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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6일 목요일

윤 대통령이 임기 내 추진 약속한 ‘노동법원’, 신속성·전문성 보장이 관건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5.14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법원 설치를 약속하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던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노동법원은 노동계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요구된 의제다. 이미 2004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노동법원 설치안이 마련됐던 데다가, 18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관련 법안이 발의됐을 정도로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어느 사안보다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의제로 보이지만, 실제 노동법원의 취지인 신속성과 전문성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법원이란 행정법원이나 가정법원처럼 노동 사건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다. 현재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와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지방-중앙)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이어질 경우, 행정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사실상 5심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 민사소송까지 이어진다면 8심까지 더 늘어난다.

실제 부당해고를 인정받기 위해 1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시간동안 법정투쟁에 매달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권리구제에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노동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더욱 늘어나게 돼,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욱이 일반 법관의 경우 노동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어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존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조정해 노동법원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에서도 형태는 다양하지만, 동일한 취지에서 노동법원을 운영 중이다.

‘노동 전문가’ 권영국 변호사는 16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현재 시스템으로는 노동 사건이 일반 사건처럼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재판 진행이 불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든, 불법파견이든 실제 법원에서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씩 소요되고 있다”며 “노동 사건은 시의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실제로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지대 등 비용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속한 재판 진행과 노동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전문성,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등이 보장된 노동법원의 도입을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노동법원 도입을 주로 반대해 온 쪽은 경영계와 노동부였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법원 도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데 대해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원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쟁점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리된 쟁점으로는 ▲노동위원회의 역할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일반 법관 외에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추천한 참심관이 노동 사건의 심리와 재판에 참여하게 할 것인지 ▲1심에만 노동법원을 도입할지, 2심이나 3심까지 모두 노동법원을 도입할 것인지 ▲노동법원의 관할 사건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으로 요약된다.

1989년 노동법원 논의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한국노총은 지난 14일 논평을 통해 “노동법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노동 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해 노사 대표가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형 노동법원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 및 사법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도 통화에서 “노동법원이 언급됐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갑자기 나온 것이기도 하고 실효성 있게 진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은 남아있다”며 “기존 노동위원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참심제로 할지 배심제로 할지에 대한 부분들이 쟁점으로 남아있어 이런 부분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름만 남은 노동법원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법원이 일반 법원과 달리 신속성과 전문성, 경제성 등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노동법원이라는 타이틀만 달았다고 해서 무조건 혁신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그대로 두고 지금의 행정법원이 하는 일을 노동법원이 하는 형태라면 이름만 바꾸는 것이 될 수 있고, 노동위원회의 역할은 축소했는데 노동법원이 일반 민사법원이나 행정법원처럼 사건 처리에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노동법원을 도입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흔히 상급심으로 갈수록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성 있는 시각이 제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 노동문제의 특수성을 잘 고려하는 전문적인 법관이 충분한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단순히 법 하나만 만들어서 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오랜 기간 논의했던 문제이기 때문에 쟁점에 대한 논의와 여러 의견은 많이 축적돼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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