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 동토 내몽골, 한반도 숲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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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조홍섭 2014. 08. 27 조회수 4044 추천수 0
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① 내몽골 건허
설악산 대청봉 자생 눈잣나무 숲이 영구동토에 펼쳐져, 극지 식물 월귤도 지천으로 깔려
2만년 전 빙하기 한반도 숲의 원형, 기후변화 영향 가장 먼저 받아 세계적 관심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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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골 북방계 식물 답사 경로
한라산 꼭대기 암벽에는 키 5㎝에 탐스런 연노랑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란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란 별명을 지닌 암매(돌매화)이다. 백두산에도 없고 시베리아나 스칸디나비아, 알래스카의 극지 고산지대에 많은 이 나무가 한라산에서 살게 된 이유는 뭘까. 신생대 제3기 이후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진화해온 동북아시아 생물의 자연사 속에 그 비밀이 담겨있다. <한겨레>는 국립수목원과 함께 빙하기 피난처로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동북부, 만주 연해주, 일본 혼슈 등 대표적인 동북아의 식물의 자생지를 답사했다. 한반도 식물과 유연관계가 깊은 이들 지역에서 훼손되지 않은 한반도 숲의 원형을 확인했다. 또 기후변화로 멸종위험에 놓인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전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는 9월 강원도 평창에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이 기획을 통해 동북아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도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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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기 동북아 숲의 원형을 간직한 것으로 평가되는 내몽골 건허의 원시림. 만주잎갈나무 고사목이 넘어져 있고 옆에 자작나무, 월귤 등이 자라고 있다. 땅 표면 40㎝ 아래에는 영구동토대가 있다.
지난달 29일 취재진은 중국 센양(심양)에서 자동차를 타고 만주를 관통해 1500㎞에 걸친 북상 길에 올랐다. 북방계 식물을 중심으로 한반도 자연사의 기원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다.
센양 도심에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와 모감주나무가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자 주택가 공터의 활짝 핀 참나리와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도시와 시골에서 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김영환 센양응용생태연구소 박사는 “공통의 지질역사를 지닌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 일본 중부에는 비슷한 식물이 많다”며 “내몽골의 다싱안링(대흥안령) 산맥에 가면 한국에는 매우 드문 북방계 식물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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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손되기 전 만주 벌판의 숲의 모습을 간직한 내몽골 다칭구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원시림. 백두산 산록의 식생과 유사하다.
센양에서 200㎞ 떨어진 내몽골 다칭구의 국가 자연보호구역에는 사막 오아시스에 원시림이 펼쳐져 있었다. 용천수가 뿜어나오는 계곡 주변 1300여㏊의 숲에는 만주물푸레나무를 비롯해 피나무, 신갈나무, 가래나무, 황벽나무, 느릅나무 등 우리에게 낯익은 나무들이 들어서 있었다. 동행한 장창기 공주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백두산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거의 다 여기 있다”고 설명했다.
31일 자동차는 평원을 뒤로하고 언덕으로 접어들었다. 만주에서 베이징 이남까지 남북으로 1200㎞에 걸쳐 뻗은 중국 최대의 산맥인 다싱안링 산맥을 넘어 야커스시로 향했다. 우리나라 고산지대에 있는 흰 수피의 자작나무가 평야에 대규모로 심어져 있었다. 이 지역 최대 산업은 임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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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골 야커스 시의 자작나무 조림지. 이곳은 중국내 최대 임업지역의 하나이다.
야커시 외곽의 운룡산장 경관보호구로 갔다. 센양에서 북쪽으로 약 1100㎞ 떨어진 북위 59도 지역이지만 식물에서는 강원도 분위기가 났다. 호수 근처 습지에는 곰취와 솜방망이의 노란 꽃과 보랏빛 용담 꽃이 한창이었다.
만주 특산의 분홍빛 꽃을 피우는 부추와 우리나라에선 매우 희귀한 작약도 흔하게 나타났다. 오승환 국립수목원 박사는 “비무장지대 안의 묵논을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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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 특산의 부추. 한반도의 흰 꽃을 피우는 부추와는 약간 다르다.
애초 예상과 달리 야커스에서도 한반도 북방계 희귀식물 군락을 보기는 힘들었다. 중국의 개발과 기후변화 속도는 중국 식물 전문가가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빨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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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골 야커스 지역의 대평원 지대에 야생화가 피어있다.
다시 밤 열차를 타고 260㎞ 북쪽인 건허시로 향했다. 중국 최북단으로 다싱안링 산맥 한가운데 자리잡은 곳이다.
안개에 잠긴 자작나무와 이깔나무 자연림을 뚫고 이튿날 새벽 장추량 대흥안령 삼림생태계 국가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을 만났다. 답사를 서두르는 취재진에게 장 소장은 “불곰이 물 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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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허 눈잣나무 보호림의 눈잣나무를 취재진이 살펴보고 있다. 이곳의 눈잣나무는 평지여서 비교적 크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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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호 눈잣나무 보호림의 모습.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건허에는 중국 최대의 눈잣나무 군락이 있다. 보호림에 들어서자 산 들머리부터 조림한 것처럼 눈잣나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누운 것처럼 땅을 기는 이 잣나무는 설악산에서 키가 1~2m인데 이곳은 평지여서인지 4m가 보통이었고 10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설악산 중청봉에서 대청봉을 잇는 능선 양쪽 산비탈과 소청봉, 관모능선 등에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눈잣나무가 자란다. 이 나무는 연간 5~6개월 동안 눈에 덮이는 춥고 바람 센 곳에서만 분포한다. 바이칼호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시베리아에선 흔하지만 설악산은 유라시아에서 가장 남쪽 자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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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대청봉 일대의 눈잣나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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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잣나무 분포도. 그림=나카무라, 크레스토프
눈잣나무는 빙하기의 유산이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생물지리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눈잣나무는 지난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에도 연속적으로 분포하다 온난화 함께 활엽수에 밀려 고산지대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빙하기 한반도 자연사를 복원하는 지표종이자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변화를 모니터링하는 지표로서 가치가 크다. 지구온난화가 더욱 진척해 동북아 북부의 눈잣나무가 쇠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오랜 기간 격리돼 온난한 기후에 적응하도록 분화된 우리나라 집단이 생태계 복원에 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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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잣나무 아래 백산차, 월귤 등 극지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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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를 맺은 초소형 극지 나무 월귤. 극내에는 극소수가 설악산 등 고산과 풍혈에 분포한다.
눈잣나무 아래 숲 바닥을 덮고 있는 식물은 풀이 아니라 초소형 나무인 월귤이었다. “이 지역 월귤의 붉은 열매가 시장에서 ㎏당 20위안에 팔린다”고 연구소 관계자가 귀띔했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홍천 등 자생지가 3~4곳에 불과한 희귀식물이다. 월귤과 함께 한반도에선 백두산에만 있는 백산차가 숲바닥에 깔려있었다. 모두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북부 등 극지대에 흔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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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허의 원시림 지대. 만주입갈나무와 자작나무 등이 서 있다. 지하 40㎝ 밑으로는 영구동토가 있다.
건허의 원시림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면적 8500㏊인 이 보호구역에서는 일반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과학적 연구만 허용한다. 대낮인데도 진입로에 있던 노루와 들꿩이 놀라 달아났다.
200~300년 된 만주잎갈나무 고목이 곳곳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땅속 40㎝ 깊이에 영구동토층이 있어 뿌리가 얕아 자주 쓰러진다. 벼락을 맞은 나무도 치우지 않는다. 숲 바닥에는 월귤과 들쭉 같은 키 작은 나무와 두루미풀, 이질풀 등 고산성 초본이 깔려 있었다.
“불곰이 개미집을 파헤친 흔적”이라고 연구소 관계자가 숲 바닥을 가리켰다. 이곳엔 너무 추워 멧돼지나 뱀이 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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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허 원시림에 핀 이질풀의 한 종. 한반도 개체와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초본이 많이 눈에 띈다.
마지막 빙하기가 전성기이던 1만8000년 전 춥고 건조하던 한반도의 숲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장 소장은 “이곳은 빙하기 동북아 식생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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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센양, 야커스, 건허/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인터뷰-장추량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
“영구동토대, 기후변화 감시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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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추량 다싱안링 삼림생태계 국가 야외과학관측연구소장(사진)은 건허가 중국 최북단의 도시로서 기후변화 영향을 감시하는 최전선이라고 말했다.
북위 50도에 위치한 이곳의 겨울 평균기온은 영하 32도, 연평균 기온도 영하 5.4도이다. 6월이 돼야 얼음이 녹고 8월 말이면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석달뿐이다. 빙하기 식물이 살아남은 배경이다.
장 소장은 “건허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 영구동토대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더 남쪽인 야커스에도 동토지대가 있었고 이곳과 같은 원시 산림이 있었지만 개발로 면적이 줄고 기후변화로 조각나 모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야커스에 기후변화를 감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연구센터를 설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원시림 가운데 65m 높이의 측정탑을 설치해 10m 단위로 기상, 식물의 광합성량, 호흡량 등을 측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구동토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이라 국제적인 관심이 모이고 있다. 건허의 원시림 지대는 해발고도가 높지 않고 넓은 면적을 지닌 영구동토 지대여서 더욱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건허(내몽골)/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동북아는 빙하기 야생동물 피난처
다람쥐·너구리 등 야생동물 살아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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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람쥐. 사진=김봉규 기자
동북아는 빙하기 식물뿐 아니라 야생동물이 추운 날씨를 피해 살아남았다가 간빙기에 다시 확산하는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를 통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반도는 빙하기 야생동물의 피난처였다 참조).
다람쥐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는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 결과 빙하기 때 이들 가운데 적어도 2곳에 피난처가 있었음이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한반도의 다람쥐는 이 과정에서 백두산 일대의 빙하에 가로막혀 고립돼 중국·러시아 다람쥐와는 다른 종으로 분화했음이 드러났다. 하늘다람쥐도 한반도가 빙하기 때 피난처의 하나였다.
너구리는 동북아와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데, 2만년 전 빙하기 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피난처 몇 곳에서 살아남은 뒤 간빙기 때 퍼져나갔다.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박사 등 연구진은 한국 너구리와 러시아, 중국, 베트남 너구리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0.4~0.6%에 그쳤지만 일본 너구리와는 2.4%에 이르렀음을 밝혔다. 이는 일본의 너구리가 100만년 이상 전의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이동해 간 무리가 격리해 진화했으며 이후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아가미 없이 허파로 호흡하는 미주도롱뇽과의 이끼도롱뇽이 한반도에 서식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한반도의 피난처 구실을 뒷받침한다. 세계 미주도롱뇽의 99%는 북아메리카에 서식하고 지중해 서부에 서식지가 한 곳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됐다. 민미숙 박사팀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던 미주도롱뇽이 한반도와 지중해 서부 두 곳을 빼곤 모두 멸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밖에 한반도는 참개구리, 꼬리치레도롱뇽, 흰넓적다리붉은쥐 등이 빙하기 때 살아남는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빙하기 때 피난처였던 동북아는 원시적인 생물이 많이 살아남았고 생물다양성도 높아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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