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정세 변화의 분수령이 될 9월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64)
정창현 | tongil@to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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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1 07: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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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무상이 15년 만에 이달 중순에 열리는 69차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
북한 외무상의 유엔총회 방문은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 단 2차례(1992년과 1999년)밖에 없었다. 이후 한두 차례 북한 외무상 등 최고위 당국자의 미국.유엔 방문이 추진됐으나 ‘돌발변수’로 무산됐다.
특히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맞춰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김 위원장 일행과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 사이에 보안검색 문제가 불거져 결국 미국 방문이 무산된 사건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었다. 당시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이 지체돼 그해 10월 초 조명록 차수가 특사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불발됐다. 이후 북한은 외무성 부상(차관)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북한 외무상의 방미는 흔치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외교가의 관심이 쏠린다. 리수용 외무상이 방미 기간에 내놓을 메시지 때문이다.
일단 리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은 향후 북한이 적극적인 국제외교를 펴나갈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볼 수 있다. 리 외무상의 국제 외교무대 참석은 8월 10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이후 두 번째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여러 분야에서의 국제적 협조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미합동군사연습 등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비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정당성, 인권문제 등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에 대응해 북한이 자체적인 ‘인권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표방한 만큼 리 외무상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의 박명철 최고재판소장은 러시아를 방문해 인권보장.테러척결 협력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의 비밀접촉
그러나 리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할 수 있겠지만 미국과 비공식 접촉에 나서거나 새로운 대미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각에서는 최근 비밀리에 이뤄진 북.미접촉에 주목한다. 북.미관계의 새로운 추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16일 미 정부 인사가 미 공군기를 이용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는 것이 북미접촉설의 기본 내용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접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북.미접촉 자체는 사실인 듯하다. 2012년 김정은시대에 이미 3~4차례 똑같은 방식의 비밀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연합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지고, 일정도 하루 앞서 종료됐기 때문에 이번 북.미접촉이 더욱 주목을 끈다.
주목해야 할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9월 중순이후 비슷한 기간에 인천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미국 뉴욕에서는 리 외무상이 참석하는 유엔총회가 열린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재개를 모색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계기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과거 3~4차례 북미접촉에서도 대화의 ‘장기국면’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은 평양에 수감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의 석방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에도 비밀리에 고위 당국자들이 방북해 억류 미국인 석방문제를 논의했고, 미 대표단의 방북직후 미국인 메릴 뉴먼 씨가 억류 42일 만에 풀려났다.
미국은 곧 남은 배 씨의 석방을 위해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방북을 추진했고, 북한도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 2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에 미국의 핵우산 핵심전력인 B-2 스텔스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가 연습에 참가해 무력시위를 하자 북한은 초청 계획을 취소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중순의 미 대표단 방북도 배 씨의 석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 라인 변화
다만 향후 정세 변화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안보진용 개편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우선 1년이 넘도록 공석으로 비워두었던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산하 6자회담 특사에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관을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2년 4월과 8월의 대북접촉에 관여했던 경험이 있다. 6자회담 특사는 대북정책특별부대표 자리를 겸하면서 6자회담 재개 시 차석대표를 맡는 자리다. 대북정채특별대표로 임명된 성김 전 주한 미대사와 함께 6자회담 재개문제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사일러 담당관의 후임에도 오랫동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앨리슨 후커가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북 안보진용 개편을 전후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원싱턴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오바마 행정부 1기의 대북 제재정책을 주도한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전략적 인내’로 대변되는 현 미국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며 북한과의 예비적 양자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는 “북한문제를 단순히 ‘관리’하려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라며 “이제는 북한에 대한 능동적 대화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앞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할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exploratory discussions)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북.미 비밀접촉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단기간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변할 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은 여러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해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6자회담 재개를 계기로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 측은 북.미 불가침조약으로 상징되는 문서화된 안전보장을 최종목표로 논의하는 것이 대략적인 밑그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 10월 12일 국방위원회는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대조선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우리가 핵무기를 내놓으면 대화도 있고 관계 개선도 있으며 불가침도 있다는 감언이설로 감히 그 누구를 흔들어보려고 꾀한 것”이라면서 미국 협상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북.미 양측은 상대에게 의지가 없다며 비난에 나섰고, 함께 불거진 이란과 시리아 문제 등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여전히 워싱턴에는 북한과의 ‘협상무용론’이 득세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막후접촉을 통해 대화의 조건을 타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북.미접촉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병기 국정원장 취임을 계기로 대북정책의 일정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8월의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 제안이 상징적 조치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8.15경축사, 북측 응원단 파견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을 볼 때 대북정책 기조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제2기 외교안보라인이 그리는 대북정책의 밑그림은 이번 달에 이뤄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 윤병세 외교장관의 유엔총회 참석, 국정원의 조직 개편 등이 이뤄진 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일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북한
북한은 남측이 제안한 2차 남북고위급접촉에 대해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심’으로 마련된 대외정책이 미국의 견제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남쪽에 1월 ‘중대제안’과 6월 ‘특별제안’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북.일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5월 북일간 스톡홀름합의에 따라 7월 4일 발표된 일본 납치 피해 문제 등을 조사할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원 면면은 북한의 적극적인 자세를 잘 보여준다.
며칠 후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생존하는 납치자 30명 명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즉각 반박한 것처럼 이 보도는 오보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 정부가 수긍할만한 조사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북한이 일본이 거론하고 있는 생존 납치자 중에서 일부의 존재를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스톡홀름합의 후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우리측은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북한은 특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면서 “조사는 어느 한 대상분야만을 우선시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동시병행적으로 진행한다”며 “필요한 대상들에 대한 조사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측 관계자와의 면담, 일본측 해당 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서와 정보들에 대한 공유, 일본측 관계장소에 대한 현지답사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기본방침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확정된 것이다.
새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일본이 제기한 납치피해자와 일제강점기에 사망해 북한 지역에 묻힌 일본인들 외에도 해방 후 북한지역에 잔류한 일본인과 그 후손들,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입국한 일본 여성 등 자진입국자들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선택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북한은 이러한 조사에 기초해 일본에 친척이 있는 일본인의 일시 귀국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만경봉호를 타고 일본을 방문할 경우 북측이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화객선 ‘만경봉 92’의 일본 입항 재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9월중으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일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북한과 일본 당국은 북한 거주 일본인의 일본 방문 등 일본 내의 방북정서를 완화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행사의 결과와 아베 총리의 최종결정 여부에 따라 북한은 동북아정세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북.러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국내의 한 언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8월말에서 9월초에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관련 질문을 받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부인했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이 현재로서는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올해 10~11월로 추진되고 있는 일본 방문 일정이 무산될 경우 평양을 방문하거나 러.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그 전후에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우려했던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연습기간을 위기고조 없이 넘긴 9월의 한반도정세는 ‘대화국면’을 만들기 위한 모색기에 접어들었지만 미국과 한국의 정책기조가 변화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긍정적 변화가 모색되더라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6개국의 복잡한 논의과정이 다시 진행되고, 수감된 케네스 배 씨의 석방이 북.미대화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겠지만 그것이 6자회담 재개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현재로서는 북.일회담의 진전이 한반도정세의 변화를 이끄는 도화선이 되고, 이것이 남북대화, 북.미대화,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최종 선택이 1차적인 변수이고, 이에 대한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2차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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