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5.14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법원 설치를 약속하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던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노동법원은 노동계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요구된 의제다. 이미 2004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노동법원 설치안이 마련됐던 데다가, 18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관련 법안이 발의됐을 정도로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어느 사안보다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의제로 보이지만, 실제 노동법원의 취지인 신속성과 전문성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법원이란 행정법원이나 가정법원처럼 노동 사건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다. 현재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와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지방-중앙)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이어질 경우, 행정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사실상 5심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 민사소송까지 이어진다면 8심까지 더 늘어난다.
실제 부당해고를 인정받기 위해 1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시간동안 법정투쟁에 매달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권리구제에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노동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더욱 늘어나게 돼,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욱이 일반 법관의 경우 노동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어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존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조정해 노동법원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에서도 형태는 다양하지만, 동일한 취지에서 노동법원을 운영 중이다.
‘노동 전문가’ 권영국 변호사는 16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현재 시스템으로는 노동 사건이 일반 사건처럼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든, 불법파견이든 실제 법원에서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씩 소요되고 있다”며 “노동 사건은 시의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실제로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지대 등 비용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속한 재판 진행과 노동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전문성,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등이 보장된 노동법원의 도입을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노동법원 도입을 주로 반대해 온 쪽은 경영계와 노동부였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법원 도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데 대해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원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쟁점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리된 쟁점으로는 ▲노동위원회의 역할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일반 법관 외에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추천한 참심관이 노동 사건의 심리와 재판에 참여하게 할 것인지 ▲1심에만 노동법원을 도입할지, 2심이나 3심까지 모두 노동법원을 도입할 것인지 ▲노동법원의 관할 사건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으로 요약된다.
1989년 노동법원 논의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한국노총은 지난 14일 논평을 통해 “노동법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노동 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해 노사 대표가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형 노동법원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 및 사법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도 통화에서 “노동법원이 언급됐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갑자기 나온 것이기도 하고 실효성 있게 진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은 남아있다”며 “기존 노동위원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참심제로 할지 배심제로 할지에 대한 부분들이 쟁점으로 남아있어 이런 부분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름만 남은 노동법원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법원이 일반 법원과 달리 신속성과 전문성, 경제성 등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노동법원이라는 타이틀만 달았다고 해서 무조건 혁신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그대로 두고 지금의 행정법원이 하는 일을 노동법원이 하는 형태라면 이름만 바꾸는 것이 될 수 있고, 노동위원회의 역할은 축소했는데 노동법원이 일반 민사법원이나 행정법원처럼 사건 처리에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노동법원을 도입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흔히 상급심으로 갈수록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성 있는 시각이 제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 노동문제의 특수성을 잘 고려하는 전문적인 법관이 충분한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단순히 법 하나만 만들어서 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오랜 기간 논의했던 문제이기 때문에 쟁점에 대한 논의와 여러 의견은 많이 축적돼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편집자)전홍기혜 기자 | 기사입력 2024.05.16. 05:02:58 최종수정 2024.05.16. 06:08:21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멤버 제이홉의 생일 축하 광고를 걸고 생일 잔치를 했다. 불과 일주일 뒤 제이홉 사진 앞엔 러시아의 공습을 피해 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들었다. 우크라이나 아미(BTS 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가 된 이 사진은 전쟁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줬다.
튀르키예의 한 휴양지 바닷가에서 발견된 세살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 가족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려다 물에 빠져 숨진 이 아이의 사진은 시리아 내전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렸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 사진이 세계를 바꾸지 못한다면 무엇이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전쟁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오랫동안 일간지 국제부 기자로 세계 곳곳의 분쟁에 대해 썼던 오애리, 구정은 작가의 책 제목이다. 이 책은 21세기에 벌어졌거나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다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라크 전쟁 등 전쟁이 일어난 역사적 배경, 전개 과정, 핵심 이슈 등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들과 함께 지난 10일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쟁들과 이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성인들을 위한 심화 버전 격인 <전쟁과 학살을 넘어>(인물과 사상사)를 펴내기도 했다.
푸틴의 '핵 위협',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프레시안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2년이 넘어섰습니다. 우려했던 것처럼 장기전의 늪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제사회의 관심이나 도움도 줄어들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는데, 평화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애리 : 이 책을 준비하면서 이 책이 나올 때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전쟁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이고 있고, 현재 어떤 협상의 기미도 없습니다. 수그러드는 국제적 관심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프레시안 : 러시아는 세계 최대 핵탄두 보유국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뒤로 푸틴은 고비가 생길 때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협박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는 핵전쟁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핵전쟁을 막을 안전판은 부실해보입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애리 : 과연 러시아가 핵을 쓰게 될 것인가는 저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지금 어떤 것도 정확하게 단정해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가 '신전략무기 감축협정' 등 예전에 체결했던 핵무기 관련 국제협약에서 잇따라 탈퇴한다고 해서 안전판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 역시 국제사회가 러시아나 미국에 대해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안 가도록 압력을 넣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구정은 : 핵무기는 쓰기 전까지가 위협인 거잖아요. 쓰고 난 다음에는 위협으로서 기능이 전혀 없어집니다. 저도 푸틴이 결국에는 핵무기를 쓰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이 명백히 국제법상 모든 조항들을 어기고 남의 나라를 침공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자극을 해서 유도를 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이건 푸틴의 전쟁 범죄입니다.
무력에 의한 국경 변경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없었기 때문에 서방 국가들이나 유엔이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현재로선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 지역의 일부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이게 고착화되는 상태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땅을 빼앗기고 주권의 상당 부분을 훼손당하겠죠. 저도 처음엔 당연히 러시아의 잘못이기 때문에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덜 죽고, 덜 고통 받게 만드느냐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에게 더 저항하지 말고 이 선에서 끝내라고 할 수는 없겠죠.
프레시안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오애리 : 젤렌스키가 올해 있었던 대선까지 연기하면서 전시 내각을 이끌고 있는데, 정권 내부 균열도 있고 지금 좀 위험한 국면인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코미디언 출신이고 정치 경력이 일천한 젤렌스키가 푸틴이란 노련한 정치인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해서 우크라이나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민의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를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2년간 젤렌스키가 보여준 리더십과 이를 따르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힘을 모아 러시아에 맞서 싸웠다는 것은 분명히 평가해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사망자만 1만4천명 넘어..."아이들을 향한 전쟁" 하는 이스라엘
프레시안 : 작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도 8개월을 넘어섰습니다. 하마스는 휴전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이스라엘이 미국의 말조차 듣지 않으면서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극우성향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내부 정치 때문에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구정은 : 이스라엘의 우경화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해서 진행이 되어 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제어할 수 없는 국면으로 가는 것 같아요. 네타냐후가 어떤 인물이어서라고 보기엔 이스라엘 정치권 전체에 퍼져 있는 시각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스라엘 극우파 단체 사람의 인터뷰를 봤는데,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내세운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활권)이란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하더라구요. 이스라엘은 나치와 비교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그러면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죠.
팔레스타인 상황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보호기구 관련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말이 '이번 전쟁은 아이들을 향한 전쟁'이라고 했어요. 전쟁 6개월 시점에서 어린이 사망자만 1만4000명이라고 하는데, 세계 어떤 분쟁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5월 13일 누적 사망자 3만5091명 중 6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며, 누적 부상자는 7만8827명이라고 밝혔다.
미국 베트남전 이래 최대 반전 시위, 친이스라엘 정책에 균열낼 수 있을까
프레시안 : 미국 전역에서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농성이 일어나고 있고, 2000명에 가까운 대학생들이 체포됐다고 합니다. 이런 반전 여론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구정은 : 미국에서 베트남전 이래 최대 규모의 대학 시위라고 하는데요, 이게 미국 내 인식 변화도 있지만 이스라엘 전쟁 범죄가 너무 심해서이기도 합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핍박을 해왔지만 6개월에 3만 명을 죽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미국 내에서, 특히 엘리트층에서 ‘반유대주의’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 시위 초기엔 대학 총장들이 이걸 막아야 한다고 압박을 하고 실제 (하버드대, 코넬대 등) 대학 총장들이 사퇴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반유대주의 법안(Antisemitism Awareness Act)이 통과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전쟁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 이스라엘을 편드는 극우 시위대가 와서 폭력을 저질러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미국 내에서 이처럼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그동안 민주당, 공화당 모두가 고수해온 친이스라엘 노선에 대한 반발이기도 해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겐 굉장한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반전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까진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1월 미국 대선, 바이든과 트럼프 중 승자는?
프레시안 :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있습니다. 공화당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미국 대선 결과는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오애리 : 저는 미국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는 트럼프라고 하는 이미 입증된 리스크를 다시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근소한 차이로 바이든이 승리하지 않을까라는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구정은 : 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간접선거인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선거공학이 너무 많이 작동하는 나라라서, 지금 경합주가 7개라고 하는데 이러면 예측이 힘들어요.
프레시안 : 트럼프가 된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구정은 : 바이든 정부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바이든 정부가 당선된 뒤에 미국이 돌아왔다 이렇게 선언한 뒤에 기후대응 등 여러 가지 이슈들이 다 지정학적 갈등에 밀려버렸어요. 러시아도 적대시하고, 중국도 적대시하고, 이렇게 세계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건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비슷했어요. 다만 트럼프는 반여성, 반이민, 반난민 등 약자를 공격하는 혐오정치를 정상적인 행위인 것처럼 세계에 각인시키는 문제가 있죠.
오애리 : 트럼프는 속으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 러시아나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바이든보다 러시아와 가깝고 4년 동안 이스라엘을 챙겨준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법하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해법은 딱히 없습니다.
시민들의 손가락질은 힘이 세다…전쟁을 막는 인류애
프레시안 : 이 책은 10대를 위한 책인데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한국과는 무관한 전쟁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애리 : 전쟁은 우리의 일상과 의외로 가깝다는 걸 언론 등에서 기름값 상승, 곡물 가격 상승 등 경제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설명 방법이니까요. 그것도 맞는 얘기이지만 저는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지구의 한켠에서 인간이 겪는 아픔, 고통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할 당위성과 의무감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BTS 등 문화적 힘을 통해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자긍심을 느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만큼 성장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 구석에 이렇게 인도적 위기가 있다는 걸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 책이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분단국가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국민들이잖아요.
구정은 :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시기가 BTS 제이홉의 생일이 얼마 뒤였어요. 우크라의 수도 키이우 시내에 제이홉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었던 자리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진을 봤어요. 불과 며칠 전까지 우리 청소년들이랑 똑같이 케이팝 듣고 즐기던 이들이 전쟁을 겪고 있는 겁니다.
가끔 강자들의 논리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나 혼자 전쟁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스라엘이 저렇게 나쁜 짓을 해도 결국 처벌도 안 받잖아. 그렇지는 않아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 범죄로 기소가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외국을 방문하기 힘들 거라고 봅니다. 네타냐후를 불러서 정상회담을 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려는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는 늘 말씀드리는 게 시민들의 손가락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셉니다. 책에도 썼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그 시민들의 손가락질의 힘이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현지지도에 동행하였으며 현지에서 중앙간부학교 건설을 한 설계 및 시공 단위 관계 성원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전경을 보며 “보면 볼수록 위엄있다. 정말 본보기적인 교육기관다운 학교를 우리 손으로 일떠 세웠다”라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교양 구획과 교무행정청사, 교사 종합강의실, 다기능 강당, 회의실, 도서관, 체육관, 기숙사와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을 돌아보며 지난 3월 30일 이곳을 현지지도하면서 준 과업들의 집행 정형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설계 부문 및 시공 단위의 일꾼들과 건설자들이 지난번에 지적한 문제들을 올바로 퇴치하고 건축 마감 공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질적으로 진행함으로써 학교의 교육환경과 조건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흠잡을 데 없이 꾸린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도 현대 교육 발전 추세와 교육학적 원리에 맞게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원림 녹화 사업도 세계적 수준에 부합되게 높은 경지에서 실현되었다”라면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는 정치성과 현대성, 실용성이 확고히 보장된 만점짜리 교육시설이다. 우리나라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을 창조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 당의 정치학원으로 거연히 일떠선 중앙간부학교가 진짜배기 핵심 골간들, 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을 키워내는 자기의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사명에 항상 충실함으로써 조선노동당의 강화발전과 영원무궁한 번영에 참답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면서 개교식을 앞두고 운영 준비를 빈틈없이 갖출 것과 준공식을 정치적 의의가 크게 훌륭히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신문은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완공과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히신 새 시대 5대 당건설의 휘황한 진로를 따라 전당 강화의 새로운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에 우리당 간부 양성의 최고전당인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가 주체건축과 주체교육 부문의 본보기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 시대 5대 당건설 노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2년 10월 17일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해 교직원, 학생들에게 한 기념 강의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시대 우리 당건설방향과 조선로동당 중앙간부학교의 임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을 새 시대 당건설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지역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대학생 가객. 노동야학 교사로 무장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민군.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노동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청년 연출가. 손남승(66)의 찬란했던 20대를 대표하는 이력들이다. 하지만 그는 ‘살기 위해’ 도청을 빠져나온 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은둔자로 남아 있다. 그는 왜 세상과, 5·18과 단절하며 살고 있을까? 몇해 전 손남승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이달 초 그의 근황을 다시 들었다. 지인을 통해 만남을 요청했으나 “나 같은 놈한테 앞에 나서 말할 자격이나 있겠느냐”며 모습을 끝내 드러내지 않았다.
가요제서 대상 받은 대학생 가객
“며칠 전에 통화허는디, 그럽디다.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다고.”
그와 접촉한 선배 김홍곤(67)이 15일 전해준 말이다. 김홍곤은 젊은 시절 지인들 가운데 손남승이 거의 유일하게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다. “얼마 전 김민기 선생 다큐 보셨지요? 김 선생 얘기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서지 않겠다’는 남승이 말이 꼭 ‘오월의 뒷것으로 살겠다’는 뜻으로 들리데요.”
두 사람은 광주 ‘백제야학’에서 처음 만났다. 손남승의 광주일고 동기인 박용성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김홍곤과 박용성은 전남대 국어교육과 입학 동기였다. 백제야학은 1980년 2월 강학(교사) 8명이 만든 노동야학이다. 손남승, 김홍곤, 최문수 등 대학생들은 60여명의 학생들과 광주 방림신협 지하실에서 공부했다. 백제야학 교장이던 김홍곤은 “근현대사, 한문, 근로기준법 위주로 가르쳤고, 음악은 구전가요나 민중가요를 함께 불렀다”고 했다. 학생들은 무등양말, 호남전기, 태광산업, 일신방직 등에 다니던 10대, 20대 노동자들이었다.
백제야학은 검정고시 야학으로 출발해 얼마 안 가 노동야학으로 전환했다. 강학들이 들려준 사연은 처연하다. 1978년 사직공원 근처 승공회관에서 검정고시 야학을 하던 손남승·박용성 등은 1979년 산수동오거리로 자리를 옮겨 ‘사랑의 학교’라는 야학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아이스크림 공장에 다니던 학생 하나가 포장용 프레스에 손가락 세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회사는 합의금으로 손가락 한개에 3만원씩 9만원을 제시했다.
검정고시 야학을 노동운동 야학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강학들은 분노했다. 박용성의 분노가 특히 컸다. 그는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수집해 유인물을 만들어 뿌릴 준비를 마친 뒤 사장을 찾아가 담판했다. 결국 300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 현실은 그대로였다. 허망하고 괴로웠다. 격론 끝에 노동운동에 방점을 둔 ‘노동야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김홍곤의 고등학교 은사 임기석 방림신협 이사장의 도움으로 전남대병원오거리의 신협 건물 지하실에 터를 잡았다.
1980년 봄 5·18이 터졌다. 백제야학이 문 연 지 석달 만이었다.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강학인 손남승과 김홍곤, 학생 김순옥과 이정례가 5월19일 백제야학 지하실에 모였다. ‘광주시민이여, 궐기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제작했고, 다섯차례에 걸쳐 배포했다. 같은 시기 광주의 또 다른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광주 상황을 시민들과 공유하려고 유인물을 제작해 시내 곳곳에 뿌렸다.
손남승과 김홍곤은 5월21일 오후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다가 총격을 받았다. 김홍곤은 “(도청 집단발포 후) 화순 방향으로 퇴각하던 계엄군이 탱크에서 기관총을 쐈다. 가드레일 철판에 맞아 튄 총탄 파편이 근처 상점의 셔터에 박혔다”고 회고했다. 두려웠다. 두 사람은 김홍곤의 집으로 도망쳐 다락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다. 도청 앞 집단발포로 많은 시위 군중이 희생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하던 때였다.
“파리코뮌도 실패…도청 남으면 죽는다”
손남승은 “(시민군 본부인) 도청으로 가겠다”고 했다. 김홍곤이 “나는 무섭다. 노동자 혁명정부인 파리코뮌도 실패하지 않았냐. 결국엔 진압되고 죽을 테니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당시 손남승에겐 미래를 약속한 여성이 있었다. 손남승은 “사랑도 소중하지만 내겐 혁명이 더 중요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헤어졌다. 김홍곤은 그길로 광주를 걸어서 빠져나와 화순을 거쳐 고흥으로 몸을 피했다. 살고 싶었다.
손남승은 도청 1층의 상황실에서 일했다. 백제야학을 하며 알게 된 노동운동가 출신 이양현(74)을 그곳에서 만났다. 이양현은 학생투쟁위원회 기획위원이었다. ‘최후의 날’인 5월27일이 왔다. 그날 새벽, 손남승이 다급한 목소리로 “계엄군이 유동삼거리까지 왔다. 자는 사람들 다 깨워야 한다”고 이양현에게 말했다. 비상이 걸렸고,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무장한 시민군들이 도청 전면과 후면에 배치됐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손남승은 도청 담장과 도지사 공관의 철책을 연달아 넘은 뒤, 재래식 야외 화장실 안으로 숨었다. “똥물에 몸뚱이를 담그고 콧구멍만 내놓고 있었다고 그래요.” 김홍곤이 전한 손남승의 당시 상황이다. 아침이 밝자 손남승은 도지사 공관의 가사도우미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타고 온 짐자전거에 ‘똥범벅’으로 올라타 집으로 도망쳤다.
살아남은 손남승은 백제야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80년 12월 학생들과 함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무대에 올렸다. 손남승은 1979년에 열린 제2회 전일방송가요제(VOC대학가요제)에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박현희와 함께 ‘전남대 중창단’이란 이름으로 나가 대상을 받을 만큼 음악 실력이 출중했다. “멋쟁이였제. 얼굴은 이국적으로 잘생겼고, 기타 솜씨도 대단했어요. 그뿐이여? 글도 진짜 끝내주게 잘 썼어요.”
‘혁명 철학’ 익히려고 떠난 독일 유학
‘공장의 불빛’이 노동자들 참여로 무대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김홍곤은 기억한다. “남승이 주도로 강학들이 연출하고 학생들 전원이 배역을 맡아 출연했어요.” 당시 공연장엔 백제야학을 후원했던 최연석 목사의 주선으로 김민기와 임진택 등 서울의 문화운동권 사람들도 왔다. 김홍곤은 “공연 내내 눈시울을 붉히던 김민기 선배가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만들었지만, 노동자의 현실이 이렇게 슬프고도 생생하게 드러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백제야학은 1981년 ‘미리내 야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장소를 옮겨 1984년까지 운영됐다.
손남승은 그 후 군에 갔다 제대한 뒤 백제야학 강학 출신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손남승은 1989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김홍곤에겐 “혁명을 위해 헤겔과 마르크스를 더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1994년 김홍곤이 한국에 잠시 들어온 손남승을 만났을 때 “그날 새벽 도청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자괴감에 여전히 시달린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손남승은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한 채 1990년대 후반 귀국했다.
광주로 돌아온 손남승은 김홍곤의 말처럼 ‘5·18의 뒷것’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그는 1995년부터 시작된 5·18유공자 보상 신청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홍곤은 그에게 정부가 지난해 말까지 받았던 8차 유공자 보상 신청을 권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신청하라”고 몇번을 설득했으나, 손남승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홍곤은 “결벽증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격 조건에 조금 미달해도 유공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나서지 못하는지 안타까웠다”고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으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은 하고 있다”는 짤막한 답변만 들었다.
여전히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들
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해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은 또 있다. 박용성은 5·18 직전 전남대 총학생회 교육부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수배가 떨어져 여수로 도피했고 가족들의 설득으로 그해 6월 자수했다. 하지만 구타와 고문으로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실어 증세를 보여 기소 중지로 풀려났다. 박용성은 전남 여수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전교조 지부 결성을 주도한 일로 해직교사가 됐다. 몇해 전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에 관해 인터뷰한 뒤 석달을 앓았다는 그는 이번 한겨레가 요청한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남 지역 사립학교에서 2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공단에서 용접공으로 6~7년을 보낸 김홍곤은 요즘 식당을 운영한다.
백제야학은 5·18 이후에도 ‘뒷것’ 역할을 담당했다. 백제야학이 들었던 노동자 교육운동의 깃발은 와이(Y)야학, 한얼야학, 무등야학이 이어받았다. 김홍곤은 “야원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강학들과 학생 20여명이 지금도 모임을 한다”며 “손남승이 세상 밖으로 나와 남은 생을 옛 동지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