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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3일 금요일

자연의 실패한 실험? 나비 입 지닌 풀잠자리 화석


조홍섭 2019. 09. 11
조회수 1843 추천수 0
미얀마 호박 화석서 발견…꽃꿀 빨기 위한 적응, 설계 ‘부실’로 멸종

f1.jpg» 나뭇진과 함께 굳은 9900만년 전 풀잠자리. 입에 나비 같은 대롱이 달렸다. 알렉산더 크라모프 제공.

1억년 전 침엽수를 누르고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이 번성하자 곤충들도 바빠졌다. 꽃이 제공하는 꽃꿀을 빨아먹기 편하게 입 구조를 바꾸는 적응을 서둘렀다.

풀잠자리의 조상도 씹는 입 대신 나비처럼 대롱을 매달았다. 그러나 부실한 빨대 설계 탓에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거대한 변혁기, 곤충이 벌인 진화 실험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례가 호박 화석 분석으로 밝혀졌다.

f2.jpg» 현생 풀잠자리는 씹는 입으로 진딧물, 진드기 등을 잡아먹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알렉산더 크라모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생물학자 등 러시아 과학자들은 과학저널 ‘백악기 연구’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미얀마 북부 후쾅 계곡에서 발굴된 9900만년 전 호박 화석에 든 풀잠자리 목의 새로운 곤충 4종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파라독소시시라’ 속의 이 풀잠자리는 이제까지 입에 달린 빨대로 다른 곤충의 딱딱한 껍질이나 개구리의 피부를 꿰뚫었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3차원 모델을 정밀조사한 결과 꽃꿀을 빠는 대롱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주 저자인 크라모프는 “이 곤충들은 백악기 초 번성하던 꽃식물에 대응해 곤충들이 꽃꿀을 먹을 수 있도록 하려던 자연의 실패한 시도”라며 “이들은 꽃꿀을 먹는 벌, 파리 등 다른 경쟁자들의 영리하게 설계된 입과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f3.jpg» 말 수 있는 대롱으로 꽃꿀을 빠는 나비는 5500만년 전 신생대에 출현했다. 그 전인 중생대 때 꽃가루받이의 주역은 풀잠자리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1억2000만년 전 백악기 초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겉씨식물을 밀어내고 지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나무·은행나무·소철 등 겉씨식물은 전 세계에 1000종인데 견줘 속씨식물은 30만 종에 이른다. 

바람이 아니라 곤충의 매개로 꽃가루받이하는 꽃식물의 등장은 곤충에게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였다. 연구자들은 “지금의 미얀마 북부에서 나뭇진이 곤충을 간직한 채 굳은 시기는 속씨식물의 분화가 한창 진행하던 시기로, 식물의 변화에 곤충이 어떻게 대응했나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아직 나비가 등장하지 않았던 중생대 때 가장 중요한 꽃가루받이 곤충은 풀잠자리 종류였다. 예를 들어, ‘쥐라기 나비’란 별명의 칼리그라마티대 풀잠자리는 날개의 눈 모양 무늬와 긴 대롱 입이 영락없는 나비 모습이었다.

f4.jpg» 나비처럼 보이는 중생대 곤충 칼리그라마티대 풀잠자리. ‘쥐라기 나비’란 별명으로 불린다. 중국에서 발견된 화석이다. 치앙 양 외 (2014) ‘비엠시 진화생물학’ 제공.

이번에 연구 대상인 파라독소시시라 풀잠자리는 칼리그라마티대 풀잠자리보다 훨씬 작은 형태로 빨대의 길이가 0.62∼0.93㎜였다.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이 풀잠자리의 빨대는 모기의 침처럼 다른 동물을 꿰뚫기엔 부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그 근거로 “칼집처럼 빨대 주변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없고 빨대 끝에 억센 털이 달려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결국 꽃꿀을 빠는 대롱 형태였지만 얼개가 허술했다. 연구자들은 “두 개의 빨대가 헐겁게 연결된 형태여서 구멍 난 빨대처럼 압력 차로 흡입하는 것이 불가능해 꽃부리가 얕은 꽃에서만 꽃꿀을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f5.jpg» 입의 빨대가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꽃꿀을 빠는 것으로 드러난 파라독소시시라 풀잠자리 상상도. 대롱이 짧아 꽃부리가 얕은 꽃만을 먹을 수 있었다. 안드레이 소치프코 제공.

근육의 힘으로 꽃꿀을 펌프질하는 밀봉된 대롱을 지닌 다른 곤충과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이 풀잠자리도 멸종하기 전 8000만년 동안 수많은 종으로 분화했다.

현재 살아남은 풀잠자리 종류는 성체 때 씹는 입으로 진딧물, 진드기 등을 잡아먹는다. 연구자들은 ”풀잠자리와 달리 벌은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막히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벌은 관통과 흡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입 구조로 꽃꿀 흡입은 물론 포식과 흡혈도 가능해, 고생대 페름기부터 현재까지 2억8000만년 동안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hramov, A.V., Yan, E., Kopylov, D.S., Nature's failed experiment: longproboscid Neuroptera (Sisyridae: Paradoxosisyrinae) from Upper Cretaceous amber of northern Myanmar, Cretaceous Researchhttps://doi.org/10.1016/j.cretres.2019.07.01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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