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속 '엄마' 소리에…10년이라도 싸우겠다"
서어리 기자, 이명선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25 08:11:52
수학여행 간다며 배에 오른 아들은 일주일 만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사고 발생 130일이 지났지만, 부모는 아들이 300명 넘는 승객들과 함께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위해선 기소권·수사권이 포함된 특별법안이 필요하다고 부르짖지만,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고개를 돌린다. 사고 당시 7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자며 사고 핵심 원인인 규제 완화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한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동혁(17) 군의 부모 김영래(44), 김성실(50) 씨는 "이것이 미친 나라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동혁 군 부모는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사고가 아닌 학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년 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라면 투사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잊으려는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4월 16일을 잊어가는 국민을 앞에 두고, 이들은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맞이할 게 아니라, 찾아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처음 만난 뒤, 인터뷰를 먼저 청한 것도 이들이었다.
지난 19일, 동혁 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안산 집에 초대받았다. 오후 10시경 시작한 인터뷰는 자정을 넘기고도 세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이들은 몇 번의 울먹거림을 꾹 참으며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놨다.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다 보면 몇몇 정치인과 언론의 주장대로 "유가족이 원하는 건 진상 규명이 아닌 보상금"이라고, 스스로 털어놓지 않을까 해서였다.
기대(?)를 비웃듯, 동혁 군 부모는 어떻게 하면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만 골몰했다. 마침 이날은 세월호 특별법 여야 재합의안이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실시간으로 뜨는 정치권 소식은 투사가 되겠다는 이들의 의지를 북돋워 주는 듯했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고(故) 김동혁 군 집 거실 벽 한가운데 놓인 동혁 군의 영정 사진과 위패. ⓒ프레시안(서어리)
▲고(故) 김동혁 군 집 거실 벽 한가운데 놓인 동혁 군의 영정 사진과 위패. ⓒ프레시안(서어리)
"죽어가면서도 엄마 아빠, 동생 걱정하던 동혁이…"
집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거실 벽 한가운데 놓인 동혁 군의 영정 사진이었다. 선한 눈매에 포동포동한 볼살이 눈에 띄었다.
동혁 아버지 : 제가 동혁이한테 장난을 많이 쳤어요. 볼을 자주 만졌어요. 말랑말랑하거든요. 한 번만이라도 만지고 싶은데, 이제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아직 실감이 안 나요. 그냥 잠깐 어디 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퇴근길에 운전하면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요.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또 영정 사진이 보이니까 한 20~30분 실컷 울고…. 저한테 '스타크래프트' 같이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걸 못 해준 게 너무 미안해요.
동혁 군은 배가 가라앉기 전, 휴대전화에 영상을 남겼다. 동혁 군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라며 도리어 가족을 걱정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동영상 보기)
동혁 아버지 :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영상에서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차라리 욕이라도 하고 화풀이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이 바보 같은 놈은 그 와중에도 엄마 아빠 걱정하고 동생 걱정하고….
동혁 어머니 : 사실 동혁이가 공부는 잘 못했어요. 그런데 너무 착했어요. 제가 '살아있는 천사'라고 할 정도로요. 동생이 잘못한 것도 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고요. 제가 부동산중개업을 해서 사람 상대할 일이 많거든요. 어쩌다 녹초가 되어 오면, 제 기분을 물어보는 사람은 동혁이 밖에 없었어요.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동혁 아버지랑 만날 '우리 늙으면 효도할 놈은 동혁이'라고 얘기했지요. 너무 착하니까…. 그래서 하느님이 빨리 데려갔나 봐요.
이들은 '살아있는 천사' 동혁이의 말랑한 볼을 사고 일주일 후, 아들이 정말 천사가 되고 나서야 만질 수 있었다.
동혁 어머니 : 동혁이가 빨리 나온 편이긴 해도 일주일이 됐으니 상태가 걱정됐어요. 사실 시신을 보는 것도 처음이고. 그런데 실제로 보니, 늘 자던 모습 그대로 누워있더라고요. "집에 가자"고 했어요. 동혁이를 만졌더니 차갑긴 해도 말랑말랑했거든요. 그냥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퉁퉁 불지도 않고. 그러니까 진짜 애가 물에 빠져 죽은 게 맞나 싶더라고요. 어떻게 고통스럽게 죽었을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저는 부검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동혁 아버지 마음 약한 거 아니까 얘길 못하겠더라고요.
▲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 씨. 김 씨는 동혁 군에 대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만만한 아들'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 씨. 김 씨는 동혁 군에 대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만만한 아들'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제가 동혁이 죽음을 더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안타까운 게, 동혁이가 가기 전 한 달 동안이 우리한테는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거든요. 그전에는 혼날 일이 많았어요. 동생 잘못을 주로 뒤집어썼지만…. 그런데 죽기 전 한 달 동안은 계속 좋았어요. 다 같이 노래방도 가고, 수학여행 간다고 옷 갈아입고 거울 비춰 보면서 저한테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고. 그럴 애가 아닌데 애교도 부리고…. 예원이(동혁 군 동생)가 침대에서 저를 계속 만지니까 동혁이가 "왜 예원이만 예뻐하느냐"면서 뽀뽀해달랬거든요. 그런데 제가 장난으로 더럽다고(징그럽다고) 안 해줬어요. 그러면서 여행이나 잘 다녀오라고. 형 옷 입고 가니까 꼭 여자친구 사귀어서 오라고, 그게 숙제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전날 일인데….
"아들이 부른 '엄마', 저한텐 '엄마, 가만히 있지 마세요'라고 들려요"
동혁이 어머니는 '새엄마'다. 동혁이와 어머니는 3년 전 처음 연을 맺었다. 같은 피가 흐르진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다. 어머니에게 동혁이는 언제나 자신의 편인 '만만한 아들'이라고 했다.
동혁 어머니 : 동혁이는 제가 언짢은 일 있어서 얘기하면 다 받아주는 애였어요. 일 끝나고 오면 동혁이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요. 밤에 둘이서만 한 얘기가 참 많았어요. 동혁이는 어린 게 "자기한테는 얘기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어요. 그럼 전 "니가 해결해줄 것도 아니잖아"라면서 툴툴거리고, 그러다 결국 제 얘기를 하고 동혁이는 들어주고. 또 그다음엔 동혁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전쟁 역사 이야기 하고, 또 제가 들어주고요.
동혁이는 절 처음 보고 바로 '엄마'라고 하더라고요. 가족이 생긴 걸 너무 좋아했어요. 동혁 아버지가 가족이랑 연을 끊고 살아서 추석이나 설, 이런 걸 안 챙겼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가족이 많아서 명절에 습관처럼 친정 오빠 집에 데리고 갔는데, 너무 놀라는 거예요. 친척들이 다 와서 웃고 떠들고 그러니까 신기한 거죠. 친정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동혁이가 가서 간호도 하고, 엄마 친구들 가는 자리에서 같이 밥 먹고 하는 것도 재미있어 하고. 기특했어요.
동혁 어머니 : 진도에서 동혁이를 기다리다 지칠 무렵이었어요. 교회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결국 픽 쓰러졌죠. 링거 맞고 한 시간 반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몸이 너무 개운하더라요.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그래서 씻고 밥도 먹고 큰아들(친아들)한테 그랬어요. '이제 안산 갈 거야'라고. '동혁이 이제 나올 거야'라고. 그러면서 짐 보따리를 다 챙겼어요. 제가 의식해서 한 말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 동혁이랑 친한 순영이가 수습됐다는 거에요. 그럼 동혁이도 나오지 않을까 해서 가봤더니, 맞더라고요. 엄마 아빠 더 고생시켜도 되는데, 동혁이가 엄마 아빠 힘들까 봐 미리 신호를 줬나 봐요.
▲19일 오후 열린 안산 고잔동 동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 씨. ⓒ프레시안(서어리)
▲19일 오후 열린 안산 고잔동 동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 씨. ⓒ프레시안(서어리)
아무리 사이가 좋았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동혁이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새엄마'였다. 아이들 사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지만, 그가 전면에 나설수록 주변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동혁 어머니 : 새엄마라는 게 족쇄가 되더라고요. 발언해도 눈치가 보였어요. 실제로 '친엄마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고 하는 분도 계셨고.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혁이가 영상에서 '엄마 사랑해'라고 하더니, '엄마 아빠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저를 먼저 불러준 걸 보고 동혁이가 그전에 저한테 했던 얘기가 떠오르더라고요.
동혁이가 학교에서도 우리 엄마에 대해 쓰라고 하면, '똑똑하고 냉정하다'라고 했대요. 제가 그렇게 보였나 봐요. 교회에서도 제가 대표 기도 하면 엄지 손가락을 올리며 "우리 엄마 최고!"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얘가 "엄마, 엄마, 엄마"라고 한 게 저한테는 "엄마, 가만히 있지 마세요"라고 들리더라고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 총회에서 새엄마라고 말씀드리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눈총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남이 하는 말이 뭐가 중요해요. 동혁이가 원하는 게 이건데…. (관련 기사 : "김장훈 "세상이 미쳤으니 미친 짓을 한다"")
"우리가 수사권, 기소권 포기하면 국민 앞에 '거짓말쟁이' 된다"
동혁이의 마지막 영상 메시지가 '제 죽음의 이유를 밝혀달라'는 외침 같았다는 부모. 그래서 아버지는 '반 대표', 어머니는 대책위원회 임원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세월호 참사의 의문점을 언론에 알리고, 서명 운동을 처음 제안하고, 특별법안 마련을 위해 자문을 구하러 다녔다. 진상 규명, 이것은 부부가 평생을 놓고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동혁 어머니 : 솔직히,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니까요. 나라에서 '구조를 제대로 못한 이유가 있다. 국가 기밀이라 얘기 못 한다, 죄송하다'고 하면 이해해줄 것 같아요. 차라리 그렇게라도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동혁 아버지 : 정말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거나, 아이 잘못 때문이었든가 하면 받아들이죠. 그런데 이건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아닌 '학살'이에요. 한두 명도 아니고 304명의 희생자가 생겼어요. 왜 이렇게 됐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지금 정치인들은 '그냥 적당히 묻자'는 식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아니, 그리고 우리가 언제 수도세, 전기세 감면해달라고 했나요? 특례입학, 의사자 문제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는 유가족을 보상에 눈먼 사람들로 보고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동혁 군의 아버지 김영래 씨. 그는 "10년 후엔 투사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 군의 아버지 김영래 씨. 그는 "10년 후엔 투사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여야는 지난 7일 상설특검법 임명절차에 따라 특검을 임명하는 세월호 특별법 1차 합의안을 내놨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라는 유가족의 요구에는 턱없이 모자란 결과였다. 결국 유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여야는 약 열흘만인 이날 재합의안을 내놨다. 그러나 특검 추천 방식에 미세한 조정이 있었을 뿐, 유가족이 원하는 '기소권·수사권 보장'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부부는 "기소권·수사권이 확보되지 않는 한 특별법 제정은 의미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동혁 아버지 : 예전에 국정조사할 때 MBC 기관보고 하는데도 이진숙 보도본부장이 결국 안 나왔잖아요. 일개 방송국 보도본부장도 출두 명령 무시하고 버팁니다. 그런데 수사권·기소권 없이 일개 검사가 나오라고 한다고 책임자라는 사람들이 나오겠어요?
인터뷰 사이, 재합의안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을 담은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유가족 설득키로"라는 보도가 한 시간 새 "유가족과 충분히 대화"로 바뀌었다.
동혁 어머니 : 새정치민주연합도 유가족 편에 있는 것처럼 하더니, 결국 유가족과 공감하지 못 하나 봐요. 앞으로 합의를 세네 번하다 보면, 유가족 입장에서는 '이게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겠죠. 그러면 하나씩 양보하게 되고, 그런 고도의 전략을 쓰는 것 같아요. 벌써 유가족 사이에서도 '수사권·기소권을 요구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하자'는 말이 나와요.
동혁 아버지 : 누가 그러더라고요. 현 정권에서는 이 이상 (방안이) 안 나온다고요.
동혁 어머니 : 저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우리 다 거짓말쟁이가 돼요. 우리 유가족들, 마이크 앞에서는 국민에게 끝까지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지금 400만 명 넘는 시민이 서명을 했어요. 그분들은 수사권·기소권을 원하기 때문에 서명란에 사인했거든요. 그럼 우리는 그분들을 대신해 싸워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우리는 이제 부모의 역할을 떠났어요. 실제로는 체념하면서도 겉으로만 싸우자고 하면 안 되는 거에요.
체념한다는 가족들도 이해는 돼요. 뭘 해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억울한 세상에서 살아왔잖아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분들 보고 정말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동안 TV에도 제대로 안 나왔으니, 정말 몰랐거든요. 같은 국민으로 너무 죄송했어요. 얼마나 울분이 많으면, 집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에 나와 있었을까요? 그러니 저희도 더 열심히 알리려고요, 왜 멀쩡한 집 놔두고 서울까지 가서 울며불며 거지처럼 다니며 호소하겠어요. 지금 멈추면, 그렇게 한 성과가 하나도 없는 게 돼요.
동혁 아버지 : 언젠가 아이들한테 가면, 할 말이 있어야 하잖아요. (수사권·기소권 있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힘없는 부모들이 너희 사고는 못 막았지만, 그래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했다"라고 할 말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대충 덮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만나서 할 말이 없겠죠. 저는 다른 유족들이랑도 얘기할 때 이런 얘기 해요.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물에 잠겨갈 때 엄마 아빠를 얼마나 찾았겠냐. 그거 딱 하나만 생각하자"고요.
▲거실 벽 면 전등 스위치 위에 붙여져 있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스티커. ⓒ프레시안(서어리)
▲거실 벽 면 전등 스위치 위에 붙여져 있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스티커. ⓒ프레시안(서어리)
"10년 후엔 제2의 '이한열 어머니'가 될지도"
참사 이후 계절은 어느덧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본격적인 진상 규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여론의 관심은 벌써 멀어져가고 있다.
동혁 아버지 :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느닷없이 "16일에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이미 제가 15, 16일은 집회가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는데도 그러는 거에요. 제가 안 된다고 했더니, 저한테 "니가 꼭 가야 하느냐"면서 성질을 확 내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막 주먹이 쥐어졌는데, 동혁 엄마 생각해서 꾹 참았어요. 제 주변도 이런데, 안산이 아닌 곳에선 관심이 더 줄었겠죠. 저는 지금이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월호가 국민 운동이 될지, 덮어버리는 게 될지 결정될 거에요.
지금처럼 뭣도 아닌 법안 가지고 계속 다투면 버티고 남을 집이 열 곳도 안 될 겁니다. 언젠가 이 사람들끼리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할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희는 갈 데까지 갈 겁니다.
동혁 어머니 :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 더 길어진들 상관없어요. 저는 아직 아이를 보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그런데 애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아이의 억울함이 풀리면 저도 울분이 풀리고 그때 가서야 가슴에 아이를 깊이 묻고 그리워하며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되면 납골당도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요. 비라도 오면 가슴이 쓰려요. 안에 곰팡이 슬까 봐. 동혁이가 발에 아토피가 있어서 늘 긁었는데, 그렇게 습한 곳에 있으면 더 힘들 텐데….
▲동혁 군 부모는 이날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은 "하루종일 얘기해도 속 안에 있는 얘기를 다 못 한다. 그만큼 쌓인 울분이 많다"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 군 부모는 이날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은 "하루종일 얘기해도 속 안에 있는 얘기를 다 못 한다. 그만큼 쌓인 울분이 많다"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이들은 이제 "스스로 나설 때"라고 했다.
동혁 아버지 : 이제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맞이할 게 아니라, 찾아갈 때가 온 것 같아요. 오늘도 안산 고잔동 지역 촛불집회에 처음 나갔어요. 그동안은 동네 사람들에게 무슨 창피인가 싶어서 안 나갔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있는 사람도 설득 못 하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노조를 활용하자는 것이에요. 300명 이상인 회사 노조를 찾아가서 우리가 원하는 특별법이 뭔지, 우리는 수도세 감면이니 특례,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한 집이든 몇 집이든 한 조가 돼서 각 사업장 돌아다니는 거죠. 그렇게 2~3주 지나면, 서명 참가자가 지금이 5%인데 15%까지 늘어날 수도 있겠죠.
동혁 어머니 : 당연히 슬프니까, 울 때는 울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다른 엄마들한테 얘기해요. 울려면 광화문에서 울라고요. 제가 집회 나가서 마이크 잡고 울어봐서 아는데요, 처음엔 부끄럽지만 그래야 사람들에게 울림도 주고 또 저 나름대로는 그게 힐링이 되더라고요.
이들은 '길게 가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동혁 아버지가 매일 슬픔을 견디면서도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길게 가는 싸움을 위해서라고 했다.
동혁 어머니 : 동혁이 아빠가 처음엔 일하는 데 대해 죄책감을 가졌어요. 그런데 제가 억지로 내보냈어요. 일이 1년 안에 끝날 것 같으면 둘 다 일 때려치우고 하자고 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얘기했죠. "나는 당신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좋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남아있어 줘. 나는 애들 위한 일을 하고, 당신은 우리를 위한 일을 하자"고요. 동혁 아버지가 지금은 힘들어도 분명히 나중에는 이 결정을 고마워할 것이라고 확신해요.
이들은 이 싸움을 언제까지로 생각하고 있을까.
동혁 아버지 : 10년을 싸워서라도 진상 규명이 된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아마 10년 뒤엔 투사가 되어있겠죠.
동혁 어머니 : 하루 벌어 먹고 살기 바쁜 저희가 예전에 정치 같은 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언젠가 이한열 열사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당신의 30년 뒤 모습이 제 모습"이라고요. 그땐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10년 후에도 아무것도 밝혀지는 게 없다면 저도 아마 이한열 열사 어머니 같은 투사가 될 것 같아요.
▲동혁 군 아버지 김영래 씨가 손목에 차고 있는 노란 팔찌엔 'REMEMBER 201404016'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 군 아버지 김영래 씨가 손목에 차고 있는 노란 팔찌엔 'REMEMBER 201404016'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이네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살아있는 천사'로 불린 동혁 군은 동생을 위해 방을 양보하고 거실에서 지냈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아버지 김영래 씨가 앉아있었던 쇼파는 동혁 군이 침대로 쓰던 쇼파베드였다. ⓒ프레시안(서어리)
▲동혁이네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살아있는 천사'로 불린 동혁 군은 동생을 위해 방을 양보하고 거실에서 지냈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아버지 김영래 씨가 앉아있었던 쇼파는 동혁 군이 침대로 쓰던 쇼파베드였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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