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4년 5월 20일 월요일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사채왕 김상욱의 개인 금고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내부 임원 통해 새마을금고 개인 금고처럼 활용한 사채왕 일당

김보경·김연정·박상규·조아영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 기사입력 2024.05.21. 03:59:33

"청구동(새마을금고)은 김 회장(김상욱 지칭)이 다리를 놔줘서, 거의 그건 은행이 아니라 자기 금고야. 자기 금고처럼 돈을 빼서 썼거든."

-김상욱의 '오른팔' A 씨 대화 녹취

'사채왕' 김상욱 일당들의 대화 속 청구동새마을금고는 "김상욱의 개인금고"라고 등장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2000여 건의 녹음파일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김상욱(52)은 지난해 1500억 원 규모의 불법대출 사건을 일으켜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 그는 스스로를 "목포오거리파" 소속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사채업자"라고 칭한다.

"종남이(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 새마을금고가 솔직히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씨X. (대출) 나가면 다 나가는 거지.'"

-2023. 6. 19. 김상욱 통화녹음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공범은 전종남 청구동새마을금고 당시 상무. 임원 한 명에 의해 처참히 망가진 청구동새마을금고는 결국 문을 닫고 인근 신당1.2.3동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사진1. 전종남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지난해 3월 14일 밤 0시 10분경 부당수익금을 현금으로 반출하는 모습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전종남은 지난해 7월 해고됐다. 하지만 한 달 뒤, 그는 징계면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동시에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재판장 박범석)는 지난 1월 26일 전종남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새마을금고 조합의 건전하고 투명한 운영을 통해 조합의 부실화 내지 피해자의 발생을 예방하여야 할 필요성이 크고 그 임직원은 고도의 윤리의식과 준법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징계의 양정이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가처분 기각 결정문 중

법원은 왜 전종남에 대한 징계 처분이 과하지 않다고 판단한 걸까. 전종남은 어떻게 역대급 규모의 불법대출을 실행할 수 있던 걸까.

2020년 3월 다른 새마을금고에서 청구동새마을금고로 이직한 전종남은 2022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에 가담한 걸로 보인다. 김상욱과 전종남이 합작한 첫 '작업'은 서울 이태원동에 위치한 고급빌라 ○○하우스로 파악됐다.

김상욱 일당은 ○○하우스 전체 15개 호실을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비롯한 9곳의 새마을금고에서 총 200억 원을 대출받았다. 특히 대출금 중 147억 원가량이 단 한 사람 앞으로 나왔다. 바로 김상욱의 처제 전○○이다.

이때 전종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종남은 2022년 8월 자신이 일하는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물론, 다른 새마을금고 8곳을 '섭외'해 공동대출을 실행해줬다. 동일인 대출한도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새마을금고 여러 지점으로 나눠서 담보대출을 일으킨 것.

하지만 ○○하우스를 담보로 나온 대출금과 그 이자는 모두 '부실채권'이 돼버렸다. 새마을금고 9곳에서 실행된 대출금 총 200억 원은 현재 상환되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 대출금이 사채왕 처제에게…이태원 고급빌라 '텅텅')

▲사진2.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고급빌라 ○○하우스. 2022년 준공 당시 분양가는 20억 원이었다. ⓒ셜록

시간이 지날수록 전종남의 수법은 더 대담해졌다. 2022년 12월경, 그는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과 사기 행각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김상욱 일당은 1500억 원 규모의 불법대출 중 약 800억 원의 대출을 경남 창원에 위치한 중고차 매매상사 KC월드카프라자(이하 KC월드카) 한 곳에서 만들어냈다. 2022년 "부산·경남 최대 규모의 자동차 문화 복합쇼핑몰"을 표방하며 문을 연 KC월드카는, 김상욱 일당의 대출사기 여파로 현재 상가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

KC월드카는 2021년 12월 준공 이후에도 미분양에 시달렸다. 자금난에 처한 시행사 대표와 김상욱 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김상욱은 고급 외제차 등으로 전종남을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북부경찰청이 파악한 금품의 액수만 약 3억 4000만 원에 이른다.

"종남이(전종남 지칭)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냐? 종남이 이렇게 챙긴 사람 없어. 지금도 1000만 원씩 그놈 챙겨줘. 다음 주 일주일간 회장님(김상욱 본인)이 (여행) 다 보내줬잖아. 일주일 방값만 스위트니까 1000만 원인데."

-2023. 7. 13. 김상욱 통화녹음

김상욱 일당은 대출사기 피해자들을 한 카페로 불러 대출 계약을 맺게 했다. 서울 신설동에 위치한 카페 '하타○○'. 김상욱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실제로는 김상욱 일당의 사무실이자 '아지트'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사진3. 사채왕 김상욱이 아지트처럼 쓰고 있는 카페 하타OO 모습. 보통의 카페와 다르게 프린터가 비치돼 있고, 테이블 서랍 안에는 서류가 가득하다. ⓒ셜록

청구동새마을금고 직원들은 전종남의 지시로 하타○○ 카페까지 출장을 나와서 서류를 처리했다. 그 자리에는 김상욱도 함께 있었다.

"전종남 상무의 지시에 따라 그의 직원들은 금고 외부에서 대출 명의자로부터 미리 자필 서명 또는 날인을 받은 백지 전표와 명의자들의 인감 등을 보관하면서 이들의 금고 방문 없이 직원들이 통장을 개설한 뒤 대출을 실행하고 대출된 금원을 송금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가처분 기각 결정문 중

몇몇 대출사기 피해자들은 하타○○ 카페가 아닌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대출계약을 맺기도 했는데, 이때도 김상욱과 전종남은 나란히 자리에 함께했다.

"처음에 하타○○에서 설명을 듣긴 했는데, 다음번에 청구동새마을금고 2층 회의실에서 자서(자필서명)했지. 그 자리에 전종남 상무랑 김상욱 회장 둘 다 있었어. 계약서 쓰고 나니까 하타○○에서 사온 빵을 한 보따리씩 주더라고. 김상욱 아들 카페 매출 올려주려고 사온 거겠지."

-대출사기 피해자 B 씨

통상 금융기관의 의뢰로 이뤄지는 정식 감정평가는 감정평가법인 무작위 추출 시스템을 이용해 이뤄진다. 하지만 경찰은 전종남이 이 시스템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전종남이 사전 섭외된 감정평가사가 속한 특정 감정평가법인만 선정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다.

KC월드카의 분양가는 7억 5000만 원. 하지만 감정평가액은 무려 12억 원. 전종남은 감정평가액이 부풀려진 사실을 알면서도 부동산 담보대출을 실행해줬다. 명의자들의 대출금 상환 의사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고려는 일절 없었다.

KC월드카 상가를 담보로 나온 대출금은 무려 9억 6000만 원. 부풀려진 감정평가에 따라, 대출금은 분양가보다 2억 원가량 더 많이 나왔다. 이렇게 이뤄진 불법 담보대출만 75건.

분양가를 치르고도 남는 대출금 차액이 김상욱 일당에게 흘러 들어간 걸로 확인된다. 경찰이 확인한 액수만 약 85억 원. 아직 1500억 규모의 불법대출 담보 물건지가 모두 밝혀지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김상욱 일당에게 흘러 들어간 부당 수익금의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미 셜록은 억대의 현금이 대출사기 피해자들의 통장에서 인출된 사실을 보도했다. 한 사람당 약 1억 3000만~1억 5000만 원. 명의자들 본인도 모르게 빠져나간 돈이다.

여기도 전종남이 개입돼 있다. 전종남은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실무책임자로서 '고액 현금 인출'을 승인했다. 실제 전종남이 지난해 3월 14일, 직원들이 아무도 없는 0시 10분경 대출금 일부를 현금으로 반출하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이후 전종남은 그의 직원들이 올린 고액현금거래보고(CTR) 결재를 반려하며 보고를 막았다.

보험상품도 강매했다. 원칙적으로 대출 실행 전후 1개월 이내에는 해당 금고가 취급하는 상품을 '대출 채무자 의사에 반하여'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종남은 담보대출과 동시에 보험상품(화재공제)에 가입시키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사기대출 피해자들의 친척 명의 등으로 보험 계약자를 설정해 눈속임을 하기도 했고, 이러한 부당 계약 또한 김상욱 일당의 아지트인 하타○○에서 진행했다. (☞ 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사진5. 전종남은 담보대출과 동시에 보험상품(화재공제)에 가입시키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셜록

김상욱 일당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통해 불법 담보대출을 일으킨 현장은 KC월드카 외에도 여러 곳으로 파악된다. 셜록이 취재해 보도한 사례만 △창원 KC월드카를 포함해 △서울 이태원 △충남 태안 △경기 평택 등 네 곳이다. 이외에도 김상욱 통화녹음 파일에는 △파주 △안성 △화성 △양평 △용인 △대전 △계룡 △금산 △영암 △전주 △담양 △포항 △부산 등 전국 곳곳의 현장이 언급된다.

전종남은 김상욱 일당과 함께 100건이 넘는 불법대출을 실행했다. 총 대출금 1359억 원 중 약 75%에 달하는 1025억 원이 연체된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가처분 기각 결정문 참고.기자 주.)

이 모든 일은 전종남이 청구동새마을금고에 근무한 지 3년도 안 돼 일어났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지난해 봄, 전종남을 향한 새마을금고의 감사와 징계가 진행됐다.

김상욱은 '전종남 구하기'에 최선을 다했다. 전종남을 위기에 빠뜨린 자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고, 전종남과 연관된 '문제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거(브로커 C 씨 지칭) 죽여버리려고 있잖아, 진짜 (땅) 파놓고 묻어버리려고. 이것은 종남이(전종남)가 걸려 있는 문제야. 쟤네들 때문에 종남이가 잘못됐잖아. 즈그들이 뭔가 해서 내 돈도 갚고 종남이 위해서 뭔가를 해줘야 될 거 아니냐."

-2023. 7. 13. 김상욱 통화녹음

"인자(이제) 종남이(전종남 지칭)랑 관련된 것들 있잖아, 이태원 (○○하우스) 것들 먼저 퍼야(정상화해야) 돼."

-2023. 7. 16. 김상욱 통화녹음

김상욱은 왜 이렇게 전종남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걸까. 그는 수사기관의 칼날이 전종남을 타고 본인을 향하는 걸 우려했던 걸로 보인다. 그동안 그들이 한몸처럼 움직여왔기 때문.

"저것(검찰)이 종남이(전종남 지칭)가 아니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을 택해서 잡는 거 같아."

-2023. 7. 27. 김상욱 통화녹음

▲사진6. 사채왕 김상욱 ⓒ셜록

하지만 김상욱은 전종남도,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했다. 전종남은 청구동새마을금고로부터 징계면직 당했다. 당시 이사장과 다른 직원들도 직무정지와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전종남은 나란히 구속됐다. 경기북부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업무상배임‧수재‧증재) 위반 혐의로, 지난 2일 이들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으로 송치했다. 이들은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언론홍보 담당자는 임직원 관리 감독에 대한 미비점을 일부 인정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차원에서 제도적인 보완을 해놨지만, (개별 새마을금고 법인) 임원이 이런 제도를 무시하고 진행했을 경우 즉시 차단하기 어려운 건 맞습니다. 그래서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2년에 한 번씩 감사를 통해 (비위 사실을) 적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셜록은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구속되기 전인 지난달 16일, 그의 반론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다. 세 번째 통화 시도 만에 그와 1분가량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바쁘다", "(불법대출 연관성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남긴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종남 전 상무는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 "새마을금고가 징계사유로 삼은 행위들은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업무처리에 불과하거나 전종남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김보경·김연정·박상규·조아영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최근글보기



"예상 이상으로 위험"... 우리 모두 종말로 가고 있다

 

[소셜 코리아] 당신도 내뿜는 이산화탄소··· 기후위기 청구서 누구도 피할 수 없어

24.05.21 07:04최종 업데이트 24.05.21 07:04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기후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다. ⓒ 셔터스톡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는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기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은 기후위기란 문제의 본질을 우리 사회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른 말로 첫 단추도 제대로 끼우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기후가 환경이라는 오랜 범주에 속한 문제라는 생각이 그 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깊이의 고찰이 가능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을 위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정의하자면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가 급격히 오르면서 지구 기온이 따라서 상승하는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가 환경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생각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의 집합적 생각은 제도로 구현되고 제도는 다시 집단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는 이 문제를 환경의 범주에 담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를 환경부의 일로 생각한다. 대통령, 국방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의 일이 따로 있듯이 환경부가 따로 맡은 일 가운데 하나가 기후인 양 다루면서, 그런 수준의 대접을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취재 영역에 해당하는 출입처를 갖게 되는데 기자가 매일 그리는 사회의 상은 이 시스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후위기란 주제는 대체로 환경부를 출입하는 기자의 일로 여겨진다. 그들에 대한 대접은 정치, 경제, 사회 부문 기자에 비해 결코 낫지 않다.

기업은 어떤가. 기후를 ESG(Environmental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팀의 일쯤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글에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사무국장이 지적한 바대로 그나마도 '입틀막'의 수모를 겪고 있는 터다.

미리 오해는 막고자 한다. 기후 문제는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구분해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환경의 근본 의식은 기후 대응의 뿌리를 이룬다. 환경과 기후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선을 긋고 "환경 다루던 이들아, 기후는 당신 과업에 비해 더 큰 대업이야"라고 소리 내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환경 문제를 그 중요성에 걸맞게 진지한 대접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할당 받은 배출 총량 거의 써버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4월 22일 오후 국회수소충전소 옆에 기후위기시계가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범주를 말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가 기후 문제의 첫 단추를 정확히 끼우기 위함이다. 기후 문제가 환경에 속하지 않는 첫째 이유는 환경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간조차도 기후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살충제가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다뤘다. 이 책이 쏜 서구 환경운동의 화살은 1970년대 일본, 1980년대 한국으로 이어졌으며 역시 공해 문제가 급한 화두였다.

그런데 이런 온갖 공해를 일으키고도 나는 좋은 것 챙겨 먹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악덕업자조차 대기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 오르는 지구의 기온은 코스타리카의 황금 두꺼비(기후위기로 멸종), 저개발국의 이주민, 선진국의 저소득층에 이어 그들에게도 반드시 찾아갈 것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청구서는 당도한다.

둘째, 기후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문제다. 온실가스는 페놀 같은 공해 물질이 아니다. 나와 당신도 내뿜는 이산화탄소다. 먹고, 입고, 지내는 인간의 모든 일들이 유관하다. 단지 이 모든 일이 과학기술과 결합하여 대량의 에너지 소비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기후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소비, 분배하는 경제와 나눌 수 없는 연관이 있다.

셋째, 기후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다.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겠다는 '파리 기후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과학은 예언하지 않기에 변화에 대해 여러 어려운 단서가 달려 있지만, 더 빈번한 자연재난, 해수면 상승, 수많은 생물종의 절멸 등 예견되는 재앙은 두말할 필요 없이 크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쌓이면 쌓일수록 "알고 보니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었어"가 아니라 "예상 이상으로 위험하잖아"란 결과가 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불구덩이 옆의 아기와 같이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지구 온난화의 메커니즘은 단순한 공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온실가스의 누적량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배출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과학기술로 배출 가스를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지만 아직 믿을 만한 기술은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재앙'에 앞서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배출 총량을 절대자에게 이미 할당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나가고 힘 있는 자들이 먼저 거의 써버렸다. 한데 종말은 모두에게 떨어진다. 못 가진 이, 힘없는 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런 일을 눈 뜨고 보고 있는 우리에게 양심이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런 의미에서 기후는 환경부, 환경 기자, ESG팀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당신과 나의 문제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 권오성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오성은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 데이터저널리스트, 미디어전략팀장 등으로 14년을 일했습니다. 이후 LG AI연구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책임으로 일했으며, 현재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에서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과정 중입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부른 생각치 못한 영향에 관심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기후위기 #온실가스 #기후변화 #파리협

프리미엄 소셜 코리아



‘직구 금지’ 3일 만에 철회한 정부...“탁상행정으로 혼란만 가중”

 

알리·테무 ‘유해 제품’ 문제 여전...전문가들 “종합적 대책 필요”

성태윤 정책실장이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구 정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5.20. ⓒ뉴스1

정부가 KC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는 정책을 내놨다가 논란이 일자 발표 3일 만에 사실상 철회했다. 문제가 된 유해제품뿐 아니라 해외직구 전반에 대한 규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일자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했던 설익은 정책이었다"고 지적한다. 또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C커머스'의 유해제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실존하는 만큼 '직구 금지' 등 투박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닌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브리핑에서 저희(정부)가 말씀드린 80개 '위해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KC인증(안전·보건·환경·품질 등의 법정 강제인증제도를 단일화한국가인증통합마크)을 받지 않은 해외 제품의 직구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어린이용 제품 어린이제품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 등 총 80개에 달하는 직구 금지 품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알리·테무 등에서 해외 직구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어린이용 제품에서 발암 물질인 카드뮴이 국내 기준치의 3,026배가 넘게 검출되는 등 유해 제품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당시 16일 브리핑에서 이정원 국무조정실 2차장은 "소비자 편익이나 권익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물건은 들어오지 않게 만드는 게 국가의 기본 책무"라며 "소비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소비자 편익의 침해가 예상되지만, 이를 감수하겠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그러나 문제가 된 유해 제품뿐 아니라 기존에 직구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물품도 모두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나왔다. 어린이제품 금지 품목에 '완구'가 포함되면서 성인들이 취미로 즐기는 프라모델, 피규어 등도 금지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걱정이 취미 관련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전기·생활용품 품목 중에는 컴퓨터용 전원공급장치, 전지 등이 포함되면서 부품뿐 아니라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완제품의 직구도 막힐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직구로 구입할 경우 정식 수입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경우가 많아 주요 직구 품목 중 하나인 만큼 소비자들의 반대 여론도 컸다. 무선통신장치의 적합성 인증을 국립전파연구원이 담당하는데 이번 '직구 금지' 정책을 내놓은 관계부처TF(태스크포스)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이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곧바로 내놓지도 못했다.

규제 반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해외직구 자유를 보장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수많은 제품의 해외직구를 금지하려 하지만 국민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며 "국민을 과보호한다면 이는 국민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여론이 들끓자 국무조정실은 지난 17일 밤 보도자료를 내고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도) 해외 직구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6월 중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만 차단하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럼에도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일요일인 19일 브리핑을 열고 이정원 2차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2차장은 "이유 여부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혼선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는 "학용품, 어린이 제품도 종류가 수천, 수만,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도 잘 안되는 것들이고, 조명기기도 제품 종류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며 "80개를 일시에 한꺼번에 사전에 해외직구를 차단한다, 금지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6일 당시 정책 발표에서 '소비자 편익 침해를 감수하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이던 것과는 정반대다.

정부는 위해성 조사를 실시해 위해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의 경우 차단 등의 대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2차장은 "80개 품목, 위험할 것 같은 품목에 대해서 관계부처와 함께 관세청, 산업부, 환경부 등과 함께 집중적으로 위해성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위해성이 확인된 품목이 아니라면 이전처럼 자유로운 해외 직구가 가능하다.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인포그래픽 자료. ⓒ국무조정실

여당하고도 소통 안 했나...국민의힘 "사전협의 촉구"
알리·테무 '유해 제품' 문제는 여전한데..."종합적 대책 필요"


이번 논란은 정부가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정부가 강제로 해외직구를 막으려면 대대적인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만, 16일 정책 발표에서는 "KC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고 단정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 법률 개정 전까지는 "관세법에 근거한 위해제품 반입 차단을 실시할 예정이며, 관세청과 소관부처 준비를 거쳐 6월 중 시행한다"고 '6월 시행'을 못 박았다.

KC 인증을 받지 못한 어린이제품 등 80개 대상 품목이 당장 6월부터 반입 차단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특정 품목의 반입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제품법, 전기생활용품안전법, 화학제품안전법 등 제품 관련 법 10개 법률과 전자상거래법 등 유통 관련 법 5개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정부가 당장 6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근거로 밝힌 '관세법 제237조'도 '국민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해제품 차단이 가능하다.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안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앞으로 정부 각 부처는 각종 민생 정책, 특히 국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반드시 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직구 금지' 발표에 앞서 여당과 소통이 있었는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간 1억건이 넘는 해외직구 물품을 일일이 확인해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직구 건수는 1억3,144만3,000건이다. 이 중 중국 직구 규모는 8,881만5,000건으로, 전체의 68%에 달한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중국에서 직구로 들어오는 물품이 한두개가 아닌데 어떻게 다 검사를 하겠다는 거냐"라며 "인력, 장비, 시간이 다 부족한 상황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 지난 3월부터 TF로 모여 정책을 만들어냈다는 사람들이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탁상행정으로 웃음거리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관세청 인력을 증원한 것도 아니고 몇천만건씩되는 물품을 체크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이걸 시스템을 만들어서 걸러져야 하는데 아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이 안 된 상태에서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규모 할인 행사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둔 지난해 11월 22일 인천 중구 인천세관 특송물류센터에 해외 직구 물품들이 쌓여 있다. 2023.11.22. ⓒ뉴시스

정부가 유일한 안전성 기준으로 KC만을 고집하기보다 해외 인증 기준을 준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CCC, 유럽 CE, 미국 FCC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은희 교수는 "해외직구를 하는 소비자 입장을 생각하면 유럽 CE 인증 등 해외 기준의 인정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상모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은 지난 19일 "전기용품·생활용품안전법, 어린이제품안전법에 있는 68개 품목의 직구의 안전성을 위해서 법률 개정을 통해서 KC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을 차단하는 방안을 제시했었다"며 "앞으로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므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서 법률 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리·테무를 통해 유해제품이 유통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19일 '직구 금지' 정책을 철회하면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차단하겠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이전처럼 '사후규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직구 물품을 규제하는 단순한 방안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모니터링, 소비자 정보 제공 확대 등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플랫폼과의 자율 규제도 실제로 작동돼야 하고, 적극적인 모니터링으로 리콜 등도 작동해야 한다"면서 "유해제품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교육과 홍보로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게 하도록 하는 등 정부가 종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