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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5일 월요일

동면 앞둔 청개구리, 나무에 올라 이것 한다

동면 앞둔 청개구리, 나무에 올라 이것 한다

조홍섭 2019. 04. 15
조회수 675 추천수 0
볕 쪼이며 신진대사 떨구는 ‘휴지기’…수원청개구리 월동지는 논둑

t1.jpg» 동면을 앞둔 청개구리는 산의 나무꼭대기에 올라 해바라기를 하며 노래를 한다. 동면을 대비한 ‘휴지기’의 행동이 처음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청개구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양서류이지만 생활사의 상당 부분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동면을 앞둔 청개구리가 몸의 대사활동을 차츰 떨어뜨리는 ‘휴지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또 청개구리는 습지 근처 산자락에서 겨울을 나지만 멸종위기종 1급인 수원청개구리는 논둑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밝혀져 희귀 개구리의 보존을 위해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t2.jpg» 세계적 보호종인 수원청개구리는 휴지기에 논둑 콩잎 위에 올라 사냥한다. 콩 타작은 큰 위협이다. 콩잎 위의 암컷 수원청개구리. 아마엘 볼체 박사 제공.

2월 산개구리와 두꺼비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양서류의 산란은 4월 하순∼5월 청개구리와 참개구리가 짝짓기를 위한 합창에 돌입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청개구리는 논이나 습지에서 수컷은 여러 달, 암컷은 수일∼수 주일 머물며 산란 행동을 한다.

번식이 끝나고 습지 근처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청개구리는 가을이 오면 월동지인 인근 산자락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땅속에서 동면한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설명해 왔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등 연구자들은 지난해 과학저널 ‘양서파충류’에 실린 논문을 통해 “청개구리의 휴지 생태를 처음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경기도 파주의 한 야산에서 청개구리 28마리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이들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t3.jpg» 청개구리의 한살이가 무선추적 등 첨단 장치를 이용해 밝혀졌다. 한겨레 자료 사진

청개구리들은 낮 동안 밤나무·소나무·단풍나무로 이뤄진 숲에서 주로 밤나무의 5m 이상 높이의 잎에 앉아 햇볕을 쬐고 먹이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도가 떨어지면 나무껍질이나 구멍, 낙엽 등에 파고들었다. 밤나무를 선호하는 이유는 나무가 커 구멍이 많고 느슨한 나무껍질 밑으로 숨어들기 좋아서라고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장 교수는 “휴지(brumation)는 월동을 위해 체내 대사활동을 크게 축소하는 단계”라며 “정상적인 생리 활동과 행동을 위해 평소 많은 효소가 대사활동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를 비활성화시켜 에너지 소비를 줄여 동면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기간에 청개구리의 몸속에는 동면을 촉발하는 단백질이 차츰 쌓이게 된다.

흥미로운 건 번식기가 아닌데도 청개구리 수컷은 이 기간에 나무꼭대기에 올라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래했다. 장 교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번식지가 아닌 곳에서 암컷을 유인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주로 영역을 알리기 위한 것 아닐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t4.jpg» 겨울잠에서 갓 깬 수원청개구리. 아마엘 볼체 박사 제공.

우리나라 청개구리의 동면에 관한 연구결과도 처음 나왔다. 아마엘 볼체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진화 최전선’ 3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의 휴지와 동면 행동을 무선추적과 실험실·현장 관찰을 통해 분석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청개구리는 9월 중순 논을 떠나 수백m 떨어진 야산으로 이동했다. 나무꼭대기에서 머물며 휴지기를 보낸 청개구리들은 10월 말∼11월 초 첫서리와 함께 사라져 동면에 접어들었다. 보첼 박사는 “겨울잠을 자는 청개구리는 얼어붙은 상태가 아니다. 겨울 동안 빙점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 숨어든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청개구리가 월동지와 번식지가 다른 데 견줘 수원청개구리는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우리나라 양서류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인 국제 보호종인 수원청개구리 보존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볼체 박사는 “수원청개구리는 원래 습지에서 월동하도록 진화했는데, 논에는 자연 습지가 없기 때문에 보호조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청개구리는 월동지로 이주하지만 수원청개구리는 논에 머물기 때문에 추수 과정에서 일부 개체가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청개구리는 휴지기에 논둑에 심은 콩의 위쪽 잎에서 곤충을 잡아먹는데, 콩 타작 과정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또 월동지인 논둑도 추수 후의 불 지르기 등 훼손이 빈번하다.

t5.jpg» 서해안 논에 산재돼 있는 수원청개구리 서식지(검은 부분). 아마엘 볼체 외 (2019) ‘생태학 및 진화 최전선’ 제공.

볼체 박사 등은 번식기 노랫소리로 파악한 결과 우리나라에는 수컷 수원청개구리 약 2500마리가 서해안의 14개 서식지에 분산돼 서식한다. 이들은 개체수가 적은 데다 감소 추세이고, 서식지가 분단돼 있어 수십 년 안에 멸종될 것으로 추정된다(▶관련 기사멸종위기 수원청개구리, 5곳서 ‘지역 절종’ 사태). 

볼체 박사와 장 교수는 ‘환경과학 최전선’ 4월호에 실린 ‘정책 제언’을 통해 수원청개구리가 서식하는 논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영농과 보존을 병행하는 방안을 시급하게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14개 서식지 가운데 보호지는 전혀 없다”며 “먼저 경기도 시흥과 파주, 충남 아산, 충북 충주, 전북 익산 서식지를 람사르 습지로 지정하고 수원청개구리를 보존할 수 있는 영농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원청개구리가 개체수 감소와 단편화 말고도 청개구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관련 기사수원청개구리가 벼포기 움켜쥐고 노래하게 된 이유) 잡종화가 진행되고 있는 점, 수질 오염, 항아리곰팡이 등 감염, 황소개구리 등 외래종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수원청개구리 보존을 위한 영농 방법으로는 농약과 제초제를 치지 않는 유기농법의 도입과 강화도 매화마름 쌀’ 판매처럼 상품화, 개구리의 휴식, 도피, 월동지로 중요한 논둑과 도랑 보존, 꼭 필요하더라도 논 주변 식물을 30㎝ 높이 이하로는 자르지 않을 것 등을 제시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maël Borzée et al, Microhabitat use during brumation in the Japanese treefrog, Dryophytes japonicusAmphibia-Reptilia 39 (2018): 163-175, DOI:10.1163/15685381-17000036

Borzée A, et al (2019) Interspecific Variation in Seasonal Migration and Brumation Behavior in Two Closely Related Species of Treefrogs. Front. Ecol. Evol. 7:55. doi: 10.3389/fevo.2019.00055

Borzée A and Jang Y (2019) Policy Recommendation for the Conservation of the Suweon Treefrog(Dryophytes suweonensis) in the Republic of Korea. Front. Environ. Sci. 7:39. doi: 10.3389/fenvs.2019.0003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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