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개혁 대상은 한민구 국방부장관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4/08/23 [00: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해방 70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지만 서민의 애환과 고통은 아직도 도처에서 드러난다. 이 가운데 온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정부부처는 바로 국방부였다. 징병제가 시행된 이후, 이 나라 남성은 누구나 징집대상이 되어 군대에서 3년을 보내야 했다. 청년들을 군에 보낸 가족들은 누구나 애태우고 가슴을 졸이며, 때로는 분노했던 70년 세월이었다.
보수진영은 개혁진영의 안보정책을 안심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에서 별 탈 없던 국방이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바람 잘 날이 없다. '국가안보'를 강조해 집권한 보수진영의 안보기강이 이렇게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니!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자 이를 북한 잠수정의 최첨단 버블제트 어뢰의 공격에 의한 폭침이라고 규정한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였다. 실제로 잠수함 탐지가 주 임무인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에 의해 침몰했다면,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로 제기하고 해군전력 전반을 재편성해야 이치에 맞지만 군은 그저 "도발 시 격멸"만 외칠 뿐이다.
그러하기에 국내 수많은 시민들은 국방부의 주장에 합리적 반론을 제기하였고 북미의 재미과학자들까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천안함의 진실공방은 놀랍게도 아직도 재판 중이다! 정부가 "천안함 폭침설"을 법정에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국방부의 주장을 믿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제 더 말해 무엇하랴, 뒤이은 연평도 포격전, 그리고 최근의 고성 총기난사 임병장 사건, 28사단에서 폭행당해 숨진 윤일병 사건, 급기야 경기도지사인 새누리당 남경필 지사의 아들이 군대에서 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까지, 이제 국방부는 존립을 가늠할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책임지지 않는 장관
건국 이래 70년을 흘러온 대한민국 국방부가 썩어빠졌다는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이러한 제반사태의 책임을 어느 몇 명에게 모두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여타 부처와 달리 명령에 의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부처로 지휘관의 역할이 다른 부처에 비해 월등히 중시된다. 국방부를 진정으로 개혁하려면 일선의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군부의 핵심지휘관에게 책임을 묻고 지휘관에 대한 대책을 잘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대응양상을 보면 군과 관련한 갖가지 사고가 터지는 상황인데도 국방부장관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국방부장관직을 맡은 김관진 전 장관은 재임 당시 군에서 온갖 문제가 불거졌지만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한 이후, 어떠한 책임논란에서 벗어나 있다. 특히 이번에 국방부장관에 오른 한민구 전 합참의장도 그 동안의 군 문제에 상당한 책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거듭해 결국 장관직에 올랐다.
자존심 상하는 "천치" 비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였지만 당시 한민구 육군참모총장은 7월 5일, 합동참모의장으로 승진하였다. 물론 천안함 사건은 해군의 문제이므로 육군참모총장에게 문제삼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하였을 당시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에 대한 우리 군의 미흡한 대처로 지탄을 받았고,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한민구는 단연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평도포격전에도 불구하고 2011년 10월 26일까지 군령의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직을 계속 수행하였다.
특이한 점은 북한이 한민구 장관을 매우 손쉬운 상대라고 폄하하고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7월 29일, 우리의 민방위부대격인 노농적위군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는 2006년도에 한민구를 대상으로 북남장령급 군사회담을 할 때에 벌써 그를 천치 중의 천지로 낙인했다."면서 "오늘 그 바보가 괴뢰국방부 장관이 된 것"이라고 한 장관을 비난한 것이다.
실제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국방부 소장으로서 2006년 제3, 4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당시 장성급회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소상히 알 수 없으나 북한이 우리 국방부장관을 "천치 중의 천지"라고 비난한 대목은 북한의 노골적인 표현방식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적인 비난이라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에 대한 특이한(?) 동향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군대 내 폭행사건에 대한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8월 3일, 새누리당 긴급 당 최고위원회는 간담회에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불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향해 "장관은 자식도 없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걸 왜 은폐하려 하느냐"라고 하며 책상을 내리치며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이에 한민구 장관이 해명을 하자 김무성 대표는 한 장관의 말을 자르며 화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부처의 총책임자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위원이며 국무회의의 임원이다. 물론 입법부와 행정부의 공조를 위해, 집권여당의 최고위원회 자리에 국방부장관이 출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삼권분립이 분명한 대한민국에서 집권여당의 대표가 국방부장관을 불러다가 호통을 치고 책상을 내리치는 행위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북한이 "천치 중의 천치"라고 비난하고, 김무성 대표까지 장관을 불러다 책상을 치며 호통을 치니, 군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강경노선으로 만회하려는 한민구 장관
더욱 위험한 상황은 한민구 장관이 내외의 비난여론에 대해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6월 29일 인사청문회에서 단호한 대북대응태세를 다짐하였다. "북한이 도발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 강도 높은 톤을 유지하였으며, "독자적인 정보감시와 정밀타격능력을 확충하고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조기에 구축하겠다"고 한 것이다.
7월 20일, 한민구 장관은
"일요진단"에 나와 "(북한이) 또 다시 도발을 감행한다면 체제의 생존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였다. 나아가 한민구 장관은 국방부장관이 된 이후, 미국이 사드(THAAD :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한다면 북한의 핵, 미사일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안보태세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날 연평도 포격전에서 당한 울분을 풀어낸 것일까. 아니면 생존의 전략으로 강경노선을 선택한 것일까.
<연합뉴스>는 한민구 장관을 두고 야전과 정책 분야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고루 갖춘 대표적인 '문무겸비형'이라며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뛰어난 갈등관리 능력이 있는데다 상관은 물론 부하들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한민구 장관이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문제는 현 시기가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아래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신장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며 미사일, 방사포 발사가 올 상반기에만 100여회에 이르고 있는 시점이란 데 있다. 북한은 8월 19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시작되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맞춤형억제전략》을 실전에 적용하는것으로 우리에게 선전을 포고해온 이상 우리 식의 가장 강력한 앞선 선제타격이 우리가 선택한 임의의 시각에 무자비하게 개시된다는것을 다시금 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방부장관이 무작정 "또 다시 도발을 감행한다면 체제의 생존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협박으로 받아치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 한민구 장관이 진실로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뛰어난 갈등관리 능력이 있어 상관은 물론 부하들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다면, 이 시기에 한반도의 갈등관리 능력을 보여야 정상적인 행보가 아니겠는가.
비리의혹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국방부
국방부 인사에서 매번 비리의혹이 불거졌듯, 한민구 장관도 비리의혹이 여전히 제기되어 세간의 논란이 되었다.
한민구 장관은 2011년 10월 합참의장으로 제대 후 국방과학연구소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2013년 10월까지 2년간 월 300만원씩의 자문료를 받아 총 7800만원, 의전차량 연간 2477만원, 송파구에 사무실과 담당 직원도 지원받았다고 한다. 2013년 1월부터 11월까지는 육군본부 정책의 발전 자문관으로 1430만원 등 2013년 총 5030만원의 자문료를 받았다고 한다.
6월 3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한 내정자가 방위산업체로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학회(포럼)의 회비를 걷었다"며 의혹을 제기하였다. 김 의원은 각 언론사로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한민구 내정자는 전역 후 다음해인 2012년 8월 27일, 미래국방포럼을 설립해 현재까지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방산업체들로 하여금 수백만원의 회비를 부담토록 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미래국방포럼은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500만원까지 각 업체들로부터 연회비를 받았다고 한다. 또 각 방산업체 임원들은 미래국방포럼 임원진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미래국방포럼 홈페이지를 보면 특별회원사인 A사를 포함한 다수 방산업체의 안내화면이 게재되어 있다. 김 의원은 "이들 모두가 연간 수백만원의 회비를 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장관은 조부의 행적도 명확히 밝혀야
한민구 장관에 대한 조부의 의병활동 행적도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민구 장관의 조부 한봉수(韓鳳洙)는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된 국가 공인 독립유공자이다. 그러나 구한말 의병장 연구가 이태룡 박사는 6월 10일, 충격적이게도 한봉수 친일의혹 근거로 일제가 작성한 비밀문서를 제시하였다.
1910년 3월 11일, 내부 경무국장이 충청북도 경찰부장 앞으로 보낸 '고비수(高秘收) 제 1817호"는 '폭도(의병) 소수괴 한봉수(韓鳳洙)가 당국에 사면을 원출(願出)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사면을 받으면 '문태서'의 소재를 고해 보답하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문태서는 당시 덕유산을 무대로 의병투쟁을 펼치는 중에 1907년 12월 서울 진공작전을 위해 전국 13도 연합의병이 결성되었을 때 호남의병장으로 추대되었던 인물이다. 한봉수의 의병활동도 대단한 것이지만, 10명 안팎의 소규모 의병을 이끌었던 한봉수와는 차원이 다른 핵심의병이 바로 의병장 문태서였다.
이태룡 박사는 그로부터 20일 뒤인 1910년 3월 31일, 충청북도 경찰부장이 내부 경무국 보안과장에게 보낸 '충북경비수 제330호의 1은 실제로 귀순한 한봉수가 일본경찰과 함께 문태서를 찾아다녔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충북 경찰부장은 "영동경찰서장의 직접 지휘하에 행동시켰던 바 … 한봉수는 3월 19일, 영동을 출발하여 동 군내와 전북 무주, 금산 등의 각 곳을 수사하고, 28일 저녁 영동으로 돌아왔으나 문태서의 소재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무국 보안과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한봉수 선생은 같은 해 6월 29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교수형을 받았지만, 일제가 경술국치를 맞아 8월 29일 단행한 대사령(대사면)에서 면소판결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태룡 박사는 "의병장으로 활동한 자이면서 면소판결을 받은 것은 전국에서 한봉수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일제의 의병장 색출작업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가 면소판결의 배경이었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학계 일각에서는 한봉수 선생의 귀순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위장귀순'으로 보기도 한다. 한봉수 선생이 9년 뒤인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는 사실이 위장귀순의 근거로 제시된다.
조부의 의병경력이 한민구 장관의 출세가도에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모름지기 한민구 장관이 상관과 부하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조부의 행적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양심적으로 전모를 조사해 공과 과를 명확히 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국방부의 부대폭력, 상관의 전횡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지휘관의 문제이다. 지휘관이 일선의 장병들 앞에 솔선수범해 신망과 존경을 받아야 군대가 바로설 수 있다.
우리 군은 지극히 상식인 군 개혁이 왜 안되는 것일까? 군의 책임자부터 진정으로 솔선수범하며 군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능력있는 인물로 편성되어야 국방개혁도 실속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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