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모르면 간첩, 마을 사람들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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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2014. 08. 01 조회수 8675 추천수 0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 <4>
노인회장님 딸 이름이 봉순이라고 진짜 극진히
북쪽서 온 근사한 남친 만나 아들-딸 낳았으면
<1>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http://ecotopia.hani.co.kr/205372
<2> 잠자리가 고압선 철탑 꼭대기라니! http://ecotopia.hani.co.kr/205487
<3> 낙원 같은 고향 떠나 혼자 온 까닭은 http://ecotopia.hani.co.kr/20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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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가리가 먹이 터에 다가오자 날개를 크게 펴고 위협하며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한국과 일본은 무슨 차이일까.
나는 알 거 같아. 말해볼까? 자동차를 운전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사람들은 하나같이 급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운전하는 거 같아. 나는 엉망이면서 상대방만 탓을 해. 나는 기초질서 하나 잘 안 지키면서 관료들에게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선반에서 가방을 꺼내거나 뒤에서부터 일어나 나오는 거, 바로 그 차이 아닐까?
조심하기는커녕 날아가는 걸 보려고 되레 차를 쌩 몰아
또 있어. 봉순이 네가 저만큼 논에서 먹이를 먹거나 농로에 나와 있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서행을 해야 하잖아. 하지만 새가 혼비백산 날아가는 걸 보려고 속도를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속도를 올린다는 거야. 황새인지 두루미인지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애교로 넘길 수는 있어. 그러나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한다면 후진(?) 국민 소리밖에 더 듣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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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가 다가오면 잠시 피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황새는 자리를 지키는 집념이 대단하다.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는 곳 농수로에 흰뺨검둥오리 두 가족 약 20마리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저녁시간에 근처 동남아 근로자 세 명이 느닷없이 돌멩이로 새끼 오리들을 공격한 거야. 며칠 전 배터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던 녀석들이었지. 너도 보았으니까 누군지 알 거야 아마. 오리들은 혼비백산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었고 그 다음날까지 어미가 새끼들을 눈물겹게 찾아다니고 있었어. 겨우 찾은 새끼는 두 마리뿐. 나는 우리와 이런 친구들의 의식 차이가 일본과 우리와의 차이쯤 된다고 생각해. 점수가 너무 짰나? 아무튼 그래.
화포천에서 너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어. 거긴 물고기잡이 금지구역인데 동남아 근로자들이 낚시와 그물을 들고 나타났어. 내가 알아듣게 설명한 후 보냈는데 잠시 후 나이 지긋한 한국 사람이 낚싯대 하나를 들고 왔어. 내가 ‘이곳은 낚시 금지구역’이라고 말했더니 뭐 이 정도는 괜찮대나? 그래서 낚시를 하지 않기로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한국인이 그러면 동남아 근로자들도 우습게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점잖게 얘기했는데 알아듣는 눈치였어. 참 다행이지? 낚시를 하면 낚싯줄이나 낚시바늘이 유실될 테고 버려진 낚시바늘에 미끼를 물고기가 먹으면 새들은 물고기를 먹게 돼. 결국 그곳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피해를 입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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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가리와 비교되는 몸집. 그런데 사람들은 왜가리와 황새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지성이면 감천, 김해시청에서 인공 둥지 만들어주기로
하여튼 봉순이 네 덕분에 요즘 마을 안팎으로 잔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단다. 첫째, 내가 땡볕에 하루 종일 앉아 너를 바라보는 바람에 우선 마을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황새와 백로와 왜가리를 구분하게 되었고 황새가 어떤 새이며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살고 황새가 사는 곳은 사람 살기도 좋은 곳이라는 거 말이다. 그리하여 네가 자주 활동하는 들판 양쪽 두 개의 마을 사람들은 너를 모르면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큼 너는 유명인사(?)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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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새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
둘째, 너에게 인공 둥지와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정말로 지대한 변화가 온 거지. 자동차들도 너를 발견하면 서행하기 시작했고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너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어.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 뭐냐면 퇴은마을 노인회장님의 시집간 딸 이름이 ‘류봉순’이라는 거야. 정말 묘한 인연이지? 특히 류봉순 오빠 되는 분이 류우상이라는 분인데 가족들과 함께 너를 우상처럼 돌보겠다고 약속했단다. 역시 내가 이름 하나는 잘 지었나봐. ^.^
엊그제는 화포천습지생태관에서 도요오카에 다녀온 보고회 겸 특강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도 초대했어. 강의를 마치고 진지한 얘기들이 오가고 봉순이 네 얘기로 꽃을 피웠지. 그리고 빅뉴스! 김해시청 정책과에서 전화가 온 거야. 김맹곤 김해 시장님이 봉순이 인공 둥지를 빨리 지어주라고 했다는구나. 세상에 이런 경사가!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결국 진심이 통한 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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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요오카 황새마을 인공 둥지에서 쉬고 있는 황새.
내 역할은 세 개 정도의 인공 둥지를 지어 주고 두 사람 정도 너를 전담하는 인력이 마련되는 데까지라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봉순이 남친도 생길 테고 잘하면 아이들도 생기고 화포천도 예산처럼 황새마을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런 후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지?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영영 떠나는 건 아니야. 너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싶으니까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한 게 있어. 올 가을쯤 나는 도요오카로 날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동안 일본어도 더 열심히 배워서 도요오카 황새마을에 가서 너의 종족들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 거야. 적어도 한 일 년은 머물면서 보고 들어야 너희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야.
시청 황새공생과장 명퇴 뒤에 아예 황새마을 만들기 나서
도요오카 황새마을에서 생산된 쌀은 가장 먼저 어린이 급식용으로 사용됐다고 해. 어린이가 먹는 쌀이니 당연히 날개 돋힌 듯 팔렸다고 하더라. 국제황새회의 때 ‘밥먹기운동본부회장’이라는 분이 소개되었어. 밥 먹기 운동본부라니 나는 장난인 줄 알았어. 그러나 정말 그런 모임이 있었고 그분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어.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딱 한 마디만 했어. “밥을 먹읍시다. 밥을 먹어야 황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감동스러운 메시지가 어디 있겠니. 그렇구나. 너희들은 논습지에서 사는 족속이니 논이 없으면 너희들도 없으니까. 나도 이참에 ‘밥 먹기 운동’ 한 번 해볼까?
지난해야. 한일논습지심포지움이 창원에서 열렸었는데 그때 도요오카 시장이 이런 말을 했어. “우리는 100년을 내다보고 황새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제황새회의 때도 같은 말을 하더구나. “우리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100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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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수집한 황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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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새 복원 효과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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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으로 방사된 황새 가락지 표시. J0051 봉순이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 도요오카에서는 시장까지 와서 습지와 황새복원에 대해 설명하고 람사르습지재단 이사장도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정작 시청 담당 과장 한 사람은 겨우 20분 앉았다가 일어나더군. 화장실 가나 싶었는데 아예 나타나지 않았어.
도요오카 황새마을에 사다케 라는 전설적인 분이 있어. 시청 ‘황새공생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명퇴를 하고 아예 황새마을 만들기에 뛰어든 분이야. 대단한 철학을 가진 분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봉순이 너도 태어난 거야. 이분은 ‘지금의 생태환경이 나의 손자들이 살기에 적합한가?’를 진짜 고민했대. 내가 ‘봉순이를 열심히 지켜보겠다’고 했더니 뭐라는지 알아? ‘지켜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야. 사람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지. 가슴이 뜨끔하고 전율이 느껴졌어. 이 사람들 생각이 이래.
독일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던 황새들이 이동을 멈춘 적이 있었어. 원인을 알고 보니 스페인의 쓰레기장 때문이야. 황새들이 쓰레기장에서 먹고 잤던 거지. 나쁜 음식을 먹은 황새들은 큰 피해를 입었어. 환경은 이렇게 중요해.
너를 만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으니 너는 나의 멘토
7월 25일에는 김해에 귀한 손님도 오셨단다. 바로 네가 태어난 도요오카에 사는 어린이들이 너를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아이들은 농로에 미리 준비한 미꾸라지를 풀어주기도 했고 나는 생물다양성과 환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어. 아이들은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가 너의 친구들에게 네 소식도 전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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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요오카 황새마을 아이들이 봉순이를 보러 와 농수로에 미꾸라지를 풀어주고 있다.
하여튼 내가 살아오는 동안 크고 작은 여행이 있었지만 이번 도요오카 여행이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여행이었단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라고 있어.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드만’을 멘토로 삼고 네 개뿐인 손가락으로 죽어라 연습했대. 그 말을 들은 리차드 클레이드만은 ‘내가 왜 피아노를 쳤는지 이제야 할 거 같다’고 했다는구나.
나도 최근에 그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 뭐냐면, 지난 수십 년간 사진을 찍어오면서 갈등도 많았지만 봉순이 너를 만난 후에야 왜 내가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된 거야.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처럼 보람있는 일이 없었거든. 그러니 너는 나의 멘토가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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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에 미꾸라지를 풀어주는 장면. 미꾸라지들은 논에서 번식하여 넉넉한 먹이를 제공할 것이다.
봉순이 너로 인해 나는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 도요오카 행사를 마치고 습지연대 모임에서 화포천습지생태관 곽승국 관장의 ‘봉순이 일기‘가 다시 발표되었고 나한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어. 나는 봉순이 네가 날아온 이유를 나름대로 말했어. 첫째,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에 새삼 불을 지피러 왔을 것이다. 둘째,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봉순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넷째,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손자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일 것과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랬더니 긴 박수가 쏟아졌어.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곽승국 관장도 봉순이 네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대.
달밤 화포천 물 속 둥근 달은 바로 익숙한 그이 얼굴
사람들이 그래. ‘스님은 세월호 침몰, 사대강, 밀양 고압선 철탑, 원자력 발전, 제주도 해군기지, 골프장, 설악산 케이블카 등등 사회적 이슈에 별 관심이 없나봐요’라고. 또 어떤 이는 ‘스님이 목탁 치고 염불이나 할 것이지’라고 해. 그러나 모르는 말씀이야. 내가 들판에 앉아있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목탁이고 염불이 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걸.
‘달빛 길어 올리기’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와.
“왜 이 일을 하시죠?”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나도 사람들이 물으면 “아무도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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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의 후예라더니…. 봉순이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며 찍은 모습.
행사가 있었던 도요오카 시민회관 휴게실에 ‘파도만리’라는 글이 있었어. 오늘 내가 만드는 작은 물결이 훗날 커다란 파도가 되어 세상으로 퍼진다는 뜻일 거야.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 그 글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봉순이 너는 역시 특별하고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 봉순이 너는 남쪽에서 왔으니 북쪽에서 온 근사한 남친과 사귀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유전적으로 건강한 2세를 보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길 기도할게.
달 밝은 밤, 너는 잠이 들고 나는 늦게까지 화포천에 앉아 있었어. 물속에 비친 둥근 달에 누군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겹쳐졌어. 아아, 바로 그건 그이의 얼굴이었어. 익숙하고 기분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얼굴.
안녕 봉순아.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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