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朴대통령, 침묵 끝내 달라"
선명수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청운동주민센터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광화문광장에서 1.7km. 도보로는 길어야 30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거리 곳곳에 배치된 경찰 병력이 통행을 가로막았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나흘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곳, 주민센터 앞 그들을 만나러 가는 일 자체가 '불법'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4일째예요. 우린 완전히 고립됐어요."
유족들을 만나러 가는 2km 남짓의 짧은 거리에서, 기자증을 제시한 것만 예닐곱 차례였다. 인도 곳곳을 촘촘하게 가로막은 경찰은 기자증을 꼼꼼하게 '검사'하고 난 이후에야 마지못해 길을 열어줬다. 취재진과 동네주민을 제외하곤 통행 자체를 가로막아,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과 경찰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비가 내리면 비닐을 뒤집어 쓰고, 차디 찬 길바닥에서 잠을 청한 것만 25일로 나흘째였다. 청와대까지 불과 450m. 중국인 관광객들은 하루에도 수십명씩 청와대 앞을 오가지만, 그 가까운 길조차 갈 수 없는 유족들에겐 청와대에서 최대한 가까운 길목이 그 곳이었다. 진도체육관에서 시작해 국회 앞, 광화문광장, 새정치민주연합 당사까지. 지난 4월16일 이후 수없이 길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유족들이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찾은 곳이 이 곳이었다.
유족들은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40일 넘는 단식 끝에 병원에 실려간 지난 22일, "대통령이 우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로부터 완전히 '포위' 당했다. 유족들은 "감옥에서도 면회를 막지는 않는데, 맞은 편까지 겨우 온 시민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의 풍경"이라고 했다.
▲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농성장. 유족들은 25일로 농성 나흘째를 맞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농성장. 유족들은 25일로 농성 나흘째를 맞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유족들의 농성 장소는 경찰 차벽으로 완전히 포위할 만큼, 어떤 '불법'이 일어난다고 하기엔 너무나 작고 초라한 공간이었다. 한 유족은 기자와 만나 "바닥에 깐 깔개와 비닐조차 시위 용품이라며 빼앗아 가려는 경찰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며 "대통령 면담을 기다리며 이곳에 있지만,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도 통행도 가로막은 경찰…유족 "학생들 얼굴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
오후 9시께, 이날 낮 경희대와 서울대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한 대학생들이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삼삼오오 주민센터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이 통행을 막은 탓에, 400여 명 남짓의 행진 규모는 7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나흘째 고립됐던 유족들의 표정이 길 건너편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밝아졌다.
하지만 불과 5m 남짓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경찰이 유족과 학생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경찰들 너머 학생들의 얼굴을 보겠다며 단원고 2학년7반 고(故)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박스 위에 올라섰다.
학생들을 향해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치는 권 씨의 목소리는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수차례 '불법 집회'라며 해산 명령을 내리는 종로서 경비과장을 향해선 "애들 12시 전에 돌려 보낼테니, 다치지 않게 집에 돌려보낼테니 얼굴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 경찰이 유족들과 학생들 사이를 가로막자, 학생들이 유족들이 들을 수 있도록 "힘내세요"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경찰이 유족들과 학생들 사이를 가로막자, 학생들이 유족들이 들을 수 있도록 "힘내세요"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가 이어지자, 연신 힘찬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던 권 씨가 갑자기 무너졌다.
"학생들,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절대 다치지 마세요, 절대로. 그리고…우리 애도 보고싶어요. 우리는 아들 하나 밖에 없었어요. 1~2년 후면, 여러분처럼 대학생이 되어서 여기 서 있었을 아이입니다. 그 아이도 꿈이 많았습니다. 너무 보고싶습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선 더 울고 싶지 않다"는 권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애 하나 보낸 것으로 됐다. 더는 울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1시간 남짓 대치를 이어간 끝에, 학생 대표자 2명이 가까스로 농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학생들 전원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몇몇 학생들에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게 해 달라"는 유족들의 호소의 결과였다.
▲ 이날 학생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청운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지만, 곳곳에서 경찰 병력에 가로 막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날 학생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청운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지만, 곳곳에서 경찰 병력에 가로 막혔다.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유족들이 도보 행진 끝에 농성장을 방문한 학생 대표자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유족들이 도보 행진 끝에 농성장을 방문한 학생 대표자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경희대 총학생회장 박이랑 씨와 서강대 학생 김종렬 씨가 유족들 앞에 섰다. 빼곡하게 응원의 메시지를 적은 현수막도 전달했다. 유족들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껴안고, "여기서 노숙하면서 직접 만든 것"이라며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아줬다.
"다음에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 오겠다"며 대학생들이 떠나고, 다시 유족들만 남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몰려들었던 취재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농성장에서, 유족들은 다시 농성 5일째 새벽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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