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만 달랑 빼놓고…"
곽재훈 기자, 서어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07 20:04:52
여야가 7일 낮 원내대표 회담을 통해 도출한 세월호특별법 관련 합의에 대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격분한 반응을 보였다. 유족들은 "여야 원내대표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늘의 합의를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라며 "합의한 법안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이날 저녁 국회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합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 (☞기사 하단에 회견문 전문 첨부) 단원고 2학년 고(故) 유예은 양의 아버지인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이 낭독한 입장문에서 이들은 "여야 합의 소식에 가족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은 가족과 국민의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합의"라고 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필요성을 강조하며 "검·경 합동수사나 국정조사는 가족과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기는커녕 의혹만 더 확산시켜 왔다"며 "진실을 밝힐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한 이유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여야 합의 내용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하겠다는 합의는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가족과 국민이 청원한 법률안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점, 진실을 내다버린 여야 합의 따위는 우리의 발길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이들은 여야에 대해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정국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할 궁리만 해 왔다. 새정치연합은 탈출하려는 새누리당을 뒤쫓아갔을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협상의 야당 측 대표였던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앞서)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독립적 특검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찾아와서도 이러한 특별법을 강조하지 않았는가"라며 "손바닥 뒤집듯 가족과 국민에게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했다.
회견에서 김병권 가족대책위 위원장은 여야 합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저희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단원고 2학년 고 김빛나라 양의 아버지다. 유경근 대변인도 "오직 진상규명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만 달랑 빼놓고 하려 한다"고 외쳤다.
유 대변인은 "저는 (지난 4일) 21일째의 단식을 중단했다. 수많은 가족들과 박영선 원내대표도 와서 '단식 그만하고 힘내 싸우라'고 해서 단식을 중단하고 나흘째가 됐다"며 "그런데 오늘 일어난 일을 보니 이 자리에서 단식하는 저를 몰아내고 야합하려고 한 것이냐"고 했다. 그는 "21일 만에 속아서 중단한 단식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물과 소금, 효소를 먹는 단식 아니라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고 단수단염(斷水斷鹽)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이미 3주의 단식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폭염 속에서 하는 단수단염 단식은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유경근 대변인(오른쪽) 등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에 속한 유족들이 7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유경근 대변인(오른쪽) 등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에 속한 유족들이 7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광화문 유족들도 "실망스럽고 처참한 수준…박영선 믿었는데 뒤통수"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은 격분한 반응을 보였다. 단원고 2학년 고 김민희 양의 아버지라고 밝힌 한 유족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재보선 결과 보고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실망스럽고 처참한 수준"이라며 "왜 유가족 진만 빼고 줄줄이 병원 실려가게 하나"라고 했다.
그는 "단식하는 의미가 사라졌다"며 "오늘 당번이라 천막을 지키기로 했는데 그냥 집에 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청문회 일정 잡으면 뭐 하나? 증인 아무도 못 세울건데. 김기춘이다 뭐다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할 것"이라고 답답한 듯 말했다.
같은 학년 오경미 양의 아버지라고 밝힌 유족은 "박영선은 유일하게 믿을 만한 인물이었는데, 비대위원장이 되자마자 이렇게 뒤통수를 치나"라며 새정치연합 박영선 비대위원장에 대한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명분없는 딜(거래)"이라며 "새누리당만 욕할 수 없어 새정치연합도 뭔가 욕하는 구호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상설특검은 미덥지 못하다고 특별법(에 의한 특검 임명)으로 하자더니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나"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왜 가족들을 죽이나"라며 "청와대, 국정원(의 책임을 규명할) 열쇠가 사라졌다. 이제 해경이나 해양수산부 조금 건드리고 말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가족들은 이제 가족들이랑 국민들밖에 믿을 데가 없다"며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가족들이 새정치연합에 기회를 준 건데 이제 다 말아먹었다"고 주장했다.
진보정당들도 여야 협상 정면비판
정치권 내에서도 여야 협상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정의당은 당 자체 세월호특위 위원장 정진후 의원 회견을 통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이 합의한 내용은 국민과 세월호 유족들을 끝내 낙담시키고 주저앉혀 버렸다"며 "국민과 세월호 유족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 그들만의 합의"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앞서 새정치연합 내에서 두 당 간의 '통합' 논의가 나온 데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정의당은 "대다수 국민과 세월호 유족들이 핵심적으로 요구해 왔던 사항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며 "필요하면 상설특검으로 하면 된다는 주장을 계속 내세워 온 새누리당의 입장에 새정치연합이 무기력하게 동의해준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양당 합의에 대해 정의당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25일째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양당은 일방적 합의를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원외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도 각각 성명을 내고 비판했다. 노동당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보장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족들이 제안한 법안이 가장 최선의 법안"이라고 했고, 녹색당도 "여야는 유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런 합의는 인정할 수 없다"며 "오늘의 합의는 철저한 진상규명과는 동떨어진 합의"라고 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에 대한 가족대책위 입장' 전문이다.
가족의 요구 짓밟은 여야 합의에 반대한다
오늘 오후 뉴스로 전해진 여야 합의 소식에 가족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은 가족과 국민의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7.30 재보선 이후 세월호 국면을 노골적으로 탈출하려는 새누리당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길게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진실을 밝힐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한 이유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검경 합동수사나 국정조사는 가족과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기는커녕 의혹만 더 확산시켜 왔다. 국정원이 세월호 증축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문건이 발견됐는데 그냥 묻어버리려고 한다. 골든타임을 포함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는데 아무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4월 16일 이후로 아직까지 그날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 가족들더러 여기에서 멈추라는 말인가. 평생 그날의 참사 속에서 살라는 말인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하겠다는 합의는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가족이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는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가 낸 후보 두 명 중 대통령이 한 명을 임명한다고 한다. 이런 특별검사에게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야 했던 진실을 내맡기라는 것인가. 그럴 것이었다면 특별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검경과 국회 국정조사에만 진상 규명을 맡길 수 없는 이유는 그저 불신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우리 아이들, 여러 희생자들에게 전할 이승의 편지는 우리 스스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야 원내대표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늘의 합의를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가족과 국민이 청원한 법률안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합의한 법안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날도,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는 날도, 아무런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던 여야가 왜 오늘 이와 같은 합의를 했는가. 다음주 교황 방한을 앞두고 애가 닳은 청와대를 위한 합의일 뿐 아니냐고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국정조사에서도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권한을 모두 내려놓은 법안을 특별법이라고 이름만 붙여 놓았던 새누리당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는가.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정국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할 궁리만 해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탈출하려는 새누리당을 뒤쫓아갔을 뿐임을 알고나 있는가! 오늘 합의는 이러한 새누리당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국면 탈출 시도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들러리를 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점엔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는 점에 가족들은 땅을 치고 있다.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원내대표 시절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독립적 특검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찾아와서도 이러한 특별법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손바닥 뒤집듯 가족과 국민에게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여당과 합의한 것에 대해 가족들은 용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반대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다. 그리고 가족대책위와 국민에게 어떤 의견도 묻지 않고 이루어진 여야 원내대표끼리의 합의는 당신들만의 합의일 뿐임을 분명히 밝힌다.
여기에서 멈추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고 또 다른 참사가 서서히 시작될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해온 국민들 역시 오늘의 여야 합의에 우려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 진실을 내다버린 여야 합의 따위는 우리의 발길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2014년 8월 7일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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