 “미대사관과 자주 접촉하는 인물(frequent Embassy contact)”이라고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을 들인 자원외교의 치부도 있다. 경향신문 전문 관련 보도에 따르면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9년 12월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대사를 만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 과정은 자신이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이미 결정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을 위해 공식 발표를 미뤘다고 설명했다. 또한 12월30일에 스티븐슨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군사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은 기밀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 비준을 얻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전문적 논평을 얻기 위해 정치평론가나 정치학 교수들과 자주 만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와 대통령학으로 알려진 함성득 고려대 교수가 그런 이들이다. 2009년 1월7일 두 사람은 주한 미대사관 관료들과 만나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논평을 제공했다. 
2008년 5월29일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이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에게 한 말도 보고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은 미·일 양국과 잘 협력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친중국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잘 알려진 영화 ‘공작’의 실존 인물 박채서(흑금성)씨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청와대, 기무사령부 기밀까지 미국 정보기관에 넘기는 ‘검은머리 미국인’들이 많다고 폭로했다. 이들 ‘검은 머리 미국인’은 각계각층에 있는데 일반인도 쉽게 아는 유명인도 많으며 그가 개인적으로 확인한 인물만 해도 386명까지 이른다고 폭로한 바 있다. 수천의 검은머리 미국인이 지금도 미국을 위해 활약함을 짐작하는 폭로이다. 
박씨의 말에 따르면 “미국 CIA는 중학교 때 자질 있는 사람을 픽업해서 한국이라면 한국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교육한다”며 “10명 키웠으면 5~6명 정도 최종 선발하고 나머지는 탈락시킨다.” “실제 접해본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의 흑색요원들은 100%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 한다”며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부르는데 커튼을 치고 들으면 그냥 한국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공통적으로 부인이 한국 사람이고 대게 부인들이 기자나 언론계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 CIA 기밀관련 폭로 언론보도를 보자. 워싱턴포스트(WP) 2월1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50여 년 동안 전 세계 정부를 상대로 암호 장비를 판매해온 스위스 회사가 사실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소유하고 운영했던 회사”였다고 한다. 이 회사의 장비를 구매했던 고객은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120개국에 달했으며 CIA는 이를 통해 해당 정부의 비밀 첩보를 손쉽게 빼내간 것으로 파악됐다. 
3. 한국에서 반혁명과 그 방식의 진화
한국에서 가장 큰 물리적 힘과 가장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제1의 정치세력은 누구인가? 대통령? 재벌? 삼성? 검찰? 민주당?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보수언론? 누구인가? 그것은 여전히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세팅한 주역 미국이다. 한국정치를 알려면 미국의 의도(주한미대사, 주한미군, CIA 한국지부,미 상공회의소)와 미국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떠나야 할 미국이 아직도 한국 정치와 군사외교의 주요한 대목마다 등장하는 막후 실세이라는 사실은 한국 현대정치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한국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를 좀 하는 사람 치고 미 대사관이 외교집단이 아니라 한국 통치집단이며 정치집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 미국은 결코 외국이 아니다. 그러나 묵계처럼 언론도 정치인도 지식인도 아무도 이에 관해 말하지 않으며 결코 이에 도전하지 않는다. 
4·19 이후 5.16쿠데타. 부마항쟁 이후 12.12쿠데타, 광주민중항쟁의 진압, 6월 항쟁 이후 6.29 노태우 선언과 1987년 대선의 실패…. 모든 실패한 한국 민주주의 혁명의 원인은 민주주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반혁명 때문이며 그 반혁명의 구심과 총감독은 한국정치 제1의 실세 미국이었다. 주연이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모두 총감독의 의도를 어긴 적이 없었다. 
한국 민중의 정치의식이 낮으면 미국은 5.16. 12.12 군사쿠데타 같은 물리적 충격과 억압의 방식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혁명을 잔인하게 저지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런 유혈충돌과 쿠데타의 부작용이 자칫 진짜 한국 민주주의 혁명을 추동할 가능성 때문에 더는 유력한 방식으로 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반혁명 방식이 ‘선거와 여론을 통한 합법적 권력 교체’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바뀌면서 반혁명의 방법과 도구도 변화되었다. 물리적 탄압보다 대중의 사상과 심리를 장악하는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홍보와 대중심리전, 정보지능전, 폭로전으로 반혁명의 주된 형태가 바꾸었다. 
군대와 경찰의 물리적 비중이 뒤로 밀리고, 언론과 검찰, 법원 등 ‘정보지능전’에 유능한 집단이 전면에 나서는 체계로 서서히 진화되었다. 비리와 정치첩보 그리고 대중의 사상과 심리를 장악하고 활용하는 문제가 민주주의혁명과 반혁명의 성공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의엽 민중연구소장의 정치검찰을 물리쳐야한다>란 글이 이것을 잘 지적하고 있는데 그대로 인용해보자.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마코사키 우케루 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45년 패전 후의 현대 일본사를 미국에 대한 자주파와 친미파 간의 대립, 갈등, 대결 구도로 해석한다. 저자는 역대 일본 수상과 정치인들을 친미파와 자주파로 구분하고 자주파 내각이 단명한 것을 미국의 공작으로 설명한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자주파를 친미파로 바꾸는 시스템에서 그 핵심 역할을 검찰과 언론이 담당한다는 대목이 유독 눈에 띈다. 검찰의 수사와 피의사실 유포, 이것을 특종인양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진행하여 정치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
현재 한국 검찰개혁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권력과 언론과 검찰은 원래 중립이 없다. 중립적일 수 있다는 대중의 착각이 있을 뿐이다. 국민의 편, 촛불혁명의 편, 자주와 민주주의 편에 세우는 것이 검찰개혁의 본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발언을 인용해보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자서전 <운명이다>)
4.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 대북 기만협상과 촛불혁명 전복 
지금 한반도는 다시 역사의 고비에 서 있다. 지난 2년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복기해보자. 
우리는 미국의 대한국 전략을 독립적으로 보는데 익숙하지만, 미국의 대한국 전략은 분단이후 항상 미국의 대북전략과 연동되어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 남북 분할 지배 통치구조의 한축으로 한국을 본다.
북의 미국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솔직한 평가를 인용해보자.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탁에서 1년 반이 넘게 속히우고 시간을 잃었다... 명백한 것은 이제 다시 우리가 미국에 속히워 지난 시기처럼 시간을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미 사이에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미국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여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한마디로 북미협상은 끝났고 미국은 지난 2년간 북을 속였다는 것이 북의 결론이다. 그러나 미국이 속인 것은 북만이 아니다. 남측의 문재인 정부도 철저히 활용하고 속였다. 미국만 따라가고 미국에 의존했던 문재인 정부가 무슨 속을 것이 있겠나 싶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만 의존하면 미국의 힘으로 남북관계가 열릴 것이라 기대했다. 
미국은 겉으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고 4.27판문점선언을 지지하는 듯 했으나 한미워킹그룹으로 남북교류를 철저히 차단하고, 더 나아가 촛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보수적 대중을 자극해 ‘한국판 색깔혁명’으로 교체할 기획을 등 뒤에서 전개한 것이다. 미국은 현재 한국 정치를 촛불혁명 이전으로 복원, 초기화(reset)하려고 한다. 미국은 말뿐이라도 4.27판문점 선언과 남북 공조를 지지하는 정권이 필요하지 않다.
 
5. 촛불혁명의 해체와 한국진보의 성장전략 
미국이 한국 촛불혁명 세력과 그 기운을 해체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촛불세력의 내부구성은 매우 취약했고 촛불로 등장한 민주당 정권의 한계를 미국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혁명은 거대한 단결과 단결의 정치적 중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수 대중을 ‘하나의 전선’, ‘하나의 단결된 정치구심’으로 모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일시적 분노와 항쟁, 그리고 투표로 혁명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지만, 혁명이 반혁명을 이기는 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할 수는 없다. 
촛불투쟁은 처음에 진보민중진영이 주도했고 후에 광범위한 국민대중이 참여했으나 그 투쟁에 대중적 정치구심은 없었다. 민주당은 촛불투쟁의 주변부에 있다가 ‘정권을 주웠다.’ 문제는 한국 진보의 정세 주도력인데 이 역시 힘에 부쳤다. 한국 진보는 다양한 노선으로, 소규모 군소정당으로 분열상을 극복 못했고 대중적 정치구심을 형성하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진보정당들은 분열하고 대중적 기반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촛불혁명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권의 촛불혁명 정신과 의지 부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80~90% 지지율에 취해 선거운동 하듯이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적폐청산의 호기를 모두 놓쳤다. 적폐세력과 협치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오만과 전략적 오판은 극에 달했다. 과거 통일사업에서 늘 고생했던 6.15남측위원회를 남북교류에서 배제하려했고 진보진영의 오랜 요구인 민중생존권 요구, 비정규직 문제, 노동법 개정문제, 농민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기만했다. 아파트와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촛불혁명 위기의 1차 책임은 결국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더 이상 촛불혁명을 말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촛불이 조국사태로 분열되는 사이, 일부 기독교세력이 반혁명 정치세력화에 뛰어들었다. 이것은 전례 없던 새로운 양상이다. 한반도가 통일과 반통일, 혁명과 반혁명이 활용가능한 모든 힘을 동원하여 맞서는 분단체제 위기국면이라는 의미의 반증이다. 보수 기독교세력이 촛불과 맞서는 일상적 장외투쟁 정치부대로 등장하였다. 대중 집회와 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과 전통이었는데 보수적 대중시위 부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4.15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과로 원내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촛불세력이 분열되는 사이, 수구보수는 다시 그들 표현으로 ‘탄핵의 강’을 넘어 도로 새누리당(미래통합당)으로 통합했다. 이들 적폐세력의 1단계 목표는 총선 제1당이다. 2단계 목표는 문재인 정부 탄핵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적폐의 재집권이다. 문재인을 다시 노무현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적폐의 시대’가 다시오면 ‘촛불잔치’는 종료되고 다시 반동의 시대가 시작된다. 진보정당의 발전과 성장도 만년 ‘도돌이표’이다. 한국 진보가 공고한 보수 양당구조를 깨려면, 동시에 보수 양당 체제를 깨려고 하는 무리한 전략을 구사해서는 실패의 반복이다. 정체성, 정책의 차별성과 진보 집권전략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진보는 친일 수구보수 한 축부터 허물고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써야한다. 미·일 외세의 1차 근거지인 수구보수당(미래통합당)을 먼저 반 토막으로 깨서 지역당으로 만들어 무력화 시켜야 한다. 그래서 사상운동의 자유와 자유로운 남북 정치교류를 가로막는 분단적폐의 악법 국가보안법 폐기안을 21대 국회에서 통과해야한다. 그래야 새로운 환경에서 진보가 규모 있게 본격 성장한다. 그 다음 단계가 새로운 환경에서 개혁보수정당(민주당)과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다. 
6. 촛불의 단결과 친일분단적폐 청산 국회수립
4.15총선의 목표는 촛불혁명의 중단 없는 전진이다. 반대로 반혁명의 목표는 촛불혁명의 전복이다. 적폐의 의회장악이다. 총선에서 촛불의 첫 번째 목표는 친일분단 적폐세력을 일차적으로 국회에서 크게 몰아내는 것이다. 적폐와 분단체제의 기둥인 국가보안법을 21대 국회에서 폐지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진보정당들을 더 많이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미국의 부당한 내정간섭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자주적 진보세력인 민중당을 더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 자주적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해야 미국의 간섭과 횡포를 저지할 수 있다. 
총선 기간 중 정세변수 중 하나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이다. 총선 기간에 예정되어있다. 북미협상이 파탄난 상태에서 미국은 훈련 축소로 이에 대응하려하나, 북이 연합군사훈련 재개 자체를 수긍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어떠한 형태로든 한미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전면 중단하지 않는 이상 북은 이미 예고한, 충격적 행동과 새 전략무기 시험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정황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북에 요청하는 개별관광이나 제한적 남북교류에 북이 응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결과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북의 원칙적 입장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분간 총선 이후 올 하반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동참하며 개별관광과 대화를 말하는 것을 비난하리라 예상된다. 통일부가 좋은 시절 다 놓치고 뒤늦게 민간통일운동단체를 앞세워 남북관계 개선이나 총선용 남북교류를 구걸하는 행위를 하려하는데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15총선을 앞둔 촛불항쟁 진영은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다소 어수선하다. 그러나 승리의 힘은 산전수전 다 겪은 깨어있는 촛불국민대중의 힘 속에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4년 전 2016년 총선에서 어느 누구도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침몰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사실 그것이 촛불항쟁의 서막이었다. 광화문의 촛불, 서초동의 촛불과 여의도의 촛불, 모든 촛불은 다시 단결해 중단 없는 전진을 해야한다. 촛불세력은 모두 단결하여 반혁명 공세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촛불혁명 국회로 만들어 다시 자주 민주 통일의 바다를 향해 전진해야한다. 
필자 이정훈
1985년 고려대 광주학살원흉 처단투쟁위원회 위원장, 삼민투 위원장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3년 옥고
오산과 수원에서 노동자회관 운영
런던대 아시아 태평양 지역학 석사과정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교육위원
경실련 하이텔정보교육원 이사
사람과 사상 출판사 대표
현재 4.27시대 연구원 부원장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