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 받은 1호 한국인
등록 : 2014.08.17 10:38수정 : 2014.08.17 12:03툴바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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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7일 아침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이호진씨 제공
[한겨레21]두 아버지가 파파에게
“교황의 서재에서 아이들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38일간 800km 길을 걸어 메고온 세월호 십자가 교황에게 전달
이호진씨 “교리 배우지않았지만…”, 교황 “세례받을 자격 충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반짝였다. 세월호 참사로 막내아들을 잃고 38일간 십자가를 메고 800km(2천 리)를 걸었던 두 아버지가 소망을 이뤘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8반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와 2학년4반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는 지난 8월15일 오전 10시15분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교황을 만났다. 웅기군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은 304명의 영혼과 고통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 그들과 같이 미사를 집전해달라”며 교황에게 십자가를 선물했다. 길이 130cm, 무게 6kg의 나무 십자가는 앞서 천주교 대전교주장 유흥식 주교에게 전달돼 교황 제의실에 갖다놓은 상태였다.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는 십자가를 바티칸으로 가져갈 절차를 밟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웅기군 아버지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의 서재에 십자가를 두어 아이들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7일 아침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이호진씨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 받은 1호 한국인
승현군 아버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는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그는 교황을 만났을 때 “2천 리 180만 보를 한발 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디뎠다. 교리를 배우지 않았지만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라고 질의했다. 교황이 다른 사제들과 잠시 논의하더니 “자격이 충분하다”고 답했다. 그는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고 싶다고 청했고 교황은 흔쾌히 응했다. 세례식은 8월17일 아침 7시께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열렸다. <한겨레21>은 두 아버지가 800km를 완주하고 교황을 만나기까지 39일간 동행했다.
8월14일 오전 9시 두 아버지가 최종 목적지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지난 7월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를 출발한 이들은 충남과 전북, 전남을 거쳐 21일 만인 7월28일 진도 팽목항에 다다랐다. 다음날인 29일 팽목항에 머물며 사고 현장을 찾아가 바닷물을 플라스틱병에 담았다. 그리고 30일부터 다시 하루 20~30km씩 걸어 16일 만에 대전월드컵경기장을 밟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7일 아침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이호진씨 제공
“‘사랑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이 말은 (세월호 사고일인) 4월16일 9시28분 웅기가 휴대전화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예수가 십자기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졌다. 길을 함께 걸어준 동행자가 바로 그 시몬이다. 웅기, 승현이,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나눠줬다고 생각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모두를.’”(웅기군 아버지)
“졸지에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 때문에 한을 품고 걸었다. 이제 겨우 800km 내려놓았다. 더 걷고 싶은데 이제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아무도 지지 않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걸을 때 돌아서지 않는 세상이 너무도 야속했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진실 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집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다.”(승현군 아버지)
두 아버지가 단원고를 떠날 때만 해도 교황과의 만남은 물론 대전 미사 참석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도보 순례를 떠났다는 소식이 <한겨레21> 페이스북(www.facebook.com/hankyoreh21)을 통해 알려지자 자발적 동행자가 급증했다. 광주를 지날 때는 500명이 훌쩍 넘었고, 대전 진잠다목적체육관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마지막 순례길(9km)에는 300여 명이 동행했다. 천주교 대전교구·전주교구·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도 유가족 순례단을 적극 후원하면서 두 아버지의 8월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참석이 확정됐다. 또 교황은 미사가 시작하기 전 제의실에서 두 아버지를 포함해 세월호 유가족 8명과 단원고 생존 학생 2명을 따로 만나기로 결정했다.
이호진씨가 받은 세례증서와 메달. 이호진씨 제공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이 모여
오전 11시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리가 청아하게 성당을 채웠다. “그대 보내고 멀리, 그 아픈 사랑을 지울 수 있을까.” 웅기군 아버지가 순례길에 나서기 전에 안산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수없이 반복해 들었던 곡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오카리나 연주자 정미영씨는 결국 공연을 하다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일 수밖에” 없음에 공감하는 관객도 숨죽여 흐느꼈다.
두 아버지의 2천 리 완주를 기념하는 세월호 작은 음악회 ‘길 위에서’가 대전 유성성당에서 열렸다. ‘세월호 게릴라 음악인’이 주관하고 <한겨레21>이 후원한 음악회에 300명이 참석했다. 순례길에서 만난 이들은 2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어우러졌다. 이날 음악회는 <하니TV>로 생방송됐다. 승현군 아버지가 사회자로 나섰다. 그는 교황을 만나 “세례를 부탁할 것”이라며 “그러면 주교급 신자가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 길 위에서의 경험을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도 밝혔다. 두 아버지가 묻고 답하는 ‘유족이 유족을 인터뷰하다’ 코너에선 웅기군 아버지가 “지금까지 가슴이 아파 아들의 이름을 두 번 이상 불러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내일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끝나면 ‘웅기야, 웅기야’ 이렇게 수백 번 불러보려고 한다.”
마지막 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 아버지와 공연자, 관객이 합창했다.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이 메아리치자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되돌아왔다. 두 아버지는 함께 길을 걸어준 관객을 바라보며 큰절을 올렸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겠다.” 관객도 맞절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당 앞마당에서는 <한겨레21>이 주관하는 야외 사진전 ‘길 위에서’가 열렸다. 박승화·김명진 사진기자가 두 아버지와 동행하며 찍은 20점이 잔디 위에 전시됐다. 제자 7명과 전시회를 찾은 고3 담임 선생님은 두 아버지가 지난 7월28일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짊어지고 걸었던 십자가와 아이들 초상화를 나란히 놓고 미사를 드리는 사진을 구입했다. “학교에 걸어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많이 울던 아이들과 함께 보며 마음의 키를 한 뼘 더 키우고 싶다.”
이호진씨가 받은 세례증서. 이호진씨 제공
8월15일 새벽 5시 교황을 만나는 날, 두 아버지는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안산 분향소에서 출발한 다른 세월호 희생자 가족, 생존 학생 34명과 대전월드컵경기장 부근에서 만났다. 안산 유가족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두 아버지는 순례길을 걸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두 아버지가 38일간 짊어졌던 십자가는 천주교 대전교구 박상병 신부가 유흥식 주교의 허락을 받아 월드컵경기장으로 들여왔다. 하지만 7월29일 ‘아이들의 눈물’이라 생각하며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담아온 바닷물은 반입이 금지됐다.
“I love you” “I love you”
오전 10시 5만 명이 운집한 대전월드컵경기장에 교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교황은 오픈카를 타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신자들과 인사했다. 카퍼레이드가 제단 왼쪽 끝 앞줄에 앉아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지날 때 교황은 차에서 내렸다. 유가족들과 손을 맞잡기 위해서였다. 특히 두 아버지와 함께 순례길에 나섰단 승현군 누나 이아름씨는 교황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The truth of the ferry Sewol disaster should be come out entirely.”(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교황은 유가족들과 한참 그곳에 머물렀지만 생방송 화면에는 그 모습이 전혀 비춰지지 않았다. 3시간30분 동안 행사가 진행될 때도 유가족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오전 10시15분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교황은 경기장 중앙제단 뒤에 있던 제의실 앞에서 유가족 8명과 단원고 생존 학생 2명을 만났다. 애초 사무실에서 따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교황이 KTX를 타고 이동하는 바람에 만남의 시간이 짧아졌다. 결국 제의실 앞에서 모두 선 채로 마주했다. 웅기군 아버지가 무릎을 꿇어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추며 첫 번째로 인사했다. 그가 십자가를 선물하고 싶다고 말하자 교황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승현군 아버지는 “I love you”(사랑합니다)라고 두 차례 말하며 교황의 손에 입 맞췄다. 교황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김형기 수석 부위원장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 곁에 계신 한국 천주교를 밀어달라. 가족에게 어떤 고난과 고초가 닥칠지 모른다. 두렵다. 그때 교황님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유가족이 “광화문에서 단식 중인 유민이 아빠를 안아달라”고 말하자,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8월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식에는 유가족 600여 명이 참석한다. 김병권 가족대책위 위원장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왜 죽어갔는지 이유는 알고 싶다.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도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다”며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10명을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청했다.
15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황은 유가족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때론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했다. 또 손을 잡거나 안아주며 위로했다. 두 아버지의 십자가 이외에도 유가족들은 영어와 스페인어, 한글로 쓴 편지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팔찌,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손바닥 크기의 앨범을 선물했다. 희생된 이들을 기억해달라는 의미였다. 특히 가족대책위에서 만든 14쪽 분량의 앨범은 1반부터 10반까지 희생된 학생과 단원고 교사, 일반인 희생자의 사진이 실려 있다. 교황은 유가족들에게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져온 묵주를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호진씨. 이호진씨 제공
‘우리랑 한 가족이구나’ 싶었다
오전 10시30분 미사를 집전하려고 등장한 교황은 유가족이 선물한 노란 리본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배지의 의미를 유가족에게 전해들은 교황이 유흥식 주교에게 청해 가슴에 달았다. 이 모습에 유가족은 감동했다. “만나뵈었을 때는 너무 떨려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신 것을 보니 ‘우리랑 한 가족이구나’ 싶었다.”(김병권 위원장)
이날 교황은 미사 삼종기도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주시길 기도한다.”
대전=정은주 <한겨레21>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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