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활동가는 노동자다” 참여연대에도 노조가 생겼다



[인터뷰] 이조은 위원장, 김미성·유동림·최재혁·황수영 부위원장…“해치치 않아요, 산별노조 만들기가 목표”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한국사회 대표적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1994년 설립 이후 23년만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달 27일 조합원 37명 중 31명 전원 찬성으로 이조은 활동가가 초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고, 4명의 부위원장이 집행부를 맡게 됐다. 부위원장은 5년 미만 활동가 1명, 여성 1명 몫을 배정했고 임기는 2년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이조은 위원장(청년참여연대)과 김미성(운영팀), 유동림(시민감시팀), 최재혁(경제노동팀), 황수영(평화국제팀)씨 등 4명의 부위원장을 만났다. 참여연대에서 노동조합 설립의 의미와 평소 노동권 등 민주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 위원장의 공약 중엔 ‘참여민주주의 가치 실현’, ‘수평적 문화 확립’ 등이 있다. 위원장 1명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뜻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인터뷰 자리에도 집행부 5명이 모두 참석했다. 
▲ 미디어오늘은 지난 2일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집행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왼쪽부터 이조은 위원장, 김미성 부위원장, 최재혁 부위원장, 황수영 부위원장, 유동림 부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 미디어오늘은 지난 2일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집행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왼쪽부터 이조은 위원장, 김미성 부위원장, 최재혁 부위원장, 황수영 부위원장, 유동림 부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에선 보직을 맡은 활동가라 하더라도 일반 기업의 사용자와 같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신념과 열정으로 낮은 임금과 혹독한 노동조건을 감당해야 마땅하다는 인식도 노동조합 설립의 걸림돌이었다. 이전에는 ‘평간사협의회’가 활동가들의 뜻을 모으는 창구였다. 
노조를 왜 만들었는지 물었다. 

“활동가가 노동자라는 인식이 시민단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개개인이 문제제기한 건 있었지만 의견으로 모인 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근래 들어 가속도가 붙었고. 희생과 봉사, 좋은 일을 한다는 당위성에 기반 했을 뿐 노동자로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지금도 작은 단체들은 대표 등 소수의 선배들이 활동가도 노동자라는 인식 없이 운영하고 있다. 참여연대도 예전엔 그랬는데 규모가 커지고 인식이 달라지면서 (노조를 만들자는 주장에)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김미성 부위원장)
“모든 관계가 노동법에 따라 정의돼 있는데 노조만 없는 상황이다.” (황수영 부위원장) 
참여연대 노조설립 후 가장 많이 쏟아진 기사는 국내 비영리 민간단체 중 첫 노조라는 내용이었다. 최 부위원장은 “비영리냐, 영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중소기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론수렴의 루트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그린피스 등 국제 NGO 한국지부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데 참여연대만 주목하는 데 대해 서운해 한다는 반응도 전해졌다. 
▲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렸다. 사진=참여연대 노조 제공
▲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렸다. 사진=참여연대 노조 제공

김 부위원장은 “늦었지만 지금이 노조를 만들 적기였다”고 말했다. 활동가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는 꾸준히 있어왔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지난 2015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비정규직 문제 등을 비판했다며 직원·활동가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5·18이라는 민주주의를 다루는 곳에서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또한 지난 8월 ‘단체운영이 반인권적’이라며 유엔인권정책센터 인권활동가 4명이 전원 사퇴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정치인 발언에 대한 성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거나 활동가들에게 고성과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등의 행위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최근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이제야 공론화돼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며 “활동가들의 노동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조직에서 쫓겨난 사례들은 꾸준히 있어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역시 평화박물관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채용 문제 등을 지적한 이후 갈등 끝에 쫓겨났다. 평화박물관 사건은 참여연대 조합원들이 그를 노조위원장으로 추천한 이유 중 하나다.  
황 부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예전에 규모가 작은 단체에서 일했다. 왜 그런(낮은) 임금과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지를 친한 친구들도 이해를 못했다. 노동조합이 해결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의와 열정에 기대서 일하는 걸 조금이라도 개선을 해나가려고 하지 않으면 새로운 친구들이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의 노동현실이 처참한 건 활동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해 온 것일까. 최 부위원장의 분석은 이렇다. “지금은 활동가들이 회의하다 잡혀가는 세상은 아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몇 명이서 결정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힘을 몰아주는 분위기였다. 당시엔 그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었다.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명망가 위주의 조직운영으로 시대의 변화와 괴리가 생겼다. 곪았던 문제가 이제 터지고 있는 것이다.” 
▲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렸다. 사진=참여연대 노조
▲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렸다. 사진=참여연대 노조

그동안 참여연대에서는 각종 노동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을까. 이 위원장은 “노사협의회 내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처리했다”며 “다만 협의기구여서 거기서 뭘 결정하는 건 아니고 권고 수준이라 다룬 사건은 많지만 잘 해결된 사건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업장의 인권 문제에 관한 논평을 야근하며 쓰는 활동가, 최저임금 1만원 피켓을 들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시급 1만원을 받지 못하는 박봉에 시달리고 노조 설립 캠페인을 벌이면서 당장 자신들의 노조조차 없던 조직, 참여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강제할 수단을 갖지 못했던 게 참여연대의 현실이었다.
원래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쉽게 돌파하기 어렵다. 김 부위원장은 “시민사회 전반에 노동권 침해사례가 많다”면서 “이슈가 되지 않는 건, 활동가들이 자기 착취를 하다가 자기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공회전하다 스스로 소진돼 조직을 떠나는 게 반복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활동가에게 많은 책임과 부담이 돌아가지면 실제로 활동가에게 결정권한은 없는 게 일반적이다. 
▲ 지난달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조하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출범을 선언한 참가자들. 참여연대도 이 운동본부에 참여했다. 사진=참여연대
▲ 지난달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조하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출범을 선언한 참가자들. 참여연대도 이 운동본부에 참여했다. 사진=참여연대

그렇다고 노조설립이 참여연대 내에서 적을 만들기 위한 행위로 오해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최혁재 부위원장은 “참여연대 활동가가 60명이 넘어가니까 공식적인 게임의 룰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휴가를 낼 때도 선배한테 가서 ‘하루만 쉴게요’ 이렇게 하는 것과 구속력 있는 제도로 보장하는 것은 다르다”며 “노조를 파업의 도구처럼 여기기보단 연대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유 부위원장은 “참여연대에서 소통이 안 됐다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에 만 기반 해 소통하는 데 한계가 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에 입사한 최 부위원장이 집행부 중 참여연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활동가였다. 최 부위원장에 따르면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 참여연대 구성원은 30명 수준이었다. 그러다 3~4년 전에 선배들이 ‘우르르’ 떠났고 신입 간사 10여 명을 한꺼번에 뽑았다. 이 위원장, 유동림·황수영 부위원장은 모두 당시인 2014년 입사한 활동가들이다. 김 부위원장은 참여연대에 온 지는 7개월 된 신입간사다. 노조 설립은 최 부위원장과 같이 허리 역할을 맡은 간사들의 허탈감, 조직변화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는 신입 간사들의 요구가 만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참여연대 노조는 곧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노조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유 부위원장은 “권한을 좀 더 분명히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권력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동안 어느 누구도 권력을 가진 이가 없다는 대답이 많았다고 그는 전했다.  
“간사들은 권한이 없고 결정권자들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선배들에게 권력이 있는 거냐, 임원들에게 있는 거냐, 둘 다 아닌 것 같다. 상임위에서도 ‘이렇게 하자’고 뚜렷하게 결정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나 결론은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 흘러가고 있다고 해야하나(웃음). 노조를 만들면서 이런 가이드라인부터 만들고 싶다.”
황 부위원장은 “노조가 잘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내·외부적으로 (노조가) 위협적이고 누굴 해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을 것”이라며 “또한 17명의 아직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간사들도 가입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에서 노조 가입대상자는 53명인데 이 중 37명이 가입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단체 산별노조를 만드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며 “헌신에 기반해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도 노동자이며 이들의 노동권도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의 공약이기도 했다. 노조 창립 직후부터 참여연대 노조 집행부에는 각종 시민단체에서 비공식적으로 ‘노조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자문을 구할 예정이다’ 등의 문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사용자 측 인사를 확정하는 문제부터 현안에 따라 보통의 노사관계와 다를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하는 것도 과제다. 
▲ 지난 3월11일 박근혜 탄핵심판을 기념하며 열린 마지막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자축하는 의미로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월11일 박근혜 탄핵심판을 기념하며 열린 마지막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자축하는 의미로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참여연대 활동가들인만큼 현안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집회에서 청와대로 행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일부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청와대 행진을 취소했다.  
유 부위원장은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이런 피켓을 들고 행진했는데 우리는 듣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에 대한 경고보다는 행진에 대한 재연이나 촛불의 의미를 담자는 것이었는데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진보언론도 그렇고 운동조직도 그렇고 반성이 필요하다”며 “과거 독재정권 때는 민주주의 얘기만 해도 공감을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실력을 쌓고 시민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참여연대도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민원전화도 많이 오고 탈퇴한 회원들도 있었다”며 “퇴진행동에 참여하는 참여연대 임원들은 시민들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넓게 볼 때 촛불이후 시민사회가 어떻게 성숙하게 나아갈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