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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단독] 박근혜 청, 갑질 근절·대체휴일을 “과잉 경제민주화”

등록 :2018-10-25 09:41수정 :2018-10-25 10:09


[박근혜 청와대 ‘캐비닛 문건’, 문을 열다 ③]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 ‘갑질’ 사회 문제 될 때
대리점거래공정화법률 등에 ‘유사·과잉 경제민주화법안’ 딱지
국회 입법 막으려 정부 부도 “행정입법 선제적 추진”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겨레 자료 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는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주관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비서실장 주관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 자료 등 이른바 ‘캐비닛 문건’을 여러 건 입수했다. ‘캐비닛 문건’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에 방치된 채로 발견된 이전 정부 문건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겨레>는 이재정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1000여건이 훌쩍 넘는 문서들을 분류하고 분석해 연속으로 보도한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걸고 출범했던 박근혜 청와대가 출범한 지 석 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여러 경제 개혁 법안을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선정해 관리했던 사실이 ‘캐비닛 문건’에서 추가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2013년 5월21일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유사 과잉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현황’을 보면, 유해화학물질 배출 기업의 처벌 강화,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 및 감사의 연봉 공개, 대체휴일제 도입, 최저임금 기준 인상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안들이 박근혜 청와대에서 문제 법안으로 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부는 현재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다. 2013년 5월이면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범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이 지난 5월28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작성한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 등: 14개 법안’(유사·과잉 14개 법안) 문건에는 대리점 계약해지 제한, 근로시간 단축, 남성 노동자 육아휴직 신청 시 의무화, 임대료 증액 제한 등 당시 여·야에서 발의하거나 추진 중이었던 경제민주화 법안 14개에 대해 추가로 문제 법안으로 지목했다. 2013년 5월은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밀어내면서 욕설과 폭언을 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 공개돼 ‘갑질 근절’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셀 때이기도 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지목한 경제 개혁 법안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박근혜 청와대가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지목한 경제 개혁 법안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무리한 입법 등으로 경제 구조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관련 법안을 검토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사·과잉 14개 법안’ 문건에는 ‘통상 마찰 우려’, ‘실효성 없음’, ‘과거 문제 된 사례 없음’ 등 추상적인 이유로 각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온다.
더불어 2013년 7월9일 작성된 ‘과잉 경제민주화 입법에 따른 문제점 및 대응방안’ 문건에는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사안까지 확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현 경제 상황이나 기업부담 등 고려 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적혀있다. 박근혜 정부 추진 과제가 아닌 경제 개혁 법안에 ‘유사·과잉’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같은 문건에는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한 ‘갑을 관계’ 시정을 위한 각종 입법시도가 본격화”됐다면서도 “갑을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공감하나, (전체 대리점을 대상으로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등 내용이 포함된) 대리점법 등 과도한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 경영위축, 협력업체 피해 증가,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또 “본사의 경영위축은 납품업체, 대리점 등 협력업체의 직접적인 매출 감소와 경영악화 초래” 등으로 본사가 잘 돼야 협력업체가 잘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중심으로 경제 개혁을 사고하는 측면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렇게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을 스스로 꼽은 박근혜 청와대가 이 법안들을 막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선제 입법’이라는 꼼수였다. 규제 수준이 낮거나 대상을 줄인 법안을 정부가 먼저 입법해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을 막겠다는 취지다. 2013년 11월28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경제민주화 관련 행정입법 선제적 추진’ 문건에는 “경제민주화 과잉입법 제정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부 법안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야당의 신규입법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2013년 11월17일 작성한 ‘유제품 분야 공정거래 모범거래 기준 제정’ 문건에서 이런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문건에는 전체 대리점이 아닌 유통기간이 짧아 물품 ‘밀어내기’가 관행이었던 유제품 분야에 한정해 모범거래 기준을 세우고 정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패키지화’해 발표하여 야당의 대리점법 입법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에 의지를 포장하기 위한 홍보에 대한 관심은 다른 문건에도 드러난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행정조치 홍보방안’ 문건에는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관련 6개 고시·지침 제·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해 을의 권익보호와 관련된 4개 고시 지침을 일괄발표”한다는 방안을 세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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