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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5일 토요일

흔들리는 유라시아...러시아를 주목하자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교수의 발제에 대해
2018.09.15 15:05:50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새로 상상하는 것 또한 함께 간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구상하기 위해서 최 교수는 "한반도,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의 발제와 관련해 역사학자인 이병한 원광대학교 교수가 토론문을 제시했다.


1. 동아시아의 ‘몸’ - 원/근(遠/近)의 구조조정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일대 회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세계를 몸으로 직접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멀고/가까움의 감각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매개를 통하지 않는 맨몸의 부딪힘/부닥침이 소중하다. ‘러시아 월드컵에 동아시아는 없었다.’의 반면으로 동아시아(론)에 러시아는 있는가? 라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한국은 좀체 실감이 덜하지만 한반도의 장래를 ‘남북연합’으로 상상한다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이(有二)한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이다. 즉 러시아는 ‘이웃나라’이다. 미국은 멀지만 친숙하고, 러시아는 가깝지만 소원하다. 탈냉전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냉전의 후과는 (남한에서) 오래다.   

그러나 실상 19-20세기 동아시아의 천하대란에도 러시아는 깊숙했다. 아편전쟁과 ‘서구의 충격’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관 또한 편향이고 편벽된 것이다. 홍콩(영국)은 1997년, 마카오(포르투갈)는 1999년 모두 중국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새 천년을 맞이하고도 유독 변함없이 러시아의 강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 연해주이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대청제국에서 러시아제국으로 이양된 땅으로,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광대한 영역이다. 이곳이 크림반도에서 발족한 러시아(동방정교 국가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후예)의 영토가 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신시대’가 열린 것이다. 1860년 조선과 러시아의 접촉은 병인양요(1866)나 신미양요(1871)보다도 이른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되지못한 1948년 북조선의 최고지도자가 키릴문자로 스탈린에서 손 편지를 쓸 수 있는 김일성이었다는 점 또한 범상치가 않다. 

그러함에도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맞춤하여 발진한 ‘동아시아론’은 러시아/소련이 1860년 이래 줄곧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몸통’이었다는 사실에 소홀하다. (혹은 안다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했다.) 아세안에서 가장 가까운 베트남의 하노이만 해도 비행기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시간, 하바롭스크는 2시간 30분이다. 도쿄보다도 더 가깝다. 서구주의와 아시아주의의 길항 속에 ‘동구’(東歐)에서 동진해온 러시아를 망각하는 것은 혹 식민(일본)과 냉전(미국)으로 조련된 인식의 왜곡, 굴절된 몸 감각의 소산이 아닐까? 유라시아의 북방경로를 통한 ‘동구와 동아의 상호진화’는 남한 지식인의 눈에 좀체 들어오지 않는다.  

2.  

동남아/아세안의 강조에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인도차이나) 경험을 통해서 기왕의 동아시아(론)를 졸업했다.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베트남조차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지적하는 바,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서아시아로 연결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동북아와의 가장 큰 차이는 유럽의 유산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서구와 직결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와는 2000년, 이슬람과는 천년, 유럽과는 반 천년의 유산이 켜켜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 동남아/아세안이다. 하기에 베트남 일국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도 중국(동아시아)과 인도(남아시아)와 프랑스(서구)와 소련(동구)을 몽땅 아울러야 했다. 박사논문의 후속작업으로 베트남현대사를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쓰고자 하다가 그만두고 ‘유라시아적 시각’으로 회향했던 까닭이다. 동남아/아세안의 모든 나라가 그러할 것이다. 즉 동남아와의 조우가 소중한 것은 동북아+동남아=동아시아, 라는 구도의 한계를 체감(體感)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센토사선언의 싱가포르 또한 서구(영국)의 유산 없이는 세계적인 허브도시가 되지 못했을 터이다. 즉 동남아에서 서구는 무척 가깝다. (역으로 동북아는 서구보다 러시아/소련 연결망을 통하여 ‘동구’가 더 가깝다.) 

3.  

동아시아의 ‘몸’ 감각의 쇄신을 강조하는 까닭은 남/북 연합을 도야하는 훈련으로서도 제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1948년 이후 북조선의 공간감각, 역사 감각이 ‘동아시아’로 한정될 수 있을까? 그러하지 않을 것 같다. 북조선이 열성으로 참여했던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기구는 도리어 동아시아(남한, 일본, 대만)를 척지는 것이었다. 최원식 선생도 익숙할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열렸던 주요 도시 또한 방문해 보았다. 아시아 본부가 있었던 콜롬보(스리랑카)와 아프리카 본부가 있었던 카이로(이집트)와 가장 큰 회의가 열렸던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까지. 곳곳에 북조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동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작동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결망 속에 깊이 참여했던 북조선의 감각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냉전기 반세기 동안 북조선과 긴밀했고, 탈냉전기 사반세기 동안 남한과 친밀해진 경우가 많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가 그러하고, 몽골 및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며 동유럽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최종 낙착지로는 싱가포르가 선정되었으되, 북미정상회담의 유력 개최지로 몽골이 거론되고, 카자흐스탄은 장소 제공을 자청했던 사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미동에서 격동으로 진입했다면, 그 뜻은 분단체제를 주조했던 세계체제가 근본적인 이행기에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 또한 세계체제적 지평에서 조망해야 한다. 작금 세계체제의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거시적 안목에 바탕한 대전략을 수립해야 단기적-국지적 전술 구사가 가능하다. 나는 ‘흔들리는 유라시아’라고 표현하고 싶다. 1945년 이후 신대륙 미국이 구대륙 유라시아를 분할 지배했던 세계질서가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냉전체제, 서아시아의 대분열체제, 남아시아의 대분할체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이삼성)가 죄다 동요한다.  

당장 유럽부터 서방(The WEST)이 갈라선다. 대서양을 마주한 구/미가 분열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유럽이 자주성을 획득해간다. EU에서 미국의 뜻을 대변했던 영국은 이탈했다(브렉시트). 그 반면으로 서유럽과 러시아/동유럽이 근접해 간다. 군사적으로도 NATO에서 자유로운 유럽통합방위군을 창설하고, 달러와 연동되지 않는 유럽 독자의 금융결제시스템을 모색하고 있으며, 에너지 연결망은 미국(트럼프)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가동되고 있다. 동서유럽 냉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독일/프랑스와 러시아의 합작으로 해결해간다. 서유라시아만도 아니다. 남유라시아의 이란 핵합의에서도 신대륙 미국만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독일/프랑스 및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가 이란과 손발을 맞춘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의 재건 또한 러시아와 중국, 인도의 합작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러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이 모두 19세기 이전의 지역질서 재건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연합/연대/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대통합/재통합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신대륙이 구대륙에서 독립했던 18세기(1776) 이래 작금은 구대륙이 신대륙에서 독립하며 신/구 대륙 간 재균형을 달성해가는 대반전의 형세에 들어선 것이다. 구대륙의 재활/재건/재생 운동과 신대륙의 이탈 선언(America First = 트럼프 독트린 = 21세기 판 먼로 독트린)이 오묘하게 합세하는 모습이다. 한반도의 (소)분단체제 해소 또한 이러한 신/구 대륙간 지구적 권력 변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구미(歐<->美)와 아태(亞<->太)의 멀어짐 속에서 구아(歐-亞)의 다시 가까워짐(New Silk Roads)과 연동하는 남북연합론 및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다른 미래와 다른 역사는 직결된다. 19세기 서구 패권 이전 유라시아의 초기 근대에서 작동했던 세계질서에 대한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중국-인도-페르시아-오스만-유럽-러시아 네트워크)가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갈수록 동아시아보다는 동유라시아라는 개념/관점이 한국/한반도의 체감(몸 감각)에도 더 적합해지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5.  

동아시아론의 후학/후속세대이자 역사학자로서 기여할 방법으로 <동구의 충격 : 대항하 시대>라는 발상을 키우고 있다. 중국과 가장 넓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이다. 2030년이면 신칸센이 일본 본토와 홋카이도를 잇고, 홋카이도는 다시 사할린과 다리로 이어지고 사할린은 연해주로 터널로 연결된다. 즉 일본이 섬나라가 아니게 되는 바, 그 핵심 연결망 또한 러시아이다. 백 년 전 ‘만주의 모스크바’ 하얼빈은 프라하(체코)와 소피아(불가리아)까지 연결되는 동방정교회 네트워크가 활달했다. 아무르 강을 비롯해 세계 10대 강의 4대 강이 시베리아를 흐른다. 서구가 인도양을 통하여 아시아로 진출했다면, 동구는 이 강을 통하여 천년동안 동진해 온 것이다.  

서구에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있었다면, 동구에는 대항하(大航河) 시대가 있었다. ‘동구와 동아의 만남’은 150년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축이었다. 실로 러시아의 아시아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부터 울란우데, 치타, 블라디보스토크 등 굉장하다. 러시아의 신문과 잡지를 펼치면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동양주의에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를 포갤 수 있는 안목이 활짝 트인다. 중국의 한학과 일본의 동양학과 미국의 지역학을 러시아의 동방학에 견주는 학문의 도야 속에서 한반도의 동아시아론 2.0도 만개할 수 있지 싶다. 

그런 지적/사상적/문명적 재균형이 달성되어야 ‘주변 4대 강국’이라는 상투어 또한 실질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업에서도 일찍이 키릴 문자권과 긴밀했던 북조선 학계와의 ‘남북연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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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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