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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월요일

가수 김장훈 "박근혜 대통령, 제발 와 달라"


[현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 돌입 서어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04 17:13:17 가수 김장훈 씨가 22일째 이어진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에 동참했다. 김장훈 씨는 4일 오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자신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낮 2시부터 광화문에서 유가족들 단식에 합세합니다. 세월호 특별법도 유야무야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마음 다잡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의지로 단식에 합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예고한 대로 오후 2시 정각에 단식 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유가족 단식장 안으로 들어가 단원고등학교 고(故)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47) 씨와 잠시 담소를 나눴다. 이날 오전 고(故)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이 이날 오전 22일간의 단식농성을 마치면서, 김영오 씨는 단식을 이어가는 마지막 유가족이 됐다. ▲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에 돌입한 가수 김장훈 씨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단식 농성 천막 안에서 유가족 김영오 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에 돌입한 가수 김장훈 씨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단식 농성 천막 안에서 유가족 김영오 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김장훈 씨가 김영오 씨에게 건강을 묻자, 김영오 씨는 "배가 홀쭉해졌다"며 배 둘레를 손으로 감쌌다. 단식장 주변으로 기자들이 모이자 김장훈 씨는 "가족들은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며 단식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식이라도 안 하면 노래하는 것도 의미 없다" 김장훈 씨는 동조 단식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유가족들이 20일 넘게 단식하고 계시는데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난다"며 "단식하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울러 "이렇게 단식하는데 한 명도 들여다보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메시지를 이제는 좀 던져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이로 인해 유가족들이 단식을 이어가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직설적으로 "대통령이 와 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와 달라. 와서 뭐라고 할 사람 없다. 계란 안 던진다. 물 안 던진다. 정말 마음으로 유가족들 껴안아달라. 저분들 누가 돌려보내나. '내가 이제 알아서 하겠다' 이 한마디가 대통령 임기 5년 한 일 중에 가장 성군다운 행동이 아닐까. 이건 간청이다." ▲광화문 광장 내 단식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김장훈 씨. ⓒ프레시안(서어리) ▲광화문 광장 내 단식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김장훈 씨. ⓒ프레시안(서어리)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던졌다. "특별법 제정은 유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부정부패를 막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저도 세월호를 잊고 싶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그런데 이건 유가족을 위한 게 아니다. 이 얘기는 잘 생각해보라. 특별법이 제정되면 안전한 것뿐 아니라 모든 게 달라진다. 모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달라진다. 부정부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냈는데 그 시스템이 잘못 돼서 그 자식들이 맞아죽었다. 이런 일들이 특별법이 제정되면 해소가 된다." 그는 아울러 언론에도 세월호 특별법 내용과 관련, '굴절된 보도'를 하지 않을 것을 호소했다. 여당에서 특별법 내용으로 주장하는 특례 입학 등 특혜 사항은 유가족의 요구가 아니라는 얘기다. "제가 진도에 갔을 때 (새누리당) 이정현 국회의원 당선자가 왔다. 그도 '어느 정치인이 그렇게 얘기했고, 어느 정치인이 반박했고'(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해놓고 유가족들이 한 것처럼 한다면…. 대학 특례입학, 평생 생활보장. 추모공원 건립. 이런 것들은 한 번도 유가족들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수사권 보장, 성역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중략) 더 이상 유가족분들 폄하하고 훼손시키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대체 유가족을 몇 번을 죽여야 하나." 그는 "1차 단식은 4일동안(오는 7일)'이라며 단식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노래와 공연을 해치는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공연 전 이틀까지 단식하고 하루는 링거를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힘을 받을 것 같다. 그런데 팬들은 건강을 걱정한다"라고 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설렁탕 한 그릇 때리고(먹고) 왔다"며 "'헝그리' 정신으로 공연 다 잘 할 거다. 단식이라도 안 하면 노래하는 것도 의미 없다"고 했다. 다음은 가수 김장훈 씨가 광화문 단식 농성장 앞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 전문. 유가족분들이 20일 넘게 단식하고 계시는데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난다. 제가 주변에 물어보니 단식하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계셔서 국민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혹시 굴절된 보도가 있다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저도 다음 앨범 준비도 하고 공연도 하고 있는데, (유가족들은) 20일씩 넘게 계시는데, 저 같은 장정이 못 할까 싶어서 힘 실어드리러 왔다. 일본에 가서 대지진 치유센터에 가서 뭔가 얻어왔다. 그러고 왔더니 태풍도 오고 바지선도 철수하니까 (실종자 가족들이) 심란해하셔서 진도에 갔다가 결정했다. 그전부터 단식을 동참했으면 했는데 못했던 게 죄송했다. 이렇게 단식하는데 한 명도 들여다봐주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메시지를 이제는 좀 던져야 하지 않나. 메시지는 단지 새누리당에 한한 게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위정자들에게 이건 아니지 않나. 가장 좋은 모습은 대통령이 오셔서 가족들 끌어안고 '내가 약속한 대로 지킬 테니 이제 그만 하시라'고 가족들을 일으켜 세운다면 이 땅의 모든 갈등과 여러 혼란이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김장훈 씨는 "오죽하면 명색이 가수인 제가 여기서 슬리퍼 신고 뭐하는 거냐. 정말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김장훈 씨는 "오죽하면 명색이 가수인 제가 여기서 슬리퍼 신고 뭐하는 거냐. 정말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앞으로 제 룰은 공연 한 시간 두 시간. 힘드니까 (공연) 이틀 전까지 단식하고, 하루는 링거 맞고 앨범녹음은 전날까지 하고 녹음은 쉬어가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일정으로 1차는 4일 동안. 토요일 공연이 있기 때문에. 모르겠다. 목요일 전에 실려갈지. 지금도 체력 바닥난 상태인데 지금 체력 논할 때 아니다. (김영오 씨가) 일주일 전보다도 5~6킬로그램 빠질 것 같은데 그땐 웃으셨는데 지금은 못 웃으신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서 하고, 다시 일어나서 하고. 제 본연은 노래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와 공연을 해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제 공연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게 하겠다. 지금 시절이 있으니까. 여기선 쓰러져도 무대에선 쓰러지지 않을 거다. 5000만 명 중 몇 명은 그런 얘기를 하실 것 같다. '가수가 노래나 하지'. 그게 제 꿈이다. 제 별명이 베짱이었다. 하도 밥만 먹고 기타만 쳐서. 그런데 오죽하면 가수가 이렇게 나와야 하나. 이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세월호 때문에 SNS를 시작했는데, SNS 아니고선 알릴 길이 없어서 1인방송국처럼 하고 있는데 불만이라고 표현 안 하겠다. 보도가 나가면 정정보도는 약하게 나가고 있다. 요즘 논란이 되는 게 유가족들의 본뜻이 훼손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특히 대학 특례입학, 평생 생활보장. 추모공원 건립. 이런 것들은 한 번도 유가족들 입에서 나오지 않았고 (유가족이 제안한) 특별법에 들어있지 않았다. 제가 진도에 갔을 때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가 왔다. 당선자도 '어느 정치인이 그렇게 얘기했고, 어느 정치인이 반박했고'(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해놓고 유가족들이 한 것처럼 한다면…. 유가족은 보상금 얘기도 한 적 없다. 오히려 넉 달이 됐으면 정부에서 얘기가 나와줘야 한다. (유가족들은) 수사권, 성역없는 수사 요구했고.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어떤 분들은 '그만 좀 하지' 한다. 그런데 제가 페이스북에서도 썼지만 '이제 그만 좀 하지'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이건 유가족을 위한 게 아니다. 이 얘기는 잘 생각해보라. 군대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서 전국이 그쪽으로 생각이 몰려있다. 그런데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적폐를 타파하고 관피아를 척결하고 부정부패 막고 안전한 대한민국 만드는 건데 왜 이게 민심과 정부랑 부딪히는 건지…. 단군 이래 최초로 정부 슬로건과 민심이 최초로 일치하는 것 처음 봤다. 대통령도 공약으로 이야기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유가족이 요구한 게 없다. 나와서 이 분들은 자기를 태워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희생자가 없고 이런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저는 한 발짝 나가서 특별법 제정되면 안전한 것뿐 아니라 모든 게 달라진다. 모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달라진다. 왜냐면 부정부패 없어지기 때문에. 예를 들어 건설을 보면, 못된 관행. 갑의 횡포. 소를 2년 동안 키우는데 350만 원 드는데 400만 원에 파는 상황에서, 100만 원에 소를 팔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다 때려죽이지 않나. 이 나라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냈는데 그 시스템이 잘 못돼서 그 자식들이 맞아 죽었다. 이런 일들이 특별법이 제정되면 해소가 된다. 이 특별법이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유가족 단식장 가운데 앉아 있는 김장훈 씨. ⓒ프레시안(서어리) ▲유가족 단식장 가운데 앉아 있는 김장훈 씨. ⓒ프레시안(서어리) 그런데 아무도 안 와보고, 역대 참사 중 유가족이 이렇게 길거리에 나온 적이 있나. 이렇게 장기적으로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빠진 적 있나. 저도 세월호 잊고 싶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제가 힘이 안 되는 게. 국민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거다. 이렇게 가다간 어떻게 할지가 생길 거다. 그렇게 되면 혼란스러운데. 대통령도 힘들 거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절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아시겠지만, 수사권을 요구하는데 국가에선 법적으로 틀이 없고 뭐(사법체계)가 무너진다고 하고. 정부가 만약에 제대로 법 집행 했다면, 부정부패 없었다면 특별법 얘기도 없었을 거다. 외상후 스트레스가 아니라 세월호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거듭날 계기인데 도대체 누가 막는지. 왜 국조특위가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얘기하지 않겠다. 위원장은 카카오톡을 통해 이거(특별법)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어떤 분은 주무시고, 어떤 분은 다른 당과 문제 있으면 저 사람 사퇴 안 하면 안 하겠다고 한다. 이게 개인의 감정에 따라 바꿀 수 있는 환갑 잔치가 아니다. 민심이고 국가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증인을 누구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또 7.30 재보궐선거 끝나자마자 결렬됐다. 청문회가. 당연히 하기로 했던 것들이. 이런 것들이 제가 봤을 땐 정치인들이 와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교감하고 그 다음에 법 집행해야 하지, 책상 앉아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건 제가 생각한 것의 100분의 1도 안 됐다. 제가 50일간 기사 보고 연구하고 6월 5일에 뛰어들었다. 오늘 온 것도 7.30 선거 이후에 왔다. 제가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디 가서 갓끈도 매지 말라고 했다고, 선거 전에 가면 오해할까 봐. 저는 어떤 당을, 정치인도 지지한 적 없다. 저는 공연에서 울고 웃고 그냥 인간의, 노래만 하고 싶은 사람이다. 저도 꿈 같다. 제가 이런 자리에 나와서, 연예 프로가 아니라 매일 뉴스 나오고 시사프로 나오는 제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일만큼은. 제가 독도도 이런 사명감을 갖지 않았다. 이 건에서 지면 민란도 아니고, 정의라는 게 여기서 진다면 이 땅의 후대와 자식들은 이 땅에서 살아갈 자신 없다. ▲유가족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접어 만든 리본 모양의 종이배 띠. ⓒ프레시안(서어리) ▲유가족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접어 만든 리본 모양의 종이배 띠. ⓒ프레시안(서어리) 정치하는 분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겠다. 안 싸우겠다. 제발 와 달라. 대통령 와 달라. 와서 뭐라고 할 사람 없다. 계란 안 던진다. 물 안 던진다. 정말 마음으로 유가족들 껴안고 들어가라. 저분들 누가 들여보내나. '내가 이제 알아서 하겠다' 이 한마디가 대통령 임기 5년 한 일 중에 가장 성군다운 행동이 아닐까. 이건 간청이다. 예전에 신하들이 머리를 굽혀서 했던 간청. 그리고 그것이 금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 왔고,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제 마음은 유가족 옆에 저 같은 사람 하나 앉아있으면 힘 되지 않을까. 유가족이 쓰러지는 걸 보느니 제가 쓰러지는 게 나을 것 같다. 여러 수많은 감정과 수십 일간 쌓아왔던 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 참 희극이고 비극이다. 대통령께서 제발 좀 와주십시오. 오셔서 이분들 껴안고 일으켜달라. 그리고 집으로 돌려보내달라. 울다 울다 울 힘도 없다. 진도에서 얘기해보면 제가 10번까지 갔는데 극단적인 생각하시는 분 많다. 이러다 큰일 난다. 유가족 몇 번 죽이고 제발 유가족들이 돌아가셔야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실 건가. 제발 부탁한다. 이대로 대한민국이 가서는 안 된다. 가수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오죽하면 제가, 명색이 가수가 슬리퍼 신고 뭐하는 거냐. 정말 노래하고 싶다. 조그만 힘이 됐으면 좋겠고. 제 본연을 흐트러뜨려 가면서 하는 게 맞나 고민했다. 그런데 단식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공연, 신곡 녹음 다 좋은 느낌으로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세상이 이렇게 부당한데 그걸 등지면 노래 못할 것 같다. 오늘, 내일 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앉아있을 거다. 지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언론이다. 원래 민심인데 민심을 움직이는 게 언론이기 때문에. 유가족분들께서 그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정치인에게서 나왔다는 것. 대학특례입학, 평생 보장, 가족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조사해보시면 안다. 더 이상 유가족분들 폄하하고 훼손시키는 일 없었으면, 대체 유가족을 몇 번을 죽여야 하나. 그리고 이렇게 와주신 정의로운 언론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린다.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서어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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