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동아시아와 한반도②]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강화된 러시아의 극동정책
14.08.04 20:20l최종 업데이트 14.08.04 20:20l윤성학(knsi)
지금의 동아시아는 전통적인 한미, 한일 동맹관계가 북중러 삼각관계와 대립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미국과 중국이 G2로 쟁패하는 가운데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한국은 중국과 경제협력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는 복잡하기만 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코리아연구원에서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격동하는 동아시아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히기 위해서 6번에 걸쳐서 기획특집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와 극동지역도 그 영향력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외교 실패로 큰 폭의 지지도 하락을 경험하였다. 이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놓인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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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크림 합병조약 서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 의회 의장, 푸틴 대통령, 알렉세이 찰리 세바스토폴 시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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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연합(EU)는 이미 러시아의 일부 해외 자산동결과 금융거래에 대한 제재를 가하였지만 이번에는 러시아의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제재에 착수하고 있다. 극동지역에서 활발하게 자원개발을 진행하는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로스네프티(Rosnefty)와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채굴 회사 노바텍(Novatec), 금융권 기업으로는 러시아 대외경제은행, 러시아농업은행, 모스크바은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기업들은 미국 등 서방 자본시장에 접근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북극해 개발과 셰일오일 채굴 기술협력에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크림 합병 이후 이미 지난 3월부터 투자부진과 금융위기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번 제재로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EU 전문매체 'EU 옵서버'는 새로운 경제 제재조치로 러시아 경제는 올해 약 31조 원, 내년 약 103조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것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1.5%, 4.8%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심각한 경제 불안과 더불어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도 추락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인 국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푸틴의 이미지도 악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주요 8개국 정상회의(G8)에서 배척되고 있으며 올해 11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을 배제하는 움직임마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의 전방위적인 압력에 대해 푸틴은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외부 세력의 위협에 굴복한 전통이 없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를 침략하였지만 결국 정복하지 못했다. 서방의 계속되는 경제조치는 오히려 러시아 내부의 결속력을 높여주고 푸틴에 대한 지지도를 높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푸틴은 미국에 굴복하기보다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서방과 단호하게 맞설 가능성이 높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강화되는 서방의 제재에 대해 러시아 지배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 이후 막대한 부를 쌓아온 신흥재벌 세력은 서방과의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푸틴의 전통적인 지지 세력인 실로비키(국가 보안 관료)들은 강경 대응을 요구하며 유럽 대신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을 통해 현 상황을 돌파하고자 한다.
실로비키의 정점에 서 있는 푸틴은 절대적인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제 대외정책의 방향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선회하고 있다.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아태지역으로의 선회할 것을 선언하였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러한 정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러시아 대외정책방향, 아시아로 선회
러시아의 이같은 움직임은 서방 측의 제재조치와 압박 속에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하는 전술적 차원의 움직임만은 결코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 러시아는 수년 전부터 이미 유럽 시장의 발전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며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를 주목하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러시아의 유럽연합(EU) 에너지 자원 수출은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교역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은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수출 시장으로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이 지역의 경제 성장 또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선회는 지난 3월 18일 푸틴이 발표한 새로운 외교 독트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신푸틴 독트린'의 핵심은 러시아는 더 이상 스스로를 유럽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으며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소위 서구식의 보편적인 가치를 신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지난 20년간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시도하면서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였지만 이제 이 노선을 폐기하고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유라시아주의로 회귀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선회 정책에 가장 핵심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푸틴은 2014년 5월 20일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방, 에너지, 교통, 금융 등 49개 부문의 협력문건에 서명함으로써 러중협력을 극대화하였다. 러시아는 2018년부터 새로운 동부선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해 연간 380억㎥씩 30년에 걸쳐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가스협력을 타결하였다.
러시아의 석유기업 로스네프티는 시베리아 스코보로디노를 통해 향후 25년간 3억6500만 톤의 석유를 중국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에 대한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수출은 시베리아 인프라 전체를 현대화할 수 있다. 이는 향후 50년간 러시아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대북한 접근과 한반도 정세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지만 최근 북한과의 협력 기반을 착실히 넓혀 나가고 있다. 2013년 9월에는 극동의 핫산에서 나진항에 이르는 54km 구간의 철도를 현대화시키는 공사를 러시아 주도로 완공하였다. 2014년 2월 소치올림픽 개막식에는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하여 푸틴을 면담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북러 정부간 공동위원회 러시아측 대표를 맡고 있는 갈루쉬카(Aleksandr Galushka) 러시아 극동개발부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현재 1억1200만 달러에 머물러 있는 양국간 교역량을 2020년까지 1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4월에는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이자 부총리인 트루트네프(Yury Trutnev)가 극동지역의 주지사들을 대동해 평양을 방문하여 소방차 수십 대를 북한에 기증하는 기증식을 가졌다. 북한은 트루트네프 부총리에게 기존부채 탕감 이외에도 신규 차관과 에너지 공급을 포함한 무역거래에 있어 가격보조와 우대를 요청하였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은 핵개발에 따른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중국에 편중된 대외경제관계를 다변화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작년 12월 중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장성택 처형 이후 소원해진 북중관계 또한 북러관계 개선에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자신에 대한 최대의 후원자인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새를 메우기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공급을 포함하는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극동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국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러시아는 러중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극동지역에서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일정 부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현실화되자 그 대안의 하나로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국 이민자의 극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약 5만명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이주노동자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게만 나진 부두항의 49년 조차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북 접근이 실질적인 성과를 낳기 위해서는 가스관, 철도, 전력망 연결 등 남북러 3각협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남북러 3각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남북한이 철도협력 및 가스관 프로젝트 등에 전향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남북러 인프라 건설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의 자유무역지대의 설치를 통해 러시아는 극동 개발을 본격화할 수 있으며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가간 전략적 변화가 적극 감지되고 있는 극동지역에서 일종의 풍선 효과를 낳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한 관계 개선과 유라시아 협력을 위한 좋은 기회만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러시아 제재를 위해 한국의 대러시아 투자를 주저앉힐 가능성이 높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의 유일한 돌파구인 러시아 주도의 나진항 개발사업도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조치로 인해 한국은 러시아와의 새로운 협력 프로젝트를 펼쳐 나가는 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이 지금처럼 소극적이고 대미의존적인 자세로 극동 지역 변화에 대응한다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한국정부의 주요 대외정책 노선은 심각한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통일대박'이라는 비전은 구호로만 거칠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고려대학교 러시아CIS 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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