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 배후 누구냐고요?
살려달라 애원한 우리 애들입니다"
[현장] 세월호 유가족, 1일 3차 협상 앞두고 기자회견... 새누리는 '난색'
14.08.31 20:19l최종 업데이트 14.09.01 00:19l이경태(sneer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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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새누리당과 3차 면담을 하루 앞둔 31일 세월호가족 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은 "내일 가족들과 새누리당이 만나는 자리에서 며칠 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얘기했던 '기존의 여야 합의안이 최대한 양보한 부분'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라면 더이상 면담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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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분명히 밝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가족들의 배후는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엄마, 아빠를 간절히 부르며 구조를 요청했던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돕지 못해 마음 아팠다던 분들입니다."
일순간 말이 끊겼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오영석군을 잃은 어머니, 권미화씨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식이 살려달라 애원하는데 그걸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지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면 우리 애들이 와서 얘기하나 싶고, 비가 오면 애들이 많이 화났나 싶어요. 천둥 벼락이 떨어지면 누구한테 꼭 갔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권씨 옆에 서 있던 유가족들이 하나 둘 눈가를 훔치기 시작했다. 너나 없이 한 마음이 된 세월호 유가족들은 벌써 10일째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비닐 한 장에 의지한 채 무기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31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기소·수사권이 보장된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세월호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137일째이지만 여전히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침묵만 지키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농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열흘째 한뎃잠을 자고 있는 이들의 요구사항은 변함이 없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그 자체를 원했다.
추석연휴 넘기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
"부디 진실을 알려주세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어요."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섰다. 모두 함께 맞춰 입은 흰색 티셔츠에는 '부디 진실을 알려달라,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9월 1일 새누리당과의 3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만약 새누리당이 '기존의 여야 합의안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것이라면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정기국회 일정이나 추석 등 시일에 쫓겨 촉박하게 협상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추석 연휴를 넘기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중 1명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 기소·수사권을 행사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까닭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여야 원내대표 재합의안대로 특검 임명방식의 '보완'만으로는 충분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첫째, 상설특검법 상 7명의 특검 추천위원을 선발하게 되는데, 대한변협 회장(1), 야당 추천(2) 등 3인을 제외한, 법원행정처 차장(1)·법무부 차관(1)·여당 추천인사(2) 등 4인의 특검 추천위원들은 사실상 정부·여당의 영향력 안에 있고, 또 이들이 추천한 특검후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인 만큼 향후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특검의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기한인 1년6개월 내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해야 현재까지 드러난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들을 장기간 또 안정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야 합의대로 상설특검법에 따른다면 특검 활동시한이 90일이고, 여기에 여야 합의로 연장한다고 해도 최장 180일밖에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상설특검법에 따른 수사로는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셋째,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행사할 경우, 특검과도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원활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유병화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위 세 가지 요건을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낸다면 우리 가족이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위헌적인 주장 계속한다면 논의 진행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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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3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차 협의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시 유가족과 4차·5차 협의를 해서 성의있게 우리와 유가족이 계속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유족과 우리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면 야당이 표결에 참여하면 된다"고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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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누리당은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헌적인 수사·기소권 주장을 계속한다면 논의의 진행이 어려워진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김 부대표는 "유가족 대책위와 특히 그분들을 도와주는 많은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과격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도와주기를 바란다"며 유족보다 유족을 돕는 시민단체를 겨냥하기도 했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특히, "유가족 대책위가 수사·기소권 부여 수준의 특검 추천권을 넘겨달라는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면서도 "만약 그 같은 제안을 한다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새누리당은 유가족 측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김 부대표는 또 "상당히 급한 상황임에도 지난 2차 협상 4~5일 뒤인 내달 1일로 3차 면담을 정하는 걸 보면 유가족 내부적으로 의견 교환 절차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판단도 해본다"며 "1일 만날 때까지 다른 접촉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날 기자와 만나, 유가족의 입장 변화를 바라는 여당의 요구를 일축했다. 유 대변인은 "우리(유가족)가 입법 청원한 특별법을 본격적으로 얘기한 건 고작 (새누리당과 2차 면담을 한) 3시간 뿐"이라며 "(여야 원내대표 합의과정에서) 언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어나 봤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재합의안은 아무리 얘기해봐야 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유가족들이 새누리당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면 (소통)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소통 과정을) 뚝 잘라서 '받을래, 안 받을래'라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여당 특검추천위원 몫 2명 추천권을 유가족에게 준다'고 해도 그것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유 대변인은 내달 1일로 3차 면담을 잡은 것은 유가족 내 의견 조율 때문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의 설명과 정반대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유가족이 원하는 바나 심정을 충분히 설명했으니 4~5일간 (새누리당이) 시간을 갖고 충분히 그리고 깊이 고민해보시라는 뜻이었다"며 "그래서 제가 1일로 면담일자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차례에 걸쳐 유족과 새누리당이 직접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달 1일로 예정된 3차 협상에서 과연 세월호 특별법이 극적으로 타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저희 아이들의 희생으로 여러분의 가정은 지켜드리고 싶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시작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농성' 현장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일째 농성이 이어지면서 정체불명의 시민이 나타나 '시비 걸기'를 하는 등 유족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들의 신원에 대해 조사하거나 입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봐주기 논란도 일고 있다.
31일 오후에도 한 남성이 느닷없이 농성장에 나타나 유족들을 향해 "이제 집에 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은 유가족의 기자회견 도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밥 먹고 왔다, 어쩔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가 높게 든 두 손에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A4용지가 들려 있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했던 것을 비꼰 것이다. 그는 이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모퉁이에 마련된 농성장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의 제지를 뚫고 들어와 몇번씩이나 유가족들을 자극했다.
낯선 시민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고 이창현군 아버지 이남석씨는 "며칠 전부터 농성장에서 기도회 같은 것을 하면서 피켓을 들고 시비 거는 사람"이라며 "일반시민은 아닌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경찰에 누차 얘기했는데도 경찰도 (저 사람을) 옹호하는 느낌이 들어서 유가족들 마음이 많이 안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성장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가끔 비까지 오지만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수 있다"며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을 못 밝히는 게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유가족은 '세월호 정국'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진상규명에 10년 넘는 기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마음먹고 있다"며 "빨리 끝나길 바라는 국민들도 계시겠지만 어쩌면 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또 그러더라도 인내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진상규명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씨는 그 남성을 향해 "욕하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권씨는 "누구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며 "저희도 (세월호 사고 전에는) 내 자식이 이렇게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읍소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다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멀리 보냈기 때문에 다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기 힘들게 됐다"며 "그러나, 저희 아이들의 희생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은 지켜드리고 싶다"고 말해 주변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권씨는 "(세월호 사고 전과는 다른)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그 자체를 비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규명뿐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대국민 담화 날인) 5월 19일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정씨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벌써 열흘째 노숙을 불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1인시위하는 유가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부산까지 시장을 보러 가고 또 뮤지컬까지 관람하러 다니시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신가"라며 "이런 괄시를 받는 유가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진상규명만 제대로 해달라는 게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가"라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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