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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기독교공동체의 불교공부

기독교공동체의 불교공부

조현 2019. 10. 29
조회수 622 추천수 0


법인-.JPG» 지난 18일 강원도 홍천밝은누리에서 법인스님이 불교강의를 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견문이 좁은 사람들을 일컬어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본다’(坐井觀天·좌정관천)고 했다. 우물 속에 살던 물고기가 도랑에 나오고, 도랑에서 더 큰 천으로 가면 드넓은 세상을 보게 마련이다. 그 ‘넓은 천’ 홍천(洪川)으로 나온 이들이 있다.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 있는 공동체마을 ‘밝은누리’에서다. 밝은누리는 지난 17일부터 한 달간 ‘옛 슬기를 품고 새 길을 걷는다! 마을이 배움 숲이다!’란 제목으로 ‘서석인문예술 한마당 잔치’를 열고 있다. 이 잔치엔 이만열 전 숙명여대 교수와 한인철 연세대 교목실장 등 기독교인들과 장영란 농부, 장회익 전 녹색대학 촌장, 황윤 영화감독뿐 아니라 한학자 기세춘 선생과 불교의 법인 스님, 천도교(동학)의 김춘성 종무원장 등 이웃 종교·사상가들까지 와서 강연을 한다. 밝은누리는 개신교 공동체다. 다른 종교의 진리를 배우는 것을 금기시하며 배타적인 경우가 많은 개신교에서 밝은누리의 시도는 혁명적이다. 그러나 밝은누리는 이미 공동체를 연 30년간 서울 인수동과 이곳 홍천 등에서 대안적 삶을 선도해 왔다는 점에서 이런 선구적 행동이 의외만은 아니다. 

 밝은누리 창립자이자 밝은누리의 고등대학통합교육과정인 삼일학림 교장인 최철호(50) 목사는 지난 17일 인문마당을 열며 “어떤 철학이나 전통이든 모든 인류가 똑같이 깨달은 것은 하늘을 공경하고 생명을 사랑한다는 가르침인데, 오늘날 하늘과 땅을 잊은 사람들은 오만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옛 슬기를 배우는 이런 장이 잊어버린 하늘을 찾고, 땅과 함께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더욱더 철저한 그리스도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세춘-.JPG» 밝은누리 사람들에게 얘기중인 기세춘선생



기세춘과-.JPG» 기세춘 선생을 모시고 단체사진을 찍는 밝은누리 식구들

손잡고-.JPG» 홍천 밝은누리에서 1박2일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기세춘선생과 밝은누리 삼일학림 최철호 교장선생이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누고 있다.




 첫번째 외부초청자로 강단에 선 이는 묵자의 대가 기세춘(82) 선생이었다. 삼일학림에서는 이미 기선생이 쓴 <묵자-천하에 남이 없다>란 저서를 읽고, 6개월간 묵자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바 있다. 이들은 예수와 같은 목수 출신으로 민중 편에서 신분차별과 사유재산제에 반대하고 만인 평등을 외쳐, 공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묵자를 통해 예수와 상통하는 생명관을 발견했다. 조선의 유학자 기대승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머니가 전북 정읍 묵점마을에 만든 교회에 다니며 동·서 종교 사상의 회통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기 선생은 이날 강연에서 “원래 요순시대의 하나님은 민중의 하나님이었으나 왕권 전제시대에 들어서며 하나님이 왕의 수호천사로 변질됐고, 왕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천자·天子)이라고 불렀다”며 “이를 묵자가 일어나 본래의 민중해방의 하나님으로 복원시켰고, 이어 예수가 보잘것없는 자들의 해방과 평화의 하나님을 되찾았다”고 해석했다. 기 선생은 “묵자의 ‘천하무인’은 천하만민이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요 동포라는 공동체라는 것인데,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밝은누리공동체를 직접 보고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독서-.jpg» 인문학공부를 하는 어른들을 보며 틈만 나면 책을 보는 밝은누리의 아이들


식사-.jpg»  인문학공부를 하는 사이 점심 식사를 하는 밝은누리 사람들


강의-.JPG»  부처의 가르침과 21세기를 주제로 불교 강의를 하는 법인스님과 강의를 듣는 밝은누리와 서석면 사람들




 이어 18~19일 이틀간 법인 스님(57)이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전했다. 밝은누리 공동체원들은 이미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공부한 ‘인문학도 그리스도인’답게 <법화경>, <화엄경> 등을 읽고 불교공부를 준비했다. 조계종의 승려들을 교육하는 교육원 교육부장과 실상사 화림원 학장을 지낸 스님이 전하는 공(空)과 무아(無我), 연기(緣起) 강의에 130여명의 그리스도인이 무려 10시간 넘게 집중한 것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특히 이틀째 오후 질의 응답시간엔 기독교와 불교 간에 격의 없는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청중들은 “절에 가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다”거나 “스님들은 왜 같은 색 복장에 특색 없이 똑같이 머리를 깎느냐”거나 “사찰의 불화나 불상은 왜 그렇게 무섭게 생겼느냐.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냐”며 편견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중3이라는 어린 나이에 왜 출가를 했느냐”거나 “절에선 몇시에 일어나느냐”는 개인적인 궁금증까지 쏟아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사회 및 이웃종교인들과 소통해온 법인 스님은 “중학교 1, 2학년때 광주중앙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거나 “새벽까지 책을 보다가 늦잠을 자기 일쑤다”는 진솔한 답변을 하며 “두상이 예쁘니 머리 한번 깎고 출가체험 해볼테냐”고 ‘권유’하기도해 폭소를 자아냈다.

 정인곤(38) 청년아카데미 사무국장은 “자유롭기 위해 출가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스님들이 별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며 “왜 출가하는 것이냐”고 일침을 놓았다. 법인 스님은 “집에서 절로 공간을 이동하는 게 출가가 아니고, 목사와 신부가 된다고 ‘성직’(성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행위하는 것이 출가이고 성직일 것”이라면서 “자유롭지 않게 보였다면, 머리를 깎아 놓고도 기존의 업습대로, 끊임없는 결핍감으로 권력과 명예와 소유를 탐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목사와스님-.jpg»  홍천 밝은누리 점심 식사시간에 함께 기도를 하는 밝은누리 창립자 최철호 목사와 법인 스님

닭장앞-.jpg»  휴식시간에 닭장 앞에서 불교강의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법인스님과 밝은누리 공동체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중-.JPG



붓다--.JPG» 불교강의를 마치고 함께한 법인스님과 밝은누리 사람들
 불교의 핵심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직장인 김나경(41)씨는 “부처님은 인생은 고(苦)라고 했는데, 불교 수행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법인 스님은 ‘게임중독에 빠져 고통받던 한 아이가 방학 동안 암자에서 함께 산 뒤 내려가서 게임이 시시해졌다’고 게임을 끊었던 사례를 전해주며 “고통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조건이 만나서 생긴 것이기에 다른 원인과 조건을 만나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서 “내 마음이 괴롭다면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 불안과 두려움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내가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매우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고 답했다. 삼일학림 학생 김주은(21)씨는 “통상 남이 내게 상처를 줬다고 남과 나를 가르는데, 어떻게 ‘불이’(不異·다르지 않음)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법인 스님은 “나는 매실 주스를 마시면 탈이 나는데, 매실이 좋다며 무조건 먹이려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다”면서 “전체주의에 매달리기보다는 상대의 주체성과 개성을 중시하고, 나 자신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소통의 비결”이라고 답했다. 
 불교 강의를 들은 삼일학림 학생 최의건(21)씨는 “불교에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마음이 부딪치며 괴로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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