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세월호 ‘국민 특별법’인가
이준영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4/08/28 [23:59]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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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국민 단식을 조롱하며 ‘폭식’퍼포먼스를 하겠다는 단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보수세력의 마타도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30일, 유가족 김영오씨 단식이 시작된지 40일이 넘어가는 지금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보수세력의 마타도어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지고 있다. 유가족들과 국민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이하 국민 특별법)을 반대하는 새누리당 등의 보수집단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국민적인 피로감을 자극하고, 유가족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려 세월호와 관련된 논의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논의 과정의 초기에서부터 ‘배·보상 문제’를 언급하며, 유가족들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사회적 발언권을 축소시키려 해왔으며, 각종 보수세력은 SNS와 카카오톡을 통해 배상금과 관련해 유가족이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해 국민들의 ‘세월호 피로감’과 유가족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들이 세월호 국민 특별법을 반대하는 유일한 명분은 특별법에 의해 구성될 진상조사위원회 등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외부기구에 넘어가면 ‘사법체계의 근간’이 뒤흔들린다는 논리였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비유를 했다. 권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진상조사기구를 두고 한 말이라고 믿기 힘든 발언이다. 마치 자신들이 스스로 가해자임을 실토하기라도 하는 것같지 않은가.
청와대의 반응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의 기자회견에서 눈물의 사과를 하며 특별법 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 특별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지금,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 처리는 여야 합의로 이뤄질 일이므로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세월호 특별법이 청와대와 무관한 일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왜 눈물을 흘리며 국민 앞에 사과했으며 유가족을 만나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공언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나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은 반드시 유가족과 국민들의 요구가 담긴 ‘국민 특별법’안으로 통과되어야 한다.첫째,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 특별법만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 영역에 걸쳐있는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정부 고위 관료로부터 부패한 자본까지 성역 없는 조사를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며, 외부압력의 개입이 없는 기소가 필수적이다.
혹자는 국민 특별법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진상조사기구가 아니냐고 공격하고 있지만, 이것은 세월호 사고가 왜 이처럼 대형참사가 되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가 유례없는 대형 ‘인재’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대형참사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얼마나 지지부진했는지를 살펴보면 정치권력의 개입이 배제된 진상조사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의혹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 및 고위 관료들과 연관되어 있다.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부터, 해경 관할의 진도VTS관제소 교신기록 및 CCTV은폐 의혹, 해경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의 구원파 연계 및 정보유출 혐의,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 파견이 중도반단된 의혹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의혹들이 모두 정권과 정부 인사들에 얽혀있는 것이다.
한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맨 얼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국사회의 주요한 모순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부패한 자본과 유착해 각종 편의를 봐줘왔던 정치권 인사들과 무리한 선체개조와 과적 등을 눈감아줘 왔던 관료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구조과정에서 무능했던 해경과 관계부처 등의 부실하고 나태한 모습, 그리고 그 정점에서 재난을 관리해야 했던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사건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말한 ‘국가대개조’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더 이상 희망이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국민 특별법만이 피해자와 국민들의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여야합의안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국민여론을 오도하는 일이다.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국민적이 불신은 차치하고서라도, 세월호 특별법안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국민 60%이상의 ‘여론’이 확인되고 있으며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안에 대한 400만 명 이상의 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구조과정을 지켜보며 속을 까맣게 태웠던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이 총체적인 무능과 부실 앞에 망연자실하는 한편, 반드시 이 적폐를 드러내야 한다면서 거리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4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하고 10만이 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의 ‘추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난 방지 및 대응책을 수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열망의 표현이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처럼 백서나 보고서 몇 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국가적 재난 발생시 국가가 해야 할 조치들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적인 장치는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소재가 파악되어야만 제대로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통한 한국사회 모순의 개혁이다. 안전한 사회는 재난 대응 매뉴얼 따위를 잘 만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우리 사회 곳곳의 적폐를 드러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이것은 곧 한국사회 온갖 모순들의 개혁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단순히 몇몇 유족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국민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셋째, 국민 특별법이 현행 대한민국의 헌법체계와 법질서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왜 존재하는가. 진실을 밝히고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보수세력은 세월호 국민 특별법이 ‘사법 체계를 뒤흔들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해서 뒤흔들릴 사법체계이고, 전례가 없다고 해서 정의를 외면한다면 그런 사법체계는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보수세력의 논리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는 외국의 사례를 열거할 것도 없이 60여 년 전의 반민특위의 활동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반민특위는 지금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조사위원회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물론이고 재판을 할 수 있는 사법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세월호 국민 특별법은 유가족들에게 유리한 인사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현직 검사를 파견 받아 그의 통제를 받으며 의견검토를 거쳐서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에서 판사의 영장심사를 거쳐 발부받은 영장을 통해 수사와 기소를 집행하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주장에 불과하다. 이 법안은 대한변호사협회의 법률자문을 통해 도출된 것이며, 이러한 법리적인 합리성으로 인해 많은 법조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이런 논리는 그들이 가진 언론권력으로 하여, 매우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보수언론의 보도만 들어보면 세월호 국민 특별법을 두고 마치 유가족들이 ‘떼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월호 특별법이 정치권 대 유가족의 힘겨루기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세월호 피로감’을 조장하려는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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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을 소개한 홍보물
여야 합의? 국민 합의! 세월호 특별법은 ‘국민 특별법’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른바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 안은 사실상 여당의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에 불과해 가족대책위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기존의 새누리당 안은 진상조사 부문에서는 ‘권고’기능만을 수행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설치, 희생자 유족 등에게 손해배상금을 국가가 선 보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조사권만을 가진 진상조사기구를 포함해 대학특례입학, 각종 공공요금 감면 등의 보상안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보수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여야의 법안을 기반으로 도출된 ‘합의안’이 어떤 모양새일지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야당은 다행스럽게도 의원총회를 통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과 김장훈 등 대중적인 인사들의 동조 단식도 여론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40일 넘게 단식을 했던 김영오씨와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는 많은 이름없는 민중들의 동조 단식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보수세력의 마타도어가 이처럼 극심해지는 것 역시 국민여론이 반전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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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장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서명용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 보수세력은 편파적인 문항으로 구성된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마치 여야 합의안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 거리와 현장에서 표출되는 민심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유가족 김영오씨 단식 46일째인 28일, 김영오씨는 단식을 중단하며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세월호 피로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거리와 현장의 국민들은 세월호 국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싸움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다.
대체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1000주가 넘게 이어져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싸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세월호가 잊혀져야 한다면 광주항쟁도, 일제침략도 잊혀져야 하는 것이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쓸어내리면서도,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와 같이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계속되고 있기에 전도가 밝다. 이제, 김영오씨의 말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긴 싸움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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